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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이현령비현령’ 허술한 특수공무집행방해죄 

경찰을 우습게 봐? 콩밥 먹어봐! 

무면허운전 도주해 저항하다 중상 입고 ‘경찰 폭행범’ 낙인 옥살이… 현장 녹화영상·통신기록 등 증거 없어 경찰의 ‘사건조작’ 의혹 부채질

한 60대 남성이 경찰의 무리한 법 적용과 법원의 잘못된 판결로 옥고를 치렀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나섰다. 그의 죄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1년 6개월간 수감됐다가 항소심의 감형 판결로 석방됐다. 감형도 됐고, 이미 형기를 마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는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곳곳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꼬리를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찰이 마음먹으면 누구나 특수공무집행방해범으로 둔갑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남모(60) 씨는 2013년 7월 5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 남씨의 인생은 송두리째 망가졌다. 그는 작은 도로안전 시설물을 제조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날도 도로 관련 부품의 베트남 수출 계약건으로 서둘러 거래처를 가던 길이었다. 오전 10시에 바이어와 함께 사무실을 나온 그는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약 8㎞쯤 떨어진 거래처로 향했다.


▎현장에서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에게는 다양한 법적 권한이 부여된다. 경찰이 권한을 의무가 아닌 ‘권리’로 여기고 남용했을 때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영화 <끝까지 간다>(2013)의 한 장면.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때쯤 사건은 시작된다.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시도하다 교통단속을 벌이던 경찰관에게 적발됐다.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길가에 정차하려던 그가 갑자기 속도를 내 도주하기 시작했다. 남씨는 운전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그는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해 거래가 취소되면 큰 손해를 입게 될까 봐 두려워 불법을 저질렀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도주를 감행한 뒤부터 경찰관과 남씨의 진술이 엇갈린다. 경찰의 사건 수사기록과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남씨는 도주를 제지하려는 단속 경찰관의 두 발등을 바퀴로 밟고 그대로 도망쳤다. 이후 1.4㎞쯤 떨어진 거래처에 도착한 남씨는 뒤따라온 경찰관에게 거칠게 저항하다 제압당한 뒤 수원남부경찰서로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남씨는 코뼈 골절과 각막 파열의 부상을 당했는데 경찰은 남씨가 제압 과정에서 바닥에 넘어지면서 얼굴을 부딪혀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고 기록했다.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마치고 경찰서로 돌아온 남씨는 곧바로 구속됐다. 그에게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도로교통법위반(무면허운전) 혐의가 적용됐다. 수원지법 형사 15부(부장판사 이영한)는 검찰이 기소한 남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상반된 주장… 법원은 경찰 손 들어줘


▎CCTV 카메라는 경찰관의 법 집행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제3의 목격자다. 경찰은 법 집행 현장에서 과잉대응 논란이 증가하자 실시간 영상 전송이 가능한 웨어러블 폴리스캠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가 경찰과 검찰의 주장이다. 무면허운전으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고, 법원도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니 양형 판단에 무리가 없고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남씨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에 대해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경찰관이 검거 과정에서 자신을 폭행했다고 반박한다. 남씨의 주장과 변호인의 변론이유서 등을 토대로 한 당시 상황은 수사기록과 전혀 딴판이다.

남씨는 경찰관의 지시에 불응하고 도주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경찰관의 발등을 밟고 지나갔다는 사실은 부인했다. 경찰이 뒤따라오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거래처에 도착해 주차한 뒤에야 순찰차가 뒤쫓아온 사실을 알았다. 경찰관은 “술 냄새가 난다”며 남씨에게 “음주운전 했느냐”고 몰아붙였고 연행을 시도했다.(남씨는 전날 늦게까지 마신 술 때문에 냄새가 난 것 일뿐이라고 해명했고, 경찰의 음주 측정 결과 훈방 수준으로 나왔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은 남씨의 얼굴을 곤봉과 주먹으로 때렸다.(무엇으로 맞았는지에 대한 남씨의 기억은 다소 정확하지 않다) 남씨의 부상은 전치 6주에 해당하는 중상이었다.

