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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 싸락눈이 봄 머금은 땅 을 어찌 덮으랴 

겨울 외투를 벗고 제주 다랑쉬오름에 올랐더니, 바람에 실려온 봄꽃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글·사진 전민규 기자

▎겨울이 봄을 시샘하듯 눈을 흩뿌린다. 제주의 2월은 봄과 겨울이 함께 있다.
제주의 들녘을 걷는다. 하늘은 봄을 시샘하듯 눈을 뿌리지만 땅은 이미 봄을 품었다. 봄인 듯, 봄이 아닌 듯…. 제주의 2월은 봄과 아옹다옹한다. 유채꽃은 흩날리는 눈발에도 아랑곳없이 노란빛으로 검은 땅을 덮었다. 관광객들은 유채꽃밭을 거닐며 봄을 반긴다. 하얀 눈송이를 머리에 얹은 동백이 붉은빛을 더해간다. 봄의 전령사 매화도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수선화도 만개했다.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수선화를 ‘해탈한 신선’에 비유하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시심에 담았다.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고/ 기품은 그윽하며 담박하며 매화가 높다 한들 뜨락의 섬돌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진짜로 만났네/ 푸른 바다 푸른 하늘 한 송이 환한 얼굴/ 신선의 인연 그득 하여 끝내 아낌이 없구나/ 호미 끝에 버려진 하찮은 이놈을/ 창 밖은 고요한 책상 사이에 공양하노라”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다랑쉬오름’에 오른다. 오름은 아직 겨울이다. 구름 사이 장엄한 빛 내림이 차가운 땅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바람을 맞는다. 바람이 봄의 향기를 품었다.


▎1. 서귀포시에 위치한 신천목장에서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 2. 다랑쉬오름에 올라서 성산일출봉 쪽을 바라본 풍경. 맑은 날에는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성산일출봉 주변의 유채꽃밭에서 한 관광객이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4. 갑자기 내린 눈으로 돌하르방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 5. 수선화, 매화, 동백은 제주의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 글·사진 전민규 기자

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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