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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대학가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쓰나미 

던질 곳 없는 학사모를 어찌하리오? 

개강 연기, 졸업식 취소… 우울한 분위기 연속
대거 귀국 앞둔 중국 유학생들로 긴장감 고조


▎이화여자대학교 출입구에 ‘신종코로나 확산에 따라 캠퍼스 내 관광객 출입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사진:뉴시스
입춘의 달 2월에는 모두가 봄을 꿈꾼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설렘으로 가득한 달이다. 전국의 모든 학생은 2월이 되면 입학식과 졸업식, 그리고 새 학기를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중에서도 대학입시를 위해 초·중·고 12년을 버텨온 대학 신입생들은 ‘캠퍼스 라이프’의 꿈에 한껏 부풀어 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2박 3일 동안 진행되는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하 새터)’는 그들이 대학생으로서 참여하는 첫 행사다. 선배·동기들과 친해지고 학교에 대해 알게 되는 자리다. 함께 먹고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는 새터는 새내기의 로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코로나)의 공포가 온 나라를 덮치면서 새내기들의 로망은 실현되기 어려워졌다. 1월 중순부터 일부 대학이 새터 취소를 결정하기 시작하더니 상황이 심각해지자 대부분 대학이 이에 동참했다. 수많은 학생이 한데 모여 합숙하는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서울 소재 H대 입학을 앞둔 최주영(20·여)씨는 현재 상황에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씨는 “수능 후 여유로움을 끝내고 좀 바빠지고 싶다”며 “새터를 못 간 것도 아쉽지만, 수강신청 등 대학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사항에 관해 물어 볼 곳이 마땅치 않아 많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해당 대학의 학생회 측은 “추후 학교 축제를 확대할 방침이며, 신입생 행사를 대체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이른바 ‘헌내기(새내기의 반대 말)’들에게도 로망은 사라졌다. 학사모를 하늘로 던지는 ‘인생 사진’ 한 장 건지는 것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신종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입학식·졸업식 정도는 진행될 듯했으나 대부분의 대학이 취소 결정을 내렸다.

먼저 결단에 나선 건 경희대. 약 3800명의 중국인 유학생을 보유한 경희대는 일찌감치 새터·입학식·졸업식을 모두 취소했고, 심지어 개강도 일주일 연기했다.

올해 상반기에 중국에 가려고 했던 학생들은 계획이 꼬여버렸다. 교환학생으로 중국 베이징에 갈 예정이었던 김재은(23·여)씨는 프로그램이 전면 취소되자 급하게 토익시험을 신청했다. 김씨는 “올해 4학년이 되는데 개강까지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면서 “학교 측에서는 다음 학기에 보내주겠다는데 그렇게 되면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기 때문에 졸업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1월 초 중국으로 현장실습 파견을 나갔던 정상희(25·여)씨는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기업 측에서는 중국 지역 현장실습 인턴을 모두 귀국시킨 상태다. 정씨의 경우 이미 집세를 내고 생활용품을 사는 데 200여만원을 지출했다. 그는 “천재지변인 만큼 돈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인턴십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취업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교육부 ‘권고’에 대학들 줄줄이 개강 연기


▎삼육대학교는 신종코로나 여파로 학위수여식 공식 행사를 취소하고, 학과 사무실에서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학위증을 배부했다. / 사진:연합뉴스
2월 5일 교육부는 보건복지부·법무부 등 관계 부처 담당자, 주요 대학 총장들과의 회의에서 대학 측에 ‘4주 이내 개강 연기’를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신종코로나가 단순히 행사 취소 수준을 넘어서 전국 모든 대학의 학사 일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교육부의 권고 후 일찌감치 개강 연기를 확정했던 경희대·서강대 등에 이어 여러 대학이 줄줄이 1~2주 개강 연기를 발표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에서는 ‘권고’라고 말했지만, 대학이 권고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대부분의 대학이 개강을 연기하고 있지만, 종강 연기 여부는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 종강 연기 여부와 관계없이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경희대 재학생 백주희(23·여)씨는 종강 연기 여부 결정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해 “종강 직후 꼭 필요한 단기 해외연수를 가려 하는데 종강이 연기될 수 있어서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월 7일, “개강을 2주 연기하되 종강은 연기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한국외대는 보강수업, 과제물 대체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발표 후, 캠퍼스에서 만난 재학생 정현호(26)씨는 “학기가 짧아지는데 정해진 수업 진도를 다 나갈 수 있을지, 나간다 하더라도 수업의 질이 유지될지 의문”이라며 “그렇다고 학교에서 등록금을 깎아줄 리도 만무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2월 27일, 한국외대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추가적인 논의 결과 종강을 1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개강 연기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소재 S대 이준영(27)씨는 “개강을 늦춘다 해도 중국인 유학생들은 예정대로 입국하고, 또 캠퍼스 안팎에서 생활할 텐데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모든 중국인 유학생의 건강 상태, 이동 상황 등을 시시각각 파악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 과학검증위원장을 맡은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개강 연기가 실효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감염병 대책은 효과를 따지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조치가 어렵다”고 전제한 뒤 “신종코로나 사태에는 국내 확산과 해외 유입, 두 곳의 전쟁터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전자에서는 전력을 다해 성과가 나타나고 있으나 후자에서는 미흡한 상황이라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 관계자는 ‘개강 연기 권고’와 관련해 대학별 후속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개강 연기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입국하는 데 시간차를 두기 위한 방편”이라며 “최대한 간격을 두고 입국하게 함으로써 대학 측의 후속조치가 용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 대학의 중국인 유학생 관리 상황을 지속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니터링의 사각지대가 된 자취생들


