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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15)] ‘천경자의 사위’ 문범강 교수 

“북한화 만난 건 내 숙명, 한국 미술사의 반쪽 채우고 싶어” 

그림 공부하려고 무작정 미국 건너가 오랜 노력 끝에 독창적인 화풍 완성
우연히 만난 북한 그림에 빠져 북한화 연구자로서 세계적 권위 인정받아


▎천경자 화백의 사위이자 화가인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는 북한화(조선화) 연구의 일인자로 꼽힌다. 그에게 있어 북한화는 남북을 아우르는 한국 미술사에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자네 작품엔 무서운 게 있어 좋으네.” 천경자(1924~2015) 화백은 생전에 사위인 문범강 교수의 그림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문 교수의 결혼 초까지 좋지 않았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돌연 좋아하는 그림을 하겠다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였다. 판화와 회화를 공부한 뒤 화가로 활동하다가 조지타운대학교 미술과 교수가 된 뒤에야 관계가 회복됐다. 천 화백이 말한, 그림이 ‘무섭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자기 세계에 들어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비평가의 평보다도 장모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 화가인 천 화백의 함축적인 말이 가장 잊히지 않고,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문 교수는 1993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아메리칸대학 미술관(워싱턴), 일민미술관(서울)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초대 받았다. 특히 1994년 로젠퀴스트, 바스키아 등과 함께[미국 미술의 오늘] 전에 초대돼 화제가 됐다. 그의 작품은 워싱턴 Trawick Foundation, Truland Foundation뿐 아니라,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영구 소장돼 있다. 그는 작업 초기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에 대해 깊게 파고들었다. 그 시기가 지나 회화 작가로서 표출할 수 있는 극치의 테크닉과 구도, 색감에서 다양한 도전을 했고, 이후 스스로 자유로움을 얻으면서 표현 방법이 확장되고 다채로워졌다.

‘장모’ 천경자 화백이 건넨 문 교수 인생의 최고 찬사


▎문범강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가 인터뷰하러 온 CNN 카메라 앞에서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 사진:문범강
대표 작품 중 하나인 [황후애정행각기(Love Affair of the Empress)] 시리즈는 전체 81점으로 진시황릉을 여행하면서 영감을 받았다. 메타포로 설정된 ‘황후의 초상화’ 72점과 ‘청랑(靑狼)을 탄 황후’, ‘청랑을 품은 황후’ 등은 인간의 정신적 내면을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드러낸다. 머리를 삭발한 서양 여성들을, 아이러니하게도 춘자·명자·옥자로 등장시킨 [춘자] 시리즈와 디지털의 최소 기본 단위인 픽셀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린 [리얼리티] 등 그가 펼쳐 온 작품세계는 도전적이고, 재기발랄하다. 때론 비판적 위트와 해학이 담긴 작품들을 통해 현시대의 개인과 사회에 화두를 던진다. 한국작가로는 드물게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아트 인 아메리카] 등에서 미술평을 받고, CNN과 인터뷰할 만큼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미국에서 화가로 활동해온 문 교수는 2010년 북한화를 처음 접하면서 운명적으로 북한의 동양화(이하 ‘조선화’)에 빠져들었다. 12년 동안 연구한 끝에 이론과 현장 경험을 겸비한 세계적인 북한미술 전문가이자 기획자로 ‘조선화 연구의 일인자’라는 평을 받는다. 2011년부터 6년에 걸쳐 9차례 북한을 방문해 죽은 사람의 묘까지 찾아가 확인하는 등, 직접 현장 취재를 통해 연구하고 화가의 시각으로 분석한 책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도 출판했다. 일반적인 연구와는 많이 달라서 책을 쓰는 마지막 과정까지 책이 나오지 못할까 두려울 정도로 애착이 깊었다.

문 교수는 2016년 아메리칸대 미술관과 2018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미술전을 기획했다. 세계 최초로 미국과 한국에 대형 조선화를 전시하자 당시 미국, 일본, 독일 등 세계 주요 언론이 관심을 가지면서 주목 받았다. 남북의 미술 교류가 활발해져 평양의 전시장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걸리는 날을 문 교수는 학수고대하고 있다.

