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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13)] 예(藝):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AI 등장으로 예술의 정의(定義)도, 역사도 바뀌려나 

하영삼 경성대 교수
원래 인간 생존을 위해 곡물 심는 기술에서 출발… 훗날 ‘아름다움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으로 정의돼

▎예(藝)는 인간 생존을 위한 곡물 심는 기술에서 출발해 ‘아름다움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으로 정의됐다. 서울 서대문구 농업박물관에서 농사 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1. 유어예(游於藝), 예술에 노닐다

도(道)에 뜻을 두며,
덕(德)을 굳게 지키며,
인(仁)을 떠나지 아니하며,
예(藝) 속에서 노닐었다.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공자 말씀이다. 한평생 살아온 자신의 길을 회고하면서 한 말로 알려져 있다. 공자는 도(道)와 덕(德)과 인(仁)과 예(藝), 이 네 글자로 자신의 인생을 설명했던 것이다.

송나라 때의 주희(朱熹, 1130~1200)는 이를 이렇게 풀이했다. “학문을 할 때는 무릇 이렇게 해야 한다. 학문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뜻을 세우는 것이다. 도(道)에 뜻을 두면 마음이 바른 곳에 머물러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며, 덕(德)을 굳게 지키면 마음에 도를 얻어 잃지 않게 될 것이며, 항상 인(仁)을 떠나지 아니하면 덕성이 언제나 적용돼 물욕이 설칠 수 없고, 예(藝) 속에 노닐면 작은 것이라도 놓치는 법이 없어 자나 깨나 성장함이 있게 될 것이다.”

주자의 명성을 대변하듯 뛰어난 해설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공자의 회고를 학문의 세상으로 범위를 좁혔다는 ‘혐의’를 남겼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공자가 학문의 길만 두고 한 말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도(道)가 진리라고 본다면 사람이 살면서 해야 할 일, 그 도(道)에 뜻을 뒀다는 말일 것이다. 덕(德)이 올바른 곳만 보면서 가는 것 즉 정의를 뜻한다면, 살면서 곁눈질하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 언제나 바른 곳만 보고 바른 길만 걸었다는 말이다. 인(仁)이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언제나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말일 것이다. 예(藝)가 예술이라면 언제나 남이 생각하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창의적으로 살려 했고, 음악이 상징하듯 남을 위로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찾으려 노력했다는 말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유어예(游於藝)는 최고의 경지를 그렸다. 유(游)는 달리 유(遊)로도 쓰는데 놀다, 여행하다는 뜻이다. 유(游)의 어원을 보면, 水(물 수)가 의미부이고 斿(깃발 유)가 소리부로, 물길(水)을 따라 유람함(斿)을 말한다. 원래는 수(水)가 빠진 유(斿)로만 썼는데, 유(斿)를 구성하는 언(㫃)은 옛글자에서 으로 돼 ‘깃발이 나부끼는 모양’을 그렸다.

상상 이상으로 발달했던 고대 중국의 과학


▎유어예(游於藝). ‘예술에 노닐다’는 뜻으로 인생 최고의 경지를 상징한다.
그래서 깃발(㫃·언) 아래에 사람(子·자)들이 모여 다니는 모습을 그린 것이 유(斿)이다. 이와 유사한 글자를 보면 깃발(㫃) 아래에 사람이 둘 따라가는 모습(从·종, 從의 원래 글자)이 더해지면 려(旅)가 돼 깃발 아래 모인 ‘군대’를 뜻하게 된다.

또 깃발(㫃) 아래에 화살을 뜻하는 시(矢)가 더해지면 족(族)이 돼 ‘깃발 아래 모여 함께 전쟁을 칠 수 있는 집단’인 씨족이나 부족을 뜻한다. 깃발은 이렇듯 여러 상징을 가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씨족이나 부족을 상징하는 토템이 그려졌을 것이고, 이를 통해 공동체적 의식을 확인했을 것이다.

