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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심리학 교실] 잘못된 결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인지 부조화’의 심리학 

당신의 선택은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
개인의 신념은 조직의 결정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수 있어… 결국 합리적 의사과정이 균형 잡힌 가치관을 유지하는 지름길

▎사진·중앙포토



▎우리는 살면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지녀온 신념에 따라 결정하는 게 정설이지만 다양한 상황적 변수가 등장할 경우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 일러스트·중앙포토
태도는 무엇인가? 어떤 대상과 상황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반응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우선 ‘거짓말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이는 ‘가치’로 분류될 수 있다. 따라서 태도는 상황에 의해 선택된 가치라 할 수 있다. 일례로 의류 판매장에서 판매원이 고객에게 “선택하신 그 옷이 괜찮다”며 무조건 칭찬해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이 같은 상황적 변수를 두고 판매원에 따라 ‘고객에게 거짓말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싫다’라는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태도는 오랫동안 자신이 지녀온 신념에 기인한다.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고 다양한 상황적 변수에서도 일관된 행동으로 표출돼왔다. 이를테면 ‘OO전자 제품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XX전자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요, 평화 애호주의자인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군대에 입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태도의 핵심은 일관성에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일관성에 변동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선호하지 않았던 대학에 입학하게 된 학생이 갑자기 열렬하게 자신의 대학을 칭찬하기 시작한다. 평소 평화주의자였지만 해병대에 입대한 후 동료 병사보다 더 호전적인 태도를 보여 주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애연가였던 당신은 길고도 지독한 과정을 거쳐 담배를 끊은 후 오히려 비흡연자 보다 더 강경한 담배 반대론자가 되지는 않았는가?

최악의 남자친구, 최고의 남편 되다


▎영화 <예스맨>의 한 장면. 주인공 알렌은 모든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예스(Yes)”를 외치다가 위기에 빠진다. 극중 심리학자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사진·중앙포토
이처럼 태도와 태도, 또는 태도와 행동이 서로 일관되지 않거나 모순된 상태를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심리학자 다수는 이 같은 생각과 행동의 비일관성이 사람에게 심리적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인지 부조화 상태가 지속될 경우 배고픔이나 수치심과 같은 내적 불안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불안함을 평온함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그동안 우리는 기존의 태도를 바꾸는 방식으로 불안감에서 가벼이 탈출해왔다. 1950년대 심리학계에서 엉뚱한 심리학자로 유명했던 레온 페스팅거의 주장이다. 이 주장 역시 다소 엉뚱한 심리 실험에서 도출됐다.

애초에 심리학자 페스팅거가 인지부조화를 연구하기 시작한 이유는 종말론을 믿는 어느 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교단의 신자들은 종말론을 믿었다. 인류를 심판하는 대홍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종말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월 21일 대서양 바닥이 융기해 해안선 모두 물에 잠길 것이다. 프랑스는 가라앉을 것이며 러시아는 거대한 대양이 될 것이다. 록키산맥 위로는 엄청난 물살이 밀어닥치리라. 모든 것은 세상을 정화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당시 고작 서른한 살 젊은 나이에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름 날리던 심리학자 페스팅거는 이 교단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엉뚱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이상한 교단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는 신자를 가장해 어렵사리 잠입에 성공했다.

페스팅거가 가장 궁금했던 건 문제의 그날 대홍수로 인한 인류 멸망의 예언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신자의 반응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교단의 신자 중에는 고등교육을 받은 유명 외과의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예언의 종말을 앞둔 순간이 닥쳤을 때 페스팅거는 자신들을 구원할 우주선을 기다리던 신자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들은 지구 탈출을 위해 우주선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옷에 걸친 모든 금속 조각을 제거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자 여자 신자들은 미친 듯이 상의 속옷에서 고리와 걸쇠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남자 신자들은 거칠게 와이셔츠의 단추를 잡아 뜯었다. 바지에 금속 지퍼가 달린 한 신자는 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그 부분을 찢어냈다. 극심한 공포 상태에 빠진 신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암스트롱 의학박사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바짓가랑이 부분을 뜯었다. 뻥 뚫린 그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매서운 겨울바람이 쌩쌩 들어왔을 것은 분명했다.”

