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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5)] 유행어로 느껴보는 2023년 일본 

한신 타이거즈의 ‘아레(그것)’, 최고 유행어 등극하나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우승’… 18년 만에 도쿄 누른 오사카 시민 자부심 담겨
출생률 저하 뜻하는 ‘소령화’, 허상 속에 사는 사람 지칭하는 ‘에아푸’도 인기


▎‘아레(アレ)’는 9월 14일 탄생한 말로, 올해 일본 최고 유행어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아레는 일본어로 ‘그거, 그것’이라는 지시대명사다. 한신(阪神) 타이거즈가 18년 만에 일본 프로야구(NPB) 센트럴리그 정상에 올랐다. 현장에서 한신 감독인 오카다 아키노부 (岡田彰布)가 사용한 말로, TV 중계를 통해 일본 전체 유행어로 부상했다. / 사진:한신 타이거즈 SNS
모바일 만능 시대다. 모바일의 핵심 중 하나가 리뷰 수다. 일상사의 가치와 기준도 리뷰 수에 의해 결정된다. 이름도 모르는 아프리카 작은 나라의 사건·사고라지만, 리뷰 수가 급등하는 순간 글로벌 핫이슈로 돌변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특징이지만,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넘쳐서 문제다. 평생을 모바일 하나에 매달리며 살아도 끝내기 어려운 흥미로운 스토리가 디지털 세계에 넘실댄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중시하는 교육이지만, 필요한 것(Need)과 원하는 것(Want)을 구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바일 세계에서 보면 이미 한물간 교육으로 느껴진다. 디지털 쓰나미 속에서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본 스토리텔링 문화 핵심은 유행어


▎유행어는 짧은 단어를 통해 확산된다. 압축판 파일이라 불릴 수 있는 한자를 통한 교육이 사고 개발의 기둥이 될 수 있다. / 사진:유민호
정의와 상식의 기준은 모바일 리뷰 수다. 수백만~수천만 리뷰를 가진 사안이라면 그것 자체가 가치고 목적으로 정착된다. 리뷰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지를 살펴볼 필요도 이유도 없다. 페이크 뉴스라도 모두가 주목하고 흥미를 갖는다면 곧바로 팩트 대열에 올라설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필요한 것이고 원하는 것이다. 거의 매일 보도되던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 하마스 테러 뉴스와 함께 구석으로 내몰린다. 이미 시작됐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관련 리뷰 수도 격감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 또 다른 수천만~수억 리뷰의 흥미로운 뉴스로 대치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에서 보듯 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라진다고 해도 리뷰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우주 밖 사건’으로 처리된다.

국민 모두를 스티브 잡스 신자로 만드는 데 공헌한 리버럴 아트(Liberal Arts)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미학(美學)은 리버럴 아트의 기본이자 꽃이다. 미학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인간의 오감(五感)에 있다. 오해하기 쉬운데, 머리나 언어로 표현되는 형이상학이 아니다. 형이하학 차원의 맛보고 맡고 듣고 보고 느끼는 오감능력 향상과 평가가 미학의 목적이자 가치다. 오감을 통해 사물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 뒤에야 철학·사상·예술이 등장할 수 있다. 보지도 않은 채 이뤄지는 미술 평론, 듣지도 않고 펼쳐지는 음악 비평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다. 당연하지만, 디지털 세계는 무색·무취·무감의 세계다. 미학의 핵심 요소가 아예 무시된 공간이다. 최첨단 아이폰을 통해 비디오나 관련 스토리를 수백~수천 회 경험한다 해도 파리와 뉴욕에서 느끼는 오감 체험 단 한 번에도 못 미친다. 위인전 100권을 읽는 것보다도 존경하는 사람과 1분간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

일본은 디지털 시대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가는 희귀한 나라 중 하나다. 디지털 세계가 발전할수록 아날로그 일상에 대한 집착과 열정이 더 강해지는 특이한 곳이다. 일본에 들른 여행객이라면 느꼈겠지만, 멀리는 17세기 에도(江戸)에서부터 20세기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시대를 기리는 공간·이벤트·물건들이 ‘아주’ 많다. 인간 모두의 공통분모지만, 디지털 시대가 가속화할수록 아날로그 기억도 한층 더 강해진다. 일본은 아날로그 향수를 중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같은 기억을 실제 눈앞에 재현해내는 나라이기도 하다. 초대형 일회용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면서도 저렴하게,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일상으로서의 아날로그 세계다.

