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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20)] 공(公)과 사(私), 경계 짓기와 허물기 

“분한 마음으로 벌을 줘서도 기쁜 마음으로 상을 줘서도 안 돼” 

공사 구분은 자신에 대한 수양과 남을 다스리는 정치의 시작이자 끝
사사로운 이익에 의한 경제가 강하게 관여하는 게 우리의 정치 현실


▎2013년에 개봉한 영화 [공정사회]의 한 장면. 주인공인 워킹맘(장영남 분)이 어린 딸에게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자 절규하고 있다.
1. 공과 사

만사에 공사(公私)가 분명(分明)해야 한다. 만고의 진리다. 공사의 분명함은 자신에 대한 수양과 남을 다스리는 정치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수많은 저작(著作)과 현인에 의해 표현 방식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다스림의 금과옥조로 남아 있다. 사사로움은 그만큼 유혹적이어서 지키기 어려우며, 공사의 구분이 쉽지 않음의 방증이기도 하다.

때로는 개인과 공익의 충돌에서, 개인과 국사 사이에서, 상벌의 부과에서, 친소의 구분에서 흔들리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송나라 때 소철(蘇轍)은 “사사로운 감정(私愛)으로 공의(公義)를 해쳐서는 안 된다”고 했고, [안자춘추]에서는 “분한 마음으로 벌을 줘서도, 기쁜 마음으로 상을 줘서도 아니 된다”고 일깨웠다. 공(功)과 과(過), 상(賞)과 벌(罰) 사이에서 지켜져야 할 치우치지 않음과 공평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도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친소(親疏)를 가리지 말고, 귀천(貴賤)을 구분하지 말고, 모든 것을 법(法)에 따라 엄격하게 적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공사 구분의 실천에 대한 천명이다. 이러한 원칙이 지켜진다면, 이러한 정책이 펼쳐진다면, 그야말로 그 어떠한 분노도 원망도 받지 않을 것이다. 또 한마디 말로 온 백성이 다스려질 것이며, 정의로운 사회, 평온한 사회가 될 것이다.

사사로움을 파괴하는 것이 公

그러나 자연 속성에 속한 개체는 개인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토대를 가져야 하기에 개인의 재산과 사유물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함께 살아가야 할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 욕심, 즉 사(私)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인간 밖의, 인간이 함께 살아야 할 공존의 장으로 이끌 공(公)의 정의를 실천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들 간의 갈등과 모순을 조화롭게 실현해 모두가 화해하며 지혜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언제나 그 방향은 공적인 것을 더욱 발휘해야 하고, 사적인 것을 줄이며,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우선에 둬야 한다는 가치관을 형성했다. 공사(公私)에서 공(公)이 앞에 놓인 것도 이의 반영이다.

“나를 위해 가정을 잊어야 하고, 공적인 것을 위해 사적인 것을 잊어야 한다. 이익이 있다고 해서 쉬 나가지 말 것이며, 손해가 된다고 해서 쉬 버리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의로움만 있다면 그곳이 나갈 곳이다(國爾忘家, 公爾忘私. 利不苟就, 害不苟去. 惟義所在).”([신서(新書)])라고 한 가의(賈誼)의 말은 공사의 사이에서, 개인과 국가의 사이에서 이익이 충돌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관한 동양적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한자에서 공(公)과 사(私)의 개념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의미를 지향하고 있을까?

2. 경계 허물기, 공정함의 출발


▎공사의 명확한 구분은 공정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영어에서 공적인 것을 뜻하는 ‘public’은 라틴어 ‘publicus’에서 왔는데 인민 혹은 보통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people(사람)이나 popular(대중적인)도 같은 어원을 가진다. 옥스퍼드 라틴어 사전에 의하면 고대사회에서 인민은 무장할 수 있는 남자의 집합 혹은 군대에 갈 수 있는 남자들을 의미했다고 한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서양철학의 틀을 마련했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공적인 것은 사적인 것과 달리 폴리스(polis)에서 생활한다는 것, 즉 정치적인 삶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힘과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서 설득해 폴리스의 대소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공적인 것이란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 정치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며,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란 힘과 폭력이 아니라 말로 사람을 설득해 목적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한자에서 공정함이나 공평함을 뜻하는 공(公)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사사로움을 뜻하는 사(厶=私의 원래 글자)에 팔(八)이 더해진 구조이다. 팔(八)은 어떤 물체를 두 쪽으로 나눠 놓은 모습이다. 예컨대 팔(八)에 칼을 뜻하는 도(刀)가 더해지면 분(分)이고, 말이 입에서 갈라져 나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 兮(어조사 혜)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사로움(厶)과 개인적인 것을 파괴하는 것, 해체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公)이다. 그래서 [한비자]도 일찍이 “사사로움(厶)과 배치되는 개념이 공(公)”이라고 했다. 공(公)은 갑골문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선공(先公) 즉 상나라 선조에 대한 존칭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주나라 때 들면 제후의 직칭(職稱)으로 쓰였는데 다섯 가지 작위 즉 공(公)·후(侯)·백(伯)· 자(子)·남(男) 중 최고를 지칭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임금을 뜻하거나 상대에 대한 존칭으로 쓰였다.