여하튼 깃발 아래에 모여 물길을 따라 다닌다는 뜻을 그린 유(斿)에 옛날의 여행(군사적 행동을 포함)이 물길을 따라 이뤄졌다는 의미에서 다시 수(水)가 더해져 유(游)가 만들어졌다. 또 어떤 경우에는 다니는 행위를 강조해 辵(쉬엄쉬엄 갈 착)을 더한 유(遊)로 분화하기도 했다.

어(於)는 ‘~에’라는 장소를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였으며, 달리 우(于)로도 쓰는데, 옛날에는 독음이나 의미가 모두 같았다. 예(藝)는 예술이라는 뜻이지만 옛날에는 보통 육예(六藝), 즉 옛날 선비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여섯 가지의 일을 뜻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2. 육예(六藝), 사람이 배워야 할 교양


▎조지프 니덤. 20세기 가장 뛰어난 과학사학자로 중국 과학문명의 진상을 세계에 알렸다.
육예(六藝)는 禮(예: 예법), 樂(악: 음악), 射(사: 활쏘기), 御(어: 마차 운전), 書(서: 글자쓰기), 數(수: 수학)를 가리킨다. 지금의 의미로 푼다면 사람이 살면서 배워야 할 문화 정도가 될 것이다. 당시의 지배계층으로 살면서 반드시 배우고 갖춰야 할 지식이자 교양이었다.

이를 좀 더 풀어보면 예(禮)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듯 경건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기본 예법이자 매너를 뜻하고, 악(樂)은 자신의 성정을 바르게 하고 사람들과 교유하고 어울리게 해주는 음악을 말할 것이다.

또 사(射)는 활 쏘기를 뜻하는데, 오늘날의 사격에 해당한다. 고대 사회에서 활 쏘기는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공의 상징이었기에 생존을 위해서도 사람에 관계없이 언제나 단련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후 활 쏘기는 심신수양의 상징으로 발전했으며, 그것을 통해 경쟁과 생존의 절박함 속에서도 서로 지켜야 할 양보와 넘어서는 안 될 금도(襟度)의 품격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御)는 말 제어 기술이니, 지금으로 치면 운전면허 정도가 될 것이다. 당시 최고의 이동 수단이자 전쟁의 유용한 도구가 말이었으니 말과 전차를 자유자재로 몰 수 있는 기술은 더없이 중요했을 것이다. 서(書)는 글자나 글쓰기를 말하는데 글을 읽고 글을 써 남과 소통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글자를 배워 익혀야 했다. 그래야만 인류의 축적된 지혜를 계승하고 후대에 남길 수 있었다.

수(數)는 셈법을 말하지만 단순한 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말한다. 수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은 논리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는 능력을 뜻한다. 수학과 과학을 보통 서구의 재산이라고 여기지만, 20세기의 뛰어난 과학사학자였던 조지프 니덤(1900~1995)의 연구에 의하면 고대 중국의 과학은 상상 이상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서예(書藝)·서도(書道)·서법(書法)의 차이


▎명촌(明村) 신씨(申氏) 두릉댁(杜陵宅) 간찰(簡札). 조선 후기에 민간에서 쓰였던 일상의 서예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수학의 기본이라 할 10진법은 기원전 14세기 갑골문 시대 이전부터, 음수(陰數)는 기원전 2세기에 이미 쓰였다고 한다. 또 기원전 1세기에 나온 [구장산술]이라는 책에서는 186만867의 세제곱근을 구하라는 고차방정식 문제가 나오고, 기원전 1세기에는 소수가 등장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3세기가 되면 기하학에서 대수를 사용했으며, 같은 시기에 무려 3072각형을 그려 원주율을 3.14159까지 구했으며, 11세기에는 파스칼의 삼각형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고 한다([그림으로 읽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참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두 서구에 비해 수백 년에서 천 수백 년 이상 앞서는 기록들이다. 이외에도 농업·천문학과 지도 제작, 공학·공업기술·의학·자기(磁氣)·수송·음악·무기 등등에서 우리의 상상을 넘는 현실들이 고대 중국에서 일찍부터 발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3. 예(藝)의 어원과 다양한 형체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이 6가지를 아우른 것이 예(藝)다. 그래서 예(藝)는 인간의 문화 전체를 일컫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藝)가 들어가는 단어들은 매우 다양한 영역과 연계됐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자주 쓰이고 있다. 예컨대 공예(工藝)·기예(技藝)·무예(武藝)·곡예(曲藝)·원예(園藝)·농예(農藝)·도예(陶藝)·수예(手藝)·기예(騎藝)·문예(文藝)·기예(棋藝)·서예(書藝) 등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서예(書藝)는 동양이 낳은 독특한 예술 형식으로 동양의 자부심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문자를 대상으로 해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서예, 그것은 ‘점과 선과 획(劃)의 태세(太細)와 장단(長短), 필압(筆壓)의 강약(强弱)과 경중(輕重), 운필의 지속(遲速)과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돼 미묘한 조형미를 이루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두산백과]), 동양의 자랑스러운 발명품이다.

