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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 2] 더민주의 ‘김종인 매직’ 언제까지? 

“집주인인지 임차인인지는 공천 결과 보면 알게 될 것”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당 지지율 하락 등으로 위기감 느낀 문재인 전 대표가 직접 영입해… 친노(親盧)운동권 입김 배제하고 총선 지휘 가능할지는 ‘물음표’

▎1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차 중앙위원회의에서 대표직을 사퇴한 문재인(왼쪽) 전 대표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공동창업주인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지 한 달이 지난 1월 14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대표는 김종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 겸 비상대책위 대표로 전격 영입했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벌였던 새누리당의 이데올로그(이론적 지도자)였기에 그의 영입은 충격파가 컸고 그 여진(餘震)이 아직까지도 계속된다. ‘김종인 효과’는 공천 과정과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연말과 연초에 더불어민주당은 혼란에 휩싸였다. 문재인 전 대표와 등을 돌린 안철수 의원이 더민주를 뛰쳐나간 이후 현역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면서 당 자체가 좌초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당을 살릴 수만 있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도 모셔와야 할 판이다.” 당시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절박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등장한 ‘구원투수’가 김종인 비대위 대표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몸담고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보건사회부 장관 등 요직을 거친 그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든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 비례 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잠시 ‘주춤했던’ 김 대표는 2011년에 한나라당으로 컴백했고,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약 했다. 그런가 하면 한때는 ‘안철수의 멘토’로도 화제가 됐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가 더민주의 지휘봉을 잡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2004년의 총선 상황을 떠올렸다. 17대 총선전(戰) 초반에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차떼기 불법대선자금의 덫에 걸려 낭패를 보았다. 당이 100석 이하로 무너지리란 전망이 많았다. 전권(全權)을 쥐고 선거전에 뛰어든 박근혜 대표는 당시 유권자들을 향해 “살려달라”고 호소했고, 결국 한나라당에 121석을 안겨주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김 대표가 등장한 시점, 그러니까 당이 무너지려 할 때 마운드에 올랐다는 점에서는 박근혜 대표의 경우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 대표가 박 대표처럼 끝까지 전권을 쥐고 총선을 지휘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지금은 몸을 낮추고 있는 친노운동권이 ‘본전’ 생각을 하는 순간, 당은 다시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다.”

“왜 이상돈은 안 되고 김종인은 되나”


▎표창원·김병관·이용섭 비대위원, 문재인 전 대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이종걸 원내대표, 박영선·우윤근·변재일 비대위원, 김성곤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이 한 자리에 모여 총선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2014년 9월에도 더민주(당시 새정치민주연합)는 큰 위기를 맞았었다. 국회의원 15명을 뽑는 7·30 재·보선에서 참패(4대 11)한 데 책임을 지고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사퇴하면서 당이 지도부 공백사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부심하던 당시 박영선 원내대표는 궁여지책으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고 시도했다. 이 명예교수 역시 2012년 총선과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돕긴 했지만 김 대표와는 입장이 사뭇 달랐다. 이 교수는 보수 성향의 학자일 뿐 정치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영입 추진 사실이 알려지자 노영민·최재성·진성준 의원 등 당내 친노운동권 출신들을 중심으로 54명의 의원이 이 명예교수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경력을 문제 삼으며 반대성명을 냈다. 결국 이 교수의 영입 추진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이 명예교수는 <월간중앙> 2015년 3월호 인터뷰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문재인 의원도 박 원내대표의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다. 2013년 가을에는 문 의원의 초대로 식사를 함께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눈 적도 있다”며 “문 의원도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외연확장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말했었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현역의원들의 동참행렬이 이어지면서 전열이 흐트러지자 문재인 전 대표는 ‘김종인 깜짝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 비대위원과 국민 행복추진위원장을 지낸 보수 정치인으로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도 요직을 거쳤다.

