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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인터뷰] ‘철학자가 된 독수리’ 최용수 FC서울 감독 

“욕심 내려놓으니 머리가 채워지는 것 같네요”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거칠고 투박했던 선수에서 원칙과 철학 바탕으로 조리 있게 말하는 ‘여우 지도자’로 변신… “팬들 위한 재미있는 축구, 감동 주는 축구만 할 수 있다면 내 머리와 몸을 몽땅 내놓겠다”

▎최용수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지 2년째이던 2012년 K리그 정규리그에서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우승 축하행사에서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는 최 감독.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프로축구 FC 서울을 맡고 있는 최용수(43) 감독의 애창곡은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번안곡)다. 그는 매일 아침 훈련장으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다짐했다. ‘오늘도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자’고.

요즘은 최백호의 노래 ‘애비’를 즐겨 듣는다. ‘가뭄으로 말라터진 논바닥 같은, 가슴이라면 너는 알겠니, 비바람 몰아치는 텅빈 벌판에, 홀로 선 솔나무 같은 마음이구나, 그래 그래 그래 너무 예쁘다, 새하얀 드레스에 내 딸 모습이…’

초등학교 2학년생 딸을 둔 최 감독은 “딸을 시집 보내는 날, 아버지의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한 곡”이라며 “우연히 방송에서 들었는데 머릿속에 계속 남더라. 그동안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부터는 건강도 챙기고 가족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최용수의 별명은 ‘독수리’였다. 골을 향해 돌진하는 그의 눈빛이 먹잇감을 노려보는 독수리의 눈빛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용맹스러웠지만 거칠고 투박했다. 골 세리머니도 그랬다.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골대 뒤 광고판(A보드)을 뛰어넘다 걸려 넘어진 적도 있다. ‘인터뷰를 못하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경기에선 거칠 것 없이 골을 사냥하고도 막상 수훈선수로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서면 버벅거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그때 그 최용수 맞나’ 싶을 정도다. 최 감독과 인터뷰한 기자들은 한 목소리로 “독수리가 아니라 여우”라고 말한다. 분명한 원칙과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종류 가리지 않고 책이면 죄다 읽기를 좋아하고, 신문도 사설과 정치·경제·사회면을 즐겨 읽는 그다. FC 서울 감독 6년차를 맞은 그는 두 개의 트로피(2012년 K리그 우승, 2015년 FA컵 우승)를 수집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경험했다. 올 시즌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을 일찌감치 확정했고,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도 초반부터 앞서 달리고 있다. 스스로 “숱한 경험을 통해 지도자로서 완전체를 향해 가고 있다”라고 말하는 최 감독을 지난 어린이날 연휴 기간(5월 6일)에 만났다. ‘철학자가 된 독수리’의 축구철학을 들어보자.

‘슬로 스타터’라는 말이 무색하게 올 시즌은 초반부터 잘나가고 있다.

“시즌을 앞두고 ‘왕의 귀환’이 있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데얀(35·몬테네그로) 말이다. K리그 최초 3년 연속 득점왕(2011∼2013년)의 위용이 장난 아니다. 개구쟁이 아드리아노(29·브라질)의 골 감각은 독보적이다. 오스마르(28·스페인)는 주장으로서 공수의 밸런스를 잘 잡아준다. 박주영(31)도 회복세가 뚜렷하다. 팀 전체가 안정감을 갖고 시즌을 시작했다.”

“열정은 유지하되 표현은 차분하게”


▎최용수 감독은 선수 시절 다소 거칠고 투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도자가 된 뒤로는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여우”라는 말을 자주 들을 만큼 놀랍게 변신했다.
전에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나?

“나도 슬로 스타트의 원인을 찾기 위해 많은 분과 대화를 나눴다. 결론은 ‘동계훈련을 위한 동계훈련을 했다’는 것이었다. 동계훈련에서 너무 진을 빼버려서 개막 후 두세 게임 하고 나서 금방 지쳐버렸다. 이번에는 선수들이 더 뛰고 싶다고 할 정도로 감질나게 훈련했다. 대신 개막 3주 전부터 모든 준비를 끝내고 시즌을 기다렸다.”

일본인 미드필더 다카하기 요지로(30)의 성장도 눈부시다.