서예는 중국에서 시작됐지만 그런 매력 때문에 한국과 일본으로, 또 몽골로, 아라비아로, 영어권으로까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서예는 한자문화권에서 강력한 예술행위로 남겨지면서 각국에서 변용된 창조적 명칭을 남기기도 했다. 즉 우리말의 서예(書藝)를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해 각기 달리 쓰인다.

이는 ‘붓으로 글자를 쓰는 예술’인 서예를 바라보는 민족적·문화적 관점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리라. 서예(書藝)라고 불렀다는 것은 붓글씨를 인격을 도야(陶冶)하는 종합적인 행위로 봤다 할 것이며, 서법(書法)이라 한 것은 서예를 익히는 데 가져야 할 법칙과 규칙을 말해 학습의 방법을 강조했다 할 것이요, 서도(書道)라 불렀던 것은 붓글씨를 단순이 기예나 예술로 한정하지 않고 하나의 도를 닦는 고차원적 행위로 보았다는 말이다.

중국의 서법(書法)이 지나치게 딱딱하고, 일본의 서도(書道)가 다소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서예(書藝)는 그야말로 자유롭고 낭만적이면서도 창의성을 강조한 것으로 인간적이라 할 것이다.

예술은 기술에서 유래했다

차(茶)도 중국이 낳은 훌륭한 유산인데, 이에 관한 명칭도 삼국 간에 차이를 보인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심신을 단련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중요한 도구로 쓰였다. 그래서 차를 마실 때는 상황과 대상에 걸맞은 절차와 예절이 필요했다. ‘차를 마시거나 달여 손님을 대접할 때의 예절’을 다도(茶道)라 하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다도(茶道)라 하지만, 중국에서는 오히려 다예(茶藝)라고 하는 점이 이채롭다. 이름 때문인지 한국과 일본은 차 마시는 법이 매우 까다로워 갖춰야 할 것도 많고 지켜야 할 절차와 예절도 많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지 않다. 번거로운 절차와 예절이 삭제된 생활 그 자체다. 되는 대로 있는 대로 편하게 마시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이름 붙인 예(藝)가 가져다 주는 마법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에서도 다도(茶道)라는 말이 함께 쓰이는 것을 보면 국가 간의 경계도 쉬 무너지는 세상이 된 듯하다.

4. 예(藝)의 어원과 다양한 형체

그렇다면 예(藝)는 어떻게 만들어진 글자일까? 지금의 자형은 상당히 복잡해 그 어원을 쉬 찾기 어려워 보이지만, 옛날 글자를 보면 매우 형상성이 뛰어난 글자라 쉽게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있다. 특히 갑골문을 보면 무엇을 그렸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보시다시피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한 사람이 꿇어앉아 두 손으로 어린 묘목(屮·철)을 감싸 쥔 모습인데, 나무 심는 모습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렸다. 간혹 철(屮)이 木(나무 목)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의미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후 土(흙 토)가 더해져 埶(심을 예)로 변했는데, 이는 땅(土)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다시 초목(草木)을 대표하는 艸(풀 초)가 더해져 예(蓺)가 됐고, 다시 구름을 상형한 운(云: 雲의 원래 글자)이 더해져 지금의 예(藝)가 완성됐다. 구름은 흐림이나 비가 내림을 상징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예(藝)는 운(云)이 의미부이고 예(蓺)가 소리부인 구조가 돼 구름이 끼거나 흐린 날(云=雲)에 나무를 심다(蓺)는 뜻을 담아 ‘심다’는 의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나무를 심다는 뜻에서 나무 심는 기술의 뜻이 나왔고, 다시 기예(技藝)·공예(工藝)·예술(藝術) 등의 뜻도 나왔다. 예술이 기술에서 나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소리부인 예(蓺)를 乙(새 을)로 바꾼 예(艺 yì)로 쓰고, 일본에서는 초(艸)와 운(云)으로 구성된 예(芸 げい)로 쓴다. 그러나 운(芸)의 경우 한국과 중국에서는 전혀 다른 글자로 ‘향초 이름 운’이다.