경찰서로 연행된 남씨는 119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 자신의 휴대전화로 직접 119에 구급차를 요청했다. 아주대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마치자 동행한 경찰관은 의사에게 “잠시 조사한 뒤 다시 데려오겠다”고 한 뒤 경찰서로 돌아와 조사를 시작했다. 약 두 시간쯤 지난 뒤다. 조사가 시작되자 남씨를 처음 검거한 김모 경장은 남씨가 오히려 자기를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남씨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구속했다.

남씨는 경찰관의 과잉진압을, 경찰은 남씨의 폭력과 공무집행방해를 각각 주장했다. 사건의 핵심은 누가 폭행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의외로 간단한 일일 수 있다. 목격자와 CCTV가 있다면 말이다. 특히 남씨가 도주한 현장과 검거된 현장을 비춘 CCTV만 있다면 누구의 주장이 거짓인지 밝히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현장을 비춘 CCTV 녹화 영상은 법원에 제출되지 못했다.

경찰은 텅 빈 도로를 비추고 있는 CCTV영상을 캡처한 사진 몇 장을 제출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모 순경은 의견서에서 “도주 경로에 설치된 카메라를 모두 확인한 결과 2개가 있었지만 범행장소를 직접적으로 비추고 있는 카메라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마저도 회전식이어서 도주 상황이 찍히지 않았다고 했다. 검거 현장 주변에 설치된 사설 경비용 CCTV도 공교롭게 태풍 때문에 모두 고장이 난 상태였다고 했다. 남씨에게 불리한 우연들이 꼬리를 물었다.

재판부가 검·경의 주장이 일리 있다고 판단한 가장 유력한 근거는 목격자 진술이다. 재판부는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검거 현장 바로 옆 골프연습장 관계자와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의 진술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남씨의 차에 타서 사건의 모든 과정을 목격한 동승자의 진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 실체 밝혀줄 ‘11시30분’의 진실 공방


▎남씨를 검거한 경찰관은 남씨가 차량 앞바퀴와 뒷바퀴로 각각 자신의 왼쪽과 오른쪽 발을 밟고 도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승용차의 앞뒤 바퀴와 경찰관의 위치상 운전석 쪽에서 순식간에 두 발을 밟는 건 비현실적이다.
남씨는 경찰의 증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그의 변호인도 “몇 가지 핵심 정황이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CCTV 영상 기록에 대한 증거확보 과정에서 경찰의 일 처리에 비상식적인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남씨의 항소심 변호를 맡았던 이익현 변호사는 “처음엔 남씨가 과대망상적인 주장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사건을 되짚어보니 나 역시 사건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의심을 키운 건 경찰 스스로다. 1심 재판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경찰이 폭행사실을 숨기려고 발생시간을 조작하고 CCTV 증거를 없앴다”는 남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남씨가 구치소 안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여러 자료가 하나씩 더해질수록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모순이 드러났다.

특히 사건 발생시각에 대한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섰다. 경찰이 특정한 사건 발생시각(범행시각)은 11시30분이다. 김씨가 단속현장에서 경찰관의 발을 밟고 도주한 것을 기준으로 했다. 남씨를 검거한 김모 경장은 “순찰차로 추격하려고 비상등을 켤 때 바로 밑에 시계가 있어서 확인 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시각을 기준으로 오후 11시~12시 사이에 사건 현장 주변의 방범용 CCTV 2대의 녹화영상을 수원시 통합CCTV관제센터로부터 제공받았다. 그러나 영상에 도주 현장이 찍혀 있지 않았다며 영상을 캡처한 사진들만 법원에 제출했다. 사진에 찍힌 건 텅 빈 도로뿐이다. 영상 원본을 제출하라는 재판부의 명령에는 “영상 저장기한이 경과해 삭제됐다”고 했다.

