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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 (제1부 광복) 

제5장 - [3] 국무부의 복병 

복거일 / 조이스 진
러시아 진격작전을 두고 히틀러와 독일군 지휘부의 의견이 엇갈렸다. 히틀러는 적의 사기를 꺾는 수도점령보다 병력 박멸과 자원 탈취에 마음이 쏠렸다. 의견 대립으로 독일군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19일 궐위기’ 동안 스탈린은 모스크바 방위선을 복원했다. 장거리 행군에 혹독한 추위로 전력이 고갈된 독일군은 러시아군의 기동에 밀려 결국 패퇴했다. 이승만은 이 같은 러시아의 집념과 야심을 경계했다. 그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유입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미국의 승인을 받는 것을 도모했다.
독일군의 침공으로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자, 스탈린은 생각해낼 수 있는 조치들을 앞뒤 가리지 않고 취해서 독일군을 막아내려 했다. 심지어 독일군에 특히 꿋꿋이 저항한 연대, 사단, 야전군에 ‘근위(Guards)’라는 칭호를 붙이도록 했다. 원래 러시아에서 ‘근위사단’은 구체제의 상징이었고 공산주의자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집권한 공산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흰 장갑을 낀 근위사단 장교들의 손들에서 껍질을 벗겼다. 적군(赤軍)의 창설과 더불어 없어졌던 계급도 다시 살아났고 장교들의 어깨 위엔 견장이 다시 붙었다. 20년 동안 지독한 박해를 받은 러시아 정교회도 ‘어머니 러시아’를 위해 복무하도록 복권되었다.



러시아 평원은 전차 부대들을 앞세운 전격작전에 이상적인 땅이었다. 침공 한 달 뒤, 독일군은 저항하는 러시아군을 거듭 깨뜨리면서 광대한 지역을 얻었다. 북부 집단군은 레닌그라드 가까이 진격했고, 중부 집단군은 스몰렌스크 포위 작전에서 무려 러시아 군 3개 야전군을 섬멸했고, 남부 집단군은 목표인 키에프를 위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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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호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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