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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 화제] 한국 바둑, 인문학 날개 달고 도약할까 

“태어날 때부터 문사철(文史哲)의 품 안에 있었던 것을” 

손종수 중앙일보 객원기자
바둑 소재로 다룬 드라마들 덕에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인기 확산… 관련 학과 학생·기사들 중심으로 독서 활성화되면서 인문학에도 큰 관심

▎바둑 관련 학과 대학생들과 젊은 프로기사들을 중심으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 대학생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 사진·뉴시스
어느 프로 바둑기사가 산책길에 혼자 커피전문점에 앉아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후배 기사를 만났다. 그 후배는 다음날에도 역시 같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으레 바둑 관련 책이려니 했지만 아니었다. 후배가 빠져 있는 책은 인문학 서적이었다. “바둑을 잘 두고 싶어서 인문학 고전을 읽습니다.” 바둑계의 기린아 박창명(25) 초단의 이야기다.

2016년 1월 5일, 현대바둑 70년의 여정을 막 넘어선 한국 바둑계는 의미심장한 기록 하나로 신년 벽두를 열었다. 대중의 최근 관심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네이버 검색순위 10위 안에 바둑과 관련된 단어를 셋이나 올려놓은 것이다. 1위 이세돌, 3위 이세돌-커제, 5위 바둑TV.


▎1월 5일 멍바이허배 결승 최종국에서 이세돌 9단(왼쪽)과 커제 9단이 반상을 마주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도대체 바둑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바둑 최고의 전성기, 콧대 높은 일본 <바둑저널>이 ‘세계가 이창호를 좇는다’는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중국·일본을 압도했던 ‘이창호 시대(1995~2005년)’에도 없던 일이었다.

이세돌(33)의 이름이 둘이나 끼어 있으니 네이버 검색순위를 꿰찬 직접적 원인은 이세돌일 테다. 이세돌 역시 2012년 삼성화재배 우승을 정점으로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려왔고 국내랭킹에서도 3위까지 밀려나 있다. 지난해 8억원이 넘는 우승상금을 승자가 독식하는 위험 대결로 바둑계 최고의 이슈를 만들었던 ‘이세돌-구리 10번기’도 이 정도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바둑 관계자들조차 반가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해하는 눈치인데 네이버 검색순위를 움켜쥔 이름들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필연의 몇몇 그림과 상황이 펼쳐진다. 우선 순위에 오른 이세돌, 이세돌-커제, 바둑TV는 일제히 1월 5일 막을 내린 멍바이허배를 가리키고 있다.

중국의 헝캉 가구회사가 후원하는 멍바이허배 결승 5번기는 한국의 이세돌과 중국의 커제(柯洁, 19)가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 하나의 세계바둑대회 결승을 넘어 바둑저널은 물론, 모든 언론매체를 뒤흔들 만한 태풍의 눈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몇 개월 동안 흘러간 세계바둑대회의 상황은 제임스 카메론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이라도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절묘했다.

2015년 하반기에 일정이 뒤섞인 형태로 이어진 세계대회는 삼성화재배, LG배, 멍바이허배였다. LG배는 일찌감치 박영훈·강동윤이 결승에 진출해 한국의 우승이 확정된 상태였고, 멍바이허배에선 이세돌과 커제가 나란히 준결승을 통과해 결승에서 격돌하게 됐는데 두 사람의 대결이야말로 팬들이 가장 뜨겁게 원했던 ‘빅쇼’였다.

커제는 뒤이은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라이벌 스웨를 꺾고 우승했는데 그 자리에서 이세돌과의 멍바이허배 결승 전망을 묻는 기자에게 “이세돌과의 승부는 반반이라고 했던 말을 번복하겠다. 나는 이세돌보다 스웨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데 이번에 스웨를 2대 0으로 꺾고 우승했으니 나의 멍바이허배 우승확률은 다시 95%”라고 도발했기 때문이다.

커제는 이세돌과의 멍바이허배 결승을 앞두고 기자들 앞에서 두 번이나 전망을 뒤집었다. 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 이세돌을 2대 0으로 꺾은 직후 인터뷰에서는 “이세돌의 멍바이허배 우승확률은 5%”라고 말한 뒤 결승 3번기 공동 기자 회견에선 “그땐 이기고 싶다는 기세가 충만했던 것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이세돌은 강하고 스웨와 같이 그와의 승부도 50대 50이 맞다”고 물러섰다. 하지만 스웨를 꺾고 우승한 뒤에는 천연덕스럽게도 “이세돌의 우승확률은 다시 5%”라고 뒤집은 것이다.

