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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북한 핵실험 둘러싼 한중일 외교전 

아베, ‘북풍’에 미소짓다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납치문제 비판 여론 무마에 동북아 3국의 결속 강화 효과 누려… 중국도 일각에서는 미국과 협력해 김정은 제거하는 옵션도 거론

▎8월 21일(현지시간), 일본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들고 2016 리우올림픽 폐막식에 등장한 아베 일본 총리.
9월 8일 오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국립회의장에서 열린 EAS(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올해 들어 북한은 약 20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항저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 중인 9월 5일에도 북한은 세 발이나 되는 탄도 미사일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을 향해 발사했다.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용서할 수 없는 폭거다.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등의 미사일 능력은 일본 및 동아시아 지역의 안전 보장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은 국제사회에 대한 명확한 도전이며, 유엔안보리 결의의 엄격한 이행 등을 통해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 가는 길 이외에는 없다. 또한, 북한의 인권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일본인 납치 문제는 우리나라의 주권 및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계되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조기해결을 위한 각국의 이해와 협력을 기대한다”

EAS에는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외에, 한국·일본·중국·인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까지 총 18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북한 비판에 뒤이어 참석한 많은 국가 정상의 입에서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한 걱정과 비난이 쏟아졌다. 북한이 아시아에서 얼마나 고립돼 있는지를 또 한번 선명하게 보여줬다.

EAS를 마친 아베 총리는 이번에는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교섭에 관한 공동성명 발표에 참석했다. 예정됐던 일련의 모임을 모두 마쳤을 때 비엔티안은 이미 밤이 되어 있었다. 아베 총리는 9월 4일과 5일에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G20로부터 시작된 긴 순방 일정을 모두 마치고 피곤에 쩐 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일본 정부 전용기가 도쿄 하네다 공항에 착륙한 것은 오전 1시 직전이었고, 아베 총리가 시부야구 도미가야의 자택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베 총리는 좀처럼 잠들지 못한 채로 아침을 맞이해버렸다고 한다.

북핵 실험에 겉으론 분노하고 속으로 웃는 일본


▎지난 8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9월 9일 아베 총리가 거의 한 숨도 자지 못한 채로 오전 10시 좀 지나서 자택을 나가려 할 그때, 이마이 다카야 총리수석비서관이 다급하게 알려왔다.

“조금 전에 북한이 핵실험을 한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아베 총리의 긴장에 싸인 하루가 시작됐다. 각 매스컴과의 인터뷰로 시작해 니시무라 야스히코 내각위기관리감,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 기타무라 시게루 내각정보관, 스기야마 신스케 외무사무차관 등이 속속 관저에 도착했다.

오후 1시 반이 좀 지나서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10분간의 전화 회담, 오후 8시 반 이후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약 15분간의 전화 회담을 가졌다.

총리관저 관계자 중 한 사람은 내게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9월 9일은 올해 들어 ‘가장 긴 하루’이었다. 누구나 관저 안의 좁고 길다란 복도를 빠르게, 그리고 분노에 찬 표정으로 뛰어다녔다. 중국의 도발은 ‘걱정거리’이지만 북한의 도발은 정말 지금 당장 코앞까지 다가온 위협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우리에게는 ‘3가지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올해 1월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정말 그랬다. 총리 관저에서는 이 ‘3가지 메리트’를 ‘북풍’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베 총리도 ‘북풍’ 효과를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주먹을 치켜들고 분노하지만 내심으로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이 총리관저 관계자가 말하는 “북풍의 3가지 메리트”란 과연 무엇일까? 그를 설득한 끝에 알아낸 바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아베 정권 내각의 지지율이 상승한다.

마침 9월 15일, 최대 야당인 국민신당의 대표 경선에서 대만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TV캐스터 출신의 정치인 렌호(48) 씨가 처음으로 여성 대표로 선출되었다. 또, 8월 2일에는 여성 최초의 도쿄도 지사인 고이케 유리코(64) 도지사가 취임했다. 고이케 도지사는 과거 아베 내각의 각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이 결정한 2020년의 도쿄올림픽 방침에 잇따른 이견을 표명하며 이목을 끌었다.