남씨는 이를 “경찰이 자신들의 주장과 배치되는 증거가 나올까 봐 CCTV를 비롯한 결정적 증거들을 고의로 은폐하거나 제외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찰이 사건 발생시각(11시30분)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김 경장은 수차례 무전으로 도주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전 기록으로도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무전을 한 시간과 내용은 일정 기간 동안 보존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무전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또 당시 현장에서 신호위반 단속을 벌이던 경찰관들의 단속 일지도 유력한 증거물이다. 당시 현장에서 단속 중이었던 최모 경찰관은 “차량 단속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지만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

남씨의 사무실에 10시쯤 도착해 잠시 후 곧바로 출발했다는 동승자의 증언을 토대로 해봐도 어느 정도 발생시간을 유추할 수 있다. 남씨의 사무실과 사건 현장의 거리(약 6㎞, 승용차로 20분 이내 거리)를 고려하면 단속 현장에 다다른 시각은 10시30분 전후다. 또 동승자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방문할 거래처와 통화한 기록 등 10시40분경이라는 남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여럿이다. 이익현 변호사는 “11시부터 12시까지 경찰이 확보한 CCTV 영상에 남씨의 차량과 경찰차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경찰이 특정한 사건 발생시간에 오류가 있음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근거”라고 말했다.

애초 추정했던 시간대의 CCTV에 범행 관련 장면이 없다면 시간대를 넓혀서 확인하는 게 정상적인 방법이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수원남부경찰서 서모 순경은 CCTV에 현장이 찍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15초 간격으로 3방향으로 돌면서 촬영되기 때문에 도주 당시 상황이 찍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나중에 이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는 게 밝혀졌다. CCTV 통합 관제를 담당하는 수원시에 따르면 현장의 CCTV 2대는 6초 간격으로 각각 3방향, 4방향을 돌면서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15초와 6초의 차이는 꽤 중요하다. 두 대의 카메라가 도주 순간에 모두 다른 방향을 촬영하고 있었다고 해도 1.6㎞의 도주 경로에서 한 컷도 찍히지 않았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이 촬영 간격을 7초나 다르게 진술한 이유가 단순한 착오인지도 의문이다. 구두진술이 아니라 서면으로 작성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건수사 경험이 많은 A형사는 “도주한 장면이 없더라도 사건 발생 전후 일정한 시간의 녹화영상 원본을 그대로 제출하는 게 상식적이다. 재판의 쟁점이 되는 영상기록을 지우고 별 의미가 없는 사진만 제출한 건 가능한 한 증거를 축소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발등 밟았다”는 증거 설득력 떨어져


▎범인을 검거하는 현장에서 피의자의 주장은 다수의 경찰관의 일치된 증언에 의해 묵살되기 십상이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의 피의자 남모 씨는 경찰관이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남씨가 검거 직후 직접 찍은 사진(왼쪽)에는 오른쪽 눈두덩과 코에서 피가 나고 크게 부어 있다.
그렇다면 경찰관의 발등을 밟았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있을까? 피해자인 김 경장의 진술에 따르면 차를 갓길로 유도해 세운 뒤 운전석 쪽으로 다가서자 남씨가 급가속하면서 앞바퀴로 옆에 서 있던 자신의 왼발을 밟고 이어 뒷바퀴로 오른발을 밟은 것으로 돼 있다. 또 발등을 밟히면서 ‘악’ 하고 소리를 질렀으며, 이 소리를 주변에서 단속하고 있던 동료 경찰관들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동료 경찰관들도 김 경사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그런데 앞바퀴와 그가 서있던 거리상 이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남씨가 운전한 중형승용차(소나타)를 기준으로 김 경장이 서있던 운전석 쪽 창문과 앞바퀴 앞쪽의 거리는 최소한 80㎝ 이상이다. 앞바퀴의 전방지점에 발이 놓이려면 어깨 너비(40대 성인 남성 평균 39.1㎝)의 두 배 넘게 벌려야 가능하다. 또 발을 밟혔다면 본능적으로 즉시 몸을 뒤로 물러서는 게 상식적인 반응인데 뒷바퀴가 지나갈 때까지 오른 발을 빼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 경장이 차량 앞쪽에서 다가왔다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당시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증언한 남씨의 동승자는 “경찰이 차량 뒤쪽에서 운전석 옆으로 다가오자 남씨가 급발진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고, 무언가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김 경장과 수 미터 떨어져 있던 다른 경찰관들이 들은 소리를 바로 옆에 있던 동승자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작은 돌맹이를 밟아도 차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상식이다.

이밖에 김 경장의 발등이 멍도 없이 깨끗했던 점, 이후 남씨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이 중범죄자가 아니면 무면허사건만 처리하면 된다”고 말한 점 등도 발등을 밟았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정황들이다.

