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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2016 미국 대선과 2017 한국 대선의 함수관계 

“힐러리 클린턴 당선 여당에 더 유리하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 jameslee@snu.ac.kr
경제 중시했던 빌 클린턴, IMF 위기 속 DJP 연합 분위기 무르익게 만들어… 안보 강조했던 조지 W. 부시, 노무현과의 갈등으로 MB 대세론 점화에 영향
힐러리 클린턴(69)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70) 공화당 후보가 9월 26일(이하 현지시간) 1차 TV토론에 이어 11월 9일 2차 TV토론을 벌였다. 전 세계로 생중계된 ‘세기의 대결’에 각국은 반응은 달랐다. 중국은 “선거 결과는 오로지 국익을 위해서만 이용할 것”이라고 했고, 러시아는 “향후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불안을 부채질하는 극히 위험한 선거전”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대통령’을 뽑는 미국 대선은 2017년 12월의 한국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11월 8일 미 대선 결과는 내년 한국 대선을 전망해볼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9월 26일 1차 TV토론에 참가한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가 백악관 입성을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오차범위 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확보 추정에 있어서 어느 쪽도 과반수(총 538명 중 270명)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주의 선거인단 규모가 140~180명에 이를 정도로 판세는 예측하기 어렵다. 8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힐러리가 경합주를 제외하고도 272대 154로 여유 있게 앞서나갔다. 하지만 10월 초에는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201대 165로 근소하게 앞서고 있을 뿐이다.

1차 토론을 통해 클린턴이 승기를 잡는 듯했다. 토론 직후 CNN 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이 잘했다는 응답이 62%인 반면 트럼프는 27%에 그쳤다. 그러나 2차 토론 다음 날인 10월 10일 NBC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격차는 7%포인트(10월 8, 9일 조사에서는 11%포인트)로 좁혀졌다. ‘음담패설 녹음파일’ 악재 속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의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클린턴의 경우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 사용 문제가 대세를 굳히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녹음파일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던 트럼프는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가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폭로한 5336건의 이메일을 놓고 “11월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나라가 얼마나 부정직하고 망가졌는지 더 명확해졌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미 대선에서 이처럼 대접전이 벌어지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선거에서 8~9월 무렵 당선이 유력했던 후보가 최후의 승자가 됐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치러진 17번의 선거 가운데 박빙 승부가 벌어진 것은 1960년(케네디-닉슨), 1976년(포드-카터), 1992년(클린턴-조지 부시), 2000년(조지 W. 부시-엘 고어) 정도에 불과하다. 공교롭게도 이들 선거 모두 한국정치가 격동기를 지날 때 치러졌고, 그 결과에 따라 한국정치는 더 크게 요동쳤다.

미 대선, 한국 정치와는 불가분의 관계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첫해였던 98년 6월 미국을 방문했다. 백악관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한 김 대통령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다정하게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1961년 존 F. 케네디가 제3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3개월 뒤, 한국에서는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했다. 박정희는 같은 해 11월 국가재건회의 의장 자격으로 케네디와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박정희과 케네디는 1917년생 동갑내기다.

박정희 의장은 케네디와의 회담을 통해 젊고 역동적인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려 했다. 지나치게 진보적(liberal)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케네디는 박정희와의 회담을 통해 동맹국에 강력한 리더십을 과시했다. 케네디는 보수층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동시에 국가안보에도 적극적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1976년 선거도 한국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5년 베트남전쟁 패전으로 당시 포드 행정부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포드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조지아 주지사 출신 정치신인 지미 카터에게 패했다. 더욱이 카터는 취임 후 ‘5년 내 주한미군 완전 철수’와 ‘한국 인권문제 개선’을 주장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댕기는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일련의 과정은 부마사태와 10·26 사건을 촉발시킴으로써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재촉했다.

클린턴은 1992년 미국 대선에서 “It’s the economy, stupid!”(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현직 대통령인 조지 부시를 물리치고 제4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통해 북한 핵개발로 인한 남북 경색국면을 타개하는 동시에 ‘경제 우선주의’를 표방함으로써 1996년 재선에 성공했다. 클린턴의 재선은 1997년 한국 대선에서 ‘북풍’과 ‘안풍(安風, 안보 바람)’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IMF 경제위기 극복’을 전면에 내세운 DJP 연합의 태동 및 김대중의 대선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뉴밀레니엄에 대한 기대감 속에 치러진 2000년 미국 대선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 앞선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미국 대법원의 플로리다주 투표 재검표까지 간 끝에 대통령선거인단 수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에게 266대 272로 석패했다. 한국이었다면 고어가 승리했겠지만, 미국 특유의 제도 덕분에 조지 W. 부시는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 패하고도 대통령에 당선됐다.