필자 판단이지만, 스토리텔링은 일본 아날로그 문화의 특징이자 핵심이다. 사건에 접하거나 사물을 대한 뒤 거기에 대한 집단 차원의 공감대에 기초해 흥미로운 스토리를 남긴다. 이후 대대로 이어지면서 어제의 기억을 되살리며 다듬어 가는 것이 스토리텔링 문화다. 언어의 한계는 생각의 한계이자 세계의 한계다. 언어를 통해 구체화한 스토리텔링이 넘칠수록 생각과 세계도 확장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 없다는 것은 하루살이, 눈앞의 현실만 보면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기본이지만, 감동적 스토리텔링은 총론이 아닌 각론에 있다. 승자와 패자식의 편 가르기가 드문 것도 일본 스토리텔링의 특징이다. 누구나 언제든지 승자가 될 수도, 패자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이념이나 일방통행 정의론도 극히 드물다. 모두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가자는 것이 스토리텔링 문화의 기본이자 기반이다.

12월은 1년간 스토리텔링의 총결산기


▎유행어는 시대의 얼굴이자 당대 역사의 키워드에 해당한다. 일본 전역 어디에 가도 수많은 역사 안내판들이 들어서 있다. / 사진:유민호
매년 12월은 1년간 스토리텔링의 총결산기다. 10대 뉴스, 올해의 히트 상품, 올해의 노래, 귀적(鬼籍)에 오른 저명인사를 비롯해 여러 각도에서의 결산이 이뤄진다. ‘올해의 유행어’도 그중 하나다. 일본인 대부분이 기다리는 연말 마침표 행사다. 유행어는 일본 스토리텔링 문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유행어 하나를 통해 시대·사회·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유행어가 갖는 배경과 의미, 남녀노소 반응을 통해 당대의 공기를 읽을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철지난 유행어를 듣는 순간 당대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어제와 비교하는 식의 아날로그 추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원래 올해의 유행어 선정 주최자는 신문사나 출판사에 국한됐다. 그러나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 플랫폼들이 선정 핵심 주체로 부상한다. 아날로그 지식인보다도 SNS로 날밤을 새우는 10~20대가 유행어 창조와 확산의 선봉이 된다. 매년 12월 12일 교토 사찰 기요미즈(清水寺)에서 발표되는‘올해의 한자(今年の漢字)’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도 통하는 유명한 유행어다.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영한 ‘전(戰)’이 올해의 한자로 결정됐다. 12월 발표될 올해의 유행어 후보 리스트라고 할까? 2023년 한 해 동안 화제가 된 유행어를 통해 팬데믹 종결 이후 1년간의 일본 공기를 살펴본다.

1. 소령화(消齢化). 올해의 유행어 상당 부분은 한국인도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알고 있거나 느끼지만,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거나 잊고 지냈던 것들이 많다. 소령화는 일본어 소자화(少子化)를 염두에 두면서 부상한 유행어다. 소자화는 출생률 저하를 의미한다. 지난해 일본의 합계 출산율, 즉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는 1.26명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0.78명이다. 한국인이 보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여유만만한 수치다. 그러나 소자화는 현재 일본 정치의 최대 현안 중 하나다.

소령화의 원어적 의미는 ‘나이가 사라진다’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전체가 고령으로 치닫지만, 행동·언어·사고가 청년기 그대로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한국에도 등장했을 법하지만, 60대 나이에 붉은색 머리 염색을 하고 팔뚝 문신에다가 귀걸이까지 하는 ‘아제’가 늘고 있다. 생각도 미래 지향적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 많다. 옷도 2030세대 못지않게 튀게 입고, 가방과 신발도 브랜드 중심에다가 청년 세대 판박이다. 주름진 얼굴만 아제일 뿐 건강하고 체형도 바르다. 기존 관점에서 본다면 ‘리버럴 불량 노인’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소령화는 인생 100세 시대를 느낄 변화 중 하나다. 4~5년 안에 소령화에 못 끼는 아제들이야말로 ‘한물간 불량 노인’으로 취급될지 모르겠다.

