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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추적] ‘그림자 호위무사’ 자처하는 정치인의 댓글부대 

극과 극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무법천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온라인 여론 영향력 장악하려 정치 팬클럽끼리 대리전쟁 치열 … 포털 뉴스 댓글은 프레임 선점 위해 흑색선전 난무하는 전쟁터

▎댓글 조작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드루킹’ 김동원(가운데)씨가 5월 10일 서울시 중랑구 묵동 서울지능범죄수사대로 강제 소환되고 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여야가 5월 14일 특별검사제 도입에 합의하면서 실체 규명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특검에 주어진 과제는 크게 두 분류다. 온라인 필명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와 그가 이끈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의 댓글 여론 조작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와 정치권이 관련돼 있다면 어디까지인지를 밝히는 일이다.

먼저, 여론 조작 규모는 경찰 수사를 통해 어느 정도 실체가 나타나고 있다. 검찰이 기소한 최초 혐의는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대한 네이버 기사에 달린 댓글 2건 의 순위 조작이었다. 매크로(동일 작업 반복 프로그램)를 이용해 추천 수를 조작했다는 혐의(업무방해)다. 경찰 수사에서 676개 기사에서 2만여 개의 댓글이 이런 수법으로 조작됐다는 게 추가로 드러났다.

게다가 경찰이 드루킹 일당에게 압수한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분석한 결과 대선 7개월 전인 2016년 10월께부터 올해 3월까지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등 3대 포털에 올라온 기사 9만 건에서 댓글 순위 조작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포착됐다. 앞서 월간중앙은 5월호에서 드루킹 일당이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댓글 작업에 필요한 실행파일 등이 담긴 보안 USB를 회원들에게 지급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적 있다.

둘째는, 정치권과 연결 고리다. 현재까지 드루킹과 공모 의혹이 나온 인물은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김경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드루킹의 댓글 조작과 관련성을 일절 부인하고 있지만 양쪽의 금전 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2016년 11월께 김 전 의원 후원계좌에 경공모 회원 160여 명으로부터 1인당 5만~10만원씩의 정치후원금이 입금된 정황이 발견돼 경찰이 경위를 조사 중이다. 또 드루킹이 측근을 통해 김 전 의원의 보좌관 한모(49)씨에게 500만원을 건넨 사실도 당사자들의 시인으로 확인됐다. 드루킹과 그의 측근들은 이 돈이 지난해 대선 이후 경공모 회원인 도모 변호사의 일본 오사카 총영사 임명 청탁과 관련된 대가성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 지지세력은 가장 큰 정치 자산


▎2017년 3월 27일 광주 광산구 광주여대 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자 호남권역 선출대회에서 김정숙 여사와 김경수 의원이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 회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인들의 지지자 조직은 대체로 일사불란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온라인에선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며 정체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지만 오프라인으로는 정치권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활동 상황을 서로 공유한다. 드루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 전 의원의 거리 두기에도 불구하고 드루킹 일당의 존재를 의식하는 장면이 여러 번 포착된다.

지난해 3월 27일 광주광역시 광주여대 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자 호남권역 선출대회에서 김정숙 여사가 드루킹이 조직한 ‘경인선(經人先·경제도 사람이 먼저다)’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 뒤를 김 전 의원이 수행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일주일 뒤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마지막 순회 경선의 영상에는 “경인선도 가야지. 경인선에 가자, 경인선에”라고 말하는 김 여사의 모습이 나온다.

드루킹이 김 전 의원에게 측근 변호사 2명의 인사를 청탁한 것도 이런 내밀한 관계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드루킹은 도모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로, 윤모 변호사를 청와대 행정관으로 김 전 의원에게 추천했다. 두 사람 모두 발탁되지 않았지만 윤 변호사는 문재인 캠프에 들어가 민주당 법률지원단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도 변호사의 오사카 총영사 임명이 실패한 뒤 김 전 의원이 센다이 총영사 자리를 역제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도 변호사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전달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센다이 총영사 자리를 제안했다는 의혹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특검이 진행되면 제2, 제3의 조직적인 여론 조작 활동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정 정치 성향의 집단들이 온라인 여론을 장악하려고 벌이는 패권 경쟁에서 드루킹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온라인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댓글부대’를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의 세(勢) 싸움은 우호적인 당원 확보가 관건이었다. 이런 공식이 깨지기 시작한 건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신드롬의 위력이 확인되면서다.