커제의 도발에 이세돌 “소이부답(笑而不答)” 응수


▎집중력과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들이 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장난꾸러기면 어떤가. 기자들은 화제를 만들어주는 뉴스메이커를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나이 스물도 되지 않은 풋풋한 커제는 맞춤형 스타, 바둑세계의 ‘골든보이’가 분명하다.

맞불을 기대하고 커제의 번복된 도발을 이세돌에게 전한 기자들은 실망했다. 소이부답(笑而不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웃었다고 하는데 그 웃음 속에 감춰진 진심을 짐작한다. 그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승부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런 말.

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 커제에게 허무할 정도로 무기력하게 무너진 뒤 이세돌이 마음속으로 다져왔을 절치부심(切齒腐心)을 안다.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 정상을 포기하지 않은 승부사의 자존감이라면 이런 상황에 발끈하는 언쟁 따위는 우스울 것이다.

실은, 소년기의 이세돌도 커제 못지않은 당돌함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광오(狂傲)하다고 해야 할까. 10대 시절 유창혁과 겨룬 타이틀전에서 선승을 거두고 내리 연패, 우승을 놓친 뒤 바둑 관계자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우여곡절 끝에 소주방 2차를 간 기억이 있다.

지금도 동안(童顔)이지만 초등학교 아이 같은 얼굴을 가졌던 그때, 이세돌은 가스버너 위에서 끓는 찌개를 앞에 두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말이에요. 우리나라 바둑계의 보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요.”

맞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웃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결코 웃자고 한 소리가 아니다. 그때 취중에도 ‘내가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자부심, 뼛속 깊은 곳까지 배인 그런 오만함이야말로 천재들의, 1인자의 자리에 오른 승부사들의 타고난 기질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이 차이는 제법 나지만 이세돌과 커제는 닮은 점이 많다. 십대에 승부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된 천재성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자유분방하다. 얽매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풍운아의 기질이 있다.

한중 프로바둑의 첨예한 경쟁 속에서 가장 도발적인 기풍을 가진 이세돌과 가장 도발적인 언행을 가진 커제의 정상격돌. 제2회 멍바이허배 결승 5번기는 그만큼 많은 화제를 잉태하고 있었다.

2015년을 단 하루 남겨둔 날, 중국 난퉁 진스호텔에서 막이 오른 멍바이허배 결승 1국. 돌을 가린 결과 백번 34승 무패, 백으로 두면 적수가 없다는 커제가 백돌을 쥐게 되었고 중계를 지켜보던 한국의 팬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커제 앞에 앉은 이세돌은 불과 2개월 전 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그 이세돌이 아니었다.

이세돌은 폭풍 같은 흔들기로 전국을 아수라의 난장으로 몰아가는 마왕, 복수라는 독을 품은 용으로 돌아왔고 그 앞에서 의기양양했던 백번불패의 신화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불리한 승부를 버티던 커제는 전국을 가로지른 대마가 모조리 비명횡사하고 나서야 처참한 표정으로 백기를 들어올렸다.

이미 알려진 결과이니 결승 5번기를 모두 장황하게 웅변할 필요는 없겠다. 이세돌 스스로 “나의 세계대회 결승 중 최악의 역전패”라고 자평한 결승 2국에서 멍바이허배 결승시리즈의 운명이 결정됐다.

이세돌은 2, 3국을 연패해 벼랑에 몰린 결승 4국 종반에 깊은 수읽기로 그림 같은 역전승을 끌어내 팬들을 열광시켰으나 행운인 듯 백을 쥔 결승 5국에서 공배까지 계산해야 하는 중국룰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반집으로 패했다. 바둑판 위에 없는 가상의 반집을 흔히 ‘신의 몫’이라고 일러왔으니 결승 2국의 역전패가 예정해준 운명은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중국룰에 기댄 행운의 반집승으로 생애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린 커제는 15년 연상의 선배 쿵제(孔杰) 이후 5년 6개월 만에 세계대회 3관왕(바이링배·삼성화재배·멍바이허배)이 됐고 세계 바둑판도의 저울추도 중국 쪽으로 슬쩍 기울었다.

