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유민호의 서양사 현장르포 | 승자의 조건, 패자의 교훈(20)] 렘브란트는 왜 ‘집단 초상화’를 그렸나 

신대륙 향한 네덜란드인들의 ‘집단 출사표’ 

‘출신 아닌 능력’ 앞세운 평민들이 예술의 주인공으로
‘신이 버린 땅’ 일군 네덜란드의 개척 정신이 원동력


▎암스테르담의 렘브란트광장. 렘브란트 동상(가운데) 앞에 서 있는 인물 조각상들은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간 순찰]에 등장하는 시민군들을 표현한 것이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서해 간척으로 10% 국토확장, 전 국민 30% 해외진출 지원.’

2022년 3월 치러질 한국 대통령선거에 등장하길 바라는 공약이다. 다음 대선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공약을 원하는지는 모호하다. 국토 확장과 해외 진출은 필자의 상상 속 공약이다. ‘철밥통’ 싸움으로 끝이 없는 내부 소모전보다, 키우고 넓히고 높이는 기반을 제공하자는 의미에서의 간척과 해외 진출이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2020년 한반도 안에서는 답을 찾기가 어렵다. 현실은 한층 더 안개 속으로 빠져든다. 결론은 ‘내로남불’이고, 위선·몽상·꼼수·변명으로 날과 밤을 새우는 것이 현실이다.

몰릴수록 불안할수록, 이벤트·슬로건·오리발·큰소리로 치닫기 마련이다. 자화자찬도 언제부턴가 일상화된 한국적 풍경 중 하나다. 수면에 비친 모습에 빠져드는 나르시시스트 공화국이다. 최근에는 K-방역·팝·뮤비·바이오 등 수많은 ‘K-자화자찬’이 난립한다. 스스로가 불안·냉소·자조적인 상태에서, 어떻게 남을 감동하게 할 수 있을까?

야당도 마찬가지다. 표가 된다면 연예인 얼굴로라도 대선에 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연예인이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언급된 연예인 자신도 황당해하는 판이다. 피차 오십 보, 백 보다. 그럴 바에야 멀리 내다보고, 국토 확장과 한국인의 세계화에 투자하는 게 백번 낫다고 확신한다. 공약(空約)으로 끝나도 좋다. 하늘을 쳐다보고 화살을 쏠 경우 한층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한국에서 절대빈곤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가만히 있어도 온갖 지원금이 제공된다.

문화는 상대적, 문명은 절대적


▎트랙터를 탄 농민 시위대가 북해와 네덜란드 조이데르만을 가르는 아프슬라이트다이크 (Afsluitdijk) 방조제를 지나고 있다. 1932년 완공된 이 방조제는 새만금 방조제의 모델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국운이란 것이 있다. 지금의 시대정신이 부수고 나누는 것이라면 거역하긴 어렵다. 그래도 주전자 뚜껑에 작은 구멍 하나쯤은 만들어두자. 세우고 키우는 것에도 신경을 쓰자. 불안·불신·냉소가 넘칠수록 희망으로 이어질 출구가 필요하다. 10년, 아니 일주일 앞도 못 내다보는 ‘당일치기 삶’일수록 내일의 청사진이 필요하다. 뻔한 거짓말이라 해도, 태양까지 가는 100년 우주선 프로젝트 같은 것에라도 매달리고 싶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는 미래중심 나라로 네덜란드만 한 나라가 없다. 필자의 세계관에 기초한 정의지만, 문명대국으로서의 네덜란드다. 주의할 부분은 문화대국이 아닌, 문명대국이란 점이다. 네덜란드는 문화가 아닌, 문명이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나라다.

문화와 문명은 비슷한 개념으로 여겨진다. 사실은 전혀 다르다. 반일(反日) 민족주의에 투철한 사람이라면 부정하겠지만, 문화·문명이란 개념은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퍼졌다. 1860년대 일본 메이지(明治) 정권이 근대화에 나설 때, 영어의 ‘Culture(문화)·Civilization(문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민족·국가·사회·신문·공화국·자유·국민·정의·헌법·대중·인민·평등·자유·복지 같은 말들이 모두 이때 나왔다. 19세기 말 서구의 생각을 한자로 번역하고 재창조한 결과로 나온 ‘메이드 인 저팬’ 단어들이다.

