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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청년도시(Youth Magnet City)’ 꿈꾸는 권영진 대구광역시장 

“달구벌의 정신적 뿌리는 창조와 혁신” 

박성현 기자 psh@joongang.co.kr
의료, 물산업, 정보기술 등 친환경 첨단산업으로 도시 재창조될 것… 올해 ‘중국인 대구·경북 방문의 해’ 선포, 2020년까지 1000만 관광객 유치 목표

▎지난해 대구의 경제성장률이 광역시 중 1위를 차지했다고 말하는 권영진 대구시장. / 사진제공·대구광역시청
2014년 초만 해도 대구 시민들에게 ‘권영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생소했다.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대구 청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간 이래 성년 시절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으니 대구와 이렇다 할 큰 인연이랄 게 없었다. 일찌감치 정치권에 몸담아 서울정무부시장(2006~2007년), 18대 국회의원(서울 노원을)을 지내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새누리당 여의도 연구원 부원장으로 일했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도전장을 던질 때만 해도 그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현역 국회의원 두 사람, 전직 구청장 등 쟁쟁한 인물을 제치고 극적인 경선 승리를 일궈내자 대구 전체가 깜짝 놀랐다. 이어 야당의 김부겸 후보마저 누르고 시장 선거의 최종 승리자로 우뚝 섰다. 권영진 대구광역시장(54)은 3월 8일 대구시청 접견실에서 이뤄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대구 시민들은 변화와 혁신을 갈구한다”고 대구 정서를 규정했다. 역대 민선 대구시장 중 가장 젊은 축에 드는 그는 취임 후 지금까지 대구의 역동성을 일깨우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준비에 몰입했다고 돌이켰다. 궁극적으로 “대구는 재창조돼야 한다”는 게 권 시장의 신념이다.

오래전 대구를 떠났다가 지금은 대구시정을 이끄는 자리에 와 있다. 밖에서 본 대구와 안에서 겪어 본 대구는 무엇이 달랐나?

“흔히들 대구라고 하면 보수적이며 답답하고 침체된 이미지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구는 결코 현실에 안주하는 도시가 아니다. 창조와 혁신의 DNA가 번뜩이는 고장이다. 싸울 때는 싸우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는, 때와 장소에 따라 주어진 소명에 투철한 곳이 바로 대구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시발점이 된 대구는 항일 독립투쟁의 거점이었다. 건국과 전쟁 국면에서는 많은 시민이 자유대한민국 수호에 목숨을 바쳤다. 또 민주화의 소명이 주어졌을 때는 독재와 불의에 항거했다. 2·28 민주화운동의 깃발을 들어 4·19 혁명의 촉매제가 된 곳이 대구다. 새마을운동과 섬유산업은 대한민국 근대화·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민족과 국가에 주어진 소명을 가장 먼저, 희생적으로 감당하고 이끈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대한민국 70년의 역사를 대구가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뒤로는 ‘권력의 메카’, ‘보수의 아성’ 같은 이미지로 굳어진 것도 사실인데.

“1980~90년대 대구 출신 대통령들이 연이어 배출되면서 대구가 보수 권력의 상징으로 비친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가 내부의 다이내믹한 DNA를 발현시키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대구의 본질적 뿌리는 창조와 혁신에 있다. 올해를 ‘청년대구 건설의 원년’으로 삼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구, 한국 역사 속에서 시대적 소명을 다해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을 담아낼 그릇이 필요할 텐데?

“일자리 부족으로 청년들이 외지로 떠나야 하는 게 대구가 안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자리 창출 과제를 서둘러 이행하겠다. 동대구벤처밸리 창업지원센터 건립, 대구 삼성창조경제단지 조성, 창조경제 리더스포럼 및 펀드, 창업실패자 재도약 특례보증 제도 등을 통해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예정이다. 또 ‘대구청년센터’ 를 개설해 정책의 당사자인 청년들이 함께 고민하며 청년 문제의 해법을 스스로 강구하는 공간도 제공하겠다. 청년이 모여드는 ‘청년도시(Youth Magnet City), 대구’를 만드는 데 시의 역량을 집중한다는 각오다.”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17년째 꼴찌다. 비상구가 필요하지 않나?

“대구가 재창조돼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성장과 영광이 대구의 성장과 영광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나는 대구를 한국 역사 속에서 시대적 책무를 희생적으로 다한 도시로 본다. 산업만 해도 섬유산업을 통해 한국 산업화의 초석을 다졌다. 삼성도 대구에서 자본을 축적해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수원, 천안 등 타지역으로 빠져나갔다. 1990년대 부산·경남과의 식수 분쟁 등으로 달성군 위천국가산업단지 지정이 무산되면서 산업 입지가 달렸다. 산업의 총량이 줄고 대기업이 빠져나가면서 지역 산업 기반은 남아 있는 중견·중소기업 위주로 짜이게 된다. 생산량이 작다 보니 1인당 GRDP가 바닥일 수밖에 없다.”

