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특별기획] 과학기술부문 | 최장욱 서울대 교수 

“中·日 추격 뿌리칠 배터리 원천기술 확보할 터”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노벨화학상 이론 응용한 기술 개발로 세계 과학계 이목 집중
“수명 늘리고 빨리 충전하는 안전한 배터리 개발 꿈”


▎5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10회 홍진기 창조인상 시상식 과학기술부문 수상자인 최장욱 서울대 교수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배터리 부족! 잔여 배터리가 5% 이하입니다.’ 이 문구를 보고 마음이 급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IT와 전자기기로 둘러싸인 현대인에게 배터리가 다해간다는 사실은 조만간 세상과 단절된다는 경고음과도 같다. 실로 마음 졸이게 하는 순간이다.

최장욱(44)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 교수는 이런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해법에 도전하고 있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 차세대 배터리 연구를 선두에서 이끄는 과학기술인이다. 그는 ‘플렉서블 리튬이온 배터리’와 ‘고용량 2차전지 고분자 바인더’, ‘알루미늄 2차 전지’ 등을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플렉서블 배터리, 이른바 휘어지는 배터리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왔다. 최 교수의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제자가 같은 기술로 벤처 창업을 했을 정도다. 나아가 이 기술은 현재 스마트워치에 적용되고 있다. 2008년 기초연구를 시작으로 2015년부터 본격적인 상용화 연구에 돌입했던 최 교수는 “웨어러블 IT 디바이스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각형이나 원통형, 파우치 형태가 아닌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는 배터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연구 동기를 밝힌다. 그가 개발한 플렉서블 배터리는 휘어지는 기능이 추가됐음에도 내구성을 유지하면서 배터리 수명은 2배 늘렸다. 보통 배터리 효율이 10~20%만 높아져도 상당한 연구 성과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플렉서블 배터리는 기술력의 개가로 인정받는다.

최 교수는 “현재 스마트워치가 웨어러블 시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제일 먼저 적용했다”며 “향후 옷과 신발 등 아웃도어와 군사용 등 다방면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 교수의 또 다른 업적인 ‘고용량 2차 전지 고분자 바인더’와 ‘알루미늄 2차 전지’는 전기차 배터리에 적용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다. ‘고분자 바인더’ 기술의 경우 분자 도르래 구조를 실리콘 전극에 최초로 적용한 사례로 2017년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분자 도르래 개념은 장 피에르 소바주(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명예교수), 프레이저 스토더트(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베르나르트 페링하(네덜란드 흐로닝언대 교수)에게 2016년 노벨화학상을 안겨준 분자 구조다.

이 가운데 스토더트 교수는 최 교수의 지도교수였다. 최 교수는 “학위 연구를 하면서 스토더트 교수와 많은 대화를 하고 교류하면서 연구 환경에 노출됐고 자연스레 분자 도르래에 관한 배경지식을 쌓게 됐다”며 “이후 아이디어가 떠올라 배터리에 적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최 교수의 연구가 전기차용 2차 전지의 핵심 전극 기술로 각광 받을 것으로 평가한다.

알루미늄 기반의 2차 전지 시스템 기술은 최 교수와 스토더트 교수의 공동 연구로 탄생했다. 이 연구는 지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두 교수는 내구성이 떨어지는 알루미늄 전지 전극 소재의 결정적 단점을 삼각형 모양의 유기 분자 구조를 만들어 극복했다. 최 교수의 연구가 상용화되면 현재 400㎞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가 600~800㎞까지 늘어날 수 있다.

타 분야 지식에서 신기술 영감 얻어


▎최장욱 서울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배터리 개발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의 연구 성과도 내기 힘든 현실에서 최 교수는 이미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을 3개나 개발해냈다. 그 원동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한 이후 해결책을 배터리 분야 외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면서 “특히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접목시킬 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짬이 날 때마다 다른 분야 연구자들의 논문이나 발표를 챙겨보고 학회나 세미나 자리에서 만나는 연구자들과 자주 대화를 나눈 노력이 빛을 발한 케이스다. 최 교수는 “그분들과 얘기한다고 해서 바로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과 나눈 대화에서 힌트를 얻어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들이 왕왕 있다”고 얘기한다.

그가 개발한 배터리 기술도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최 교수에 따르면 플렉서블 배터리는 기계공학에서, 도르래 바인더와 알루미늄 기반의 차세대 2차 전지 시스템은 전통화학 분야의 지식에서 도움을 받았다. 최 교수는 웃으며 “도움을 받았던 분야의 연구자들은 배터리에 대해 전혀 모른다”며 “재료에 대한 기초연구를 착실하게 쌓아오다 보니 타 분야에 대해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폭이 커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 동향에 대해 최 교수는 “현재 소형 모바일 디바이스용에서 중대형 자동차용으로 배터리 개발의 흐름이 옮겨가고 있다”며 “일본, 중국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다.

최 교수는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2차 전지 산업’의 미래를 상대적으로 밝게 예상하고 있다. 그는 “90년대 후반 배터리 연구를 시작할 때는 일본을 추격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대등한 수준이고 앞서가는 영역도 있다”면서 “중국이 턱밑까지 따라오고 있지만 원천 기술 확보를 통해 한국의 이익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연구 성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기능성 배터리 기술력 확보다. 최 교수는 “한번 충전하면 오래 쓸 수 있고, 급속 충전을 가능케 할 원천 기술들, 그리고 화재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배터리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 화재 위험성이 없는 물 기반의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는 최 교수는 과학계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연구는 실패의 연속이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연구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다른 영역의 지식을 접하려 노력을 해봄직하다. 재미도 있고 새롭게 생각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따를 수도 있다. 연구자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201906호 (2019.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