2. 개구리 현상(蛙化現象). 일본 문화의 특징이지만, 남녀노소 분야별로 나눠진 세계나 언어가 따로 존재한다. 그러나 영역은 다르지만, 공감대는 성별과 세대를 넘어선다는 점이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다. 노래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에도 볼 수 있지만,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부르는 노래가 다르다. 뽕짝 트로트 유행으로 과거 노래에 대한 청년층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아제들이 뽕짝과 트로트를 부르는 젊은 가수에 환호할 뿐이다. 정작 2030세대 다수가 아제 노래에 빠졌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은 조금 다르다. 필자가 좋아하는 가수지만, 1980년대 스타 이노유에 요수이(井上陽水), 나가부치 쓰요시(長渕剛)의 21세기 콘서트는 2030 세대들로 메워져 있다. 30~40년 전 노래라도 21세기 일상 곳곳에 녹아 있다.

개구리 현상은 올해 초 고등학생 사이에 화제가 된 유행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학생과 장년층으로 확대되며 전 국민 유행어로 정착한다. 원래 심리학 용어로, 독일 그림동화에 나오는 개구리 왕자를 모체로 한 유행어다. 개구리가 공주를 도와주면서 자기를 친구로 대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공주는 끝까지 거부하면서 개구리를 싫어한다. 우여곡절 끝에 개구리가 마법을 풀고 왕자로 변신해 공주와 결혼한다. 해피엔딩 동화지만 동화 속에서 공주의 개구리 혐오가 대단하다. 개구리 현상은 개구리를 대하는 공주처럼 혐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행위다. 평소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일수록 ‘한순간’ 싫어지면서 개구리 대하듯 차갑게 상대하는 식이다. 사랑을 속삭이는 관계지만, 어느 날 상대의 손톱에 낀 때를 보는 순간 갑자기 싫어지는 심리와 같다. 사랑한다면서 가까이 접근할수록 한층 더 징그럽게 보면서 멀리한다. 팬데믹 이후 세계지만, 상대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는 자기중심 세계관이 대세다. 개구리 취급을 받은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혐오 대상으로 추락한다. 순정이 전부가 아니다. 공격이야말로 최대의 방어다. 개구리 신세가 안 되려면 먼저 상대를 개구리로 만들라는 것이 0순위 대응법이다.

유행어 통해 당대 공기 읽을 수 있어


▎오시노코는 수직이 아닌 수평 문화의 결과다. 옆집 누이동생을 응원하는 기분으로 아이돌을 응원한다. / 사진:유민호
3. 유리벽(ガラスの崖). 여성 흑인 성소수자(LGBTQ)에 이어 개와 고양이도 포함하는 다양성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 정치 무대에서의 혁신안 중 하나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도 일상화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혁신 방안을 봐도 신예 여성 정치가들이 전면에 들어서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곧 총선이 닥치겠지만, 자민당 공천 기준 중 하나가 여성 퍼스트다. 조만간 여성 총리도 등장할 기세다.

남성 중심 세계에서 출세하기 어려운 환경, 즉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자는 결의가 여성 정치가 출현의 원동력일 듯하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척박하다. 눈에 나타난 ‘여성천하’가 결코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운 좋게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스타 여성이 몇몇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주변은 아제들로 메워져 있다. 수직개념으로서의 유리천장 파괴는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수평개념으로서의 여성 차별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이 유행어 유리벽이 갖는 진짜 의미다. 맛보기 유리천장용 스타 여성 몇 명보다도 사방팔방 남성 중심 유리벽 체제를 박살내자는 것이 유행어 유리벽이 탄생한 이유일 듯하다. 필자 판단이지만, 결국 대세는 유리천장과 유리벽 동시 파괴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유는 인구 격감, 아니 인구 소멸에 있다. 일할 사람이 사라지면서 남녀 가릴 수 없는 상황이 곧 밀려들 것이다.

4. 아레(アレ). 9월 14일 탄생한 말로, 올해 최고 유행어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아레는 일본어로 ‘그거, 그것’이라는 지시대명사다. 한신(阪神) 타이거즈가 18년 만에 일본 프로야구(NPB) 센트럴리그 정상에 올랐다. 현장에서 한신 감독인 오카다 아키노부(岡田彰布)가 사용한 말로, TV 중계를 통해 일본 전체 유행어로 부상했다.