문화와 문명은 어떻게 다를까? 선사시대를 생각해보자. ‘신석기 문화’라고는 말해도, ‘신석기 문명’이란 말을 쓰진 않는다. 투박하지만 국립국어원의 ‘문명’ 정의를 빌리면, 신석기 시대는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 발전’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는 춤과 극장의 차이로도 설명할 수 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문화다. 그러나 춤과 노래를 즐길 원형극장을 만들고, 가라오케 장치를 발명하는 것은 문명이다.

물론 춤과 노래가 있었기에 원형극장에 관한 발상도 생긴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화가 있었기에 문명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무게중심에 따라 나눠보면, 인간 감정의 산물은 문화, 인간 이성의 산물은 문명에 가깝다. 이것이 서구가 발명해낸 문화와 문명의 차이다.

문화와 문명을 가르는 또 다른 분기점은 시간성이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체로 과거와 연관된 것은 문화다. 반대로 미래를 생각하며 인간의 사고·행동을 도와주는 것은 문명에 속한다. 문화가 그 어떤 나라·사회에 가도 존재하는 이유는 ‘과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곳에는 문명이 존재할 수 없다. 미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자국을 ‘문화대국’이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좁은 세계관이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문화는 우열을 논할 수 없다. 대국과 소국, 우등국과 열등국이 있을 수 없다. 음식을 손가락으로 먹든, 젓가락이나 포크로 즐기든 문화적 측면에서는 우열을 가를 수 없다. 사막에는 젓가락을 만들 나무도 재료도 없다. 결국 손으로 해결하는 문화가 등장한다.

그러나 문명적 기준에서 보면 다르다. 손보다는 나무젓가락, 나무젓가락보다는 금속제 포크가 기술적·물질적으로 앞서 있다. 원시시대 인간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었다. 이후 젓가락, 나아가 포크가 등장한다. 칼과 포크 음식문화이기에, 거기에 맞는 접시와 장식도 등장한다. 미슐랭 레스토랑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니다. 문화인 동시에 문명의 첨단이란 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찾게 되는 곳이다. 밥집보다 미슐랭 레스토랑이 비싸듯, 문화와 달리 문명에는 귀천이 있다. 따라서 문화대국은 없지만, 문명대국은 있을 수 있다.

신이 버린 땅, 사람이 일군 나라


▎17세기 네덜란드 상선을 본뜬 배 200여 척이 지난 6월 9일 암스테르담 앞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네덜란드는 문명대국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신이 창조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만들었다(God created the earth, but the Dutch created the Netherlands).” 네덜란드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듯하다. 인위적으로 이뤄진 간척사업이 주인공이다. 바다의 얕은 지면을 이용해 국토를 넓히는, 신의 손과 생각을 대신한 존재가 바로 네덜란드인이다. 13세기 이래 시작된 이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어제가 아닌 내일에 주목하는 문명관이다.

지난해 여름 네덜란드에서 렌터카를 탔을 때 일이다. 차량에 탑재된 내비게이션에 해발고도가 크게 표시돼 있었다. 운전하면서 유심히 보니 해발고도가 마이너스로 내려가는 곳이 많았다. 이렇게 해수면보다 지대가 낮은 땅이 네덜란드의 26%에 달한다. 당장 수도 암스테르담의 평균 고도도 ‘-2m’라고 한다. 그런데도 멀리 지평선 끝에 들어선 초대형 방파제 덕분에 해수면 아래 땅이란 생각이 전혀 안 든다.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와 농토로 보일 뿐, 인공 육지란 느낌이 없다.