예술(藝術)은 예(藝)에 술(術)이 더해져 만들어진 단어다. 술(術)은 行(갈 행)이 의미부고 朮(차조 출)이 소리부로 [설문해자]에서는 ‘나라 안의 도로(行)’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이후에 생긴 파생의미로 보이며, 원래는 길(行)에서 농작물(朮, 秫의 원래 글자)을 사고파는 의미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물건을 사고 팔 때 쌍방 모두 협상의 ‘기술’과 ‘꾀’가 필요했기에 ‘꾀’나 방법·전술(戰術)·기술(技術) 등의 뜻이 나왔다.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행(行)을 생략한 채출(朮)에 통합됐다.

이와 비슷한 구조로 된 술(述)을 보면 술(術)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술(述)은 辵(쉬엄쉬엄 갈 착)이 의미부고 출(朮)이 소리부로, 길을 다니며(辵) 곡물(朮)을 내다 팔고 떠벌리며 선전함을 말했고, 이로부터 말하다, 기술(記述)하다, 서술(敍述)하다 등의 뜻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팔다’는 듯의 현(衒)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현(衒)은 행(行)이 의미부이고 玄(검을 현)이 소리부로, 길(行)에서 물건을 ‘파는’ 행위를 말한다. 현(玄)은 달리 言(말씀 언)으로 대체돼 현(玄)으로 쓰기도 하는데, 이는 말(言)로 자랑삼아 남을 ‘현혹시킴’을 말한다.

‘속임수의 기술’이라는 뜻도 담겨


▎‘한·중·일 공용한자 808자’로 장식된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로비. 한국 대표 서예가 808명이 한 자씩 쓴 한자 서예를 설치미술가 최정화씨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자의 힘을 담은 ‘파문’이라는 작품으로 재해석했다. / 사진: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그렇다면 예(藝)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곡물을 심는 기술에서 출발했고, 술(術)은 이를 내다 파는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예술(藝術)이라는 것이 출발부터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에 도움을 주는 유용한 것이며, 생산적임과 동시에 내다 팔 수 있는 경제적인 생산활동이라는 속성을 기저에 품고 있는 셈이다.

5. 예술의 진화

그런 의미에서 서구에서 예술을 뜻하는 ‘art’도 별로 다르지 않다. ‘art’는 라틴어 ‘artem’에서 근원(根源)해 ‘예술 작품’을 뜻하지만 ‘실용적 기술, 비즈니스, 공예품’ 등의 뜻을 함께 담고 있어 이 역시 실용적 기술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의 의미 변천을 보면 1300년경에는 ‘장학금이나 학습에서의 기술’을 뜻했고, 다시 교양이라는 뜻이 더해졌다.

이후 14세기 후반이 되면 ‘인간의 솜씨’(자연과는 대조적 의미에서)를 의미했고, 15세기 후반에는 ‘특정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규칙과 전통 체계’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16세기 후반에는 ‘간교한 속임수의 기술’이라는 뜻이 1610년대가 되면 ‘창의적인 예술적 기술’이란 뜻이 더해졌다. 특히 1660년대부터 회화·조각 등의 작품을 지칭하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술’에서 출발한 예술은 인류 사회의 발달과 함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으로 정의되게 됐다. 동시에 예술이 인간의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으면서 여러 분야를 복합적으로 지칭하게 됐다.

