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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의 지구촌 인문기행(2)]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들의 요람, 이탈리아 피렌체 

단테와 마키아벨리 그리고 메디치가를 품은 도시 

단테, 아르노강 폰테 베키오 다리에서 만난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신곡]으로 승화
산타크로체 성당은 ‘스탕달 신드롬’ 낳아, 두오모 성당·우피치 미술관은 피렌체의 심장


▎피렌체는 유럽 르네상스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피렌체의 랜드마크인 두오모 성당을 배경으로 2016년 한국의 조각가 박은선의 ‘무한 기둥’이 전시됐다. / 사진:박은선
지난 세월 여행 애호가로서, 외국 거주 유학생으로서 그리고 언론사 기자로서 참으로 많은 나라, 다양한 곳을 돌아봤지만, 감탄을 거듭한 곳이 몇 군데 있다. 세월이 흐르면 다시 한번 가본 뒤, 천천히 느끼며 맨 처음 방문했을 때 느꼈던 여행의 흥분을 다시 맛보고 싶은 곳들이다. 내겐 그중 한 곳이 이탈리아 중부의 피렌체(Firenze, 영어로는 Florence·플로렌스)다. 로마에서 초고속열차를 타면 1시간30분 만에 피렌체의 중앙역인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할 수 있다. EU 국가에서 오는 대부분의 열차가 정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왜 피렌체냐고 묻는다면 우선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일정이 바쁜 사람이 매번 쫓기듯 여행하면 아쉬움이 크게 남는 곳이다. 하나의 도시가 수백 년 전, 이렇게 찬란한 예술인들을 무더기로 배출해 눈부신 작품들로 후손들을 열광하게 만드니 감탄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유네스코가 이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를 단박에 알 듯하다.

오죽하면 예술 작품 감상 후 가슴이 뛰는 현상을 의미하는 용어인 ‘스탕달 증후군’이란 단어까지 이곳에서 만들어졌을까. 피렌체의 또 다른 매력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보석 같은 강과 산, 숲 등 자연유산을 곳곳에 펼쳐놓고 있다는 점이다. 충분히 만끽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 속에 매번 발길을 돌려야 했다.

피렌체라는 이름의 꽃


▎‘꽃의 성모 교회’로 알려진 피렌체 델 피오레 두오모 대성당. 다른 첨탑식 성당과 달리 거대한 쿠폴라가 중세 건축기술의 발전을 증명하고 있다. / 사진:고혜련
‘꽃의 도시’, ‘예술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피렌체는 14~16세기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233㎞ 떨어진 곳, 내륙지방의 아르노강과 멋진 구릉을 끼고 위치해 있다. 피렌체라는 이름이 ‘꽃’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의 ‘피오레’에서 유래됐다니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피렌체는 서양문화의 모태인 고대 로마와 그리스 문화를 부흥·만개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곳에 발을 디디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환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현재의 시간이 멈추고 ‘카이로스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작은 도시 국가였던 피렌체는 기원전 1세기에 이미 퇴역 군인들의 거주지를 마련하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반듯하게 구획한 격자형 계획도시였다. 전설적인 예술가들인 단테,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이기도 하니 진정 르네상스를 잉태한 요람인 곳이다. 더구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여인의 대명사로 각인된 ‘베아트리체’는 시성(詩聖) 단테가 짝사랑했던 연인의 이름이었다. 그 가슴 떨림과 회한으로 평생 기막힌 시를 쏟아내게 됐다는 사연을 접하면 피렌체는 사랑과 번민, 고뇌의 인간 스토리까지 고루 갖춘 완벽한 장소가 되는 것이리라.