사사로움과 개인적인 것을 해체하고 파괴한다는 뜻을 가진 공(公)이 상나라 선조에 대한 존칭으로, 최고의 작칭(爵稱)으로, 또 임금이나 상대에 대한 존칭으로 쓰였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회의 최고위층에 있는 권력의 정점에 자리한 사람들이 가장 우선해야 할 가치 중의 하나가 ‘공평함’임을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경계 짓기-사사로움의 시작


▎독일 출신의 여성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서구에서 ‘사적인 것’ 즉 사사로움을 뜻하는 ‘private’는 라틴어 ‘privare’에서 왔는데, 개인에 속하다, 분리하다, 탈취하다는 뜻을 가진다. 즉 private(사사로운)과 privative(박탈하는, 탈취하는, 결핍한)는 같은 어원을 갖는다.

그런데 왜 사적인 것이 박탈이나 탈취 , 혹은 결핍이라는 뜻을 지니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사적인 것은 가족과 가정 안에서 사는 것, 즉 그리스어로 가정을 의미하는 오이코스(oikos)에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오이코스에서의 삶의 박탈적 특징은 공적 영역에서 발휘되는 인간적 능력이 박탈됐음을 뜻한다. 말에 의한 설득의 공간이 아니라 힘과 강제가 가능한 공간인 셈이다.

안과 밖을 경계 짓는 것이 私

그러면 한자에서 사사로움을 뜻하는 사(私)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사(私)는 화(禾)와 사(厶)로 구성됐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래는 사(厶)로만 썼던 것을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고자 화(禾)가 더해져 지금의 자형이 됐다. 그렇다면 사(厶)는 무엇을 그렸으며, 또 화(禾)가 더해진 것은 어떤 상징일까?

사(厶)는 원래 둥근 원을 그렸다. 이후 모양이 변해 지금의 자형이 됐다. 둥근 ‘원’은 무엇을 상징할까? 원이 갖는 여러 상징이 있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원을 그린다고 생각해 보시라. 원이 그려지면서 아무 경계가 없던 백지가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된다. 원 속에 들어간 안과 그렇지 않은 밖이다. 안과 밖으로 나눈다는 것, 그것이 경계 짓기이다. 경계가 지어짐으로써 테두리 속은 우리가 되고, 바깥은 남이 된다.

이것을 ‘사사로움’으로 봤다. 정말 지혜로운 관찰이지 않을 수 없다. 테두리로, 목적으로, 관계로 묶고, 묶이면서 이익 추구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되고, 그것이 사사로움의 시작이자 사적 영역의 형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화(禾)가 더해졌을까? 화(禾)는 원래 ‘조’를 뜻했으나 이후 ‘벼’를 뜻하게 됐고, 다시 벼가 갖는 우월성 때문에 곡식의 대표가 됐다. 일찍부터 농경 혁명에 성공해 인류사에서 찬란한 농경문화를 꽃피웠던 중국, 그 때문에 화(禾)는 곡식을 넘어 재산의 상징이 됐다. 중농 전통의 표현이다.

