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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휘파람새가 뻐꾸기보다 일찍 날아오는 까닭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뻐꾸기 등 다른 새가 둥우리에 알을 맡기는 것을 피하려는 본능의 선택… 분비물은 피부 미백과 주름을 없애주는 효소가 있다 해서 미용에 활용

▎휘파람샛과의 개개비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휘파람이란 보통 기분이 좋을 때나 누굴 몰래 불러낼 때 부르기도 하는 입피리다. 두 입술을 좁게 오므리고 혀끝으로 입김을 불거나, 손가락을 입 안에 넣고 숨을 내쉬거나 들이마셔서 소리를 낸다. 물질하는 좀녀(해녀)들이 깊은 바다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서둘러 물 밖으로 나오면서 ‘휘~~~~~’ 가쁘게 내쉬는 ‘숨비소리’도 휘파람 소리다. 하도 휘파람을 안 불었더니만 입술이 뻣뻣하게 굳어버려 제대로 소리가 나질 않는구려. ‘용불용(use and disuse)’이라, 몸이나 머리나 하나같이 쓰면 발달하고 안 쓰면 퇴화한다.

‘휘파람’ 하면 문득 가수 정미조의 ‘휘파람을 부세요’란 노래가 떠오른다. “제가 보고 싶을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외롭다고 느끼실 땐 두 눈을 꼭 감고 나지막이 소리 내어 휘파람을 부세요(…).” 37년 만에 돌아와 다시 노래를 부른다는 정미조 박사시다!

그런데 휘파람새(Cettia diphone)는 5월 초순이면 뻐꾸기나 꾀꼬리보다 먼저 불원만리(不遠萬里)를 날아온다. 오늘도 뒷산 기슭 나무숲에서 수컷들은(암컷은 음치임) 한창 목청 높여 간간이 경쾌하게 울어 제친다. ‘호오오오오 히호힛, 히호힛, 호, 호케이요’하고 천변만화(千變萬化)로 입이 째지라 부리를 쫑긋 벌리고 시끌벅적 우짖어댄다. 감히 필설(筆舌)로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낙랑하고 청아한 소리로, 쩌렁쩌렁 동네가 떠나가게 지저귄다. 줄곧 세력권(텃세)을 지키고, 암컷을 꼬드기느라 그렇게 떠들썩하게 사랑노래(breeding call)를 부른다.

조막만한 그 작은 몸집에서 어찌 그리 우렁찬 소리를 내는지. 슬프도록 아름답다고나 할까. 매일 들르는 산릉선 길의 큰 넓은잎나무(활엽수)에서 오직 소리로 만날 뿐이다. 워낙 작은지라 빼곡히 난 나뭇잎에 가려 이제나저제나 눈이 빠져라 올려다보건만 좀체 꼴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척추동물 중에서 양서류와 포유류만 성대(聲帶, vocal cord)가 있고, 어류와 파충류는 숫제 발성기(發聲器)가 없다. 조류는 기관(氣管)에서 두 기관지로 갈라지는 자리 양쪽에 얇은 울대(명관, 鳴管, syrnx) 근육이 있으니 그것을 떨어서 기막히게 아름다운 새소리를 낸다. 특히 참새무리에 속하는 명금류(鳴禽類)들이 곱고 예쁜 소리를 낸다.

일본에서도 휘파람새(Japanese bush warbler)를 제비와 함께 봄의 전령사로 여기고, 이 새를 잡아 새장에서 키우며, 하도 울음이 예뻐서 ‘일본나이팅게일(Japanese nightingale)’이라 부를 정도로 칭찬이 자자하다 한다. 또 그들은 휘파람새똥에 피부 미백과 주름을 없애주는 효소가 있다 하여 오랜 세월 미용에 써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새가 뻐꾸기보다 훨씬 일찌감치 날아오는 까닭은 탁란(托卵)하는 뻐꾸기의 기생(寄生)을 피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늦게 알을 낳을 때는 뒤따라오는 뻐꾸기(common cuckoo)에게 대뜸 당한다고 한다. 여기서 탁란이란 어떤 새가 다른 새의 둥우리에 알을 맡기는(위탁하는) 것을 말하는데 가장 잘 알려진 탁란조에는 두견이과의 뻐꾸기, 벙어리뻐꾸기, 매사촌 등이 있다.

저 뻐꾸기 암놈의 거동(擧動) 좀 보소!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어미가 집을 비운 낌새를 냉큼 알아챈다. 마침내 저만치서 호시탐탐 노리고, 엿보던 치졸한 얌체뻐꾸기 암놈이 알 하나를 허둥지둥 낳고는 허겁지겁 내뺀다. 또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의 사위스럽고 살 떨리는 살생 행위는 꽤 잘 알려졌다. 영문도 모르고 날개 빠지도록 뻐꾸기 새끼를 걷어 먹이는 꼬마뱁새 어미렷다.

휘파람새도 사투리를 쓴다

휘파람새는 참새목, 휘파람샛과로 높고 맑은 울음소리로 잘 알려진 새인데 우리나라 휘파람샛과에는 그만그만한 휘파람새, 제주휘파람새(C. d. cantans), 숲새(C. squameiceps), 개개비(Acrocephalus orintalis)들이 있다. 휘파람새는 몸빛깔이 어둡고 흐린지라 귀티 나고 맵시로운 새라고 말하기는 좀 뭐하다. 대신 소리로 한 몫을 하니 보상(補償)이 따로 없다.

이 새는 참새보다 조끔 큰 것이 수컷이 고작 16㎝ 남짓이고, 암컷이 약 13㎝로 수놈이 좀 크다. 머리, 이마, 등짝은 회갈색이고, 배는 회색을 띤 흰색이다. 하얀 눈썹선이 있고, 눈조리개(홍채)는 붉은빛을 띤 갈색이다. 다리는 매우 튼실하고, 살구색의 굵은 발톱은 활처럼 휘 굽었다.

농경지 부근의 물가, 야산의 덤불, 호수나 하천 주변의 갈대밭에 많고, 나무 위에 은밀하게 숨어 사는 여름철새다. 1년 내내 뿔뿔이 혼자 지내다 산란철에 만나거나 암수가 함께 살고, 일정한 자기 영지(領地)를 갖지만 그 테두리는 비교적 좁다. 몸을 발랄하게 좌우로 움직이고, 주로 나무에 머물지만 높은 우듬지에는 앉지 않는다. 먹이는 딱정벌레·나비·매미·파리·벌 등과 그 애벌레들이다.

둥지는 떨기나무(관목, 灌木)가지 위에 풀잎을 써서 럭비공 모양으로 짓고, 옆구리나 위쪽에 출입문을 내며, 알자리에는 보드라운 풀줄기나 갈잎, 새 깃털 따위를 깐다. 5~8월에 적갈색인 알 네댓을 낳아, 한 보름 동안 암컷이 품고, 새끼치성(致誠)도 한다. 일부다처(polygynous)로 한 마리의 수놈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데 한 철에 많게는 예닐곱 마리의 다른 암컷들과 교미한 기록이 있다 한다.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사할린에서 중국 동남부에 이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번식하고, 중국 남부와 대만, 필리핀까지 내려가 겨울을 난다.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남해안이나 일본 남부에서는 텃새로 생활하기도 한다. 그리고 섬휘파람새라고도 부르는 제주휘파람새(Korean bush warbler)는 휘파람새의 아종(亞種)으로 일본과 우리나라 제주도가 대표적인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다른 새들이 그렇듯이 휘파람새도 사는 지역에 따라 우는 울음소리가 조금씩 다르니, 휘파람새도 사투리를 쓴다는 말이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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