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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로드 클래식(마지막회)] 길 위에서 죽고 산 장엄한 주유(周遊) - 미쳐서 살다 정신차려 죽는 역마살 인생을 만나다 

‘텍스트가 텍스트를 부르고, 길이 길을 부르는’ 인연 깨달아… 끊임없이 흘러가는 삶의 여정 속 새로운 사람과 이정표 발견 

고미숙 고전평론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국경을 넘어 타자를 만난다는 것, 그냥 길 위에 나선다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목표를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과정을 즐기고 탐닉하는 새로운 생(生)의 방식도 있다. ‘로드 클래식’이 전하는 전복의 메시지다.
야호, 드디어 연재가 끝났다! 처음 종로 3가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 담당기자의 연락을 받았던 때가 떠오른다. 연재를 해달라는 말에 ‘여행기 고전’을 리라이팅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아주 오래전 심어두었던 생각의 씨앗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이다. 마치 〈월간중앙〉과 기자의 메신저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글을 쓰고 책을 낼 때마다 허공에 흩어져 있던 인연의 입자가 활발하게 분자운동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미쳤어, 미쳤어, 그걸 어떻게 하려구?” 정말로 아무런 준비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헌데 그 후회막급한 중에도 생각의 씨앗이 하나씩 발아하기 시작했다. 〈열하일기〉(중국)·〈서유기〉(인도)·〈돈키호테〉(스페인)·〈허클베리 핀의 모험〉(미국)·〈조르바〉(그리스)·〈걸리버 여행기〉(이상한 나라들). 순식간에 텍스트와 순서까지 결정되었다. 죽 배열해놓고 보니 전 세계 ‘여행기 고전’의 최고봉들이었다. 이 작품 속의 길을 다 이으면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거리다. ‘멋지다!’ 하고 감탄하는 순간, 로드 클래식(이하 ‘로클’로 약칭)이라는 그럴싸한 명칭도 툭! 튀어나왔다. 참으로 기묘한 노릇이다.

〈열하일기〉를 맨 앞에 배치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여러 번 통독해온 터라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겠다는 ‘꼼수’였고, 다른 하나는 〈열하일기〉야말로 다른 작품들의 세계로 인도해준 전령사이기 때문이다. 2003년 〈열하일기〉를 ‘리라이팅’할 때 다른 여행기는 어떻게 써졌는지 궁금해서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작품을 섭렵하게 되었다. 몹시 실망스러운 작품도 있었고, 예상 밖으로 흥미로운 작품도 있었다. 그중에서 강렬한 임팩트를 준 작품들이 이번‘로클’의 인연으로 엮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텍스트는 텍스트를 부르고, 길은 길을 부른다!”는 것을.

그렇게 어리바리하게 시작해서 이번이 15번째다. 1년 하고 3개월이 지났다는 뜻이다. 지난 1년을 돌아 보니 연재가 무사히 끝난 것만도 기적 같다. 시작부터 느닷없었을 뿐더러 매달 분주한 일상 속에서 방대한 분량의 작품을 읽으면서 거의 동시적으로 원고를 써야 했으니 그야말로 손으로 쓰는지 발로 쓰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더구나 2014년 갑오년은 한국인에겐 잊히지 않을 연대기가 아닌가. 세월호 참사로 그간의 모순과 비리가 한꺼번에 터졌고, 그 과정에서 우리 문명의 ‘쌩얼’과 직면해야 했다. 비극의 파고는 높았으나 정작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어쩌면 사건 자체보다 그 후에 펼쳐진 상황이 더 깊은 상처로 남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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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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