때문에 일본 매스컴은 연일 ‘렌호&고이케 유리코’라는 두 여성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으며 일약 스타로 만들고 있었다. 두 여성의 인기는 아베 정권이 흐릿해 보일 정도였다. 자칫하면 ‘정의의 렌호&고이케’ 대 ‘악의 아베’라고 하는 이미지가 구축돼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아베 내각 지지율의 대폭 하락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마당에 때마침 ‘북풍’이 불어준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우익적 성향이 강한 '후지 TV'가 9월 17일과 18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아베 내각 지지율이 지난달보다 1~2포인트 상승한 56.6%로 나타났다. 한편 좌파에 가까운 'TV 아사히'가 9월 24일, 25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아베 내각 지지율은 역시 지난달보다 1~2포인트 상승한 48.5%에 달했다.

이러한 예상 외의 높은 숫자는 전적으로 ‘북풍’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아베 총리는 TV 카메라 앞에서 마치 배우처럼 의연하고 결연한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일본 국민들이 지지를 보낸다고 하는 구도다. 덕분에 아베 총리는 두 여성 정치인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

“‘납치의 아베’는 어디로 사라졌나”


▎북한에 납치됐다가 2002년 10월 일본으로 귀환한 오쿠도 유키코(왼쪽)와 하스이케 가오루.
둘째, 아베 총리에게 지난 2년간 두통거리로 남았던 납치 문제에 대한 변명거리가 생긴 것이다.

애당초 아베라는 정치가가 총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에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 ‘납치의 아베’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기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총서기와 함께 ‘일조(북일) 평양선언’에 서명했다. 그런데 이 선언에 일본인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납치 문제’가 명기되지 않았고, 고이즈미 총리와 동행한 아베 당시 관방부장관은 이에 대해 “납치 문제는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에 납치 피해자 가족은 큰 공감을 표했고 국민들 역시 동조했다. 그래서 ‘악의 북한’과 싸우는 ‘아베 피버(fever)’가 불같이 일어나 대북 온건파 인사들이 사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납치 문제는, 한국인에게 위안부 문제와 같다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납치 피해자 가족이나 지원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가가 아베 총리였으며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은 ‘납치문제 담당각료’라는 각료(장관)직까지 만들어서 대응해왔다. 2014년 7월에는 북한이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신설해, 북한측이 납치 피해자 중 생존자를 재조사하도록 하는 데까지 진전을 봤다. 그래서 납치 피해자 가족이나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일본 국민도 이번이야말로 납치 문제가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북한의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는 단 한 번도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들은 바에 의하면, 올해 3월에 북한측이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의 사무소를 폐쇄하고,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라고 씌어진 간판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아베 정권이 납치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던 피해자 가족의 기대는 낙담으로 변해버렸고 이제는 비판으로 돌아서고 있다. 마침 9월 3일에 납치 피해자 가족들이 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북한에 납치된 다구치 야에코(1987년에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을 일으킨 김현희의 교육담당으로 알려짐) 씨의 오빠로 납치 피해자 가족회의 대표인 이즈카 시게오(78) 씨는 아베 정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등단했다.

“일본 정부는 납치문제를 최우선으로 대응한다고 말했지 않았나? 어떤 상황 하에서도 일본 정부에는 납치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추진해달라!”

다구치 야에코 씨의 아들인 이즈카 고이치로(39) 씨도 연단에 올라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저는 39년 가운데 38년 동안을 어머니를 뵙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상한 일이 4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 수명은 유한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부디 일본 정부는 북한에 강력하게, 강력하게 촉구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일본의 TV 방송은 이날 집회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아베 정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납치의 아베’는 어디로 사라졌나!!”

