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몰입의 자세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사장
극심한 창작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비결이 있다면 ‘몰입의 자세’라고 말하고 싶다. 몰입이란 무언가에 흠뻑 빠져 심취해 있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한다.


식품업계 CEO로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일은 역시 신제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작업이다. 이미 포화시장이라고 일컫는 음료시장에서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잠재욕구(unmet needs)를 찾아가는 일은 보람과 희열을 느끼기에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극심한 창작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방법이 있다면 ‘몰입의 자세’라고 말하고 싶다. 몰입이란 무언가에 흠뻑 빠져 심취해 있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한다. 원하는 바를 화두 삼아 꽉 붙들고 일념삼매에 빠지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선지식인의 지혜를 빌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새겨두어야 할 대목이다.

필자가 경험한 몰입의 첫경험은 소싯적 장구를 배우면서였다. 대학시절 수학여행으로 용인 민속촌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야외 원형극장에서 풍물패의 판 굿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이가 50~60세가 된 어른들이 장구와 북 등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자기 몸을 돌리면서 큰 원을 그리는 동작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판굿에서도 가장 어렵다고 하는 자반 뒤집기 동작이었다.

흥미롭게 구경하는 중에 전율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 무리 중에 장구를 연주하는 분과 눈을 마주쳤는데 힘든 표정이기보다는 행복해하고 신명이 난 눈빛이었다. 여행에서 돌아 오는 대로 장구를 배우기로 결심을 하고 풍물 강습회를 찾았다. 노인의 눈빛을 닮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배우는 도중 가장 빠른 장단인 휘몰이를 연주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저히 따라 갈 수 가 없었다. 소질이 없나 보다 하고 포기를 하고 싶었지만 참고 끝까지 연습을 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느 ‘찰나의 순간’에 휘몰이 장단이 멋지게 연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가운데 내 몸은 장구와 함께 공명이 일어나 숨소리 조차도 잦아들고 먼데 잔 가락 소리만이 아련하게 울리는 진공상태가 되었다. 이것이 무아지경의 느낌인가 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원하는 결과는 각고의 노력 끝에 한 순간 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치열한 몰입의 결과라는 깨달음이었다.

몰입의 힘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무의식마저도 선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몰입의 대상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는 개개인의 경험과 위치, 소양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신제품 개발의 경우 몰입의 대상은 소비자를 겨냥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수익을 창출하는 히트상품을 만들겠다는 일념보다는 소비자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소명감이 바탕이 된다면 그 결과는 훨씬 큰 보람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사장

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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