조지 W. 부시는 대통령 취임 첫해였던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중대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와 전쟁을 수행하면서 노무현 정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이는 한미동맹 균열에 대한 위기의식을 야기시킴과 동시에 보수층을 결집시킴으로써 2007년 대선에서 ‘MB 대세론’을 점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따라서 20년마다 두 나라의 대통령선거는 한 달 간격으로 치러진다. 최근 사례로는 2012년 대선(박근혜-오바마)과 1992년 대선(김영삼-클린턴)이 그러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대선이 같이 치러지는 해보다는 미국 대선이 1~2년 먼저 치러지는 해가 한국 대선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선출돼 새로운 국정목표를 제시하고 한반도 정책을 유지 혹은 수정할 때 한국 대선판이 크게 요동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사례들이 그 경우에 해당한다. 놀랍게도 이번 미국 대선도 동일한 프레임 속에 있다. 특히 한반도 정책만 놓고 볼 때 클린턴의 당선은 ‘현상유지(status quo)’의 승리를, 트럼프 당선은 ‘수정주의(modification)’의 승리를 의미한다. 미국 대선의 향배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 백악관 입성하면 ‘반기문 대망론’ 수그러질 수도


▎2007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 입성을 예약(공식 취임은 2017년 1월 20일)하게 되면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과 대북정책은 중대한 변화 국면을 맞게 된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강도 높은 방위비 분담 압박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이 심각한 균열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의 경우 야당의 거센 반발과 여론의 악화로 대선은 격랑에 빠져들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안보정책도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설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통한 대북 억제정책을 국정의 주요 기조로 삼았다. 따라서 사드 도입 시기 및 그에 따른 대가와 관련해 상당한 불확실성이 고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이 문제 또한 한국의 방위비 분담 증가 압박을 위한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박근혜 행정부에 사드 배치를 빌미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수용하자니 야당의 거센 반발과 분노한 국민 여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이를 거부하자니 한미동맹을 신봉하는 보수층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면초가’에 놓이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통상 압력을 트럼프 행정부가 압박해올 경우 자동차·전자·반도체·정보통신·철강·정유 등 핵심 산업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음으로써 한국 경제가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경제에 민감한 40~50대가 생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2012년 대선에서 50대 유권자들은 90%에 가까운 투표율로 결집해 보수후보(박근혜)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50대의 반란’은 여권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다.

특히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까지 내세우며 압박의 강도를 높여갈 경우 2040세대를 중심으로 반미감정이 크게 확산될 수 있다. 차기 대선은 친미와 반미 노선을 둘러싼 세대 간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보수화 추세를 나타내는 86세대가 사실상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2년 대통령 선거와 유사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고, ‘반기문 대망론’ 또한 반미 감정 고조로 인해 ‘찻잔 속 태풍’ 신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야권 후보들은 미국에도 할 말은 당당하게 하는 한편 다소 소원해졌던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대북관계 또한 경색 국면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국면이 전개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 재평가받음으로써 김대중 노선과 노무현 노선의 적통을 이어받은 후보가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문재인·안희정·김부겸(노무현 노선)과 손학규·안철수·박지원(김대중 노선)이 야권의 주도권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구도로 전개될 수 있다.

위기에 몰리는 집권여당의 유일 타개책은 정계개편


▎김무성(왼쪽) 새누리당 대표가 2015년 7월 30일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 반기문 사무총장(왼쪽에서 둘째)을 만나고 있다.
더 나아가 반미감정 고조와 안보위기 현실화로 여권의 원심력이 크게 작용함으로써 새누리당은 계파갈등 고조, 분당 가능성, 정계개편 등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정의화 전 국회의장, 이재오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정계개편의 촉매제 혹은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비책은 무엇일까?

정답은 새누리당이 정계개편을 주도하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이 정계개편을 주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계개편의 동력도 없거니와 명분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새누리당의 비박계와 중도세력이 친박세력과 박 대통령을 고립시키면서 제3지대로 모이는 방식이다. 지난 2007년 열린우리당이 해체수순을 밟으면서 구(舊)민주당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중심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한 것이 비슷한 사례에 해당된다. 당시에도 손 전 지사 등은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를 고립시키면서 제3지대로 모여 야권을 재통합하는 형식을 밟았다.

친박 세력을 제외한 비박계와 중도세력이 제3지대로 모여 국민의당과 당 대 당 통합 혹은 DJP 연합과 같은 선거 연대를 추진하는 방식도 그려볼 수 있다. 이 경우 친박과 친노를 동시에 배제함으로써 비박은 보수의 대표성을 회복하고 국민의당은 호남 및 중도·진보의 대표성을 회복함으로써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구도가 형성된다면 ‘반기문 대망론’ 또한 제3지대와 연합하지 않고는 동력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협력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친박과 친노가 손을 잡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지 않는 한, 반 총장이 갈 수 있는 곳은 제3지대밖에 없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한반도 정책은 사실상 오바마 행정부를 계승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2009.1~2013.2)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은 물론, 대선 공약으로 ‘동맹외교 강화’와 ‘대북 압박기조 유지’를 내세워왔기 때문이다.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와 중국과의 공조 및 협력을 통한 대북 압박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 큰 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안보정책 및 대북정책 기조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또한 현재의 대북 압박기조 유지 및 북핵 해결을 위한 미·중 공조와 협력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만큼 적어도 한반도 정책 및 대북정책 방향에 있어서는 힐러리와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클린턴 승리하면 박근혜 레임덕 늦출까


