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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70년 장수하는 ‘바다의 고슴도치’ 성게 

알이나 알젓의 풍미(豐味)엔 좀녀(해녀)들의 가쁜 숨비소리 묻어나… 전 세계에 950여 종 서식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성게의 샛노란 살점은 겨울철 별미로 통한다.
바다는 누구나 동경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여름바다는 사람들이 득실거려 좋고, 지금 겨울바다는 고즈넉해서 더 좋다. 길동무 하나 없이 홀로 바다 나그네 되어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응어리진 울화(鬱火)가 싹 삭아버린다. 무엇보다 바다는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줘서 좋다. 사람도 환경의 동물이라 열린 바닷가 사람들이 꽤나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라면 첩첩 산으로 에둘러 싸인 산골 사람들은 제법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편이다. 필자도 순 촌뜨기라 후자로 살아왔다 하겠다.

동해안 해변을 돌다 보면 횟집을 들르기 십상이다. 딱 요맘때였을 것이다. 생선회접시에다 삐죽삐죽 가시 난 밤송이 닮은 것도 푸지게 올려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 동강이가 났는데도 길쭉하고 뾰족한 바늘가시들이 흉물스럽게 마구 꾸물거린다. 그리고 쪼개진 자리에는 탐스러운 샛노란 살점이 가득 들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성게요, 속안의 것은 바로 맛 좋은 성게알이렷다.

겨울 채집을 다니다 보면, 남동해안이나 제주도에서, 거친 해풍이 매섭게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하나같이 검게 탄 고붓한 허리의 아낙들을 빈번이 만난다. 두꺼운 고무장갑을 끼었지만 날카로운 가시에 늘 손 조심을 한다. 잡아온 성게를 무더기로 그러모아놓고, 송이송이 부르쥐고 단칼에 두 토막을 낸다. 실팍진 노란 생식소(生殖巢: 난소와 정소를 모아 부르는 말)를 착착, 콕콕 찍어 몽땅 들어내 통에 모으고 있으니 그 손놀림이 무척 놀랍다. 그 힘든 일로 잔뼈가 굵어진 사람들이라 재빠른 솜씨가 자동적이고 기계적이다. 날이면 날마다 부르튼 입술을 사리물고 얼마나 억척스럽게 성게를 잡았기에…. 가엾고 애틋하기만 하다.

성게는 성게과(科)의 극피동물(棘皮動物, 겉껍질에 가시가 난 동물)로 조수웅덩이나 간조선(干潮線, 썰물 때의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바로 아래 바다에서 많이 채집된다. 전 세계에 950여 종 넘게 서식하며, 세계 방방곡곡의 바다 연안에서부터 수천m 깊은 곳에도 산다. 한국에서는 보라성게(Strongylocentrotus purpuratus), 둥근성게(S. nudus), 말똥성게(Hemicentrotus pulcherrimus), 연잎 성게(sand dollar) 등 30여 종이 산다.

성게(sea urchin) 중에서도 보통 보라성게(purple sea urchin)를 대표로 친다. 보라성게는 우리나라 모든 연안에 분포하며, 수심 5m 전후의 수중암초에서 둥근성게(globular sea urchin)와 함께 발견된다. 큰 것은 껍데기 지름이 6㎝, 높이가 3㎝ 남짓이다. 가시는 껍데기에 단단히 박힌 것이 세고 크며, 끝이 뾰족하고, 길이가 껍데기지름과 거의 맞먹는다. 빛깔은 껍데기와 가시 모두 진보라색이고, 세계적으로 태평양 전 연안에 살며, 놀랍게도 수명이 70년 남짓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성게를 향어(鄕語, 고장의 말)로 ‘섬게’ 또는 ‘밤송이조개(율구합, 栗毬蛤)’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모양이 둥그스름한 것이 밤송이를 빼닮았다. 또 해위(海蝟, 바다고슴도치)로 불렸으니 영어의 ‘sea urchin’ 역시 ‘바다 고슴도치(hedgehog)’란 의미로, 둘 다 아주 비슷하게 가시를 가졌으니 매우 좋은 비유라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생물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

성게는 가시(극, 棘)가 송송 나고, 가시(spine) 사이의 보대(步帶)에는 5~8개의 관족(管足, tube feet) 구멍이 활 모양으로 줄지어 있다. 가시와 관족을 모두 써서 느리게 움직이고, 길이가 성게 지름과 거의 같으며, 그것에 찔리면 따끔한 것이 무지 아프고 쓰리다. 식성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바다풀을 먹는데, 최근에는 개체 수가 매양 늘어나 해양 생태계를 황폐화(백화현상)시키는 주범, 애물단지로 몰리고 있다.

몸통 아래에 입이 있고, 위쪽에 항문이 있으며, 해부를 했을 때 석회질의 억센 저작기(咀嚼器, 음식물을 부수고 가는 기관)인 ‘아리스토텔레스초롱(Aristotel's lantern)’이라 부르는 것이 입가에 있다.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아리스토텔레스초롱은 기원전 350년경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책 <동물의 역사(History of Animals)>에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초롱은 잘못된 변역일 것이고, 실은 그 시대의 초롱을 닮은 성게 그 자체를 뜻했을 것으로 본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우리는 ‘생물학의 아버지’라 부른다.

보통 해조(海藻, algae)나 해초(海草)를 뜯어먹지만 해삼·조개·갯지렁이·해면·거미불가시리도 먹고, 성게 천적은 해달·쥐치·돌돔·바다가재·게·불가사리들이다. 성게가시 사이사이를 작은 새우가 헤집고 들어가 숨어 살고, 입 주위에는 꼬마 게와 고둥들이 잔뜩 기생한다. 성게 알은 인공수정이 쉬워 생물학에서 까다로운 초기발생 연구재료로 흔하게 쓰였다. 더군다나 알이 무척 투명하여 정자가 난자를 뚫고 들어가는 수정(授精)관찰에 아주 좋아 자주 쓰는 실험재료이다.

대개 보라성게, 둥근성게, 말똥성게 생식소를 먹는다. 그 맛이 좀 비릿하면서도 꽤 고소하며 뒷맛이 개운하고, 달착지근한 맛에 독특한 향기가 난다. 성게는 암수딴몸(자웅이체, 雌雄異體)으로 암수의 생식소(gonad)를 먹는데 암컷의 난소는 황갈색, 수컷의 정소는 황백색으로 산란기는 5~6월이다. 주로 날것을 간장에 찍어 먹지만 젓갈을 담가 술안주나 초밥에 얹어 먹기도 하며, 미역과 함께 참기름으로 살짝 볶은 다음 국을 끓이거나 죽을 지어먹기도 한다. 한자어로는 운단(雲丹), 일본말로 우니(ウニ)다. 일본 사람들이 죽고 못 사는데 일식집에서 조만한 나무판때기에 성게알젓을 코딱지 만큼 내 놓는다. 출출한 탓일까, 이 글을 쓰면서 군침이 한입 돈다.

또 따끈한 밥에 알젓을 얹어 비벼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아 내리고, 입안 가득 바다향이 넘친다. 아무튼 성게 알이나 알젓의 그 은은한 풍미(豐味)엔 좀녀(해녀)들의 가쁜 숨비소리(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물 밖으로 올라와 내쉬는 휘파람 숨소리)가 묻어 있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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