대구의 역동성을 되살리고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했는데 어떤 청사진을 그리는가?

“지역 경제에서 섬유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지나지 않는다. 자동차 부품, 기계가 주력 산업군으로 등장했다. 특히 자동차 부품의 비중은 21%에 이른다. IT(정보통신)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도 굉장히 발전해 있다. 미래산업도 알차게 준비되고 있다. 대구가 가진 풍부한 의료 인프라 중심으로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조성하는 등 의료산업과 의료관광을 대구의 미래산업으로 육성 중이다. 오랜 물 관리의 노하우와 기술을 바탕으로 물산업도 전략 산업으로 키워나가는 중이다. 대구는 친환경 첨단 산업도시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대구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섬유로 먹고 사는 도시로 인식되는 건 왜인가?

“브랜드 마케팅을 제대로 못한 책임도 있다. 내부에 있는 잠재력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게 패착이라면 패착이다. 내가 시장에 당선되는 과정도 이에 맞닿아 있다. 이제는 창조와 혁신의 에너지를 모아서 미래로, 세계로 나가는 도시로 변모할 것이다.”

대구-광주 발전위한 ‘정치동맹’ 맺겠다


▎지난 1월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영·호남 시·도지사협력회의. 권영진 시장은 남부권 8개 광역자치단체장이 지역간 화합과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중앙포토
경제위기론이 고개를 든다. 산업 기반이 중견·중소기업 위주로 짜인 대구는 문제가 없나?

“지난해 대구의 실질 GRDP 성장률(경제성장률)은 3.8%로 전국 평균(3.3%)보다 높을 뿐 아니라 광역시 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고용률도 전년 대비 1.1% 증가한 65.3%를 기록했다. 대구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이자 광역단체 중에서도 2위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대기업을 유치한 도시들이 잘 나갔다. 조선업을 기반으로 하는 거제, 석유화학의 울산, 전자와 디스플레이의 구미가 그랬다. 지금은 대기업들이 싼 인건비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면서 산업 공동화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대구는 중소·중견 기업 중심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탄탄한 자기 역량을 쌓아온 터라 당장은 어려워도 위기를 헤쳐나갈 잠재력을 갖췄다고 하겠다. 대구는 위기에 강한 체질을 가졌다.”

2016년을 ‘중국인 대구·경북 방문의 해’로 선포했다. 중국인들에게 어떤 매력 포인트를 제시할 수 있나?

“대구·경북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구경하는 게 고작이지만 대구·경북에서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대구·경북은 근대 문화와 전통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지역이다. 대한민국 관광의 엑기스를 품은 곳이다.”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줄 만한 할 명소를 꼽자면.

“대구만큼 근대 문화재가 잘 보존된 지역도 드물다. 현진건·이상화·이쾌대·이인성·박태준·홍해성 등 대한민국 문화예술사의 선구자들이 대구에서 활동하면서 근대 문화예술을 태동시킨 곳이자 도심 속 근대골목 등 전통과 현대의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은 유교 문화, 경주는 불교 문화, 고령은 가야 문화의 중심이다. 여기에 동해안의 청정 자연을 더하면 그 자체가 더할 수 없이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대구에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여섯 개나 된다. 육로로는 사통팔달이다. 해외로 나가는 길은 어떠한가?

“대구공항의 비행 제한 시간을 단축하고, 중국인 무비자 환승 공항으로 지정받는가 하면, 직항로도 많이 개설했다. 2013년 100만이던 대구공항 이용객이 2015년 200만으로 갑절로 늘었다. 올 1, 2월 외국인 대구공항 이용객이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75%나 증가했다. 이런 장점을 내세워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2020년까지 1000만 관광객 유치시대를 열어 대구의 내수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늘릴 것이다.”

요즘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동맹’이 각종 이슈를 생산하고 있다고 들었다.

“양 도시가 정치적으로는 영·호남을 각각 대표하는 도시면서도 내륙에 자리한 탓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있다. 이런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지역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과 상생의 길을 찾자는 취지에서 ‘달빛동맹’을 맺었다. 대구의 옛 이름 달구벌과 광주의 옛 이름 빛고을에서 한 글자씩 따와 달빛동맹이라 부른다. 2009년 ‘의료산업공동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처음 달빛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됐다. 이후 3D 융합산업, 치과산업벨트 육성 등으로 협력을 하게 됐고, 2013년엔 대구-광주 교류 협력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광주와 대구가 서로 갈등하는 사이 지방은 다 시들고 수도권은 비대해졌다. 이제는 달빛동맹이 정서적 유대 차원을 넘어 경제적 이익동맹으로의 발전을 꾀하는 중이다. 윤장현 광주시장과 함께 동맹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추진하겠다.”

