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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함정임의 ‘바닷가 서재’] '공인'과 '익명'의 경계 

사적이고도 공적인 파리와 뉴욕 이야기 

함정임 소설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파리에 갈 때면 매번 찾아가는 곳이 있다. 센 강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센 강변의 파시에 있는 발자크의 집, 팡테옹 언덕의 무프타르 골목, 퐁피두 도서관, 루브르 박물관, 몽파르나스 또는 페르라셰즈 묘지 등이다. 이러한 동선(動線)은 처음 파리에 도착했던 20대 때 이후로 바뀌지 않았다. 새로이 발견하는 곳도 있지만, 페르라셰즈 묘지나 몽파르나스 묘지는 갈 때마다 더욱 특별해진다. 이들은 내게 클로드 로랭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루브르 박물관이나 발터 벤야민의 숨결이 배어 있는 국립도서관 지하 서고를 찾아가는 것과 견줄 만한 의미를 지닌다. 전자에는 발자크, 프루스트를 비롯한 쇼팽,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등이 잠들어 있고, 후자에는 사르트르와 시몬 드보부아르를 비롯 보들레르, 베케트, 뒤라스 등이 묻혀 있다. 이들은 모두 내가 문학에 눈을 뜨면서부터 지금까지 서가의 중심을 차지하는 인물들이다.

파리 14구 에드가 퀴네 거리에 있는 몽파르나스 묘원의 푸른 문으로 들어설 때면 마치 오랜 세월 머릿속으로 꿈꾸던 아버지나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향하듯 야릇한 기분에 휩싸인다. 순례는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합장묘에서 시작, 루에스트 거리 6구역에 이르러 보들레르의 의붓아비 오픽 대령의 가족묘에서 잠시 멈춘다. “유언도 싫고 무덤도 싫다”던 보들레르가 어머니와 함께 거기 묻혀 있다. 사르트르와 보들레르의 묘석 위에는 언제나 꽃과 동전, 지하철 티켓, 메모들로 가득하다. 이들의 묘석은 이끼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이들로부터 벗어나 중앙 교차로 트랑베르살 거리를 지나 내처 걸어가면 12구역의 베케트의 무덤에 다다른다. 잿빛 대리석의 직사각형 묘석 위에는 평생 글 수발을 들었던 수전과 그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을 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다. 열렬한 베케트 옹호자인 나조차도 그의 무덤 위에 꽃잎 하나 놓을 생각을 못한다.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한 아이리시 이방인에게는 아무 말 없이 마주 서 있다 가는 것 이상의 경의가 없다. 사르트르와 보들레르, 베케트, 뒤라스에 이어 몽파르나스 묘원 산책에서 최근 내 발길을 잡아끄는 새로운 이름이 있다. 2004년부터 일원이 된 뉴요커 수전 손택의 묘이다. 뉴욕에서 71세로 숨을 거둔 그녀를 이곳으로 안장시킨 것은 그녀의 아들 데이비드 리프이다. 어머니 수전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6월 중순의 어느 햇살 맑은 날 나는 16구역에 자리한 수전의 파리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녀와 나는 거실의 소파 두 개를 차지하고 앉았고, 나는 우리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카세트테이프 녹음기를 꺼내 놓았다. 그리고 내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명료하고 권위적이고 직접적인 답변을 경청했다. (…) 다섯 달 후, 11월의 어느 쌀쌀한 오후에 나는 그녀가 소위 ‘자기만의 복구 시스템’이며 ‘그리움의 아카이브’라고 칭한 8천 권의 장서에 에워싸여 살고 있던, 106번가와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의 교차로에 자리해 허드슨 강을 내려다보는 널찍한 펜트하우스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 신성한 곳에서 그녀와 나는 밤늦은 시각까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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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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