▎안희정(왼쪽) 충남지사가 최근 “김대중·노무현의 못 다 이룬 역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3월 세종시의 한 갤러리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는 안 지사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따라서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 시 한·미 양국이 새로운 밀월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늦추는 동시에 ‘반기문 대망론’이 점화되는 계기가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절에 방북은 실현시키지 못했지만, 반 총장이 퇴임 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다면 스스로 대권의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오직 반 총장에게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한·미가 새로운 밀월관계를 형성하는 구도 속에서 여권 내 대권주자들의 경쟁이 선순환의 흐름을 탈 가능성이 높다.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큰 틀에서 계승한다고는 하나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역 불균형 해소와 미국 기업의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통상문제에 있어서 오바마 행정부보다 보다 강경한 조치들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직 시절 ‘아시아 중시’ 노선을 표방했다. 그런 만큼 북핵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채찍보다는 당근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대북 압박의 수위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한미동맹 및 한미 통상 관계를 둘러싼 노선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남으로써 새누리당 대선주자 간 경쟁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안보·통상 현안들을 둘러싼 콘텐트와 경험이 누가 많이 갖고 있고 검증됐느냐의 프레임이 작동할 수 있다. 김무성 전 대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여권의 필승카드로 부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차기 대선의 스포트라이트를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 더 나아가 여권 후보군에 집중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야권 주자들의 움직임을 위축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무대 뒤에서 소리 없이 펼쳐지는 ‘클린턴-박근혜-반기문’ 삼각카르텔을 야권이 어떻게 깰 것이냐가 승부의 관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야권이 차기 대선의 주도권을 확보할 방법은 무엇일까?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의 등장에 야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널드 레이건(1981~1989)과 조지 부시(1989~1993)의 12년 집권에 지칠 대로 지친 미국 유권자들은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클린턴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이로 인해 안보 전문가였던 조지 부시는 역설적으로 경제에 무능한 지도자로 급전직하했고, 안보 문외한이었던 빌 클린턴은 경제를 살릴 전문가로 그 위상이 수직상승했다.

‘클린턴-박근혜-반기문’ 삼각카르텔은 안보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능력이 검증됐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뚜렷한 업적이 없거나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따라서 야권이 젊고 역동적인 리더십을 내세우면서 대선의 프레임을 안보에서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승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프레임이 형성된다면 문재인 전 대표보다는 안철수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경제전문가 혹은 지방행정 전문가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승패의 열쇠는 플로리다주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남경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왼쪽부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여섯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를 거둔 것은 두 차례(1997년 김대중, 2002년 노무현)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안보가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된 선거에서는 여당이 승리했고, ‘경제’ 혹은 ‘개혁’이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된 선거에서는 야당이 승리했다는 점이다. 김대중은 DJP 연합을 통해 안정감 있는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표방해 승리를 거뒀다. 노무현은 경제전문가인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경제’와 ‘개혁’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승리했다.

따라서 야당이 승리를 거두기 위한 공식은 ‘안보’보다는 ‘경제’ 혹은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클린턴 당선 시나리오에서 야권이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손학규(왼쪽)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과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8월 21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형규 목사 빈소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판세를 결정하는 주)’ 역할을 해온 곳은 플로리다(29명)·오하이오(18명)·위스콘신(10명), 미네소타(10명) 4개 주다.

물론 펜실베이니아(20명)·미시건(16명)·노스캐롤라이나(15명)·버지니아(13명) 등도 한때는 경합 주였지만, 이 가운데 펜실베이니아·미시건·버지니아는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고, 노스캐롤라이나는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지역이다. 따라서 힐러리 입장에서 볼 때 플로리다에서 승리하면 비교적 여유 있는 승리를 할 수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플로리다를 놓치면 다른 모든 경합 주에서 승리하더라도 최종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트럼프 진영에서는 플로리다 승리를 통해 접전을 연출할 때 근소한 승리라도 바라볼 수 있으며, 힐러리 진영에서는 플로리다 승리 없이는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플로리다의 표심을 그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2000년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의 대결에서도 플로리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총 유권자 득표에서 앞섰던 앨 고어는 플로리다에서 0.1%(537표)의 근소한 표 차이로 25명의 대통령선거인단을 모두 부시에게 내주면서 패했다.

2012년 선거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에게 0.9%의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힐러리와 트럼프는 0~2%의 근소한 차이로 매일 선두가 뒤바뀌며 엎치락뒤 치락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힐러리 진영에서는 2000년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고, 트럼프 진영에서는 2000년의 기적을 떠올리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2016년 미국 대선의 최종 향배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2017년 한국 대선 판도는 어떻게 출렁이게 될까.

미국 대선 결과를 통해 한국 대선을 점쳐볼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미 대선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일지도 모른다. 판도라의 상자는 11월 8일 열린다.

-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 jameslee@snu.ac.kr

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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