이세돌과 커제의 멍바이허 결승 5번기는 네이버 검색순위 이외에도 바둑계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이 승부의 바둑사적 의미를 주목하고 현지에 기자를 파견해 단독취재를 결행한 인터넷 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cyberoro.com)의 뉴스는 모처럼 이창호의 전성시대를 넘어서는 조회수 신기록을 갱신했고 cj e&m으로부터 바둑TV를 인수한 한국기원은 평균 시청률의 10배를 웃도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개국에 맞춘 방송체제 개편 이후 연착륙에 성공했다.

가장 고무적인 사실은 바둑에 대한 젊은 팬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인데 그것은, 최근 몇 년 사이 급변한 한국기원의 발전과 절묘하게 맞물린 대중문화 교류가 만들어낸 시너지효과다.

바둑의 외연확장 가능성 열어준 <미생>


▎전문 산악인들에게도 바둑은 인기다. 등반 도중 잠시 짬을 내 바둑을 두고 있는 산악인들. / 사진·중앙포토
한국기원이 고대해온 바둑의 빠른 외연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중문화 교류, 즉 바둑 이종교배의 성공적 첫 단추는 웹툰 <미생(未生)>이 채워줬다.

<야후> <이끼>로 성실한 대가의 면모를 보여준 윤태호의 웹툰 <미생>은 탄생에 얽힌 사연이 많다. 출판사에서 먼저 윤태호에게 제안했던 기획안은 무협지에 가까운 바둑만화였다. 소설가 김종서가 쓴 조훈현의 전기 <전신(戰神) 조훈현>이 <바둑삼국지>라는 바둑만화로 나와 팬들의 눈길을 끌던 때였다.

윤태호는 내키지 않았다. 무지막지하게 성실한 발품(?)을 팔아 만든 취재노트와 자료를 통해 그려내는 그의 웹툰은 리얼리티(Reality)와 디테일(Detail)이 뼈대요 생명인데 출판사에서 요구한 바둑만화는 판타지에 가까워 창작의 욕구가 크게 일지 않았다.

또 그쪽이라면 스승 허영만 화백과 짝을 이뤄 <타짜>를 만들고 영화까지 성공시킨 김세영 작가가 있었다. 김세영 작가는 바둑과 온갖 잡기에 능한 고수이고 자신은 바둑도 잡기도 초보를 벗어나지 못한 하수인데 무슨 수로 그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래서 출판사를 설득했다. 바둑을 소재로 하되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만화를 그려보겠다. 오래전 그런 생각으로 3년쯤 준비해둔 자료가 있다. 그걸 바둑과 섞어서 윤태호만의 작품을 만들겠다.

그런 합의에 따라 바둑 관련 자료를 찾아 한국기원을 방문했고 실타래처럼 풀린 인연이 내게로 이어졌다. 20여 년간 바둑계 밥을 먹으면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동안 소설가·만화가·영화감독 등 적지 않은 대중문화 예술가들이 찾아왔고 그들에게 조언해준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윤태호에게도 들려줬다.

찾아온 작가들은 모두 한 번의 취재로 끝냈고 이야기를 듣기만 할 뿐 무엇인가를 적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윤태호는 달랐다. 두 번을 찾아와 장시간 취재노트에 꼼꼼하게 필기하고 녹취까지 해간 유일한 작가였다.

실제로 방문한 것은 세 번인데 그 세 번째는 취재협조에 대한 사례로 소주 한잔 나누러 온 것이다. 그는 그때 이미 일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남다른 ‘스타트업’을 하고 있었다.

윤태호가 <미생>에 바둑을 녹여내는 데 가진 어려움은 딱 하나였다. 바둑의 수법이 너무 어렵다. 프로에 가까운 연구생이나 프로들의 깊은 수읽기와 사유를 나 같은 하수가 어떻게 풀어내나. 그런 고민. 조언은 간단했다.

만화에 바둑판 많이 집어넣지 마라. 특히, 바둑판에 숫자 표기로 수법에 관한 해설 같은 건 절대 그리지 마라. 그냥 당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그리고 그게 바둑이라고 말하면 바둑이 된다.

프로기사의 삶 그려낸 <응답하라 1988>


▎지난해 9월 20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KB국민은행과 함께하는 2015 서울 차 없는 날 바둑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바둑에 열중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왜냐? 많은 바둑 전문가가 바둑은 인생이다, 바둑은 우주다 그렇게 말한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조차 그 정도 귀동냥은 했을 만큼 흔한 말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모든 삶의 이야기가 통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제 작품 속에서 그렇게 표현하고 활용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심지어 바둑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바둑이 아닌 것으로 바둑을 말할 수 있어야 바둑의 외연이 넓어진다.