세 번째 쟁점은 검거 현장, 즉 남씨가 김 경장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곳에서의 진실이다. 남씨가 경찰서에 연행된 직후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에는 코와 오른쪽 눈두덩이 심하게 붓고 꽤 많은 출혈이 발생한 흔적이 있었다. 남씨의 바지는 피로 물들었다. 남씨는 “주먹인지 곤봉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여러 대를 맞은 뒤 정신이 혼미해져서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피가 떨어져 바지가 온통 핏물로 물들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경장은 법정 진술에서 “피고인(남씨)이 밀치고 계속 폭행하기에 있는 힘을 다해 다리를 걸어 넘기면서 얼굴이 먼저 떨어졌는데, 밑에 있던 나무판에 얼굴이 살짝 긁히면서 피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작성한 사건조서에도 “바닥에 넘어지면서 코 윗등 부위가 살짝 까지고 코피를 흘렸다”고 기록돼 있다. 촬영된 모습과 의사의 진단은 ‘살짝’ 긁히거나 까진 것과 큰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굳이 남씨의 상처를 축소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또 다리를 걸어 뒤로 넘어뜨리면 뒤통수가 부딪히는 게 일반적인데 경찰의 주장대로라면 남씨가 넘어지면서 재빨리 몸을 돌려 얼굴이 땅에 부딪힌 셈이다. 한마디로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처럼 어지간해선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한편 나무판에 긁혔다는 김 경장의 진술은 사건담당 경찰관의 진술과 엇갈린다. 사건을 담당한 서모 순경은 “사건 직후 현장조사를 했을 때 (나무판을) 처음 발견했다”며 “김 경장도 판자의 존재를 몰랐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현장을 비추는 CCTV의 존재에 대해서도 남씨가 골프연습장에서 설치한 CCTV 6대가 있다며 영상 확보를 요구하자 “태풍 때문에 모두 고장 나 영상기록이 없다”고 했다. 또 검거 현장 목격자라며 경찰이 증인으로 내세운 검거 현장 인근의 골프연습장 식당 종업원은 사건 목격 시간을 11시 40분으로 진술한 이유에 대한 변호인의 질문에 “그냥 경찰관이 말해줘서”라고 증언했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경찰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허점이 너무 많아 보인다. 남씨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행정자치부의 CCTV관제센터 운영 지침과 개인정보보호 관련법규에 따르면 CCTV 녹화영상의 최소 보존기간은 30일이다. 재판의 참고자료나 수사기관의 필요에 따라 그 이상 보존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자료는 이 기간이 경과하면 삭제한다. 남씨가 CCTV 녹화영상의 중요성을 뒤늦게 알고 사건 담당자인 서 순경이 복사해둔 녹화 영상 파일에 대해 정보공개를 신청했을 때만 해도 보존기간이 남아 있었다.

재판 진행 중에 증거자료 왜 없앴나


▎경찰관의 팔을 꺾은 혐의(공집방해)와 위증 혐의를 받고 경찰과 법정 다툼을 벌이던 박모 씨 부부는 6년 반 만에 대법원 판결로 혐의를 모두 벗었다. 그러나 박씨 부부는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탄 난 뒤였다. 박씨(왼쪽 첫째)가 가만히 서 있는데 경찰관(왼쪽 셋째)이 팔을 뒤로 젖히고 자작극을 벌이는 모습이 찍힌 장면.
하지만 경찰은 정보공개처리를 하지 않다가 최소 보존기간이 지난 뒤에야 해당 자료가 삭제됐다고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는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도 전이었다. 나중에 재판부가 영상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에는 이미 자료가 삭제된 뒤였다. 남씨의 변호인은 “재판과 관련된 중요한 증거자료를 왜 그렇게 서둘러 파기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남는다”며 “자신들(경찰)에게 별 쓸모가 없다고 해도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는데 굳이 삭제해서 논란을 자초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만약 법원과 검찰 측이 남씨의 항변에 좀 더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남씨는 “1심 재판장이 일방적으로 경찰의 편을 들었다”고 했다. 자신과 변호인이 요구한 반대증거나 증인 채택을 외면하고 증거보존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심 재판장은 막말댓글로 물의를 빚은 일명 ‘일베판사’, 이한영 부장판사였다. 이 부장판사는 2008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1만 개에 가까운 ‘막말’ 뉴스 댓글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2015년 2월에 법복을 벗었다.