옛날 우리 사회에서도 천석꾼·만석꾼이라는 말로 부자나 거부(巨富)를 표현했다. 1년에 1000석, 1년에 1만 석을 생산할 수 있는 집이고 그만한 토지를 소유했다는 뜻이니, 지금으로 치면 백만장자, 억만장자를 뜻하는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을 그리는 순간 안과 밖으로 나뉘게 되고, 우리와 남으로 구분되게 돼 초록은 동색, 게는 가재 편이라는 말처럼 사사로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도 재산이나 금전 앞에서 가장 쉽게 유혹되고 가장 잘 흔들리는 법이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지금은 물론 그 전 농경사회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원으로 그린 사(厶)로 ‘사사로움’을 표현했고, 여기에 곡식이자 재산을 상징하는 화(禾)를 더해 사(私)를 만들었던 것이다. ‘사사로움’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임에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형상적으로, 구상적으로 그려내고, 사사로움의 메커니즘을 사(私)라는 자형 속에 고스란히 담아 놓은 것이다.

4. 사(私)를 형성한 곡식(禾)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처럼 사사로움을 뜻하는 사(私)에 든 화(禾)는 매우 중요한 한자다. 중국이 농업혁명을 일찍부터 이뤄 우월한 농경문화를 경영하며 빛나는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만큼 한자에는 농경문화를 반영한 글자가 많고 농경사회를 이해해야 알 수 있는 개념들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게 과학의 정신

앞서 말한 화(禾)는 갑골문에서 익어 고개를 숙인 곡식의 모습인데 이를 주로 ‘벼’로 풀이한다. 그렇지만 벼가 남방에서 수입된 것임을 고려하면 갑골문을 사용하던 황하 중류의 중원 지역에서 그려낸 것은 야생 ‘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벼가 수입되면서 오랜 주식이었던 조를 대신해 모든 곡물의 대표로 자리하게 된다. 그래서 ‘벼’, ‘수확’과 관련돼 있으며 곡물은 중요한 재산이자 세금으로 내는 물품이었기에 세금(稅金) 등에 관련된 글자를 구성하기도 한다.

예컨대 세(稅)는 화(禾)에 태(兌)가 더해진 글자인데 태(兌)는 입을 크게 벌린 모습에 두 점이 더해져 즐거워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그래서 곡물(禾)을 재배하고 내는 토지 경작세가 세(稅)였는데 이후 稅金(세금)의 통칭이 됐다.

그렇게 본다면 세(稅)는 세금이란 기쁜 마음으로 (兌)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지배자적 입장의 이념을 반영했으며, 갖가지 구실을 동원해 각종 세금을 징수했기에 ‘구실’이라는 뜻까지 생겼다.

리(利)도 농경과 관련이 있다. 리(利)는 화(禾)와 刀(칼 도)로 구성됐는데 곡식(禾)을 자르는 칼(刀)로부터 ‘날카롭다’는 뜻이 나왔고, 이로부터 순조롭다, 날이 날카롭다, 언변이 뛰어나다 등의 뜻이 나왔다.

갑골문에서는 칼(刀) 주위로 점이 더해지거나 土(흙 토)까지 더해져 이것이 쟁기임을 형상화하기도 했다. 예리한 날을 가진 쟁기는 땅을 깊게 잘 갈아 곡식을 풍성하게 해주고, 날이 예리한 칼은 곡식의 수확에 유리하기에 ‘이익(利益)’의뜻이, 다시 이윤(利潤)이나 이자(利子) 등의 뜻이 나왔다.

이와 유사한 구조로 된 것이 수(秀)다. 수(秀)는 화(禾)와 乃(이에 내)로 구성됐는데 내(乃)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낫 같은 모양의 수확 도구의 변형으로 보기도 한다. 낫은 칼과 비교하면 곡식을 수확하는 데 더없이 유익한 도구였다. 그래서 낫(乃)은 곡식(禾) 수확의 빼어난 도구라는 의미에서 빼어나다, 훌륭하다, 아름답다, 우수(優秀)하다 등의 뜻이 생겼다.

과(科)도 그렇다. 과(科)는 斗(말 두)와 화(禾)로 이뤄졌는데 말(斗)로 곡식(禾)의 양을 재는 것을 말한다. 곡식의 양을 재려면 분류가 이뤄질 것이고, 분류된 곡식은 그 질에 따라 등급(等級)이 매겨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과(科)에 매기다, 등급(等級), 분류 등의 뜻이 함께 생겼다.

