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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마음과 인격, 당신의 언어에 담긴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언어의 타락이나 성스러움은 우리 삶의 반영… 일상적으로 써왔던 차별의 언어도 시정해야

▎단어가 인격이다 / 배상복 지음┃위즈덤하우스┃1만4000원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기자나 작가도 우리말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작가 중에는 초등학생도 아는 어법의 실수를 저지른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부적절한 어휘의 선택은 다반사이고 영어와 일본어 등 외래어 활용에서 드러나는 무지는 부끄러울 정도다.

저자는 ‘말은 마음의 초상’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언어생활을 반추한다. 한 사람의 내면 세계는 그가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한 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철학적 함의가 있지만,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언어에 의해 존재하고, 언어의 타락이나 성스러움은 고스란히 우리 삶의 반영이란 뜻일 터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했는데, 내면이 아름다운 사다. 한마디로 언어는 곧 인격이라는 믿음이다.

저자의 문제의식 중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편견과 사회적 냉대가 평소 사용하는 단어에 은연중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처녀출전’, ‘안사람’, ‘파출부’, ‘미혼’, ‘미망인’ 등의 단어에 담긴 성차별적 의미, ‘서울에 올라간다’, ‘촌스럽다’ 등에 담긴 지방에 대한 하대와 편견, ‘잡상인’, ‘하청업체’ 등 특정 직업군에 대한 비하, 맹인·소경·절름발이 등 장애를 부족하고 모자란 것으로 취급하는 편견을 담은 단어들이 망라된다. 부끄럽게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써왔던 차별의 언어 아닌가?

언어의 가치는 간결성에 있다는 문제의식도 배울 만하다. 군더더기가 없는 표현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님’ 자를 붙인다고 그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선배님, 차장님, 부장님이라고 하는 식으로 ‘님’ 자를 꼬박꼬박 붙이는 습성을 들이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님’ 자를 남용하다 보면 제삼자에게 얘기할 때도 아무 생각 없이 ‘님’ 자를 붙이게 된다고 저자는 질타한다.

나아가 요즘 우리사회의 가장 타락한 언어습관, 사물존대가 횡행하는 풍토를 나무란다. ‘커피가 나오셨다’, ‘타이어는 광폭이시고, 새 모델이십니다’, ‘5만원이세요’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잉존대가 물신주의와 짝을 이루어 희한한 언어 습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계산하실게요’라는 희한한 존칭은 무언가? 병원에 가면 ‘다리를 펴고 누우실게요’, ‘목에 힘 빼실게요’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과공비례라고 해야 하나, 도대체 어느 나라 어법인지 모르겠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사지가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 정도다. ‘누울게요’에 ‘시’가 첨가된 ‘누우실게요’는 어법상 성립하지 않는다. ‘누울게요’처럼 나의 의지를 나타내는 말에는 ‘시’가 들어갈 수 없다. 저자는 ‘누우실게요’란 말이 나의 의지와 상대를 높이는 말이 결합된 ‘그릇된 어법의 희한한 표현’이란 통쾌한 사망선고를 내린다. SNS와 문자메시지에서도 우리말은 온갖 고생을 겪고 있는 세태다.

말의 온전한 형식과 내용을 지키자. 이 대목이 보수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다. 지킬 것은 지켜야 버릴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언어의 진실이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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