그러나 방심하는 순간 바닷물이 넘어온다. 수위 차로 인해 유입되는 바닷물을 쉴 새 없이 퍼내야만 한다. 네덜란드의 명물인 풍차는 이렇게 넘어오는 바닷물을 바람의 힘으로 퍼내는 ‘풍력 펌프’ 역할을 해왔다. 원래 풍차는 고대 로마 시대에 등장한, 바람을 이용한 곡물 정제용 소도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18세기엔 영국에서 발명된 증기기관을 이용해 자연 바람이 아닌, 인공 증기 동력을 풍차에 연결한다. 바람이 없더라도, 24시간 간척사업에 활용한 나라가 네덜란드다.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편리하게 실생활에 사용한 것이다. 바로 문명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거리에 사람들이 터져 나간다. 조금 과장하면 암스테르담 전체가 서울 명동 분위기다. 도로를 꽉 채운 이륜 자전거와 더불어 보행자가 넘쳐난다. 관광객들인가 생각했지만, 대부분은 네덜란드인이다. 암스테르담, 아니 네덜란드 전체의 인구밀도가 엄청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네덜란드 인구는 1750만 명 정도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다. 그러나 인구밀도는 세계적으로 봐도 수위에 있다. 유럽에서 2위, 전 세계에서 14위다. 1㎢당 399명으로, 전 세계 12위인 한국(1㎢당 485명)보다 100명 정도 적다.

그러나 실제 피부감각으로 느끼는 인구밀도는 한국보다 한층 심하다. 주택용지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국토의 70%는 농업용으로만 쓰이는 공공의 토지다. 자유롭게 거래되는 사유지가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땅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한국보다도 한층 더 밀집도가 높은, 바닷물에서 벗어난 곳에서 ‘빽빽이 모여’ 살아가는 나라다. 네덜란드 가정집에 들어가 보면 방의 크기가 무척 작다. 한국 아파트에 익숙할 경우 숨이 막힐 정도다.

그러나 높은 인구밀도와는 대조적으로, 네덜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GDP)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5만3000달러(2019년)에 달한다. 기본적으로 금융대국이지만, 흥미롭게도 농산물은 고소득을 보장하는 네덜란드의 ‘생존 무기’ 중 하나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어떻게 농산물을 수출 상품으로 키울 수 있었을까? 밀집된 거주지 공간 이외의 모든 땅을 농토로 적극 활용하는 과정에서 농산물 대국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산 치즈의 대명사, 이담(Edam)과 고다(Gouda)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제품일 듯하다. 간척과 풍차, 높은 인구밀도와 농산물 대국으로 표현된 네덜란드만의 모습은 물질적·기술적 차원의 업적이자 결과다. 그저 하늘이 내린 자연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다. 하늘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수정하고 재창조하는 곳이 문명대국 네덜란드다.

‘집단 초상화’에는 공화국이 있다


▎세계 최초 증권거래소인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 건물 앞에 설치된 청동 소 조각. 뉴욕 월스트리트의 ‘돌진하는 황소’상도 이를 본뜬 것이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초상화는 지난해 여름 네덜란드에 들렀을 때 특히 주목한 부분이다. 그냥 초상화가 아니라, 집단 초상화다. 크기가 큰 작품은 가로 15m 세로 30m에 달하기도 한다.

집단 초상화는 네덜란드 황금기로 통하는 17세기의 유산이다. 프로테스탄트 네덜란드가 가톨릭 스페인 대제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인 것은 1568년이다. 이후 약 100년간 전쟁이 지속되지만, 동시에 전 세계를 대표하는 해양대국으로도 급성장한다. 독립전쟁과 글로벌 해양진출을 동시에 이뤄낸 나라가 네덜란드다. 17세기 중기에 무려 1만6000척의 상선과 전함을 보유한다. 유럽·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 신대륙을 하나로 연결한 해상 하이웨이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만든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다.

[하멜 표류기]로 대표되는 네덜란드인 하멜이 표류 중 제주도에 상륙한 시기도 17세기다. 일본으로 향하던 중 만난 폭풍 때문에 36명의 네덜란드인이 이후 조선에서 13년 이상 ‘불법체류자’로 머물게 된다.