여론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면서 아베 총리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9월 9일에 ‘북풍’이 불어준 것이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하여 각국과 제휴하면서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베 총리는 단호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즉, 지금은 핵문제가 국제사회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납치문제 해결은 미룰 수밖에 없다는 변명을 한 것이다. 이렇게 납치 피해자 가족이나 여론의 비판을 피하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북풍’의 제3의 메리트는 한·미·일 3국간 결속이 강해진 것이었다. 특히 박근혜 정권과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베 정권에는 바라지도 않았던 뜻밖의 수확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베 총리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당일에 한미 수뇌와 즉각적인 전화회담을 가졌다. 9월 18일에는, 뉴욕에서 한·미·일 3개국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케리 미 국무장관, 윤병세 한국 외무장관이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를 위해 세 나라가 협력·대응한다는 방침에 동의했다. 현재 일본은 한국 측에 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의 체결을 거듭 요청하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도 가시권에


▎9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이 라오스 비엔티안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아베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방위성 관계자가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일·한의 GSOMIA를 둘러싼 교섭은 공통의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 2011년 1월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듬해인 2012년 6월에는 서명식을 거행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당시의 이명박 정권은 서명식 1시간 전에 일본에 서명식 연기를 통보해왔다. 일본은 미국·영국·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와만 GSOMIA를 맺고 있지만, 한국은 이미 20여 개국과 맺고 있어, 외국과 GSOMIA를 체결하는 것 자체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박근혜 정권도 반일감정이 강한 야당이 국회에서 반대하고 있는 까닭에 서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북한이 올해 두 번이나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박근혜 정권은 일본과의 GSOMIA 체결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GSOMIA를 체결하지 않고서는 한·미·일 3개국이 군사적으로 북한 위협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12년 연말에 취임한 아베 총리는 거의 같은 시기인 2013년 2월에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구축이 어려워진 현실을 2년이나 감당해야 했다. 그것은 한·일 관계 악화 자체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오히려 한·일 관계의 악화가 일·미 관계의 악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아베 총리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같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좀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달라”고 다그치는 잔소리를 거듭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 아베 총리에게 무엇보다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적인 ‘밀월’이었다. 아베 총리는 아마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상으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싫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시 주석을 자신의 최대 라이벌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측근들이 시진핑 주석을 시시콜콜 비판하는 보고를 올리면 대단히 기뻐한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작년 10월 말,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라고 하는 명목으로, 드디어 서울을 방문할 수 있었으며 박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도 실현했다. 이후, 지난해 말에는 드디어 한·일 양국정부가 ‘위안부 합의’에 이르렀다. 올 들어 아베 총리에게는 더욱 기쁜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중의 불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1월 6일, 북한이 네 번째 핵 실험을 강행했을 때, 박 대통령은 가장 먼저 신뢰하는 시진핑 주석과 대응방안을 협의하려 했지만, 한 달 가까이나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의 연락을 무시했다. 거기에서부터 중국에 대한 불신감이 싹튼 것이다.

중국 측을 취재하면서 알아본 바로는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경시한다든가 한국을 무시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북한에 대한 대응책을 둘러싸고 ‘중난하이’(중국의 최고 간부들의 거주지)의 의견이 딱 반반으로 갈라져 있었다고 한다. 시진핑 외교의 특징은, 해외에서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외교부와 당중앙 대외연락부 등 각 관계부서에 대응책을 제출하도록 한다. 그것을 당중앙 변공청이 취합해 정리한 후 시진핑 주석의 결제를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북한 문제에 한해서 말하자면, 외교부보다도 당중앙 대외 연락부의 의견이 더 중시된다. 전통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조선 노동당의 ‘당 외교’가 양국 관계를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북한 이외에 베트남과 라오스에 대한 외교가 같은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쪽으로”


▎지난 7월 아베 총리가 몽골 상그릴라호텔에서 열린 제11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메인게이트에 도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 기존의 ‘북한 병풍론’ 혹은 ‘북한 번견(番犬)론’과는 궤를 달리하는 ‘북한 희생물론’이 건의됐는데 결국 끝까지 결론나지 않았다. 당중앙 변공청은 할 수 없이 이 상반되는 극과 극의 ‘양론’을 시진핑 주석에게 올렸다. 그러나 시 주석도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망설이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 병풍론’이란, 북한은 미군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지 않게 하기 위한 ‘병풍’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소홀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또, ‘북한 번견론’은 북한은 중국을 대신해서 미국을 향해 짖어주는 집 지키는 개와 같은 존재이므로, 역시 소홀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한편, ‘북한 희생물론’은 앞으로 남중국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미·중 간의 대결이 강화될 것이 예측되는 가운데 북한을 미·중 공통의 ‘희생물’로 삼자고 하는 대담한 발상이다. 즉 북한을 희생시켜서 미국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미·중이 협력하여 ‘폭군’ (김정은 위원장)을 제거하는 옵션까지 들어 있었다.