권 시장은 20대 국회가 개원되면 광주와 대구가 ‘정치동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도시의 이익을 보장하자면 국회 내에서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영·호남 내륙지역을 관통하는 ‘대구∼광주 철도’ 같은 사업을 조기에 착공하자면 두 도시의 정치인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호남 8개 시·도지사협력회의는 대구~광주 철도 건설 등을 협력 과제로 선정한 상태다.

여야로 갈라진 양쪽 국회의원들이 정치동맹을 맺기가 쉬울까?

“대한민국은 자본과 인력을 수도권이 다 빨아들이는 왜곡된 경제·사회 구조를 안고 있다. 지방은 수도권과 경쟁해야 살아남는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내륙철도를 건설하면 정치적으로라도 동맹을 맺을 때 그 길이 열린다고 본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자 지역의 대표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라면 정당을 불문하고 손을 잡는 게 정치인 본연의 자세다.”

총선이 임박했다. 대구 현역 의원들 교체설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 같다.

“대구 유권자들이 현명하다. 새누리당이라고 해서 아무나 공천한다고 표를 주던 시대는 지났다. 내가 시장이 된 게 그걸 입증한다. 누가 지역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일할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현명하게 한 표를 행사하리라 본다. 누구의 후광을 업었다거나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받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그래야 대구시가 발전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을 만든 시민들의 변화와 혁신 의지는 이번 공천과 총선 과정에서도 나타나리라 본다. 이를 거스르고자 한다면 새누리당에도 미래가 없다.”

새 인물 영입한다고 정치가 바뀌는 건 아냐

여야 공히 공천 시스템을 놓고 말들이 많다. 국회의원(18대)을 역임해 본 입장에서 관전평을 하자면?

“그동안 수도 없이 정치권 물갈이를 해왔는데 왜 대한민국 정치는 거꾸로 가는 걸까? 국민들은 불신을 넘어 분노한다. 공천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새 인물 영입이니, ‘새 피 수혈’이라고 해서 당의 보스들이 사실상 사천(私薦)을 일삼았다. 이렇게 충원된 인사들은 국회에 가서도 국민을 보고 일하는 게 아니라 당과 보스의 눈치를 본다. 새 인물만 영입한다고 정치가 바뀌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이 지난 1년 여 동안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한 것은 정치혁신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걸 잘 실천해내면 정치는 좀 바뀔 것이고 또 새 인물 영입이라고 해서 소수가 공천 자체를 좌우한다면 정치발전은 없다. 여야가 새 인물이라는 미명 아래 밀실에서 공천하고 제도가 계속된다면 희망은 사라진다.”

대구만 해도 2012년 19대 총선 당시 현역의원 12명 중 7명이 교체됐다.

“이 과정에서 당시 공천 신청자들을 하루 아침에 옆 지역구로 빼서 돌려막기도 했다. 그걸 새 인물 영입이라고 불렀는데 이번에도 그런 방식으로 공천작업이 진행되면 장담하는데 21대 총선에서 또 바꾸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공천권을 국민이 가지느냐, 당의 지도부와 소수의 권력자가 가지느냐 여부가 대한민국 정치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정치학도(정치외교학 전공)로서 이론을 공부했고 정치인으로 현장에서 목도한 경험에 기초해 확신하는 바다.”

상향식 공천이 민주적 제도이기는 하지만 현역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원을 자주 교체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나쁜 국회의원들, 시민들의 신뢰를 잃은 의원들은 떨어뜨리는 게 당연하다. 이는 국민에게 맡겨도 된다. 바꿀 사람은 딱딱 알아서 교체해준다. 그리고 정치 신인들도 영입이라는 이름의 꽃가마를 타고 와서 정치를 하려 해선 안 된다. 물고기가 물에서 놀듯이 평소에 지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기 위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고고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정치한다고 어느 날 불쑥 뛰어드는 건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언젠가는 대선에 도전할 수도 있나?

“지역의 꿈은 그 지역 리더의 꿈과 같이 커가는 것이다. 나는 대구시장이 되는 순간 대구시장으로서 충실하게 내게 주어진 소명을 다할 뿐이다. 대구의 성공은 시민들의 에너지가 모여 역동적인 도시로 거듭날 때 결실을 맺는다. 그렇게 돼서 대구 시민들이, 국민들이 더 큰 꿈에 도전하라고 하면 그때 하는 것이다. 대구의 성공을 통해서 나의 꿈도 키워가겠다.”

- 박성현 기자 psh@joongang.co.kr

201604호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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