이렇게 당시 매일 수십 척의 배들이 전 세계로 향하고, 네덜란드로 돌아왔다. 네덜란드 상선과 전함이 전 세계 바다를 주름잡았던 시기다. 실크·목면· 보석·식량·향신료·노예를 상품으로 한 초유의 글로벌 무역이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초대형 초상화는 당시를 대변하는 시대정신의 증거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20세기 말 이후를 제외할 경우, 보통 사람이 예술세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시대는 ‘두 번’에 그칠 듯하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와 17세기 이후 네덜란드다. 권력·종교·돈에 관계없이, 공화국을 구성하는 시민이라면 예술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재력도 중요하지만, 눈치를 안 보고 떳떳이 자신의 흔적을 예술적 방식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이 가능했던 시대다. 주자학 조선 시대, 지방의 상인이 자신의 초상화를 남겼다고 할 때 권력 주변 양반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신하가 왕보다 더 고가의 무덤을 만들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고대 그리스는 조각이나 돌로 된 무덤을 통해, 네덜란드는 집단 초상화를 통해 예술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집단 초상화로 익히 알려진 화가는 렘브란트가 있다. 그러나 굳이 유명 화가를 좇지 않아도, 암스테르담 내 박물관 어디에서나 집단 초상화를 접할 수 있다. 혼자가 아닌, 집단 초상화가 된 이유는 특유의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다. 직업에 따라, 거주지나 출신지에 따라 나름대로의 공동체가 생긴다. 전부 모이면 국가형태로 나아가지만, 먼저 작은 공동체 속에서의 나의 존재가 출발점이다. 공동체 구성원은 평등하다. 경제적·사회적 대우도 기본적으로 평등하다. 일의 기능이나 종류에 따라 구별될 뿐, 기본적으로 모두 평등한 시민이다. 적으면 10명, 많으면 100명에 달하는 초대형 초상화는 생사를 함께 하는 ‘동지로서의 출사표’에 해당한다. 배를 타고 먼 나라로 나가기 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무덤용 초상화’로 활용됐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치안은 국가 주도 하의 경찰이 아니라, 자신의 지역을 스스로 지키는 자경단을 통해 유지됐다. 자경단용 옷이나 무기도 각자 부담이다. 기념사진을 찍듯, 모두 모여 집단 초상화에 나서면서 연대감을 재확인하는 식이다.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이 공동체 안의 구성원으로 다시 참가한다. 초대형 초상화의 제작비는 등장인물의 수에 맞춰 평등하게 분배됐다. 이른바 ‘더치페이(Dutch Pay)’라 불리는, 각자 부담의 출발점 중 하나가 초상화 제작비다.

세계 최초,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


▎암스테르담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된 17세기 네덜란드의 집단 초상화. 더치페이를 통한 출사표로서의 초상화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초상화를 그리는 것은 유럽 문화의 특징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나서 초대형으로 제작하는 식의 예술 활동은 문화가 아닌 문명이란 각도에서 풀이될 수 있다. 물론 ‘더치페이’로 초상화 제작비를 나누는 것도 문명적 속성이 강하다. 세계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17세기 네덜란드 집단 초상화는 문화가 아닌 문명으로서의 예술이다.

문명대국 네덜란드의 업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정부 간섭을 배제한 경제 자유화, 이민자 동일 임금, 토지 공개념, 언론 자유, 동성결혼 최초 인정, 여성 참정권, 16세 이상 포르노 출연 가능, 안락사 인정, 마약 제조 판매 허용, 매춘 합법화, 자식에 물려주는 부모 성(姓)의 자유로운 선택…. 정치·경제·사회·문화 그 어떤 면으로도 봐도, 다른 나라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미래이자 첨단’으로서의 풍경이 문명대국 네덜란드의 현주소다.

물론 성(性)과 마약에서처럼,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포스트모더니즘 문명’도 상존한다. 17세기에는 그 유명한 ‘튤립 버블 폭락’도 체험한다. 그러나 항상 어제보다 내일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곳이 네덜란드다.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와 더불어, 도전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문명의 특징이다.