결국, 시 주석은 종래의 ‘북한 병풍론’, ‘북한 번견론’ 쪽으로 기울었는데 방침이 결정될 때까지 박근혜 정권을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중국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면서 한·중의 밀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아베 관저에도 차례대로 생생하게 보고됐다.

2월 7일에 북한이 장거리탄도미사일의 발사 실험을 하자 당일 오후 한·미 양군은 “한국국에 사드(THAAD·고고도 방위미사일체계)배치를 위한 교섭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쪽으로 돌아와주었다.”

사드 배치에 대해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예상하고 있었던 대로, 아니 예상 이상으로 중국의 반발이 강했다. 사드로 인해 박근혜 정권은 시진핑 정권의 ‘호랑이 꼬리’를 밟아버린 모습이었다. 나는 올 1월, 베이징에서 중국의 외교관계자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북한이 핵개발에 매진해온 것은 미국이 북한을 계속해서 무시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고 박근혜 정권에게 필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현재 박근혜 정권은 ‘3가지 NO’ (미국에서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를 주장하고 있지만 올해는 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미국은 루마니아에 미사일을 배치하고, 그것을 ‘이란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란과는 작년 여름에 핵 합의에 이르렀고 결국 루마니아의 미사일 배치가 이란이 아닌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임이 자명해졌다. 미국은 이번에도 역시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이 중국을 노린 것이라는 점은 일목요연하다. 그러므로 사드배치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그는 미국이 왜 한국 사드배치를 서두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했다.

“시 주석은 현재 200만 인민해방군을 향해 건국 이래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는 대대적 개편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인민해방군을 북부의 육군 중심 군대에서 남부의 해군 중심 군대로 바꾸려 하고 있는 것이다. 4300㎞의 국경을 맞댄 러시아와 2004년에 양국 국경을 획정하고 지금은 그야말로 밀월시대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또한 북한이 아무리 공갈 외교를 하고 있다 해도 그 공격이 중국을 향할 리도 없다. 그것보다도 앞으로 긴박해지는 곳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다. 특히 남중국해에서는 미·중이 직접 충돌할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다. 그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인민해방군의 개편을 저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여 인민해방군을 북부지역에 묶어 두려 하는 것이다.”

이 외교관계자의 염려는 그 후 보기 좋게 적중했다. 7월 8일에 박근혜 대통령은 “내년 말까지 사드를 한국에 배치한다”고 정식으로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중 밀월시대’는 완전히 종식돼버렸다. 나는 올 8월에 취재차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이 외교관계자와 재회했는데 그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박근혜 정권이 무슨 일이 있어도 사드를 배치하겠다면 우리들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방식’으로 이를 봉쇄할 것이다. 그때 중요한 인물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일본의 허를 찌른 중국의 ‘반기문 포섭’ 작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이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면담했다. 이 부위원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많은 이야기는 들려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2013년 이후, 오바마 정권은 일본을 끌어들여 경제 분야에서의 중국 포위망인 TPP를 구축하려고 했다. 그리고 중국 측의 강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작년 10월 참가를 결정한 12개국의 최종합의가 발표됐다. 그런데 미국 의회의 반대로 아직까지 비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차기 대통령 후보인 클린턴과 트럼프 모두 TPP에 반대하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TPP는 합의가 발표되기는 했지만 그대로 시간만 질질 끌다가 결국 미국에서 차기 정권이 발족하는 시점에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사드배치를 결정했다. 따라서 이후 중국은 박근혜 정권 임기 중에 사드가 실전 배치되는 일이 없도록 필사적으로 작전을 펼쳐나갈 것이다. 동시에 차기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포섭 작전을 펼쳐 반기문 정권이 사드 배치를 중지하게 만든다.