“일본 선수들은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다. 특히 다카하기의 개인기와 창의적인 패스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런 선수가 한국팀 특유의 투지와 근성까지 흡수했다. 본인이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 스타일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한·일 축구의 강점이 잘 믹스된 선수다. 아시아 쿼터(외국인 선수 3명 외 아시아 국가 선수 1명을 보유할 수 있는 제도)를 우리가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항상 나를 관리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선수 시절에 봐서 알겠지만 나도 거칠었고 ‘꼴통’ 소리도 많이 들었다. 감독 되고 나서도 선수들에게 ‘레이저’를 많이 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선수들에게 욕도 하고 성질도 부렸다. 그런데 6년차 정도 되니까 감정적으로 선수를 대할 때 팀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선수 개인에게도 상처를 준다는 걸 알게 됐다.”

“열정은 유지하되, 표현은 차분하게”라는 말도 했던데.

“우리 팀에 개성 강한 선수들이 많다 보니까 다양한 사건·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매번 지적하고 야단치면 남아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거나 별일 아닌 것처럼 하면서 슬쩍 얘기해준다. 그렇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 싶으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다. 지도자로서 열정은 더 타올라야 한다. 저 감독이 승리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선수와 스태프, 팬들은 다 안다. 리더가 매너리즘에 빠지면 팀은 한순간에 날아간다.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싶지 않다.”

FC 서울은 2013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마르셀로리피(68·이탈리아) 감독이 이끄는 광저우 헝다(중국)를 만났다. 홈에서 2-2로 비긴 뒤 원정에서도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원정에서 골을 많은 넣은 팀이 이기는 규칙’에 따라 광저우에 우승을 내줬다.

최 감독은 나중에 당시 리피로부터 ‘명장의 아우라’를 보았다고 했다. “리피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든 여유가 있었다. 선수 교체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또 하프타임에 한두 가지 팩트를 확실하게 전달해 팀의 움직임을 바꿔놓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광저우에서 뛰고 있는 한국 대표팀 수비수 김영권과 관련된 얘기도 있다. “서울 경기 직전에 선수들이 몸을 푸는데 김영권 혼자 장갑을 끼고 있었다. 리피가 조용히 다가가더니 살짝 장갑을 빼서 갖고 나가더라. 진정한 카리스마가 저런 거구나 싶었다. 나 같았으면 ‘야, 장갑 안 빼? 어디서 시건방지게’ 어쩌고 했을 거다.”

“인성 잡으려 하지 말고 재능만 갖다 써라”


▎98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국내에서 치러진 한국- 타지키스탄의 대표팀 평가전. 골 사냥에 성공한 ‘독수리’ 최용수가 두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요즘 들어 “느낌의 힘을 키워라”는 말을 자주 하던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상대와 우리 팀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말판을 놓고 또 바꾸고 하다 보면 어떤 느낌이 온다. 그렇게 공을 들이다 보면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긴다. 젊어서는 실수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실험을 통해 느낌의 힘을 키워야 한다. FC 서울 감독은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 경질되고 나서 ‘그때 이걸 왜 못해봤을까, 왜 이걸 구단에 얘기 못했을까, 애들한테 이런 걸 얘기 안 했을까’ 하는 건 다 부질없는 거다.”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고 있는 안토니오 콩테(46) 감독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이탈리아 축구를 즐겨 본다. 콩테 감독의 열정, 스타급 선수들을 이끌고 성적을 내는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 축구 재능은 뛰어난데 사생활이나 멘탈에 문제가 있는 선수들을 부담스러워하는 감독들이 있다. 왜 그래야 하나? 우리 팀 공격 트리오 아데박(아드리아노·데얀·박주영)은 모두 개성이 강하고 한 획을 그었던 선수다. 어떻게 다 오냐오냐 하며 받아줄 수 있나. 그 선수의 재능만 뽑아 쓰면 된다. 내가 학교 선도부도 아닌데 인성 잡겠다고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내가 피곤해진다.”

가장 싫어하는 선수 유형이 있나? ‘자신을 위해 팀을 이용하는 선수’인가?

“그렇다. 개인의 능력은 팀을 위해 발휘돼야 한다. 물론 이타적인 모범생만 데리고 축구를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선수가 있어야 하고, 그런 선수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힘을 같이 써야 할 때 숨고, 팀 분위기를 숨어서 교란하고, 악성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선수와는 절대 함께 갈 수 없다. 교묘하게 자신을 포장하려는 선수는 오래 못 가더라.”

남의 팀 얘기지만, 라이벌 수원 삼성의 서정원 감독이 요즘 많이 힘들어 하던데.

