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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한민국 핫 피플 6人(3)] 남북 정상회담 성사 주역 서훈 국정원장 

“안보는 궁극적으로 평화 위한 것” 

김영준 월간중앙
역대 남북 정상회담에 관여한 대북문제 전문가, 현 정부 국정원 개혁 임무 안고 ‘컴백’… 北 비핵화 실현 위해 고비마다 존재감, ‘한국의 키신저’ 역할 완수할까

▎4월 27일 판문점선언이 낭독됐고 남북 정상회담의 가시적 성과가 확인된 순간, 서훈 국정원장은 임종석 비서실장 뒤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국정원에서 일한 삶의 여정이 응축된 눈물일 것이다. / 사진·연합뉴스
2018년 4월 27일, 우연히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남북 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이어 정상회담의 의미를 확인하는 ‘판문점 선언’이 오후에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들의 얼굴엔 안도와 성취감이 깃든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은 뒤에서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서훈(64) 국가정보원장이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의 스파이 대장이 역사적 만남의 열쇠 역할을 했다. 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뒤에서 눈물을 흘리던 사람은 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20년 동안 일해 온 이”라고 촌평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서 원장의 눈물은 감격스러워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2017년 미사일 발사시험 등으로 긴장을 고조시킬 때 우리 정부 내에서도 강경 대응 기조가 우세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북한이 갈등국면으로 가는 행위가 대화를 위한 신호일 수 있다는 의견을 서 원장이 거의 유일하게 냈다”고 밝혔다.

서 원장의 눈물은 한 남자가 품은 삶의 지향과 궤적을 따라가 볼 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2018년 성사된 3차례 남북 정상회담의 장막 뒤엔 서 원장의 존재감이 자리한다.

서울대를 졸업한 서 원장은 26세 때인 1980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국정원이 중앙정보부였던 시절이었다. 한 해 전인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이 터졌다. 서 원장은 그 다음날인 10월 27일 시험을 봤다. 이후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로 개편됐다. 서 원장은 1996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로 임명됐다. 당시 KEDO는 함경남도 신포시 금호지구에서 경수로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서 원장은 금호사무소 대표로서 1997~98년 이곳에 머물렀다. 한국 정부 인사로는 최초의 북한 상주 경험이다. 이때 서 원장이 유서를 써놓고, 북한에 간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유서 쓰고 북한행


▎2005년 9월 평양 고려호텔 앞에 서 있는 벤츠 앞에서 당시 서훈 국정원 국장이 북한 보위부 인사와 만나는 장면이 포착됐다. 서 원장은 북한 실력자를 가장 많이, 깊이 알고 있는 한국 정부 인사로 꼽힌다.
서울로 돌아온 서 원장은 대북전략조정단장으로서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에 투입됐다. 박지원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을 수행해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과 담판을 벌였다. 그 결과로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난 6·15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이후에도 2000년 10월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 2002년 임동원 당시 청와대 특보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에도 배석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10·4 남북 정상회담장에도 참석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 국정원 대북전략실장과 제3차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04년 청와대에 파견 나왔을 때, 당시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일하던 문재인 대통령과 관계가 시작됐다. 서 원장은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다.

서 원장은 한국의 대북문제 전문가 중 북한 고위급 인사와 가장 많이 만난 사람으로 통한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국정원을 나왔다. 이후 이화여대 북한학과 초빙교수로 강단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을 연 2017년 5월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서훈 국정원장 내정을 직접 발표했다. “서 내정자를 남북관계 안정화와 국정원 개혁의 최적임자로 판단했다”고 그 필연성을 말했다. 실제 서 원장의 역량은 그 두 가지 화두에 집중됐다.

서 원장의 국정원은 미국 등 우방국 정보기관장들과의 접촉면을 넓혔다. 당시 미국 CIA(중앙정보국) 국장은 마이크 폼페이오였다. 북한의 핵·미사일 정보와 도발 의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긴장 해소 방안 등을 놓고 폼페이오와 소통했다. 이런 정보교류 속에서 미국의 한국 국정원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갔다. 이 같은 토대 위에서 폼페이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임 속에 국무장관에 임명되자, 국정원과의 대화는 더욱 긴밀해질 수 있었다.

최대 위기 상황은 2017년 11월 북한의 ‘핵 무력 완성 선언’이었다. 당시 대북 강경론이 비등했을 때, 서 원장은 미국에 “북한이 국제사회를 자극하는 상황을 피하고, 이제 경제발전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술적으로 미완성임에도 핵의 완성을 무리하게 선언한 것을 도발이 아닌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해주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협상의 제스처로 해석한 것이다.

실제 국정원은 2018년 북한의 신년사 발표로부터 한 달도 더 이전 시점에 북한의 변화를 감지했고, 이를 미국에 전달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국정원 예측대로 평창겨울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대화 의사를 신년사에서 표명했다.

상황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서 원장은 이후 더 적극적인 대북전략 구상에 들어갔다. 문 대통령에게 건의한 최종적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였다. 국제적 대북제재로 인한 고립 속에서 체제 유지를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던 북한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특사 자격으로 2월 평창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했다. 폐회식에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왔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당시 서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김여정 부부장의 접촉도 시도했는데 성사엔 이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2월 10일 청와대에서 김 부부장과 면담했는데 이때에도 서 원장은 배석했다.