그런데 이상돈 명예교수 영입 때와 달리 당내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이 되는 것은 상식과 원칙에 어긋난다”며 이 교수의 영입에 반대했던 최민희 의원이 “우리 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며 김종인 대표를 반겼다. 이 교수 영입에 강하게 반발했던 정청래 의원도 김 대표의 입당에는 반색했을 정도다.

문 전 대표의 측근인 진성준 전략기획위원장은 “이 명예 교수는 당을 맡는 것이고, 김 대표는 선거를 맡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김 대표는 “당대표의 권한이 선대위원장에게 전체적으로 이양되는 것”이라고 다른 해석을 내렸다. 선거뿐만 아니라 당도 김 대표가 맡게 된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김 대표는 선대위원장과 비대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야권 관계자는 “학자인 이상돈 명예교수는 안 되고 정치인인 김종인 대표는 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꼬집은 뒤 “차라리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신념은 포기할 수 있어도 당선은 포기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솔직한 모습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같은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의 영입을 놓고 더민주 의원들이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해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변화된 정치지형을 이유로 꼽았다. 그는 “친노운동권의 입장에서 보면 2014년 9월에는 이상돈 명예교수만 없으면 자신들이 당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영입을 극렬하게 반대했던 것”이라며 “반면 총선 3개월을 앞두고 당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진 2016년 1월에는 지옥에까지 가서라도 구원투수를 모셔와야 할 판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더민주의 혁신위원장을 지낸 김상곤 인재영입위원장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2월 2일 국회에서 함께한 기자회견도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문 전 대표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은 김상곤 위원장은 조 전 비서관의 입당 기자회견에서 “‘첫 번째 영입 인재를 어느 분으로 할 것인가’ 참 많이 생각했다. 김종인 대표와도 상의해서 조 전 비서관을 첫 번째로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상곤 위원장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조 전 비서관은 “제가 운영하는 식당에 문 전 대표가 찾아와 여러 차례 설득한 것이 결정적 (입당)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조 전 비서관의 말대로라면 자신을 영입한 사람은 김상곤 위원장이 아니라 문 전 대표였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조 전 비서관과 함께 마이크 앞에서 사진만 함께 찍은 셈이 된다.

기자회견 이후 뒷말이 무성하다. 더민주의 간판은 ‘문재인호’에서 ‘김종인호’로 바뀌었지만 실질적인 오너는 여전히 문 전 대표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일단은 무대 뒤로 물러나 있긴 하지만 친노 실세들이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주인은 문재인” 목소리도 나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창당 6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대형사진. 당대표실에 걸린 이 사진에는 당의 ‘주인’으로 불렸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각돼 있다. / 사진·중앙포토
더민주 관계자는 “1월 초만 해도 너무 급하다 보니 찬밥·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지만 국민의당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더민주의 지지율이 확실한 상승세를 탄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자신들이 당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친노가 끝까지 김 대표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를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또 다른 관계자도 “누구도 국민의당을 ‘안철수당’이라고 하지 ‘천정배당’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며 “마찬가지로 더민주를 ‘김종인당’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표는 집주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임차인에 불과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더민주의 선거대책위원 16명의 면면을 살펴봐도 당의 주도권은 여전히 문 전 대표를 비롯한 범친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대위에는 박영선·최재성·박병석·박범계·우윤근·유은혜·진선미 등 현역의원을 비롯해 김종인 비대위 대표, 이용섭·김영춘·정장선 전 의원,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 이철희 두문 정치연구소장,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문 전 대표의 복심(腹心)으로 떠오른 최재성 의원을 비롯해 박병석·박범계·우윤근·진선미·유은혜 의원, 이용섭 전 의원 등은 범친노로 분류된다. 김병관 의장 등 영입파도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사이다. 비노 인사는 김종인 대표, 박영선 의원, 김영춘·정장선 전 의원 4명 정도다. “선대위가 친노 일색 아니냐”는 비판이 강하게 일자 최재성 의원은 “백의종군하겠다”며 선대위원 직을 사퇴했다.