그래서 한자어에서 과학(科學)은 곡식(禾)을 용기(斗)로 잴 때처럼 ‘정확하게’ 하는 학문(學)이라는 뜻을 담았으며,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척도가 달라져서는 아니 되는 것이 바로 과학(科學)의 정신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지식’이라는 어원을 가지는 영어에서의 ‘사이언스(science)’보다 더욱더 현대적 의미의 과학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농업경제를 중심으로 한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시간의 사이클조차, 한 해의 명칭조차 곡식의 수확과 관련돼 있다. 예컨대 년(年)은 원래 년(秊)으로 써 사람(人)이 볏단(禾)을 지고 가는 모습에서 수확의 의미를 그렸는데 인(人)이 천(千)으로 바뀌고 자형이 축소 변형돼 지금의 자형이 됐다. 곡식이 익다, 수확하다가 원래 뜻이며, 수확에서 다음 수확까지의 시간적 순환으로부터 ‘한 해’라는 개념이 나왔으며, 연대(年代), 나이 등도 지칭하게 됐다.

한 해를 뜻하는 세(歲)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날이 큰 칼을 그린 월(戉, 鉞의 원래 글자)과 보(步)로 구성돼 날이 큰 낫을 들고 걸어가면서 곡식을 수확하는 모습을 그렸다. 수확에서 다음 수확까지의 기간이 1년이었던 셈이다. 그 의미가 년(年)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농경사회에서 화(禾)는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요, 교역의 매개요, 과학의 출발이요, 한 해를 측정하고 헤아리는 기준이 됐던 것이다. 그래서 농사 신에 대한 숭배는 더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 어떤 신보다 곡식신이 중요했던 것이다. 농사의 신이라는 뜻을 가진 신농(神農)이 중국 민족의 중요한 선조로 등장했고, 곡식 신을 상징하는 직(稷)은 토지 신을 뜻하는 사(社)와 결합해 국가라는 뜻까지 가지게 됐다. 곡식이 어떤 지위를 차지했던지 잘 보여준다

송(訟), 송(頌), 송(忪)은 공평함과 무사함 지향

참고로 직(稷)은 화(禾)가 의미부고 畟(보습 날카로울 측)이 소리부로, 옛날부터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재배돼 오던 대표적 농작물(禾)의 하나인 기장이나 수수를 말한다. 직(稷)이 대표적 농작물이었기에 자연스레 사람들의 숭배 대상이 됐을 것이고, 이후 오곡의 대표로 인식됐음은 물론 후직(后稷)처럼 온갖 곡식을 관장하는 신으로 지위가 격상되기도 했다. 달리 화(禾) 대신 시(示)가 들어간 직(禝)으로 쓰기도 하는데 제사 행위를 강조한 결과로 보인다.

5. 공(公)이 바라본 글자들


사(私)에 반대되는 공(公)으로 구성된 글자들도 제법 있는데 옹(瓮)·공(蚣)·곤(袞) 등이 그렇다. 모두 소리부로 쓰여 독음이 같아야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송’, ‘옹’, ‘공’, ‘곤’ 등으로 변했다. 물론 이들 글자에서 공(公)은 소리부로 독음을 나타내지만 공(公)이 담았던 원래의 의미 지향을 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

예컨대 송(訟)·송(頌)·송(忪) 등은 모두 공평함과 무사함이라는 의미 지향을 담았다. 송(訟)은 말(言)로 다투다가 원래 뜻인데, 이후 논쟁이나 소송 등의 뜻으로 확대됐다. 다툼이나 논쟁이나 소송에서 그 말은 사실에 부합하는 공정한 말이어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송(頌)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조아리며(頁) 칭송하다는 뜻을 가지는데 남을 칭송할 때는 공정함으로 해야 함을 담았다. 고대 한자에서 송(頌)이 용모(容貌)라는 뜻으로 쓰였던 것을 보면 남을 칭송하거나 높일 때 얼굴 표정에서 가장 잘 드러남을 보여주고 있다.

옹(翁)은 羽(깃 우)가 의미부고 공(公)이 소리부인 구조로, ‘아버지’를 지칭했다. 우(羽)는 화려한 깃을 가진 ‘수컷’을, 공(公)은 남성에 대한 존칭을 뜻해 이런 의미가 나왔고, 이후 나이 든 사람이나 남자를 높여 부르는 말로 쓰였다. 옹(瓮)도 마찬가지인데, 물건을 담는 커다란(公) 질그릇(瓦)을 말해 공(公)이 크다는 뜻을 담았다.