고향을 강조하고 자랑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나 공식석상에서 한국인 대부분은 자기 출신지 공개를 꺼린다. 그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정치를 대표하던 지역감정, 아니 지역이란 단어 자체도 공식석상에서 사라진다. 일본에서는 출신지가 소개서 최상단에 올라간다. ‘홋카이도 출신, 와세다대 졸업, 25세, 야마모토…’라는 식의 소개가 기본이다. 한신타이거즈는 오사카(大阪)를 기반으로 한 팀이다. 오사카는 도쿄(東京)에 필적하는 관서지방 맏형 도시다. 관동지방 도쿄에 대한 경쟁의식이 대단하다. 시민들끼리의 연대의식도 아주 강하다. 2005년 이후 18년 만에 도쿄를 눌렀다는 점에서 오사카 시민들의 자부심이 절정에 달했다.

한신 감독 오카다는 경기 도중 ‘우승’이란 단어 자체를 기피해왔다. 우승 대신 ‘아레(그거, 그것)’라는 대명사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아레에 대한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식의 표현이다. 아레를 사용한 이유는 무려 17년이나 우승에서 멀어지면서 오사카 시민을 대할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레는 한신타이거즈의 모토인 ‘A.R.E’를 연결한 발음과 똑같다. ‘명확한 목표(Aim), 선배들을 존중(Respect), 각자 파워를 다한다(Empower)’는 단어 접두어 조합이다. 한신 모토 ‘아레’를 발판으로 한 ‘아레(우승)’가 마침내 18년 만에 성취된 셈이다.

도쿄를 대표하는 프로 야구팀은 교진(巨人)으로 통하는 요미우리(讀賣) 자이언츠다. 도쿄 기준으로 보면 오사카 한신의 아레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겠다. 오사카 기질이지만, 뭔가 시끄럽고 과장이 심하다. 일본에서 가장 운전하기 어려운 도시라고 한다면 오사카부터 떠오른다. 도쿄 중심 자민당에 대한 반발로 생긴 정당이 오사카를 발판으로 한 오사카 유신회(大阪維新の会)다. 아레가 득세를 한다는 것은 오사카만이 아닌, 도쿄 중앙 정치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레가 올해 최고 유행어가 될 경우 오사카 유신회의 정치력도 확장될 수 있을 듯하다.

디지털 시대를 옛 방식으로 살아가는 나라

5. 잘게 썬 고기입니다(ひき肉です). 지난 7월부터 폭발적으로 유행한 말로, 특히 초·중·고 10대 학생들에게 통하는 말이다. 중학생 6명으로 구성된 유튜브 채널 ‘동자승(ちょんまげ小僧)’ 중 한 명이 자기소개용 인사로 사용하면서 뜬 말이다. 박수를 치듯 양손을 때리고 몸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틀면서 던지는 인사다. 깊은 의미와 무관한 흥미로운 몸짓에 그치지만 중학생을 중심으로 한순간 유행한다. 한국이 그러하듯 유튜브 인플루언서는 일본 청소년의 장래 희망 중 하나다. 만화가, 야구선수, 요리사에 대한 꿈도 크지만, 돈도 벌면서 인생도 즐기고 유명해질 수 있는 유튜버에 대한 동경이 남다르다. 동자승의 유행어 ‘잘게 썬 고기입니다’는 중학생 스스로가 만들어낸 최초의 전국 단위 유행어다. 아이돌 그룹에서 보듯 보통 초·중학생 스타의 뒤에는 부모나 연예전문사가 버티고 있다. 동자승은 초·중학생 사이의 SNS를 통해 유명해진, 자생·자발·자력 유튜버다. ‘잘게 썬 고기입니다’라는 말은 유튜브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초·중학생들의 꿈이 새겨진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상식이지만, SNS 세계는 모두에게 열려 있고 평등하다. 초·중학생 유튜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부모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막을 명분도, 막을 방법도 없다. 함께 논의하면서 스타 유튜버를 꿈꾸는 자식을 돕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 될 듯하다.

6. 에아푸(エアプ). 인터넷 시대 상식이지만, 서울에 한 번도 안 간 사람이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도 서울을 더 많이 안다. 그 어떤 문제가 나와도 한두 마디 거들 수 있는 것이 모바일 시대 풍경이다. 재벌 사칭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재벌 관련 정보나 관행을 인터넷으로 체득한 사람이 넘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첫눈에 사기라는 걸 알겠지만, 돈에 눈이 멀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모바일에 넘치는 영상과 텍스트 정보를 통한 가공된 재벌관(観)에 빠져들면서 진위 여부도 가리기 어려워진다.