피렌체의 몰락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단테(Dante)는 아홉 살이 되던 해인 1274년 피렌체에 위치한 한 유력자의 집에 들렀다. 그곳에서 그 집의 딸, 베아트리체(Beatrice)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그의 인생은 완전히 그녀에게 사로잡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집안의 의견 차이로 결혼하지 못한 채 떠돌다 한참 후 우연히, 길에서 극적으로 재회한다. 그는 당황한 채 그저 의례적인 인사만 나눈 채 다시 헤어져 영영 만날 수 없는 한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그 후 자신의 영육을 지배했던 그녀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자, 단테는 20년간 실성한 듯 그녀를 그리워하며 쓴 시를 묶어 [새로운 인생]이라는 시집을 세상에 토해낸다.

뛰어난 언변과 지성을 앞세워 유력 정치인으로도 활약했던 단테는 반대파에 밀려 피렌체에서 쫓겨난 후 불후의 장편 서사시 [신곡(La Divina Com media)]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죽기 전인 1321년 신곡의 마지막 ‘천국편’을 완성하고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사망한다. 그 후 못다 이룬 사랑의 대상인 베아트리체의 이름은 아직도 전 세계인들에게 ‘티 없이 아름답고 순진무구한 연인’을 지칭하는 상징이 됐다.

피렌체를 통과하는 아르노 강 위에는 아치 형태로 지어진 폰테 베키오라는 오래된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다리가 바로 단테가 꿈에도 잊지 못한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만났던 ‘운명의 다리’다. 한때 아르노강의 홍수로 파괴됐으나 다시 복구돼 지금은 다리 안쪽에 보석상,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짝사랑의 실연으로 아파하는 연인들의 마음을 찡하게 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여행 도중 비싼 진품 보석을 사는 사람이 있느냐?” “물론이지. 많이들 그렇게 한다”고 응수한다.

산타크로체 성당이 단테 성당으로 불리는 사연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가 구현한 단테의 [신곡]과 피렌체. / 사진:제공 사월의 책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광장에는 14세기에 지어진 성당이 작은 규모로 자리하고 있지만, 역시 발길을 재촉하게 만든다. ‘스탕달 증후군(Stendhal syn drome)’이란 용어의 탄생지인 피렌체 산타크로체 성당 전면부에는 단테의 조각상이 서 있어 이래저래 피렌체는 가슴을 뛰게 하는 곳이다. 이 신드롬은 예술품을 보고 순간 격한 감동과 전율을 느껴 마치 몸에 이상이 온 듯한 현상을 말한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바로 이 성당을 보고 심장이 뛰어 쓰러질 것 같은 이상 증상을 느낀 게 계기가 됐다.

성당 벽면 안내판은 조각가 미켈란젤로, 천문학자 갈릴레이, 정치철학자 브루니, 작곡가 로시니 등 300여 유명인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이곳이 이탈리아의 ‘국가적 판테온(神殿)’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정작 단테 본인은 이곳에 묻히기 싫다며 빈 무덤만 놓여 있는 상태로 알려져 있다. 현대 이탈리아 표준어가 단테 작품의 영향으로 피렌체가 속한 토스카나 방언을 기반으로 했다는 업적으로 그의 조각상이 성당 전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또한 그곳에는 단테의 짝사랑 연인이었던 베아트리체, 그리고 단테가 나중에 그녀를 잃고 집안의 강권에 의해 이곳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전(前) 부인도 이곳에 모두 묻혀 있어서 흔히 ‘단테 성당’으로도 불린다. 이곳 베아트리체 묘소 부근에 편지를 두고 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짝사랑으로 가슴을 앓고 있는 젊은이들의 발길을 재촉하게 만든다.

피렌체에는 또 단테가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져 시를 쏟아냈던 생가가 자리하고 있어 그의 생애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가 생존했던 13세기 피렌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생가에는 단테 탄생 700주년을 기념해 1965년 지은 박물관이 자리한다. 특히 1층은 그의 생애가 연대별로 잘 정리돼 있어 그의 족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단테의 얼굴을 3차원으로 재구성한 홀로그램도 볼 수 있다. 단테의 침실이 놓여 있는 2층에는 그가 위대한 사상가이자 시인이 되기까지 고뇌했던 문학적·철학적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단테가 죽은 지 174년 후(1495년) 전설적인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가 그린 ‘단테의 초상화’는 매우 침울해 보여 고달팠던 사랑의 후유증을 가늠케 한다.

