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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CEO] 장주식 코레일유통 사장 

“추억의 ‘홍익매점’ 새 옷 입히니 신·구세대 모두 찾아오시네요”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기차역 매장의 낡은 이미지 벗고 모던한 디자인으로 승부수 띄워… 사업 다각화로 1년 만에 두 자릿수 매출 성장 일궈내 코레일 안팎에서 찬사 쏟아져

▎패션·유통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장주식 코레일유통 사장(사진)은 취임 후 전국의 기차역 상업시설에 모던한 디자인을 입혀 깜짝 매출을 일으켰다. 그의 전략이 적중한 덕분에 코레일유통은 최대 매출 기록을 매년 갈아치우고 있다.
부산역 대합실에 들어서면 한켠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매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마다 쟁반을 들고 있는 게 유명한 제과점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부산의 명물 어묵을 파는 곳이다. 1953년에 시작해 3대째 내려오고 있는 삼진어묵이 베리커리형 테이크아웃 매장을 표방하며 2014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영도시장, 깡통시장 등 부산의 어묵 전문점들이 몰려 있는 전통시장에서 미처 어묵을 먹어보지 못한 여행객들이 부산을 떠나기 전에 꼭 한 번은 찾고 싶어하는 곳이다.

나이 지긋한 중·장년층에게 추억의 먹거리인 ‘대전역 가락국수’도 새 단장을 하고 신세대의 입맛을 공략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호남선 완행열차가 대전역에서 열차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잠시 정차하는 10분 남짓한 시간에 승객들이 승강장에서 허기를 채우던 것이 대전역 가락국수의 원조다. 이 가락국수가 2013년에 코레일유통이 운영하는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산학 협력을 통해 옛 가락국수의 레시피를 규격화했고, 신세대 입맛에 맞는 퓨전메뉴도 개발했다.

“유통의 시작과 끝은 디자인이다”

기차역 한 귀퉁이의 간이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과 우동의 시대는 이제 옛말이 됐다. 하지만 추억의 옛 맛은 그대로다. 기차역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더 깔끔하고 새로워진 종합 유통·상업시설로 소비자의 발길을 불러모은다. 기차역의 유통 혁신을 주도한 주인공은 코레일의 유통 부문 계열사인 코레일유통이다. 장주식(61) 코레일유통 사장은 2014년 3월 취임한 이래 디자인 쇄신을 전면에 내세워 유통 혁신바람을 몰고 왔다. 12월 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코레일유통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장 사장의 집무실에는 건물 조감도를 담은 액자들이 벽에 여럿 걸려 있었다. 코레일유통이 현재 영등포구 당산동에 새로 짓고 있는 본사 사옥이다. 지상 20층의 건물 모양이 범상치 않다. 장 사장은 “‘넘버원(No.1)’을 형상화한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코레일유통의 기업 위상을 제고하는 상징이자, 지역의 넘버 원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려는 자부심을 디자인으로 녹였다”고 그가 덧붙였다.

코레일유통은 일반인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홍익회’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1936년 재단법인 철도강생회라는 이름으로 열차 내 식음료 판매와 역내 매장 운영사업을 시작한 것이 출발이다. 이후 (재)홍익회로 이름을 바꿔서 운영되었다가 2004년엔 ㈜한국철도유통으로, 다시 2007년에는 코레일유통㈜으로 바꾸었다. 전국 철도역사의 상업시설 운영 및 임대사업 등을 전담한다. 역사 안팎에 있는 편의점 ‘스토리웨이’도 코레일유통이 운영한다. 전국적으로 350여 개의 스토리웨이 점포를 거느린다. 그 밖에 코레일유통이 담당하는 전문 상업시설이 600개가 넘는다. 코레일의 6개 계열사의 2015년 총 매출액이 9674억원(잠정집계) 정도인데 그중 코레일유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40%가량이다. 코레일의 든든한 맏아들인 셈이다.

장 사장이 코레일유통 사장에 취임할 당시에는 주변에서 낙하산 인사란 비판도 나왔다. 여의도연구원(과거 여의도연구소)에 몸담았던 경력 때문이다. 하지만 잡음은 이내 수그러들었다. 유통 전문가로서 그의 경영능력이 이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의류·패션 전문업체인 진도와 제이앤와이, 제이스디자인 등을 거쳤다. 코레일유통 대표이사로 취임한 그는 ‘디자인’에 방점을 찍었다.

