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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재생과 치유의 상징 유혈목이 

‘꽃뱀’, ‘제비족’, 아담과 이브, 선악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애욕을 상징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유혈목이는 물가를 좋아해 논가와 습지에 많다.
이 추운 세한에 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꼭 ‘겨울에 죽순 이야기’를 하거나 ‘하루살이에게 얼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격에 안 맞지만 양지자락 깊은 굴 속에서 떼거리로 한창 겨울잠(동면, 冬眠)을 자고 있을 유혈목이(Rhabdophis tigrinus)를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유혈목이·대륙유혈목이·비바리뱀·실뱀·능구렁이·구렁이·누룩뱀·무자치·살모사·쇠살모사·까치살모사 등 11종의 뱀이 산다. 물론 넓게 보아 5종의 도마뱀도 뱀 무리에 든다. 전 세계에는 2900여 종이 서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겨울이 이토록 모질게 추운 탓에 파충류나 양서류의 종수가 턱없이 적다.

먼저 뱀에 얽힌 속담 몇을 본다. ‘뱀 본 새 짖어대듯’이란 몹시 시끄럽게 떠듦을, “뱀을 그리고 발까지 단다(화사첨족, 畫蛇添足)”란 있지도 아니한 발을 쓸데없이 덧그려 넣는 군짓으로 도리어 잘못되게 함을 빗댄다. 또 “뱀이 용 되어 큰소리 친다”란 변변찮거나 하찮던 사람이 갑자기 귀한 신분이 되어 아니꼽게 굶을, ‘허리춤에서 뱀 집어던지듯’이란 끔찍스럽게 여겨 다시는 보지 아니할 듯이 팽개침을 이르는 말들이다.

그런데 꽃뱀이란? 화려한 색을 지닌 ‘꽃뱀(화사, 花蛇)’은 남자에게 일부러 접근하여 몸을 맡기고는 금품을 우려내는 흉물스럽고 요사스런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 꽃뱀(floral snake)이란 바로 ‘유혈목이’를 가리킨다. 그야말로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기어이 먹게 한 아내 이브를 떠올리게 한다. 꽃뱀이 있는 곳엔 소위 말하는 ‘제비족’도 따라 득실거린다.

뱀의 일반적 특징부터 아주 간단히 보자. 뱀은 세계적으로 작은 것은 10㎝남짓에서 무려 7m나 되는 것도 있고, 양극 지방을 제하고는 살지 않는 곳이 없으며, 물에도 적응하여 강에 무자치(water snake), 바다에는 바다뱀(sea snake)이 산다.

뱀은 뱀과의 육식 파충류로 변온(냉혈)동물이다. 몸이 세장(細長)하고, 다리·눈꺼풀·겉귀가 없으며, 혀는 두 갈래로 갈라졌다. 주행성인 뱀은 눈동자(동공, 瞳孔)가 똥그랗지만 오밤중에 돌아치는 야행성들은 고양이눈동자처럼 세로로 길쭉하다. 뱀의 눈알은 꼼짝달싹 않기에 독살스럽게 보이는데 그런 눈을 ‘뱀눈’이라 한다.

물려서 죽을 일 없는 독뱀

등뼈(척추)가 자그마치 400여 개로 자잘하고 짤막짤막하기에 똬리(snake’s coils)를 틀 수 있고, 왼쪽 폐는 퇴화된 종이 많다. 뱀은 제 몸 크기의 4배가 넘는 먹이도 거뜬히 삼키니 머리뼈와 턱뼈가 관절(關節)이 아니고 유연(柔軟)한 힘살(근육)과 인대(靭帶)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뱀은 사지(四肢)가 퇴화한지라 많은 배비늘(복린, 腹鱗)과 400개가 넘는 갈비뼈(늑골, 肋骨)로 움직인다. 무엇보다 수컷 교미기(交尾器)가 특이하다. 수컷은 배설기관과 생식기관을 겸한 구멍(총배설강, 總排泄腔)의 좌우에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진 1쌍의 반음경(半陰莖, hemipenis)이 있고, 음경에는 껄끄러운 가시돌기가 잔뜩 났다. 어설프게 삽입된 음경이 슬며시 빠져버리는 것을 막으려고 두 음경을 옆으로 쫙 벌어져 빗장을 지르고, 가시돌기로 걺으로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참 신통한 구조로소이다!

뱀은 1년에 한두 번씩 허물벗기(탈피, 脫皮)를 하는데, 그전엔 아무것도 먹지 않아 죽은 듯 수축하고 창백해지며, 눈알까지 흐릿해진다. 살갗 안이 흐물흐물 녹아 미끈해지면서 입에서 꼬리까지 줄줄이 발가벗겨지는데 벗어놓은 것이 천생 여자들의 스타킹과 같다.

딱딱한 허물을 벗으므로 덩치가 커지고, 비늘에 달라붙은 기생충도 함께 없앤다. 한데 가끔가다가 돌연변이로 색소 유전인자가 없어진 백사(白蛇)가 생겨나니 그 값이 천정부지로 몇 천만 원을 호가한단다.

그렇다. 구급차나 세계보건기구(WHO)의 상징으로 뱀이 지팡이를 칭칭 휘감고 있는 이른바 ‘아스클레피오스 지팡이(Asclepius rod)’를 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늘 재생과 치유를 상징하는 뱀이 감긴 지팡이를 지니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치료했다는 데서 온 것이다.

이제 꽃뱀 이야기다. 유혈목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우점종(優占種)으로 전신에 꽃이 핀 것 같은 무늬가 있어 꽃뱀이라 부른다. 목에 붉은 띠가 나 있는 것이 으뜸가는 특징으로 몸의 앞부분(3분의 1에 해당)의 무늬는 붉은색이고, 검은색 무늬가 등짝 중앙선 양쪽에 배열되어 있으며, 배 바닥은 하얗다. 등짝비늘에는 용골(龍骨)돌기가 있어 만지면 까칠까칠하다.

몸길이는 평균 60~100㎝이나 기온이 높은 남으로 갈수록 크고, 길어져 제주도의 것은 1m가 넘는 놈도 있다 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덩치가 크고, 꼬리가 가늘면서 끝이 짧고 뭉툭하다. 놈들을 다그치거나 하면 몸과 머리가 납작해지면서 독사처럼 삼각형을 이룬다. 또 아주 위험타 싶으면 선뜻 몸체를 뒤집어 죽은 시늉(가사, 假死)도 마다치 않는다. 늦가을에 짝짓기하고, 다음해 여름에 10~15개의 알을 낳고, 알 길이 4㎝, 폭 2㎝이며, 색은 희고 껍질은 몰랑몰랑하다. 9월경 부화하고, 부화한지 6~7일이면 허물벗기를 한다. 주행성으로 먹이는 대체로 개구리·두꺼비·지렁이·올챙이·미꾸라지·잔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 물가를 좋아하여 논가와 습지에 많고, 논밭·강가·산자락에도 살며, 단독주택에도 나타난다. 우리나라 말고도 러시아 동부, 베트남, 일본, 중국, 타이완 등지에도 분포한다.

유혈목이는 흔히 독 없는 뱀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근래 와 독뱀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다행히 앞니가 독이빨인 보통독사와 달리 유혈목이는 어금니독니라 물려서 죽을 일은 거의 없다 한다.

유혈목이들아, 매서운 송곳추위 겨울을 잘 넘기고, 따스한 오는 새 봄에 우리 또 만나자꾸나.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 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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