노사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지역별 오프라인 조직을 갖추고 정치인 팬클럽 시대를 열었다. 노사모가 주도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여론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돼 대규모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2004년 총선에서 노사모가 중심이 돼 새천년민주당에서 독립한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확보하면서 위력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2012년 18대 대선에는 국가정보원이 주도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띄우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 활동을 벌였다. 국정원은 391개의 트위터 계정으로 29만5636차례에 걸쳐 글을 올리거나 퍼날랐다. 인터넷 게시판에도 2000회가 넘는 댓글을 달았다.

국정원이 주도한 인터넷 여론 장악 활동에는 ‘십자군알바단(십알단)’ ‘서강바른포럼’ 등의 사조직이 가담했다. 실적을 올린 조직에는 ‘포상’이 주어지는데, 박근혜 정부의 김한수 청와대 뉴미디어정책비서관실 행정관은 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본부와 대통령직인수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팀장을 거쳐 발탁됐다.

박 전 대통령의 3대 사조직 중 하나인 서강바른포럼은 박근혜 당선 전략(V2012 실행계획)을 만들어 조직 구축과 대국민 설득 전략 등을 실행한다. 관련자들의 재판 자료에 따르면 진보 진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SNS 영향력 확대를 위해 박 전 대통령 지지글을 작성·유포할 요원 30명을 선발한 뒤 팔로어를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취했다. 대선 승리 후 포럼 관계자 중 일부는 새누리당 당직자로 들어가거나, 대기업 계열사의 경제연구소로 영입되기도 한다.

‘OOO, 그렇게 안 봤는데…’ 발 없는 댓글의 위력


▎2002년 12월 20일 새벽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 정치인 팬덤의 사활을 건 싸움터로 변한 건 온라인 여론의 향방이 선거 판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온라인 여론의 비중과 파급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심리적 효과와 관계가 깊은데, 바탕에는 아래의 세 가지 저널리즘 이론이 깔려 있다.

특정 키워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용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 키워드를 사회의 주류 여론으로 인식하게 된다(프레임 효과). 또 특정 정치인에 대해 평가할 때 미디어에서 강조된 것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점화 효과). 동일한 프레임이 반복될 경우 미디어는 이를 중요한 이슈로 판단해 확산시키고 사회적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된다(의제 설정 효과).

이 세 가지 효과가 맞물려 특정 이슈를 증폭시키고 특정 인물이나 단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는데, 이재명 민주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은 온라인 여론 장악 경쟁의 전형을 보여준다. 형수 욕설 논란, 일베(일간베스트) 회원 의혹, 일명 ‘혜경궁 김씨’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전투형 노무현’이란 별명을 붙여주며 그를 응원했던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반감이 확산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2017년 5월 7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광주송정역 인근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형수 욕설 논란은 2014년 이 예비후보가 성남시장 재선에 나섰을 때 한 차례 논란이 됐던 해묵은 이슈다. 이 예비후보는 “시정 개입을 못하도록 막아 갈등이 깊었던 형님이 모친에게 입에 담지 못할 패륜적 욕설을 한 것에 화가 나 전화로 항의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며 “열 번, 백 번이고 욕을 한 건 제 잘못”이라고 거듭 해명해 왔다.