바둑의 가장 큰 장점은 모호함이고 그 모호함이 인생과 우주로 확장돼 모든 표현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을 모르면 바둑을 제대로 알았다고 말할 수 없다.

윤태호는 <미생>으로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다음(daum.net) 연재 초기부터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화제를 모으더니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출연 배우들과 함께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200만 부나 팔려나간 <미생>은 2014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윤태호는 2014 바둑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미생>이 바둑동네에 안겨준 최고의 선물은 바둑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젊은 세대에게 바둑에 관한 호의를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삶의 바닥에서 꿋꿋하게 역경을 헤쳐 나가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yes를 한글로 풀어 만든 이름은 긍정적 삶을 지향한다는 의미겠다)는 고색창연하고 정적으로 가라앉는 바둑의 이미지를 밝고 건강하게 바꿔줬는데 바둑 인구 저변 확대로 이어진 그 파급효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2015년 여름 끝물, <응답하라(1994, 1997)> 시리즈로 젊은이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은 공감을 끌어낸 tvN 드라마 작가와 담당 PD가 찾아왔다. 후속 드라마로 <응답하라 1988>을 준비 중인데 바둑을 주요 소재로 차용하고 싶다는 얘기였고 그중에서도 이창호의 어린 시절과 2005년 제6회 농심 신라면배 5연승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조언을 요청했다.

<미생>이 바둑 내면의 깊은 사유를 직장인의 삶으로 끌어들여 문제 해결의 은근한 지침으로 삼았다면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은 프로바둑이라는 독특한 세계를 대중의 실생활 속에 잘 녹여냈다. 일반에게 익숙하지 않은 프로기사들의 삶도, 보여주는 방법에 따라서 얼마든지 신선하고 재미있게 전달될 수 있다는 발상은 영리했다.

이미 전문직 종사자들을 등장시킨 드라마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의사·검사·형사·피아니스트·지휘자·스포츠 선수를 주연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성공했다면 프로기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성공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응팔>의 성공은 <미생>보다 더 빠르고 넓게 바둑계에 긍정적 영향을 몰고 왔다. 초등학교 방과후 학습, 바둑교실에 학부모들의 어린이 바둑교육 문의가 늘고 대학에서, 지역의 문화센터에서 바둑을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tvN이 드라마 <미생>과 <응답하라(1994, 1997, 1988)>시리즈를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웹툰의 드라마 제작에 시큰둥했던 공중파 TV의 시선도 달라졌다. 신규 방송채널 중 선두를 달리는 JTBC가 노동현장의 첨예한 문제를 건드린 화제의 웹툰 <송곳>을 드라마화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지 않을까.

대학생들에서 시작해 프로기사로 확대된 독서모임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5 바둑대상’에서 최우수기사상(MVP)를 수상한 박정환 9단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아무튼 <미생>과 <응팔>이 폭넓은 시청률로 사랑받으면서 언론매체는 물론, 바둑에 관한 사회 전반의 관심과 호의가 예전보다 부쩍 높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세돌과 커제가 겨룬 멍바이허배 결승 5번기 중계에 쏟아진 폭발적인 관심 역시 <미생> <응팔>의 파급효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승부에 전념하던 프로기사들이 인문학을 배운다. 인문학이 프로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프로기사 개인과 바둑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고민이 많았고 취재를 하면서 그 고민은 조금 더 깊어졌다. 10여 년 전에 비하면 인문학에 대한 프로기사들의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열풍이나 열기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 영향이나 변화 역시 이제 막 불을 지피기 시작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도 자체로 의미는 크다. 바둑계에서 ‘인문학 전도사’로 불리는 바둑아카데미 양종호 소장이 주도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프로, 아마추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이, 서서히 조금씩 바둑계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소중한 발견이다.

양종호 소장이 바둑계 젊은이들의 독서모임을 결성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 구태를 거듭하는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학문 쪽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때마침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승부에 학문적으로 접근하겠다는 학과를 신설한 학교가 눈에 띄었다. 여의도 독서모임을 주도하던 지식인이었던 그가 2005년 명지대 바둑 학과에 입학한 배경이다.

“뭔가 달리 살아봐야겠다는 인생의 전환점에서 바둑이 눈에 띄었습니다. 낯선 바둑의 학문적 연구에 호기심을 느꼈는데 막상 바둑계에 몸을 담고 보니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에 느꼈던 아쉬움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거예요.”