남씨가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건 이 전 부장판사의 편향된 의식을 믿을 수 없어서다. 이 전 부장판사는 세월호 참가 희생자를 어묵으로 비하한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이 구속됐다는 기사에 “모욕적 수사로 구속된 전 세계 최초 사례”라고 두둔하거나,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징역 3년을 선고 받자 “종북세력을 수사하느라 고생했는데 안타깝다”는 등 공정성이 의심되는 댓글들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부장판사는 최근 변호사 개업을 하려 했으나 서울변호사회는 12월 15일 변호사 등록 신청을 거부했다.

남씨의 주장을 허황된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경찰의 현장 증거보존 노력이 허술한 탓도 크다. 증거를 확보하려고 했다면 CCTV 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무전기록, 단속일지, 순찰차에 달린 블랙박스 등 경찰이 자체 확보 가능한 증거도 다양하고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도 법정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지난 11월 26일 남씨의 억울함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임을 실감케 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이른바 ‘할리우드액션 경찰사건’으로 불린 공무집행방해 사건이다. 2009년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던 박모(52) 씨는 음주단속 현장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현장에 있던 한 경찰관이 박씨가 자신의 팔을 꺾었다며 박씨를 공무집행방해혐의로 입건했고, 박씨는 대법원에서 벌금 200만원이 확정됐다.

재판 과정에서 “남편이 경찰관의 손을 비튼 사실이 없다”고 증언한 박씨의 아내는 위증혐의로 기소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고, 아내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씨도 다시 위증혐의가 추가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건 역설적이게도 경찰관이 유죄 판단의 증거물로 제출한 캠코더 녹화 영상이었다. 화질 보정을 한 영상에서 박씨와 조금 떨어져 서 있던 경찰관은 혼자 팔을 뒤로 비틀고 쇼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경찰관들이 둘러서 있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진실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씨의 위증죄를 심리한 항소심 재판부가 녹화 영상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면 억울함을 풀지 못했을 터다. 박씨는 6년5개월간의 법정공방 끝에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교사였던 아내는 학교에서 해고됐고, 귀농을 꿈꿨던 박씨 부부는 공사현장과 공장을 다니며 나락의 삶으로 떨어졌다. 박씨를 범법자로 몰았던 경찰관은 충주경찰서에서 여전히 근무 중이다.

억울한 피해 막으려면 법 적용 더 신중해야

공무집행방해에 대한 검경의 민감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펴낸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사람은 1만396명. 사상 처음 연간 1만 명을 넘었다. 2012년(5242명)보다 갑절 가까이 늘었다. 집회시위에 대한 엄격한 법률 적용의 영향이 크지만 공권력에 대한 저항을 ‘괘씸죄’로 판단하는 감정적 법 적용사례도 적지 않다.

“공집(공무집행방해)으로 엮는 거 쉬워요. 피의자를 살살 약 올려서 화를 돋우면 십중팔구 흥분해서 욕하거나 몸을 밀치거든요. 그렇게 승강이를 벌이다가 됐다 싶으면 공집 현행범으로 체포하면 돼요. 수사? 같은 제복 입은 사람 편을 들지, 처음 본 피의자 편을 들겠어요? 선배들 중에도 ‘공집전문가’ 꽤 있어요.” 지구대 근무 경험이 많은 젊은 경찰관이 전한 말이다.

“범죄를 입증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설령 피고에게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만한 심증을 갖게 하는 증거가 없다면 피고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2013년에 내놓은 판례의 한 대목이다.

‘증거재판주의’는 사법제도의 근간이다. 판사 개인의 의심이 판결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합리적인 의심’을 뒷받침하는 건 사건 관련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제3자의 ‘팩트’다. 제3자의 합리적인 ‘팩트’가 없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남씨는 말했다. “제가 지은 죄에 대한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그게 무슨 법입니까? 저는 반드시 누명을 벗을 겁니다.” 남씨는 자신을 수사한 경찰관을 증거인멸과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남씨의 고소 사건은 3개월째 검찰청에서 잠자고 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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