재선에 성공한 뒤 잠잠해졌던 욕설 논란이 최근의 경기도 지사 당내 경선 과정에서 온라인에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남경필 한국당 경기도지사 후보가 문제의 녹음파일을 선거운동에 공개할 뜻을 내비치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일베 회원 논란도 이 예비후보의 해명이 전혀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일베는 세월호 희생자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등 패륜적 행태로 물의를 빚어왔다. 특히 진보 진영의 거부감이 크다. 이 예비후보 측이 ‘이재명=일베’라는 프레임 확산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다.

이 예비후보는 “2016년 1월 26일 허위 사실과 명예훼손 글을 유포한 일베 회원들을 찾아내 법적 대응하려고 일베 사이트에 회원으로도 가입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이날 언론들은 이 예비후보가 ‘일베 소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 예비후보 측은 “고소할 대상을 특정하려면 회원 정보가 필요한데, 일반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원 정보를 보려면 회원으로 가입해 접속해야 하는 점을 감안해 일베도 같은 방식이라고 생각해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일베 사이트는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모든 글과 회원 정보를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걸 확인하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로그인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일베 활동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치인 팬들의 ‘전투력’ 따라 온라인 여론 ‘출렁’


▎2017년 1월 15일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손가락혁명군’ 출정식 행사에 참여한 이재명 전 성남시장. 손가락혁명군은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모바일 지지자 모임을 가리킨다. / 사진·연합뉴스
이 예비후보는 그해 4월 허위 사실과 명예훼손 글을 SNS에 유포한 일베 사용자 24명을 고소했다. 그중 1명은 1심에서 징역 1년이 선고됐고, 2명은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혜경궁 김씨’ 트위터 논란도 마찬가지다. 수차례 문제의 트위터 사용자(08__hkkim)는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이 예비후보의 아내 김혜경 씨의 이름을 빗댄 ‘혜경궁 김씨’ 프레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재명 후보를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마타도어는 프레임 이론의 전형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부정적 단면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대중이 ‘이 전 시장은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인물’이란 왜곡된 인식을 갖게끔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선 문 대통령 지지자들(문파)의 ‘전투력’을 최고로 친다. 2016년 9월 창립 총회에 참석한 문 대통령이 SNS 문화를 바꿔 보자며 ‘선플 운동’을 제안한 뒤 눈에 띄게 활동 반경이 커졌다. 문파의 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2016년 말 대선 경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한 친문계 당직자가 김진표 의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문에게는 경제사령탑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며 캠프 합류를 요청했다. 당내 중진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A씨가 보낸 메시지에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온라인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다른 후보들(이재명·안희정·박원순)을 평가절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래 내용이다.

‘이재명이 다니면서 자신의 SNS에 응원해 달라고 다닌 것이 효과를 발휘해 박원순 안철수 등에 비해 앞서고 있으나 비교가 안 됨. 문은 자발적인 지지자가 셀 수 없이 많고 문 쪽에서 제대로 관리는 못하지만 알아서 활동하는 유저들이 셀 수 없이 많고 1인 미디어급도 수두룩. 다른 후보와 비교가 안됩니다. 박원순은 애쓰지만 효과는 없고, 안희정은 보이지도 않음.’

문파 중에서도 정예화된 별동대는 ‘달빛기사단’이다. 드루킹과 경공모 회원들의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드루킹은 대화방에서 “저쪽(달빛기사단)에서도 매크로를 사용하고 있고”라며 여의치 않은 상황이 닥치면 이 사실을 공개할 뜻을 내비쳤다.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온라인 공식 카페를 두고 있는 경공모나 박사모, 노사모 등과 다르게 공개적인 근거지가 없다. 카카오톡의 비공개 대화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이들은 대선이 끝난 뒤 공식 대화방을 닫았지만 개별적인 활동은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특유의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문빠’ ‘문각기동대’ ‘문슬람’ 등의 부정적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재명 예비후보의 지지자 모임인 ‘손가혁’도 과격하다는 평가가 많다. 손가혁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경기도의 기초 단체장에 불과했던 이 예비후보를 유력 대권 후보의 반열로 올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온라인에서 음해 공격에 시달리던 이 예비후보가 2016년에 “손가락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지지자들에게 SNS 중심의 온라인 지지활동을 독려하면서 공식 팬클럽으로 출범했다.