그런가 하면 곤(袞)은 원래 衣(옷 의)와 공(公)으로 구성된 곤(衮)으로 썼다가 지금의 자형으로 됐다. 천자가 제사를 드릴 때 입는 옷을 말했는데, 보통 용이 그려졌다 해서 곤룡포(袞龍袍)라고도 한다.

그렇게 본다면 곤(袞)은 높은 사람이 입는 옷이나 공공의 장소에서 공적으로(公) 입는 옷(衣)이자 커다란 옷임을 말해 주고 있다. 모두 공(公)에 ‘크다’, ‘위대하다’는 의미가 담긴 글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松)도 궤를 같이한다. 소나무는 높게 자라는 큰 나무이기도 하고 서리와 눈에도 잎을 떨어트리지 않는 곧은 절개를 가진 ‘위대한’ 나무다. “산에는 높다랗게 자란 소나무가 있네”라고 노래한 [시경]의 말처럼 소나무는 잔가지 없이 주변에 기대거나 피해를 주지 않고 높게 자라는 나무의 대표다.

넝쿨이나 굽은 나무처럼 다른 나무에 기대고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높다랗게, 고고하게 자란다. 예로부터 공공과 공정함과 절개의 상징으로 존재했던 이유다. 그래서 사당이나 서원에 송백을 심어놓고 그 정신을 기렸다.

6. 공(公)과 사(私)의 방향


▎중국에서 농사법을 발명한 신으로 알려져 있는 신농씨.
이처럼 한자에서 사사로움과 공평함을 뜻하는 공사(公私)는 경계 짓기와 경계 허물기와 관련됐으며, 영어에서는 자신을 위한 것이냐 대중을 위한 것이냐와 관련됐다. 차이가 날 듯 하지만 사실은 같은 의미다. 경계 짓는 것은 나를 위한, 우리를 위한 것이고, 경계를 허무는 것은 나를, 우리를 벗어난 남과 대중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양과 서구의 개념은 둘이 아니다.

정치적 자유 실현되도록 ‘행동하는 인간’ 돼야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가 하는 것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동양에서는 줄곧 개인보다는 대중의 이익을 공공을 우선시해왔다. 심지어 대중을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이익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앞서는 가치인가, 공공의 질서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해야 하는 것인가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 진지하게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개인이 소속된 공동체와 개인이 지향하는 가치는 충돌될 때가 훨씬 많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 앞서는 개념인가? 쉽지 않다. 개인도 자유를 제한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공공의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개인의 자유도 제한되고 통제돼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서 중시하는 학연·지연·혈연, 그리고 각종 동호회, 직능 모임을 비롯해 중국에서 중시하는 ‘ 시(關係)’ 문화는 사적 가치를 공적 가치에 개입시키는 부정적 문화의 발현임에 분명하다.

7. 이 시대의 공과 사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보다 자세히 연구한 한나 아렌트(1906~1975)에 의하면 사적인 것(privacy)은 문자 그대로 무엇인가가 박탈된 상태, 인간의 능력 중 최고이자 최상인 인간적인 것이 박탈됐음을 의미한다. 설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폭력이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드는 자는 글자 그대로 온전한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다.

사적 영역은 폭력이나 힘으로 제압하려고 드는 사람을 배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 사회에서 노예나 여자처럼 공론의 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공론 영역을 세우지 않는 이방인들 등은 공적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한자와 영어의 어원을 종합해 볼 때 사(私)는 이익이 중심이 된 사적 영역으로 어떤 범위 내부를 지칭해 경제적 활동을 주된 지향점으로 한다. 공(公)은 이를 박탈하고 해체하는 공공성이 중심이 된 공적 영역으로 내부적 경계가 제거된 전체를 지칭해 정치적 활동을 주된 지향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사회(社會)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각종 ‘사회’가 출현하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불분명해졌다. 특히 오늘날 사회의 출현은 힘과 폭력으로 지배되던 사적인 공간과 가정의 어두운 내부가 공적인 공간으로 밝은 곳으로 이전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로 말미암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던 옛 경계선은 불분명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하더라도 정치는 여전히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적 이익이나 경제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제대로 된 정치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사적 이익에 의한, 경제가 정치에 강하게 관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치는 진정한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 원래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정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공과 사의 원래 의미에 대한 간섭이 이뤄지지 않도록 정치적 자유가 실현돼야 하고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인간’이 돼야 할 때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다. [한국역대한자자 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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