단테가 12년 만에 완성한 그 유명한 서사시, [신곡(神曲)]은 인류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 속에서 그는 고대 로마의 한 시인과 짝사랑했던 여인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사후 세계인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한다. 신화 혹은 역사 속 인물들과 조우하며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 당시의 기독교 신앙을 통찰하며 운문 속에 담아내고 있다. 극 중의 단테는 결국 천국에 이르게 된다. 시의 일부 내용을 보면 그의 인간적 고뇌와 몸부림을 엿보게 된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아,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솟는다

나를 통하여 통곡의 거리로/ 나를 통하여 영원의 별을/ 나를 통하여 죄 많은 지옥의 백성이 모이는 거리에 이르나니/ 그 무엇도 내 앞에 없고/ 그 무엇도 내 뒤에 없으니/ 모든 희망을 버려라/ 큰 문을 지나는 자여! [신곡] '지옥편'

빛이 내리네/ 노랫소리 울려 퍼지고/ 빛이 내리네/ 우리의 사랑을/ 여기 있어 더욱 넘치게 하는 한 사람/ 빛은 힘/ 지혜의 빛 사랑의 빛/ 빛은 모든 것[신곡] ‘천국편’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에 헌정한 '군주론'


▎단테의 조각상이 서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 이탈리아의 ‘국가적 판테온’으로 소개된다. / 사진:고혜련
산타크로체성당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1469~1527)도 잠들어 있어 잠시 생각의 발길을 그쪽으로 돌리게 된다. 당시의 피렌체 권력자인 메디치 가문에 1513년 그가 헌정했다는 그 유명한 <군주론>에서 언급한 대목은 500여 년 전 마키아벨리의 전략·정치적 사고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 하면 무슨 짓을 했든 칭송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게 된다.”

그가 권력자에게 발탁될 목적으로 썼다고 하나 그 뜻은 성사되지 않았고 불운함 속에 여생을 살다가 1527년 58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니 그 순간 그 역시 얼마나 허망했을까. 마키아벨리는 귀족이 어떻게 권력을 잃게 되는지, 계급 간 권력투쟁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도 언급했다. 현세까지 자주 회자되는 그의 유명한 어록,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을 세상을 떠나면서도 여전히 가슴 속에 품고 있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처세술과 욕심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잠시 갖게 만든다.

이들 희로애락의 인간사가 기분을 잠시 무겁고 진지하게 만들지만 줄지어 운집해 있는 대단한 문화유산들은 여행자들을 어김없이 또 다른 감동의 도가니로 바삐 몰아넣는다. 우선 산타마리아 노벨라 중앙역에서 내려 10여 분을 걸어가면 피렌체의 정수인 두오모 대성당으로 갈 수 있다. 이들 멋진 문화유산은 역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 도보 30분 이내면 핵심 볼거리를 모두 즐길 수 있으므로 당연히 두오모로 달려가야 한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는 두오모가 가는 곳마다 넘치지만 이 성당은 사뭇 모양새부터 파격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대기시간만 5시간 걸리는 우피치 미술관