문팬들이 주로 대형 커뮤니티와 카페, 1인 미디어 등 온라인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손가혁은 주로 트위터·페이스북 등의 SNS에서 저력을 발휘한다. 각각 ‘친문’ ‘비문’의 대표 지지세력으로 대결 구도가 형성돼 있다. 각자 프레임에 능한 네임드(잘 알려진) ‘빠’들이 논리를 만들면 이를 퍼나르며 여론을 확산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일베나 워마드 같은 몇몇 극단적 우파 성향 커뮤니티를 제외하고 손꼽히는 대형 커뮤니티는 대부분 친문 여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극렬 소수가 수백만 명 커뮤니티 여론 장악


▎김동원씨가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진 파주시 출판단지 내 느릅나무출판사. 4월 17일 출판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댓글 조작을 비방하는 문구가 걸려 있다.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온라인 여론 형성에 참여하는 행위 자체를 놓고 위법성을 따지긴 어렵다. 드루킹처럼 프로그램을 이용해 거짓 여론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면 자발적 참여는 시민의식 향상이란 긍정적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학 교수는 “오프라인에서 집회·시위를 조직하고 참가해 자신들의 주장을 과시하는 것과 온라인에서 댓글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의사를 개진하고 동조하는 것은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행동이란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소수가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벌이는 극단적인 행태에 대해선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IT 정보 커뮤니티 이용자 A씨는 오랫동안 활동했던 커뮤니티에서 쫓겨나듯 탈퇴했다. 문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극문)을 비판한 의견을 올린 게 빌미가 됐다. 글을 올리자마자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손가혁(이재명 지지자 모임인 ‘손가락혁명군’)’ ‘안빠(안철수 지지자)’ ‘일베충’으로 매도했다. 신고 보복이 이어졌다. A씨는 “문 대통령 외에 다른 정치인에 대한 비난이 지나치다 싶어 건전한 토론을 기대하며 글을 올렸는데 비아냥과 인신공격을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탈퇴했다”고 말했다.

A씨가 말하는 특정 소수의 커뮤니티의 여론 장악 방식은 집요하고 일사불란하게 이뤄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올리면 그 성향을 ‘메모’해 두고두고 따돌린다. 결국 커뮤니티를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런 경우를 숱하게 봤다. 그렇게 정치 성향이 다른 이들의 입을 막아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여론만 눈에 띄도록 한다.”