물론 종말론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그날 이후에도 신자들은 종말론을 신뢰했던 기존의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대신 조증 환자처럼 기쁨에 겨워 날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기도했더니 신께서 세상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시고 홍수를 내리지 않았다”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기이한 상황은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그 남자와 결혼해도 될까? 너무 늙고 못 생겼어”라며 결혼을 망설이던 한 여자가 얼떨결에 결혼에 골인 한 후 동창회에 나타났다. 이전에는 그렇게 남자친구를 흉보더니 이제는 남편이 된 그에 대한 자랑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사회심리학자 녹스(Knox)와 잉스터(Inkster)는 경마장에서 투기꾼을 상대로 진행된 심층 면접 결과를 공개했다. 내용은 흥미로웠다. 돈이 걸린 도박성 게임이다 보니 경주에서 1등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경주마를 잘 골라야 한다. 지나치게 신중해진 나머지 처음에는 A 경주마를 택했다가 이내 B 경주마로 바꾸는 일도 예사로 이뤄진다.

그러나 경주마를 선택하는 마감시간이 지나버려 미처 자신이 선택한 경주마를 더 이상 취소할 수 없게 됐을 경우 투기꾼의 심리 변화를 보면 재미있다. 본래는 다른 경주마로 바꾸고 싶어 했던 자신의 태도를 무시한 채 최종적으로 선택된 경주마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인지부조화의 발생을 해소하고자 하는 내적 압력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내적 압력은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 먼저 인지부조화를 야기하는 일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가? 둘째 이것이 취소 가능한 일인가? 셋째 부조화적 행동을 받아들이는 경우 보상은 어떠한가? 결국 인지부조화는 그것이 취소 불가능한 상황이며 선택의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고 느낄 때 가장 커지게 마련이다.

돈 적게 받아야 만족도가 높다?


▎태도와 행동이 일관되지 않거나 모순된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배고픔이나 수치심과 같은 내적 불안감이 생긴다. 이는 곧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사진·중앙포토
인지부조화를 잘 표현한 영화 <나인 먼쓰>에서 주인공 새무얼은 아동심리학자이면서 아동 혐오자다. 때문에 자신의 여자친구 레베카가 임신하자 혼란에 빠진다. 매일같이 레베카가 암 사마귀로 돌변해 자신을 잡아먹는 악몽까지 꾼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자신을 보고 웃음을 짓는 아기의 얼굴을 보자 행복감을 느끼고는 넋이 나가버린다.

그렇다. 이 세상에 아이를 갖는 것만큼 취소 불가능하고 그 결과에 대해 100% 책임져야 하는 사건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따라서 모든 아이가 부모에게 소중한 존재로 지각되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닐 수 있다.

심리학자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은 발표 당시 심리학계 전체에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왜냐하면 당시 심리학자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이 이미 심리학계를 휩쓴 차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보상이 행동을 강화하고 처벌은 소멸시킨다’라고 굳게 믿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페스팅거는 다음 실험을 통해 인간의 행동은 단순히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은 스스로의 위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단히 적극적인 정신적 활동을 한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페스팅커는 우선 실험집단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에게 구슬 꿰기와 같이 재미없고 무의미한 단순 반복작업을 한 시간 정도 수행하게 했다. 이후 실험대상자에게 “주최 측 직원이 사고로 오지 못했다. 직원 대신에 ‘이 작업은 재미있다’는 말을 다음 실험대상자에게 말해달라. 보수는 주겠다”라고 제안했다.