이후 서 원장은 3월 5~6일, 대북특사로 방북해 김 위원장과 면담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표시했다.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도 이 시점에 가시화됐다. 서 원장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특사 자격으로 이번엔 미국으로 갔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했고, 미국이 남북 정상회담에 이견이 없음을 확인했다. 서 원장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찾아 한·미·일 협력 체제를 대외적으로 보여줬다.

한 달 앞서 김정은의 변화 감지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때 서 원장을 배석시켰다. 문 대통령의 신뢰감을 짐작할 수 있다. / 사진·연합뉴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북한 최고지도자가 우리 측 지역을 방문한 최초의 사례였다. 국정원은 서 원장 지휘 아래 북측과 ▷정상회담 일정 ▷판문점 선언 합의서 문안 ▷경호·안전·통신 지원 문제 등을 조율했다.

그리고 실현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가 열렸음을 8000만 겨레와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라는 서문이 담긴 판문점선언이 낭독됐다. 바로 이날, 서 원장은 만감이 교차한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어 6월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난항을 겪자 서 원장은 다시 구원투수로 나섰다. 판문점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됐고, “북·미 정상회담의 판을 깨고 싶은 의도가 없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의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그 결과,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 간 세기의 회담이 개최됐다.


▎서 원장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밀담을 나누고 있다. 서 원장의 설득력은 북한식 협상 스타일을 잘 아는 지점에서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후 북한의 비핵화는 그 상응조치에 관한 이견 탓에 진전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9월 5일 서 원장과 정 안보실장을 평양에 급파했다.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방북이었지만 김 위원장 면담이 이뤄졌고,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9월 19일 평양선언이 탄생했고, 문 대통령은 10만 명의 북한 인민이 모인 5·1경기장에서 연설을 했다. 그 다음날 두 정상의 백두산 천지 방문은 정상회담의 백미였다.

‘피스 메이커’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서 원장에게 놓인 또 하나의 과제는 국정원 개혁이었다. 그는 1월 2일 신년사에서 “국정원은 2018년을 시작하면서 ‘정치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선언한다”고 단언했다. 국내 정치중립을 주문하고, 조직 역량의 전부를 안보와 북한 비핵화에 쏟도록 정비했다. 국정원 ‘57년 역사’의 큰 방향 전환이었다.

퇴직 후 9년 만에 친정인 국정원의 수장으로 돌아온 서 원장은 2017년 6월 취임사에서 “팔이 잘려나갈 수 있다. 많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처 없이 다시 설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댓글조작 사건’으로 존재의 의미조차 위협받던 국정원의 대수술을 예고한 것이다.

서 원장은 취임하자마자 국내정보관(IO) 제도를 폐지했다. IO는 정부부처·공공기관·언론 등을 대상으로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IO를 관리하는 국내정보 담당 2개 부서를 해체했다. 그 인력들은 해외, 북한, 방첩, 대테러 및 과학 분야로 재배치됐다. 직원 복무규정과 조직 및 정원관리 규정 등도 개정했다. 직무범위 외 업무수행을 사전 차단하고 정치 관여 소지가 있는 부서 설치 금지를 명문화했다.

또한 국정원은 각 부서장 직속으로 변호사 자격이 있는 직원을 준법지원관으로 임명했다. 직무수행 과정에서 위법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대공수사와 관련해서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외부 인사를 인권보호관으로 위촉했다. 이 밖에 분기별 사업예산 집행현황을 국회 정보위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해 예산집행 과정의 투명성도 강화했다.

“순수 정보기관으로 간다”


▎서 원장(오른쪽)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고 있다. 서 원장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불가방침을 강력히 시행하고 있다.
국정원 개혁 작업은 외부 민간위원 중심 국정원 개혁발전위와 내부 조직쇄신 TF, 적폐청산 TF 등 3개 조직을 통해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국정원을 방문해 “정권이 바뀌어도 국정원의 위상이 달라지지 않도록 목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서 원장의 방향성에 힘을 실어줬다.

서 원장 체제 국정원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질까. 이에 관한 단초를 서 원장은 국정감사 인사말에서 내비쳤다. “그동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구분에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는 ‘해야 할 일’을 최고로 잘 해내기 위한 시스템을 완비해 나갈 것이다.”

서 원장은 “안보는 절대 양보가 없다. 그리고 안보는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대북 억지력을 위해 조기경보 태세 강화와 영상·통신·암호 등 첨단 기술을 고도화한다. 테러와 국제범죄 위협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해외 정보기관과의 협력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인공지능(AI) 기반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응 시스템도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토대 위에서 남북 긴장완화와 북한 비핵화 실현을 위해 정보 역량을 뒷받침하겠다는 전략이다.

서 원장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저서 [세계질서]에 나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역사는 덜 힘들어 보이는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의 책무나 정체성을 무시하는 국가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그것이다.

서 원장은 월간중앙의 2018년 대한민국 ‘외교·안보 분야의 인물’로 선정된 것에 대해 “이것은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남북·미 관계에 평화의 디딤돌을 놓고자 한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과 외교안보팀 협업의 결실”이라고 공을 돌렸다. 국정원 개혁에 대해서도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가기 위한 국정원 개혁의 성과는 직원들의 고통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부각되는 것에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그럼에도 “미래지향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는 국정원의 노력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국정원 내부의 설득을 받아들여 서면을 통해 월간중앙에 메시지를 전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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