증권시장 개설은 문명대국 네덜란드가 창조해낸 또 다른 업적이다. 21세기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 월스트리트를 보자. 현재의 뉴욕은 17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으로 불렸다. 뉴욕과 유럽의 만남은 네덜란드에서부터 시작됐다. 15세기 말, 아메리카 모피 거래를 위해 네덜란드인이 몰려들었다. 16세기 초반부터는 영국인도 냄새를 맡고 합류한다. 현재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라는 지명은 후발 경쟁자인 영국인을 막기 위한 나무 벽에서 유래됐다. 영국군이 네덜란드 거주지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은 방어벽 주변이 월스트리트다. 뉴암스테르담이 뉴욕으로 개명(改名)된 것은 영국이 무력으로 맨해튼을 장악한 1664년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네덜란드인은 맨해튼에 남는다. 1792년, 목재 거래를 위한 투자거래처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월스트리트에 개장된다. 현재 뉴욕증권거래소의 기원이다.

이보다 190년 앞선 1602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열었다. 뉴욕의 증권거래소에 네덜란드의 노하우, 네덜란드인이 활용된 것은 물론이다. 자본가는 미국인이지만, 증권시장을 운영·관리하는 역할은 여전히 네덜란드계 사람들이 맡고 있다. 네덜란드와 월스트리트와의 인연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적폐 청산에 밤새는 한국인

한여름 더위를 이열치열(以熱治熱) 정신력으로 극복하자는 것이 동양적 문화관이다. 미국은 급속 에어컨으로 해결한다. 한국의 신형 자동차를 보면, 아예 처음부터 시속 200㎞ 정도로 제한돼 나온다. 유럽·미국에선 처음부터 시속 300㎞ 속도계를 달고 나온다. 시속 300㎞로 달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심 500m 아래까지 시계를 차고 일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하자’는 자세가 문명국가의 조건이자 기본자세일지 모르겠다. 급속 에어컨, 시속 300㎞ 자동차, 수심 500m 방수 시계의 탄생은 그런 자세의 결과물이다. 한국에서, 아니 동양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발상들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도전은 문명세계로 향하는 기본자세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는다. 17세기 네덜란드는 그런 세계관을 미국에 퍼트린 장본인이다. 뉴욕 월스트리트가 네덜란드인에 의해 조성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배를 소재로 한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화풍의 특징 중 하나다. 집단 초상화 주변에 배에 관한 초대형 그림들이 반드시 전시돼 있다. 외국으로 나가는 전함, 네덜란드 항구로 들어오는 상선, 폭풍과 맞선 풍전등화 속의 배, 전함의 공격으로 불타는 수송선….

그러나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바다에 떠 있는 배에 관한 그림이 전무한 나라가 한국이다. 배라고 하면, 신선이 놀 듯한 기암괴석 아래 대나무로 젖는 돛단배가 떠오른다. 상선·전함·수송선은 없다. 임진왜란 거북선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 크고 무거운 배를 움직일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다. 바다로 나가거나, 장사를 위해 멀리 이동한다는 발상 자체가 없던 곳이 한반도다. 바다 주변에 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죄인으로 몰렸다. 육체적 쇄국만이 아닌, 정신적 쇄국으로 이어진 역사다. 현재 벌어지는 한국 내 주된 화두(話頭)를 보면 배와 무관하게 살아온 쇄국 한반도의 어제를 보는 느낌이다.

신문·방송을 접하면, 내일을 목표로 바다로 나아가는 네덜란드식 문명관을 찾기 어렵다. 어제의 문제에 갇혀서 앞으로 한 치도 못 나가는 상태다. 네덜란드에 갈 기회가 있다면, 끝없이 뻗어난 일직선 간척 제방을 경험해보기 바란다. 자전거나 도보로 체험하는 것이 제일 좋다. 소금기 밴 바닷바람과 함께, 신을 대신해 네덜란드를 재창조한 사람들의 정열과 정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일로 향하는, 무에서 유로 나아가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위대함이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images/sph164x220.jpg
202008호 (2020.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