▎한국외대 정문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한국외대 학생은 중국과 우한을 응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사진:박지원 인턴기자
중국을 방문한 이력이 있는 사람은 한국에 들어온 후 2주간 격리가 필요하다. 중국인 유학생은 입국해서 격리 과정을 거쳐야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기숙사 입주도 마찬가지다. 입주 전 필수적으로 2주간 격리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인 유학생이 많은 대학은 “그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별도 공간을 확보 중”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런데도 기숙사 입주를 희망하는 중국인 유학생 수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대학들로서는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주요 대학들은 기숙사 한 동(棟)을 아예 통째로 비워 중국인 유학생들을 수용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희대 관계자는 “방학 중에도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한국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한 동을 비우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면서 “또 기숙사 방은 2~4인이 1실을 쓰는 구조라 같은 중국인이라 할지라도 4명을 한 방에 배정해도 되는지 등에 대해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은 “지방에 위치한 캠퍼스 쪽에 별도 공간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건물이 현재 비어 있는 데다 캠퍼스 내에서도 동떨어져 있는 만큼 중국인 유학생 수용 공간으로 적합하다고 학교 측은 판단했다. 이 관계자는 “지방 캠퍼스 학생들의 반발도 우려되는 까닭에 아직은 내부적으로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숙사 입주 예정자는 정해진 시기에 한 곳으로 모이기 때문에 대학 측의 관리가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원룸 등에서 자취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은 사실상 관리가 어렵다. 그들은 이미 하나둘씩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중국인 대학생 쑨모(24)씨는 현재 캠퍼스 근처 자취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일찍 입국한 이유에 대해 “중국 내 신종코로나 확산이 심각해지면서 너무 무서웠다”고 털어놓았다. 2월 7일에 입국한 그는 ‘자가격리 대상자’이지만 학교나 보건소로부터 별도의 연락은 받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학교 측은 “자취하는 중국인 유학생은 구청에서도 별도로 관리 중”이라고 했다. 이에 구청 보건과 관계자는 “2월 7일에 구청·대학·보건소가 모여 대책회의를 했고, 2월 10일부터 우리 구에 거주하는 대학별 중국인 유학생 현황 파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2월 10일 더불어민주당과 교육부는 당·정 회의를 열어 중국인 유학생 입국 대책을 논의했다. 당·정은 신종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대학들에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숙사 내 필요한 열 감지기, 손 세정제 등 비품 구매와 외국인 기숙사 관리에 드는 비용 등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외대는 최근 학교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중국과 우한(武漢)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게시하고 정문에 플래카드를 내건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다른 대학에서는 보기 힘든 조처에 대해 학생들의 여론은 대체로 싸늘했다.

싸늘한 분위기… 숨죽인 그들


▎중국인 유학생 리모씨가 제공한 카카오톡 캡처 사진. / 사진:리모씨
이 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이동민(21)씨는 “학교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한국외대가 아니라 ‘중국외대’ 아니냐는 비아냥이 쏟아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전염병이 중국에서 시작됐는데 대놓고 중국을 응원하는 게 잘 납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플래카드에 대한 학생들의 비판 여론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어떠한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건 아니고 ‘글로벌 대학’으로서 이웃 국가를 응원하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 소식이 중국 [인민일보]에 보도되면서 중국 네티즌들은 ‘고맙다’, ‘따뜻하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국내 여론은 싸늘하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언행에 더 주의하는 모습이다.

경희대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리모(24)씨는 중국에서 춘절(春節)을 보내고 일찌감치 한국에 들어왔다. 동대문 쪽에서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종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업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아야 했다.

그는 “속상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1월 28일 입국한 리씨는 2주간의 자가격리를 끝냈지만 “밖을 돌아다니는 게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개강 전까지는 되도록 외출을 삼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인 유학생이 많은 경희대·성균관대·건국대 등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렵게 만난 중국인 유학생들 대부분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금 다들 중국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서 우리의 생각을 말하는 게 상황을 되레 악화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기자는 중국인 유학생 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한 대학의 중국인학생회 임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이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는 회장의 지침이 있었다”며 “특히 학생회 임원은 일반 학생들과 달리 말 한마디가 전체 중국인 학생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이 기본적인 안전 조치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한국 학생들에게 ‘중국인 유학생들도 우리의 이웃이니 잘 해결해보자’고 말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대거 국내로 유입되면 캠퍼스 내에서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우려를 표했다.

- 박지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vbt07@naver.com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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