실험대상자 모두 이 제안을 수락했다. 이들은 다음 실험대상자에게 자신이 경험한 반복작업을 소개하며 “재밌다”라고 거짓말했다. 주최 측은 거짓말을 마친 A집단 실험대상자에게 1달러, B집단 실험대상자에게 20달러의 보수를 지급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실험 후 1달러를 받은 쪽이 20달러를 받은 쪽보다 이 작업이 꽤 가치 있고 재미있었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수를 덜 받은 쪽에서 자신의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나타낸 셈이다. 이처럼 보상에 따라 행동이 강화된다는 기존의 학설과 대치되는 현상이 바로 인지부조화다.

인지부조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은 또 있다. ‘그것은 나쁘다’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의 이유로 ‘그것은 좋다’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작가에게 흡연은 필시 나쁜 행위다. 우선 부부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고 방에서 냄새도 난다. 그뿐이랴! 담배 값은 비싸고 폐암에 걸릴 위험마저 있다. 그런데 담배가 야밤에 글을 쓰는 일에 도움된다는 단 한 가지의 긍정적인 이유로 다수의 부정적인 이유는 소멸된다. 옷가게에서 시시해 보였던 옷도 한번 입고 나면 별안간 애착이 생겨 구입하게 됐던 경험도 한번쯤 있었을 것이다. 현재 이 심리를 판매업체에서는 적극 이용하고 있다.

‘예스맨(Yes man)’을 멀리하라

세계적인 유명 가구업체 OOO는 소비자가 자사의 가구를 사용해볼 수 있는 대형 매장을 오픈하는 마케팅을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옷 가게에서 옷을 입어보게 권유한다든지 마트에서 시식행사를 벌이는 것도 모두 소비자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인지부조화 현상을 이용한 전략이다.

특히 사람에 대한 태도인 인상평가 역시 단순한 사실 한 가지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아무리 다양한 정보를 알고 있어도 오직 한 가지 사실에 꽂혀서 평가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일례로 정치인 안철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경력과 제 아무리 설득력 있는 비전을 내놓더라도 그의 얇고 말리듯 내밀어진 아랫입술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이유로 “그가 싫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중대한 결정이 걸려 있을 경우에도 다양한 인지적 정보를 무시하거나 축소하기도 한다. 조직에서는 분명히 성과를 내놓는 직원이지만 왠지 모르게 겉모습이 ‘날라리’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차분한 이미지를 가진 다른 직원보다 뒤떨어진다는 혹평을 내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지부조화 때문에 발생하는 부적절한 자기합리화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일찍이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만큼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언제 틀릴지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인지부조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사고를 통해 자신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 친아버지의 키가 185㎝인 한 시골 꼬마가 있다. 이제껏 이 꼬마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키가 더 큰 사람을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농구선수들이 타고 있는 버스에 올라타게 됐다. 마치 기린같이 큰 키를 가진 농구선수를 보게 된 꼬마는 대단한 충격에 휩싸인다.

만약 이 꼬마가 인지적 부조화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면 ‘세상에는 우리 아버지의 키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농구선수가 아버지보다 키가 더 작을 것이다’라는 잘못된 기억 조작이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고를 가진 꼬마였다면 농구선수를 목격한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가설을 수정했을 것이다. 그렇게 용기를 내면 ‘세상에는 우리 아버지보다 키가 더 큰 사람도 있다’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잠깐만! 내 가설이 틀렸나?’는 태도는 객관적인 사태 파악에 필수적인 질문임에 틀림없다. 이 필수적 질문을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기업 CEO는 자신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예스맨’을 멀리해야 한다. 집단결정 체제를 도입하되 의사결정을 위한 토론에서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악마의 변호사’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참석자들에게 반론을 제기할 기회를 강제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반론과 찬성이 적절하게 혼합된 분위기가 마련돼야 비로소 조직원은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게 만드는 자기 성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한 이유다.

심영섭 - 1966년생. 서강대 생명공학과 졸업. 고려대 심리학 석·박사. 현재 대구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 심영섭아트테라피&상담센터 사이 소장, 한국사진치료학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 내 영혼의 순례>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 <영화치료를 위한 영화수첩> 등이 있다.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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