이에 대해 문병호 국민의당 의원은 “더민주의 대선후보는 문재인 전 대표로 정해져 있다. 짝퉁 일시 변화가 아니라 진짜 변화할 수 있을까”라며 “국민의당에 뒤지니까 황급히 김종인 대표를 영입해 반짝 변화를 시도했고, 일시 효과를 봤다. 그러나 선대위 구성에서 봤듯이 더민주의 주인은 문재인 전 대표”라고 주장했다.

김종인 대표 체제 이후 더민주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우선 의사결정이 신속해졌다는 게 당직자들의 전언이다. 또 언론과의 스킨십이 잦아지고 폭도 넓어졌다. 비상대책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이 따로 생겼을 정도다. 김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당 관계자는 “언론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게 김 대표의 스타일”이라고 귀띔했다.

이 같은 김 대표의 행보를 문 전 대표와의 ‘위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문 전 대표의 경우 대선 주자급인 만큼 작은 것 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매사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반면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 대표는 자신의 ‘주무기’를 마음껏 던진 뒤 마운드를 내려오면 된다. 굳이 사소한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더민주 관계자는 “비상대책위 대표와 선거대책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자신이 흔들리거나 좌고우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김 대표는 잘 알고 있다. 4·13 총선까지 흔들림 없이 당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 중단된 현역의원들의 탈당 ▷순조로운 외부인사 영입작업 ▷20% 중·후반대의 안정적인 당 지지율 회복 등도 김종인 대표 영입효과라는 것이 더민주의 설명이다.

“친노운동권과 부딪칠 것” VS “총선 잘 치를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인 효과’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김 대표의 독불장군 스타일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 대표는 2012년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 시절에도 당내 인사들과 잇달아 마찰을 빚은 뒤 여러 차례 당무를 거부한 ‘전력’이 있다.

당시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방향을 놓고 이한구 원내대표와 수차례 갈등을 빚다 당무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자신과 이 원내대표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박근혜 후보를 향한 시위였다. 대선이 코앞인 상황이었던 터라 박 후보는 결국 이 원내대표를 주저앉히고 김 대표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박 후보의 설득에 김 대표는 당무에 복귀했지만 이내 다시 불만을 터뜨렸다. 김 대표는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공약위원회를 박 후보가 선대위의 공식기구로 발표한 데 대해 “상식에 어긋난다”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같은 해 4·11 총선을 앞두고 구성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정책쇄신분과위원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당이 정책쇄신에는 관심이 없다”며 비대위 활동을 보이콧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재오 의원의 공천 여부를 두고도 역시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폐일언하고 더민주의 공천 결과를 보면 ‘김종인 효과’의 파워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 대표가 자신의 공언대로 공천권을 행사한다면 ‘김종인 효과’는 힘을 얻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용두사미가 되리라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운동권 정치의 청산’을 공언했다. 그는 “정치를 운동권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해결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지 이념이니 진보니 하는 허구적 이야기를 내세우면 국민이 따라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진우 소장은 “김종인 대표가 더민주의 ‘얼굴 마담’인지 오너인지 아직까지는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더민주의 공천을 보면 그의 실질적인 위상과 ‘김종인 효과’ 여부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라고 평가를 유보했다. “‘운동권 정치는 안 된다’는 그의 공언이 공천에서도 확인된다면 김 대표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겠지만, 반대로 친노운동권 출신 전·현직 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김 대표 특유의 조직장악력과 리더십을 감안하면 더민주가 큰 분란 없이 총선을 치를 것이란 시각도 있다. 더민주 관계자는 “김 대표 영입 이후 당이 한결 정돈된 느낌을 주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김 대표는 친노운동권에 헤게모니를 내주지 않고 총선을 잘 지휘할 것으로 본다. 3월 10일 전후 마무리될 공천 결과를 보면 ‘김종인 효과’ 여부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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