9월 4일과 5일 시 주석이 의장역을 맡은 항저우 G20으로 이 ‘작전’의 일면이 살짝 드러났다. 먼저,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서 항저우 G20에서의 8번째 한중정상회담을 요청했는데 중국측은 이를 직전까지 무시했다. 8월 중순에 앞서 언급한 중국 외교관계자는 이렇게 폭로했다. “아베 총리와의 중·일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당 중앙(시진핑 주석 측)으로부터 허가가 내려왔지만, 박근혜 대통령과의 중·한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아직도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시진핑 주석 자신이 사드배치에 대해 대단히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같은 시기에 만난 한국 유력 일간지의 베이징 지국장은 내게 이렇게 흘렸다. “만약 항저우 G20에서 한·중정상회담이 실현되지 못하면 한국 외교사에 길이 남을 오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베이징의 한국 대사관은 김장수 대사 이하, 간부가 전원 교체되는 것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이것은 단지 내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중국 측이 G20에서 한·중정상회담을 하는 조건으로 사드 배치를 늦추도록 한국 측에 요구한 것이 아닐까?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중국은 더 노골적으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포섭작전을 시도했다. G20을 하루 앞둔 9월 3일, 작년 12월 12일에 합의된 ‘파리협정’의 비준서 인도식을 거행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가을 임시국회나 내년 통상국회(정기국회)에서 비준하면 될 것이라고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이, 2위의 미국을 설득하여 비준서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건네줘 버린 것이다. 이 의식에 등단한 인물은 시 주석, 오바마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3명이었다.

시 주석은 중국·미국·유엔의 기 3개를 뒤로 하고 위풍당당하게 연설을 시작했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복지와 미래에도 관련되는 것이며, 중국은 G20회의의 자리를 빌려 솔선하여 파리협정을 비준했다. 최대의 발전도상국인 중국, 최대의 선진국인 미국이 이곳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비준에 이른 것이다. 중국은 창조·협조·녹색·개방·공익의 발전 이념 하에 전면적으로 에코 사회 만들기를 추진하고, 생태문명의 신시대를 향해서 매진해 갈 것이다.”

2017년 중국 공산당대회에 한국이 타깃이 될 가능성

과거 7년간이나 움막 생활을 경험했던 시 주석에게, 확실히 말해서 환경문제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던 것임에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퇴임을 앞둔 반기문 사무총장의 위신을 세워줌으로서 ‘채무감’을 안기는 것이었다. 여기에 비친 중국의 속내는 통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의 업적으로서 파리협정 발효를 선물해서 내년의 대통령선거에 대한 지원 사격을 해줄 테니 한국 대통령이 되면 사드 배치를 철회해주었으면 한다.”

실제로, 파리협정은 중국의 노력으로 11월 초에 모로코에서 열리는 유엔 온난화 대책회의에서 발효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노벨평화상에 대항해서 2010년 제정한 ‘공자평화상’의 2016년 수상자의 최종 후보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남았다고 발표했다. 12월 9일의 시상식에 반기문 총장을 베이징으로 불러 내년의 대통령선거를 전면적으로 백업하겠다는 말을 건네기 위한 포석이다. 10월 초순 시점으로, 한국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은 한국 대통령 선거 레이스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10월 10일, 북한에서 조선 노동당 창건 71주년 궐기대회가 열렸다. 그러나 중국은 9월의 핵실험에 대한 제재를 둘러싸고 강경파의 ‘희생물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자국을 향하지 않을 북한의 핵문제보다 자국을 향할 한국의 사드배치 쪽이 보다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7년은 5년에 한 번 열리는 중국 공산당대회가 가을로 예정되어 있다. 공산당대회가 열리는 해는 중국이 대외적으로 가장 강경해지는 해이기도 한다. 제18회 공산당대회가 열렸던 2012년은 거국적으로 반일운동이 일어났다. 사드배치를 둘러싸고 2017년은 한국이 타깃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과거와 같이 미국, 일본과 완전히 손잡을 것인가, 아니면 미·중 사이에서 위태로운 밸런스 외교를 계속할 것인가? 북한의 핵문제와 거기에서 부수된 사드배치를 둘러싸고 대단히 어려운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611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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