“북한에는 어떤 미술이 존재할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6월 15일,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가 주최한 문 교수의 특강 [평양미술 조선화-은폐(隱蔽)의 아이러니]를 들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에 다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범강 교수의 대표작 [파장 리얼리티] (2013, 76×102). / 사진:문범강
이력이 특이하다. 어떻게 그림을 시작했나?

“서강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할 때 한국·중국 등 미술사 강의를 듣기도 하고, 전시를 보러 다니거나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판화를 시작해 10년 동안 작업했다. 판화 전공으로 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회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뉴욕에서 회화 수업을 듣고, 다음 날 첫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에 돌아와 강의할 정도로 3년간 회화 공부에 열정을 쏟으면서 화가로서 필요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북한의 동양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북한 미술품을 많이 가진 컬렉터를 통해 조선화를 처음 봤다. 봐서는 안 되는 금기로 여겨왔던 김일성을 소위 순수미술이라고 하는 그림을 통해 처음 봤기 때문에 놀랐다. 그리고 서정적인 동양화의 기법과 인물을 정확하게 잘 잡아낸 작가들의 능력이 놀라웠다. 군인들의 군상이 들어간 그림이었는데 그동안 봐 왔던 동양화하고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다. 정확한 인체묘사뿐만 아니라 표현이 서정적이었고, 시적으로 느껴져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조선화는 대체 누가,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북한 미술 연구 통로 막혀 1900년대에서 답보 상태


▎2010년 미국 워싱턴의 아메리칸대학 미술관에서 열린 문범강 교수의 개인전. / 사진:문범강
북한의 동양화를 연구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북한 미술 연구가 지금 답보 상태에 있다. 새로운 현대 북한 미술을 접촉할 수 없어서 주로 1900년대 후반 월북 작가 중심의 작가론과 작품만 다루는 실정이다. 한국 미술 전체를 묶는 통사를 기술할 때 북한 미술을 떼어내면 허전하다. 현장 연구가 그 갭을 메우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으로 미술 공부하러 가서 화가로 활동하는 상황에 이런 일을 하게 돼 한편으론 ‘숙명이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미국 시민이 아니면 그 당시에는 북한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데에 감사하고, 그 감사의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내 연구가 한국 미술 통사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과 북한의 동양화는 어떤 차이가 있나?

“재료에 있어 종이에 먹과 안료를 사용하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한국화, 중국화, 일본화는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이나 개념을 많이 따르면서 거기서 발전시켜왔다. 반면 북한의 조선화는 나름의 표현 방법을 새로 개척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동양화는 인물의 외곽선에 상당히 치중해 형상을 먼저 잡고, 주로 바깥 외곽선을 그린 뒤 안에 음영을 나타낸다. 일반적인 동양화가 걸어온 길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도 그렇게 그린 작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림 바깥쪽에 아웃라인이 없고 안쪽에 명암을 나타낸다. 이를테면 뼈가 없이 면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린 ‘몰골 기법’이 가장 큰 특징이다. 북한에서는 몰골법으로 그린 인물화가 많다. 한국화는 인물화를 그릴 때 바깥에 선을 그리고, 안에도 선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약간의 명암을 주는 ‘농담법’을 주로 사용한다. 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차이일 뿐이다.”

유명 北 화가 작품은 수십만 달러 호가하기도


▎북한 미술계의 대가 김인석 화백의 대표작인 [소나기](2018, 조선화, 217×433). 인물들의 다채로운 표정을 서정적으로 담아내 해외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 사진:문범강
북한의 대표적인 조선화 작가를 한 명만 손꼽는다면?

“한 명만 꼽기는 어렵다. 최창호는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학부를 졸업했다. 그의 산수화는 장대하고,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웅혼한 기운이 서려 있다. 북한에서 최고 필력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김인석 작가도 평양미대 조선화 학부 출신이다. 김인석 작가만큼 사람의 표정과 감정을 예리하고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작가는 드물다. [소나기] 작품은 버스정류장에서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을 포착하기 위해 고아원, 지하철 등에서 모델을 찾아 4년 만에 완성했는데 조선화의 참신한 일면을 보여준다.”

