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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광릉숲에서 만난 생태계 환원자 

식물도 동물도 아닌, 제3의 생물 ‘균류’ 버섯 

최기웅 기자
지구상 존재하는 약 100만 종의 균류 중 90%는 규명되지 않은 미지의 존재
버섯 연구는 생물 다양성 이해의 출발점… 국내서 확인된 버섯만 총 2215종


▎지름 9cm의 배지 위에 신종 버섯 후보종이 거미줄처럼 균사체를 형성하며 자라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 광릉숲에서 발견된 버섯으로 균사체가 영양덩어리인 검은색 균핵을 형성한 모습이다.
깊은 산속 나무 그늘에서 고개를 내민 형형색색의 작은 생명체 버섯. 인간은 식용이나 약용으로, 곤충은 집으로 이용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자연의 청소부’, ‘생태계의 환원자’ 등으로도 불리는 버섯은 자연의 유기물을 무기물로 분해하는 생태계의 필수요소다. 따라서 버섯 분류 연구는 생물 다양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버섯은 생물 분류학상으로 식물도 동물도 아닌 제3의 생물인 균류다. 지구에는 약 100만 종의 균류가 존재하지만 그중 대략 90%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선 경기도 포천시 광릉숲에서 균을 분류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버섯을 연구하는 산림청 국립수목원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 박사들의 탐사 여정을 따라가 봤다. 버섯 연구는 주로 산림에서 이루어지는데, 광릉숲은 수백 년 동안 산림 생태계가 고스란히 보존돼 다양한 종류의 버섯을 탐사할 수 있는 중요 연구지다. “버섯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크기이며, 곰팡이 고등균류 생식관 중의 하나”라고 한상국 연구관이 탐사 준비를 하며 말했다. 이윽고 광릉숲에 꽃송이버섯이 피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채집에 나선다.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한 연구관은 금세 버섯이 있는 곳을 찾았다. “버섯은 종류마다 발생 시기가 모두 다르지만 자주 다녀서 손금 보듯 훤히 꿰고 있죠”라고 한 연구관이 설명한다. 채집과 기록을 해야 하는 현장조사에서는 삽과 카메라가 핵심 준비물이다. 버섯을 채집하기 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먼저 촬영한다. “사진이 중요해요. 채집 후엔 수분이 빠져나가 제 모습을 잃기 쉽거든요.” 함께 탐사에 나선 곽영남 전문연구원의 설명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버섯의 형태는 ‘자실체’라 부른다. 식물의 꽃에 해당하는 자실체는 버섯의 생식기관이기도 하다. 꽃이 잠깐 피었다가 사라지듯이 버섯도 마찬가지다. 버섯은 생애 대부분을 땅속에서 균사체라고 불리는 실처럼 뻗은 덩굴 망의 모습으로 보낸다. 그러다 적절한 습도와 온도가 갖춰지면 자실체를 형성하고 포자를 뿌려 번식을 한다.

사진 촬영에 이어 습도와 온도까지 체크한 다음에야 꽃송이버섯을 채집 봉투에 담아 산림생물표본관으로 향한다. 채집한 버섯은 보존을 위해 건조한 뒤 표본으로 만든다. 표본은 연구 및 개발, 품종개량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곽 전문연구원은 “버섯을 이용해 포장재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스티로폼 대체 소재를 만드는 실험도 하고 있어요. 버섯의 활용성이 무궁무진해요”라고 설명했다.

버섯 연구는 식용 가능 여부와 독성 구분을 위해 시작됐지만, 이제는 체계적인 종 분류로까지 확장됐다. 신종균의 발견 또한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데, 균류 중 국내에서 확인된 버섯 종류는 모두 2215종이나 된다. 광릉숲에서 발견된 신종 후보군도 표본관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신종은 비슷한 개체와의 차이점과 특징 등을 규명해서 학회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한 연구관은 “만약 버섯이 없으면 숲은 나무 등의 폐기물들로 가득할 거예요”라며 “먹거리로서 버섯의 역할보다 자연에서 생태계를 순환시키고 균형을 이뤄주는 환원자로서의 역할이 훨씬 커요”라고 설명했다. 한 연구관은 이어 “균류는 현재 활용성보다 미지의 영역이 더 많아요. 이곳 광릉숲에서 그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게 저희 임무죠”라고 전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 곽영남 전문연구원, 한상국 연구관이 꽃송이버섯을 채취하기 전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광릉숲에서 채집한 다양한 버섯과 식물들.



▎버섯은 곤충에게는 집이 돼주고, 자연의 유기물을 무기물로 분해하는 생태계의 필수요소다.



▎곽영남 전문연구원이 꽃송이버섯을 채취하고 있다.



▎나무에 붙어 자란 말굽버섯에 집을 짓고 사는 네점무늬무당벌레붙이.



▎산림생물표본관에 보관 중인 버섯 기준표본(holotype specimen). 생물의 새로운 종을 발견해 발표할 때 기준이 되는, 세계에 하나뿐인 표본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연구 중인 신종후보종, 아까시흰구멍버섯, 시루뻔버섯의 균사.
- 사진·글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407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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