▎정치에서 도덕을 분리한 마키아벨리의 초상화. / 사진:위키피디아
이탈리아 어느 지역이든 대성당을 의미하는 두오모(Duomo)가 있지만 ‘꽃의 성모교회’라 불리는 이곳 두오모는 색다르다. 중세 피렌체가 얼마나 대단한 도시였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 꼽힌다. 대부분 대성당 하면 위압적인 고딕식 첨탑을 떠올리지만 높이 115m 두오모의 주황색 둥근 돔(쿠폴라라고 부름)은 지름이 43m인 품 넓고 푸근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별다른 지지대 없이 그 거대한 돔을 꼭대기에서 떡 버티게 만든,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창시자인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기술에 요즘의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성당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기하학적, 모자이크식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흰색 대리석 몸체는 성당이라기보다는 색다른 왕궁을 보는 듯하다. 착공 140년 만인 1436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그 규모가 위풍당당하다. 옥상 전망대로 가는 400여 개의 계단을 숨차게 올라가면 중세풍의 피렌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인기다. 두오모 바로 옆 8각형의 ‘산 조반니 세례당’은 6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로렌초 기베르티가 만든 ‘천국의 문’을 포함한 3개의 청동문 안에 담긴 조각 작품들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1581년 개관, 유럽 3대 미술관의 하나로 손꼽히는 우피치(Uffizi) 미술관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어 피렌체 여행의 필수코스다. 건물 기둥에는 피렌체의 빛나는 예술인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입장객이 몰리다 보니 15분 간격으로 30명에 한해 입장시키고 성수기에는 대기시간이 5시간에 이르므로 온라인 예약이 필수임을 알고 가야 허탕을 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명문가, 메디치 가문이 수집한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피렌체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의 본고장이 된 배경에는 메디치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당시 금융업으로 큰 재산을 일군 메디치가는 여러 가문의 권력투쟁을 잠재우기 위해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으로 학자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그런 방법이 곧 자신들이 지닌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가문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수단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천재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성서나 신화의 인물 속에 메디치 가문의 인물들이 버젓이 등장하게 되는 것도 그런 예다.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동방박사의 경배’를 보면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메디치가의 인물들을 연상케 그려져 시민들에게 경이로움과 위압감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준다.

피렌체 공화국의 초기 역사는 여러 가문의 권력투쟁으로 점철돼 있으나 이를 수습하는 리더십을 발휘한 가문이 바로 메디치가다. 우피치 미술관 2~3층에는 르네상스 시대를 몰고 온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의 본격적인 회화, 조각 작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우리나라 교과서 등에도 등장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등이 전시돼 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마르티니 등이 총망라돼 있어 그저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또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지명도가 높은 조각 작품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원본을 소지하고 있는 곳이다. ‘공화국의 자유정신을 표현해 달라’는 피렌체 정부의 요청으로 미켈란젤로가 29세의 젊은 나이에 5m의 흰색 대리석으로 빚어낸 다비드상은 불후의 명작이 돼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피렌체에서 한류의 영향력을 실감하다

피렌체나 로마·베네치아 등의 도시들이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이 ‘이탈리아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진정 실감 나는 현장이다. 그런데 여러 번 들렀던 이탈리아에서 필자가 처음 겪어본 일이 있었다. 아마도 유럽 고교생들의 수학여행 철이었던 것 같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고교생 무리는 “야! 한국 사람들이다”라고 환호하며 달려왔다. BTS 공연이나 [오징어 게임] 등을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을 통해 봤고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때마침 나폴리에서 맹활약 중이던 축구선수 김민재의 이름도 외쳐댔다.

저녁이 되면 피렌체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가자. 고풍스러우면서도 우아한 주황색 지붕들이 넘치는 중세풍의 환상적인 옛 도시를 통째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일몰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야경은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된다. 피렌체에서 영육으로 보고 느끼고 겪고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노을 속 풍경과 어우러져 진한 감동과 몰입을 선사하며 당신의 시간을 한동안 멈추게 할 것이다.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우리의 삶은 지나간 추억에 기대어 살면서, 다시 의미 있고 설레는 추억거리 발굴을 위해 끝없이 움직이며 채워가는 여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고혜련 - 칼럼니스트. 자연과 함께하기, 온 세상 여행하기가 요즘 주요 관심사다. 중앙일보 등 국내외 주요 일간지에서 기자·문화부장·런던특파원을 지냈다. [어머니, 당신은 내 운명], [힘내! 이제 다시 시작이야] 등 7권의 저서가 있다. 이화여대를 거쳐 미국 뉴저지주립대, 영국 런던대에서 국제정치·저널리즘을 전공했다. 현재 출판사 (주)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로 일한다.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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