에아푸는 공기의 에어(Air)와 플레이어(Player)를 합친 말이다. 공기는 가짜·허상이란 의미다. 에아푸는 허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특히 모바일에서 얻은 쥐꼬리만 한 정보를 통해 자기가 그 분야에 정통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미술관에서의 명화 관람은 한 번도 안 했지만, 다빈치를 꿰차고 있는 식의 평론가를 미술 에아푸라고 부른다. 산에 한 번도 안 가고도 등산화·옷·비상식량에 대해 박식한 사람은 등산 에아푸라 부를 수 있다. 팬데믹은 유행어 에아푸가 뜬 가장 큰 이유다. 현장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책상머리 에아푸로 남게 됐기 때문이다. 나쁜 의미로 사용하지만, 사실 인간 누구나 에아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에 간 적도 없지만, 선수의 역대 기록은 물론 과거 연봉도 전부 꿰차고 있는 스포츠 에아푸가 주변에 차고 넘친다.

모바일 시대… 유행어 선정 주체 바뀌기도

7. 최애의 아이(推しの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인 ‘최애의 아이’를 모른다면 꼰대 계열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2020년에 발간된 일본 만화를 영상화한 작품으로, 한국 10대라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열광한다. 극중 나오는 노래는 전 세계에 퍼진 글로벌 히트곡이기도 하다. 사고로 죽은 뒤 아이돌로 부활한 남매가 벌이는 연예계 드라마로, 살인과 복수도 등장하는 기묘한 애니메이션이다. 제목으로 단 최애의 아이는 원래 일본어 제목 ‘오시노코(推しの子)’를 의역한 것이다. 최애는 한자로 ‘최고로 사랑하는(最愛)’을 의미한다. 일본어 오시노코는 ‘추천하면서 응원하는 아이’라는 의미로, 지난해부터 줄곧 유행어에 올라서 있다.

오시노코의 주된 대상은 아이돌이나 연예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응원하는 행위가 ‘오시(推し)’다. 구체적으로는 인터넷 공간에서 응원 아이돌에 관한 리뷰 수를 올리거나 사인회에 가서 박수를 치고 사진도 찍은 뒤 상품을 구매해 아이돌의 인기를 올리는 식이다. 일본인들이 한국 연예인 공연장에 가고, 사진도 고가로 구입하는 행위도 오시의 일환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식의 나치 친위대식 팬덤 행위는 오시와 무관하다. 유행어 오시노코도 크게 보면 팬데믹 후유증으로 볼 수 있다.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모바일이나 디지털 상품을 통한 아이돌 응원 문화가 2020년 이후 탄생했다. 한국과 일본 아이돌의 큰 차이지만, 일본 아이돌은 옆집 누이동생 같은 친근한 존재다. 반면 한국 아이돌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름 위 대스타로 느껴진다. 오시노코라는 유행어는 옆집 누이동생으로서의 아이돌이란 전제 하에 탄생했다. 유행어 오시노코는 수직이 아닌 수평문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8. 왜 왜(なぁぜなぁぜ). 여성 아이돌의 노래 가사를 통해 급부상한 유행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왜 왜’라고 되묻는 식이다. 일본어 ‘왜’는 ‘나제(なぜ)’로 발음한다. 유행어는 나제를 조금 길게 늘어뜨리면서 ‘나아제 나아제’ 두 번 반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평범한 말이지만, 갑자기 뜬 이유는 애교가 넘치고, 한 번이 아닌 두 번에 걸쳐 묻는다는 점에 있다. 아이돌 노래 가사답게 뭔가 앙증스러운 느낌이 묻어난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왜냐고 묻는 질문 내용에 있다. 질문은 생활 속에 드리워진 부조리· 모순·불합리·비상식에서 출발한다. 좀 심하면 자조적이거나 냉소적인 얘기가 될 수 있다. “청소하는 건 싫어하지만, 깨끗한 방을 좋아하는 건 왜 왜?” “담배는 절대 안 피우지만 대마초에는 간단히 빠지는 건 왜 왜?” 유행어 출처가 2030세대라는 점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반항이 ‘왜 왜’ 유행어에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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