정치든 바둑이든 또 다른 분야든 전문가들이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일이다. 인문학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이, 그 시대에 맞는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익혀야 할 공부다. 흔히, ‘문사철(文史哲)’로 묶어 통칭하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인문학의 기본으로 본다.

오늘날 사회 전반에서 목격되는 수많은 일탈은 모두 인문학의 정신을 상실하는 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양종호 소장이 바둑계에 들어와 느낀 아쉬움, 서둘러 독서모임을 결성한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2007년에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그중에는 프로기사 특기생도 있었다) 위주로 시작된 독서모임은 2년 뒤 프로기사 독서모임으로 확대된다. 전문가들은 머리가 좋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몰입력, 집중력이 뛰어나다. 바둑이라는 승부의 전문가들은 특히 더 그렇다.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관심을 두면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빠른 속도로 받아들인다.

“예전에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독서모임 참여 이후 생각의 정리가 잘됩니다. 무엇이든 일을 결정하는 태도가 분명해졌죠. 어떤 일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 것인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런 일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목표가 뚜렷해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음…, 요즘은 ‘더불어 산다’는 말을 깊이 생각하고 있어요. 프로들은 혼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바둑 수련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대체로 공감능력이 약합니다. 동료들과 어울려 책 읽고 토론과 사유와 글쓰기의 시간을 가지면서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독서 후 향상된 집중력과 자신감

프로입단 8년차 문도원 3단의 말이다. 문도원은 동료 프로 이다혜 4단, 배윤진 3단, 김혜림 2단과 ‘꽃보다 바둑센터(꽃바)’라는 바둑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린이도 가르치긴 하지만 수강생의 대부분이 20~30대의 젊은 성인 남녀라는 게 특징이다. ‘꽃바’ 역시 다른 바둑도장이나 바둑학원처럼 입문자를 가르치거나 이미 바둑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력 향상을 돕고 있지만 그 강의 프로그램은 많이 다르다.

‘꽃바’가 추구하는 목표는 즐거운 소통이다. 사람답게 사는 인문학 정신의 실천이랄까. 바둑을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논다는 개념이 더 강하다. 기력의 향상은 그 뒤에 따라오는 덤. 그래서 ‘꽃바’의 강의실은 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꽃바’의 선택이 현명하다는 건 결과가 입증해준다. 이미 수강생이 100명을 넘어섰고 신규 여성회원도 빠르게 늘고 있다. ‘꽃바’의 막내 김혜림이 조만간 2호점으로 독립한다는 경사도 귀띔해준다.

독서모임의 친구이기도 한 김혜림은 ‘바둑으로 세상을 바꾸자(바세바)’의 리더다. 젊은 프로들이 결성한 이 순수 자원봉사 바둑보급모임은 대학바둑축제, 길거리바둑 퍼포먼스, 한강공원 치맥바둑 나들이 등 다양한 놀이형태로 바둑저변을 확대하는 데 애쓰고 있는데 이 또한 독서모임에서 체득한 인문학 정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즐거운 소통과 나눔의 실천이다.

여자프로기사회가 먼저 시도하고 ‘바세바’가 적극 참여하면서 확대된 길거리바둑은 이제 한국기원의 공식행사가 됐다. 지난해 가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차 없는 날, 길거리 바둑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한국기원 총재)이 참석해 거리의 바둑으로 전하는 소통의 즐거움을 함께 나눴다.

최근 대한바둑협회와 생활바둑협회의 통합을 주도한 한국기원은 바둑TV 인수와 함께 바둑문화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그중 교육부가 추진 중인 인성교육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기원 산하 ‘바둑아카데미(양종호 소장)’와 세계사이버기원(cyberoro.com)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바둑 인성교육 프로그램(한국기원이 공식 인증한 교재와 강의)은 이미 서울지역 유치원 100여 개소에서 채택하였으며 점차 전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제 막 출발해 이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면 궤도에 오른 바둑 인성교육의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과연, 바둑은 인문학의 날개를 달고 진화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바둑은 승부라는 샛길에 빠져 잠시 길을 잃었을 뿐 태어날 때부터 인문학의 품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중국 최초의 제국을 이룬 당대(唐代)의 선비들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도 바로 금기서화(琴棋書畵)였지 않은가. 그렇다면 진화가 아니라 회귀가 되나?

그런데 진화면 어떻고 회귀면 또 어떤가. 바둑이, 사람답게 산다는 인문학의 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소중한 반려로 남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을 믿는다.

- 손종수 중앙일보 객원기자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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