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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한국기업경영종합연구원장 - “이건희 회장은 서번트 리더십 갖춘 슈퍼 리더” 

 

대담 나권일 포브스코리아 편집장·사진 전민규 기자

▎김성수 전 한국경영사학회장은 국내 경영학계에서 호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한 학자들 중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그는 지금도 연구원으로 날마다 출근해 한국 기업들의 성장사와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김성수(70)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전 한국경영 사학회장)는 국내 경영학계에서 호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연구한 학자들 중 최고 권위자로 통한다. 2005년에는 한국경영사학회를 주도하며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연구’를 진행했고,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목계경영’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요약해 2012년 『목계경영스토리』라는 단행본으로 펴내기도 했다. 『성공한 창조경영자 기업가정신』, 『21세기 혁신적 리더십』등 지금까지 40여 권의 경영서를 저술한 유명 학자이기도 하다.

지난 3월 4일, 그가 몸담고 있는 서울 삼성동 소재 한국 기업경영종합연구원 사무실을 찾았다. 경희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그는 지금도 연구원으로 날마다 출근해 한국 기업들의 성장사와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김 교수는 포브스코리아의 이번 특별기획을 매우 반기며 특히 삼성그룹 관련 기획과 자료 지원에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교용과 부의 기회를 창출하는 기업가는 영웅

호암선생에 대해 많이 연구하신 것으로 압니다. 교수님께서 연구하신 호암은 어떤 기업가였습니까?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1981년 취임사에서 “신념을 가지고 새로운 고용과 부의 기회를 창출하는 기업가는 영웅”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호암이 바로 그와 같은 유형의 기업가입니다. 그 분의 기업가 정신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집약한 신념체계이며, 일종의 강령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호암은 확고한 신념체계를 바탕으로 경영현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지금의 삼성을 정상의 위치로 끌어올렸습니다.

삼성과 호암 하면 먼저 사업보국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렇습니다. 호암은 자신의 기업가적 능력과 경험을 나라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실현하려고 늘 노력했습니다. 『호암자전』에 따르면, 그는 8·15 해방이 되자 일제의 억압 밑에서 마음대로 기업활동을 할 수 없었던 우리 기업가들에게 국민경제의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고 ‘사업보국의 차원’에서 기업의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업을 천직으로 생각했던 호암은 사업을 통해 애국을 실천하겠다고 생각했고, 해방 직후 대구에서 이승만 박사를 만난 후 한 평생 이 박사의 애국사상을 행동지표로 삼으면서 기업을 성공시켜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의지를 굳혔다고 합니다.

기업가로서 호암의 어떤 점이 특히 교훈적이라고 보십니까?

호암은 해방 이후 안일한 방법으로 기업체를 불하받지도 않았고, 투기업종에 뛰어들어 일확천금을 노리지도 않았습니다. 사업을 천직으로 알고 사업보국의 차원에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을 찾아서 투자하고 합리적으로 경영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삼성물산공사 창설에 이어 제일제당, 제일모직,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등 무역업, 경공업, 중공업 등의 순서로 국가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업종을 순차적으로 선택하여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탁월한 수완으로 경영에 성공했습니다.

호암은 용인술의 귀재였다고 하는데 실제 어느 정도였나요?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고용하지 말라.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되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이것이 호암 용인술의 요체입니다. 제가 연구한 결과 호암의 천재적 용인술은 그가 사업에 투신할 당시부터 이미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호암은 26세에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차릴 때부터 합심협동(合心協同)의 신념으로 동업자인 정현용과 박정원을 자기사람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사람관리를 잘했지요.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개업한 후에도 일본 유학 시절의 친구인 이순근을 지배인으로 맞이하여 삼성상회를 본 궤도에 올려 놓습니다. 삼성상회 경영일체를 이순근에게 맡김으로써 지배인이 책임지고 경영하도록 동기를 부여하였지요.

호암의 사업가 DNA를 이어받아 발전시킨 이건희 회장의 기업가정신의 요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먼저 초일류기업주의죠. 고객만족주의, 윤리경영주의, 사회적책임정신, 천재중시주의도 꼽을 수 있습니다. 예전엔 한 명의 군주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타고난 천재 한 명이 10만, 2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천재중시주의가 지금의 글로벌 삼성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술혁신주의와 디자인경영도 탁월한 기업가정신입니다. 특히 디자인경영은 아버지인 호암도 생각지 못했던 선진적인 것입니다. 이번에 스마트폰 갤럭시 S6에서 보듯이 삼성이 단시간에 세계 일류의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기업이 된 것은 이건희 회장의 디자인경영의 공로라고 봐야죠.

호암의 리더십과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신 것으로 압니다. 두 분의 리더십에 차이가 있나요?

호암 선생과 이건희 회장의 초기 리더십은 카리스마 리더십, 변혁적 리더십이었습니다. 복종과 이상의 실현, 영감과 지적 자극, 개별적 배려 등이 특징이죠.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나중에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서번트 리더십으로 발전합니다. 공감하고 치유하는 차원 높은 리더십이 바로 서번트 리더십의 덕목이죠. 이를테면 “나는 삼성을 치유하는 개념으로 이끌어가면서 경영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발언을 보면 서번트리더십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한 목계와 경청의 처세가 바로 서번트리더십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지요.

이건희 회장의 경영 핵심은 ‘목계’와 ‘경청’

그러고보니 교수님이 주창하신 목계경영의 요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목계경영은 호암선생이 이건희 회장을 성공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평생의 좌우명으로 일러준 처세의 지혜입니다. 한마디로 ‘세파에 초연하라’는 겁니다. 호암 선생이 50년 동안 삼성을 경영하면서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잖아요. 당신의 경험을 통해서 아들에게 세상에 대처하는 지혜를 일러 준 겁니다. 잘 알다시피 목계(木鷄)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진 장자(莊子)의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잘 훈련된 닭이 마치 나무로 만든 닭처럼’ 되어, 마침내 덕(德)이 완전해졌기 때문에 ‘어떠한 닭이 달려들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 이죠.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것이 가장 강하고, 지혜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호암 선생은 ‘경청(傾聽)’이라는 두 글자를 주면서, ‘우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대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로서 지켜야 할 금과옥조라고 유훈을 남겼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그 유훈을 잘 실천했다고 보십니까

이건희 회장이 세상이 다 아는 기업가이고 부자이지만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이나 언론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늘 어깨를 구부리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잖아요. 목계의 교훈과 남의 말을 들으려는 ‘경청’,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겸손한 자세로 은자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라고 봅니다. 세파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승패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무적의 강자 아닌가요!

- 대담 나권일 포브스코리아 편집장

- 사진 전민규 기자

201504호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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