편의상 이를 공간예술·시간예술·종합예술 등으로 나누기도 하고, 조형예술(회화·조소·건축·서예·활영[活映] 등)·공연예술(음악·무용·곡예 등)·종합예술(영화·연극·오페라 등)·언어예술(시·산문·소설 등 문학)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에 들어서는 전통적 정의의 예술 영역에 다른 요소들이 더해져 융합된 형식들도 나타나게 됐는데, 과기예술(Technical Art), 디지털예술(Digital Art), 설치예술(Installation Art), 관념예술(Conceptual Art), 행위예술(Performance Art), 생물예술(Bio Art) 등이 그렇다.

그전 고대 서구인들이 교양예술(liberal arts)이라 불렸던 전통적 의미에서의 예술에 문법·수사학·논리학·산술·기하학·천문학·음악 등이 포함된 것을 보면 고대 중국의 육예(六藝)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또 실용성을 강조한 기예(mechanical arts)에 식량 제조기술·직조기술·건축술·운송기술·의술·교역기술·전투기술 등을 설정했다. 이러한 분류에 비하면 지금의 예술은 과거의 고유영역을 초월하고 다른 영역을 연결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왔음을 알 수 있다.

6. 미래의 예술, 인간의 전유물일까

이처럼 예술은 예(藝)의 어원에서 보듯 인간에게 유용한 과실수나 농작물의 묘목을 인간 거주지로 옮겨 심는 ‘기술’에서부터 출발했음을 보여주는데, ‘art’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예술(藝術)은 그 시작부터 인간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됐음을 보여준다. 자연 상태의 조야(粗野)함에서 벗어나 자연을 인간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기술을 바로 예술(藝術)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의한 것이고, 인간에게 유용해야 하며, 생활과 관련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속성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예술’, 과연 이러한 속성으로 예술을 미래의 세계에서도 계속해서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인간 행위의 전유물로, 고유 영역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의 기술은 인간의 고유영역이라 생각됐던 ‘예술’에서조차 도전장을 내밀었다.

얼마 전 인공지능이 그린 초상화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거액에 팔렸다. 2018년 10월 말, 크리스티 경매에서 ‘벨라미가의 에드몽 벨라미’라는 그림이 약 5억원에 낙찰됐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프랑스의 예술집단 ‘오비우스’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그린 가상의 남성 초상화인데 인공지능의 그림이 세계 주요 경매에서 낙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AI의 행위도 예술로 봐야 하나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인공지능(AI)이 그린 초상화 ‘벨라미가의 에드몽 벨라미’.
프랑스 파리의 청년 3명으로 이뤄진 ‘오비어스’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이 초상화를 그렸는데 ‘오비우스’의 공동 창립자인 위고 카셀-뒤프레는 14∼20세기에 그려진 초상화 1만5000점을 인공지능에게 제공했다고 했다. 그림 창작에는 ‘생산적 적대 신경망’(GANs: 실제 이미지를 활용해 가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활용됐으며, 인공지능은 이 데이터를 학습해 초상화의 규칙을 이해한 후 새 이미지를 직접 그려냈다고 한다. 게다가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화가의 낙관 대신 수학 공식 같은 것이 적혀 있는데, 이는 이 그림 제작에 쓰인 실제 알고리즘이라고 한다.

이 초상화는 흐릿하고 완성되지 않은 듯한 남성의 이미지를 묘사했는데 크리스티 측은 “약간 뚱뚱한 신사로 아마도 프랑스인일 것”이라며 “어두운 프록코트와 순백의 컬러로 미뤄볼 때 교회의 남성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비우스’는 “흥분되는 순간”이라며 “이러한 신기술이 예술 창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국제적 대화의 일부가 된 것이 영광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협업해 온 상당수 다른 작가는 이 초상화가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한다. 이를 예술로 볼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아직 존재하고, 이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해질 것임을 보여준다.

인간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졌던 예술, 예술의 꽃이라 할 ‘회화’조차도 이제 인공지능에 의해 그려지고, 경매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의 작품이라지만 이미 인간의 창작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어쩌면 훌륭한 창작품으로 인정된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예술은 인간에 의한 행위라는 정의도, 그 역사도 고쳐져야 할 모양이다.

※ 하영삼 -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고,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201901호 (201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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