최창호 작가와 같은 대가의 그림 가격은 얼마나 하나?

“북한은 작가 본인이 작품 가격을 정하지 않고, 국가작품가격위원회가 정한다. 작가의 위상, 작품 수준, 규격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그러나 이건 공식적인 가격이고, 국외로 그림이 나왔을 때는 시장의 자율성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광주비엔날레에 나온 최창호 작가의 [금강산] 작품은 10만 달러였다. 북한에서도 좋은 그림은 절대 싸지 않다. 게다가 구입하고 싶어도 그런 작품은 국외로 나오기도 힘들지만, 일단 나오게 되면 가격이 많이 올라간다. 광주비엔날레에 나온 [소나기] 작품은 워싱턴포스트에서 대대적으로 소개돼 정확히는 모르지만 20만~30만 달러 정도 하는 것으로 안다.”

북한의 화가들도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나?

“모든 그림이 체제 선전화 쪽으로 가는 경향이 농후한데, 그 속에서도 작가들은 자기 나름의 개성과 창의성을 발현하려고 무척 노력한다. 이를테면 최창호는 시적 표현을 하고 또 다른 작가는 선묘를 많이 쓰면서 부드러운 인물 묘사를 한다. 큰 틀에서 보면 개성의 차이는 있지만, 체제 선전화를 주로 그리는 건 사실이다. 물론 체제 선전화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고 또 예술가이기 때문에 창의성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다만 현대 미술에서의 창의성이랑 북한의 창의력은 좀 다르다. 자기 생각을 그릴 수는 있으나 주류에서 벗어나 화가로서 높은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내년은 천경자 탄생 100주년, 재조명 간절히 바라”


▎문범강 교수가 꼽은 인생 사진은 중학생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왕산에서 움막을 짓고 살던 때 가족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이다. 왼쪽 뒤에 있는 천진난만한 소년이 문 교수다. / 사진:문범강
사진예술 장르는 북한에서 어떠한가?

“만수대 창작사에서 13개 분야를 장려한다. 조선화, 조각, 유화, 보석화, 금리화, 공예 등이 있는데, 사진 분야는 없다. 주로 백두산이나 금강산에 해가 뜨거나, 안개가 자욱할 때 풍경을 장엄하게 잘 포착한 사진을 좋아한다. 그 외에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찍는다든지 행사나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대외적으로 선전하고 뭔가를 알리기 위한 수단이다. 사진은 주로 ‘보도사진’ 역할을 한다. 사진뿐만 아니라 유화 그림도 관심이 많지 않다. 북한에서는 조선화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회화 양식에서 최고로 생각한다. 처음 발단은 고구려 벽화에서 왔다고 주장하며 조선화의 전통과 정통성을 중시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을 한 장만 손꼽는다면?

“초등학교 6학년 때 홈리스가 되어 인왕산에서 3년 살았다. 첫해는 천막을 치고 살다가 그다음 해부터 움막을 지어 살았다. 대구에 살던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아버지가 사업이 망해 서울에서 잘 내려오시지 않자 어머니가 우리를 데리고 상경했다. 5남 2녀였는데 맏형은 서울대학교에 다니며 입주 가정교사를 해서 나머지 여섯 남매가 산에서 살았다. 그때 인왕산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60년대 중반에 필름 카메라로 찍은 흑백 사진이다. 사진을 누가 찍어줬는지도 모르는 귀한 사진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년은 천경자 화백 탄생 100주년 되는 해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천경자 선생님 작품이 93점 보관돼 있고, 상설 전시실도 따로 있다. 자식같이 소중하게 키운 93점의 작품을 미련 없이 기증하셨다. 그분의 탄생 100주년에 아무 행사가 없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천경자 선생님에 대한 연구나 작품 세계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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