“유통의 모든 것은 디자인으로 시작해서 디자인으로 끝난다”고 장 사장은 강조했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상업시설에 디자인이 없으면 고객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철도이용객 수준도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비행기를 이용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KTX를 탄다. 그만큼 철도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높아졌고 취향도 까다로워졌다. 과거에는 플랫폼의 간이매점에서 말아서 내는 가락국수 한 그릇을 후루룩 먹는 걸로 만족하는 시대였지만 옛날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전국의 기차역에 산재한 유통점포의 디자인부터 손을 댔다. 디자인의 변화가 시작되자 매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디자인 혁신을 시작한 뒤로 매출이 20~30% 급증했다. 처음부터 결과가 좋았던 건 아니다. 공기업의 특성상 사장이 아무리 변화를 강조해도 조직의 말단까지 경영철학이 전달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장 사장이 취임 초 매장 디자인 개선을 주문했지만 반 년이 지나도록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매일 전국의 역사로 출장을 다니며 지시사항이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을 다녔다. 하도 출장을 많이 다니니까 코레일과 기획재정부에서조차 너무 출장을 자주 다니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인사팀장을 데리고 다니면서 지시한 대로 개선되지 않은 곳의 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인사 조치를 했다. 강도 높게 추진하니 조직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변화에 가속도가 붙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장 사장은 매장 디자인 혁신에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이른바 ‘3쉽 원칙’이다. ‘보기 쉽고, 선택하기 쉽고, 집기 쉽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유통 기업들이 소비자의 행동패턴을 분석해 매장을 디자인하고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이다. 코레일유통이 역사 내 매점을 통합해 만든 편의점 브랜드 ‘스토리웨이’에서 이런 원칙을 우선 적용했다. 뒤이어 임대 매장으로 변화가 확산됐다.

장 사장의 취임 첫해인 2014년 코레일유통의 매출은 3720억 원으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3천억원대를 돌파했다. 2015년에는 4150억 원으로 11.3%가 또 올랐다. 당기순이익은 2014년 63억원에서 2015년 112억 원으로 무려 77%나 늘었다.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2014년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역대 최고 점수(95.8점)를 받으며 5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불과 1년 만에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둔 장 사장이 주목하는 다음 과제는 무엇일까? 그는 “공기업답게 사회적 책임과 동반성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공기업으로 사회적 책임도 다할 것”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짓고 있는 코레일유통의 신사옥은 숫자 ‘1’을 형상화했다. / 사진제공·코레일유통
우선 전국의 중소 상인들과 상생 전략을 꾀한다. 자체 물류망이 없는 작은 편의점과 동네 슈퍼(나들가게)에 코레일의 철도인프라를 활용해 물류 유통을 책임지는 윈-윈 전략이다. 장 사장은 “코레일의 최대 강점인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동시에 소상인에게는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적인 유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2014년 취임 초기 119개에 불과했던 나들가게 상품공급 매장이 2015년에는 10배에 달하는 1190개로 늘었고 매출은 147.8%가 상승하는 엄청난 실적을 거뒀다.

최근에는 청년 창업 지원사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9세 이하의 개인이나 법인을 대상으로 창업 아이템을 심사해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선정된 지원 대상자에게는 서울과 수도권 주요 역과 KTX 정차 역에서 매장을 운영할 기회를 준다. 이들에게는 보증금을 전액 면제해주고 수수료율도 3% 할인해주는 것은 물론 코레일유통의 고객서비스처에서 매장 운영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한다. 장 사장은 “매장 수를 무작정 늘리는 것이 당장엔 이익이 될 순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오히려 방해하는 장애물이될 수 있다”며 “제품을 차별화하고 다양한 수익원을 발굴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국민을 위한 공기업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해를 맞아 코레일유통은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1월에 당산동 신사옥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입주를 앞두고 장 사장은 코레일유통의 새 시대에 걸맞은 포부를 다짐한다. “서민의 삶과 밀접하고 친숙했던 추억 속의 홍익회에 새 옷을 입혀 공기업 중에서도 으뜸 가는 변화의 랜드마크로 입지를 굳히겠다.” 그의 목소리와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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