드루킹으로 인해 매크로 조작에 취약한 포털의 댓글 정책과 기술적 문제점이 노출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매크로는 마우스의 움직임과 클릭을 기억해 빠르게 반복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댓글 우측의 ‘공감’ 버튼 위치를 매크로 프로그램이 기억하도록 입력하면 마우스가 자동으로 움직여 버튼을 누르는 식이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대학교 수강신청 자동화부터 공연티켓 자동예약 등 활용성이 뛰어나다. 정교한 프로그램의 경우 이용자의 행동 패턴을 거의 완벽히 흉내 낼 수 있어서 포털 업체가 일일이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포털 사이트 뉴스나 블로그 등에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을 해야 한다. 회원가입 시 본인 확인을 위한 휴대전화 인증을 거치기 때문에 혼자서 여러 계정을 만들 수 없다. 네이버의 경우 1인당 허용되는 계정 수는 3개까지다. 이를 우회할 방법은 대포폰을 이용해 유령 계정을 만드는 것이다. 주로 온라인 마케팅 대행업체들이 이 방법을 쓴다. 유령 계정을 만든 뒤 블로그나 카페에 홍보 글을 올리거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추천 수를 조작한다. 한 온라인 마케팅 업체 관계자는 “네이버 계정 30개 정도만 있어도 불리한 정보를 감추거나 유리한 정보를 주요 위치로 노출시키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포털업체의 감시망에 걸리기 십상이다. 계정을 수백 개 가졌어도 한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면 이내 적발된다. 인터넷프로토콜(IP)이라고 하는 컴퓨터에 부여되는 인터넷 고유 주소가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아웃링크 외에는 댓글 조작 원천 차단 못 해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5월 9일 ‘네이버 뉴스 및 뉴스 댓글 서비스 관련 간담회’에서 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일괄적인 아웃링크 도입은 어렵다”며 “희망 언론사와 개별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드루킹 일당은 이를 피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비행기 모드’를 활용했다. 비행기 모드는 인터넷 연결을 끊은 상태다. 비행기 모드에서 정상 모드로 돌아가면 IP가 바뀐다. 스마트폰은 유동형 IP를 쓰기 때문이다. 드루킹은 경기도 파주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휴대전화 170여 대를 이용해 아이디를 수백 개 만든 뒤 스마트폰 비행기 모드로 IP를 바꿔 댓글 추천 수 조작에 이용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IP와 매크로만 잘 결합하면 댓글 수천 개를 순식간에 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매번 주소를 바꿔 접속한다면 포털업체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5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비행기 모드를 통한 공격에 대해 통신사에 협조를 구해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휴대전화 유동 IP를 고정형 IP로 바꾸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신사들은 국제 통신 규격에 맞지 않다며 난색을 표한다.

여기에 매크로보다 더 강력한 새로운 기술도 등장했다. ‘패킷 조작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서버를 이용한 수법이다. 드루킹과 공범으로 구속기소된 필명이 ‘서유기’인 박모(30)씨가 댓글 조작에 활용했다고 자백한 ‘킹크랩’이 바로 그 프로그램이다.

패킷 조작 프로그램은 서버에 보낸 허위 신호를 정상 신호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이는 수신자에게 도달하는 패킷(기본 데이터 전송 단위)을 도중에 가로채 데이터를 변조한 뒤 원래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한다. 수·발신자 정보도 바꿀 수 있어 추적도 쉽지 않다.

매크로가 손으로 조작하는 것을 프로그램이 더 빨리 대신해 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패킷 조작은 ‘공감한다’는 거짓 정보를 패킷에 심기만 하면 자동으로 공감 수가 올라간다. 매크로 프로그램 제작 비용은 수십만 원 선이지만 패킷 조작 프로그램은 난도가 높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프로그램을 다루려면 컴퓨터와 전산에 대한 수준 높은 지식도 필요하다. 김승주 교수는 “드루킹 일당은 단순 테스트용으로 킹크랩을 만든 게 아니라 포털을 타깃으로 상당한 의도성을 갖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포털이 사실상 편집권이나 다름없는 뉴스 배열과 사용자 유인책인 댓글 서비스를 모두 독식하는 구조로는 여론 조작을 근절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이버는 개선 대책에 따라 5월 15일부터 정치 카테고리 기사의 댓글을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고, 공감순·추천순 정렬을 없애 시간 순서에 따라서만 댓글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공감 수를 조작해 특정 주장이 주류 여론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일부 사용자가 같은 내용을 반복 ‘도배’해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밀어내는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웃링크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회에서도 아웃링크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 개선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 4월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이 포털의 뉴스 인링크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한 데 이어 5월엔 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이 포털 뉴스서비스의 아웃링크를 법으로 규제하는 ‘신문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 의원은 “포털이 채택하고 있는 ‘인링크’ 방식으로 댓글 기능을 유지하면 여론 조작 범죄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며 “포털이 기사 배열 등과 관련해 부정 청탁을 받을 경우 ‘김영란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방안도 담았다”고 말했다.

한국신문협회는 5월 15일 성명을 내고 “포털은 가짜 뉴스 등을 통한 여론 조작을 막을 책임을 뉴스 제작자와 함께 져야 한다”며 아웃링크 방식으로 전환을 촉구했다.

- 유길용·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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