“모기업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선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더라. 그럴수록 남을 믿지 말고 자신과 팀을 믿어야 한다. 지도자가 좋은 환경 속에서만 일할 수는 없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보여줬을 때 더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 감독이 부럽기도 하다. 나라도 그런 상황을 맞는다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형편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면 미리미리 발 빠르게 저평가된 선수들을 모아야 했다는 생각은 든다.”

최 감독은 지난해 7월, 중국 프로축구 장쑤 세인티 이적설에 휩싸였다. 장쑤는 기본 연봉만 200만 달러(약 22억원),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도 5만 달러를 제시했다. 최 감독은 “시즌 중에 팀을 떠날 수는 없다”며 서울에 남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4년 전 내 IQ는 94, 지금은 95”

구체적인 이적 조건에서 문제가 있었나?

“지도자는 돈을 좇아서는 안 된다. 명예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중국 팀의 계약조건에 미묘한 점이 있었다. 내가 칼자루를 쥘 수 없다면 나중에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런 걸 알면서 눈앞의 떡밥을 덥석 물겠나. 저 사람들이 나를 자신들의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만약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됐다면 갔다는 얘긴가?

“으하하하하.(한참을 웃은 뒤) 그 많은 돈과 좋은 기회가 내 것이 될 것 같으면 일이 이렇게 꼬일까 싶었다. 왠지 제안 자체가 낯설고 개운치 않았다. 젊은 지도자는 이미지가 중요한데 시즌 중간에 돈을 좇아가는 이미지가 박혀버리면 안 된다.”

한국 축구의 내수시장은 위축되는 반면 중국이라는 수출시장은 점점 커진다.

“한국 지도자와 선수가 경쟁력을 인정받는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무리하게 중국에 갔다가 속 빈 강정이 되고 권한 행사도 못하고 쫓겨오는 건 옳지 않다. 계약 기간보다 소신껏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팀을 잘 선택하고, 팀의 문화와 소통구조를 잘 알아야 한다. 중국 팀도 눈앞의 결과에 급급해서 우리를 소모품 쓰듯이 하면 안 된다.”

중국의 축구굴기(屈起·축구를 통해 일어섬)가 무서운 기세다.

“분위기를 보면 최고권력자가 바뀌어도 축구에 대한 투자는 지속될 것 같다. 프로축구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5년, 10년 뒤에는 자신들도 모르게 부쩍 성장한 것을 느낄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이 일방통행 하지 않고 한-중-일 3국이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K리그에서 주전으로 뛸 만한 중국 선수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중국 국가대표급 선수의 이적료가 150억원을 넘는다. 그런 거품을 빼야 한다.”

아시아 축구가 함께 발전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아시아 쿼터를 잘 활용해야 한다. 베트남·태국 등에서 스타 대접받는 선수를 영입해서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 그 선수들이 경기를 뛰면 한국에 와서 일하는 베트남·태국 사람들이 얼마나 힘을 얻겠나. 그런 점에서 인천 유나이티드가 영입한 쯔엉(21) 선수가 잘 커줬으면 한다.”

최 감독은 “여론은 바다와 같다”고 늘 말한다.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한 시즌을 지나면서 경기력과 성적이 좋아 박수받을 때는 대통령도 부럽지 않다. 그렇지만 처참하게 무너지고 경기력이 떨어지면 팬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여론이 참 중요하구나, FC 서울 감독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늘 한다.”

국가대표팀 감독 얘기가 나오자 최 감독의 표정이 진지해지고 말이 딱딱해졌다. “내게 국가대표 감독에 대해 물어보는 건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국가대표팀을 맡아 우리 국민에게 희망과 감독을 줬다. 나는 5년 전 어리바리한 상태에서 FC 서울을 맡아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다. 나는 아직 국민 잔치에 나가 국민을 상대로 혀를 놀리고 경기력을 평가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 대표팀 감독은 축구대통령이다. 누구나 꿈을 키울 수 있지만 단계가 있다. 선배들이 먼저 하고, 후배들은 그분을 도와서 함께 힘을 실어주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2012년 12월,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최 감독과 인터뷰 자리에서 IQ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한 94쯤 될 겁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그 이야기를 하자 “지금은 95 정도로 올랐을 겁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머리에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왔다”라고 했다. 그는 “재미있는 축구, 감동을 주는 축구를 위해 내 머리와 몸을 몽땅 내놓겠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그는 요즘 몸이 썩 좋지 않다.

- 정영재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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