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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사계의 철학 

 

노성호 뿌브와르 대표
비발디 사계의 진정한 가치는 단지 음악에만 있지 않다. 사계에는 철학이 숨어 있고 인류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많이 듣는 클래식음악은 뭘까. 비발디의 사계(四季)다. 클래식음악 소비자로서 필자는 사계 CD만 30종류 넘게 가지고 있다. 사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비발디 사계 속의 계절 풍경이 세계에서 가장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비발디 사계는 이탈리아의 계절을 노래한 소네트(詩)를 기초로 곡을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인이 생각하는 사계절의 상징인 ‘봄꽃, 여름비, 가을단풍, 겨울눈’이 없거나 뚜렷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소 이질적인 ‘목동’이나 ‘사냥’이 등장한다. 그러나 비발디 사계의 진정한 가치는 단지 음악에만 있지 않다. 사계에는 철학이 숨어 있고 더불어 인류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시인이 시로 계절을 노래했다. 중요한 건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별로 쓴 시는 많지만 사계로 한꺼번에 묶어 쓴 시는 별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비발디가 사계에 곡을 붙인 건 1723년께다. 따라서 유럽에서 사계에 관한 시가 등장한 건 이보다 빨라야 50년 전쯤, 아니 더 당겨도 1600년대에 선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인류문명발달사를 떠올리면 너무 늦은 느낌이다. 겨우 400년 전이라니.

현재로서는 추정이지만 인류의 평균수명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1678년생인 비발디는 50세를 넘게 살았지만 1900년대 초반까지도 인류의 평균수명은 40세를 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계는 최소한 인류가 50세를 넘어 인생을 관조할 위치에 있어야만 음미할 수 있는 단어다.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긴 단어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동양을 대표하는 시인인 이백이나 두보의 시집에서도 사계(四時가 옛 표현)는 찾지 못했다. 봄꽃이나 가을달 등 각 계절을 대표하는 시는 있어도 계절을 통합한 사계는 청나라에 와서 오종애(吳宗愛 1651~1671)라는 여류시인에 의해 등장할 뿐이다. 물론 당나라 때부터 내려왔다는 농사를 돕기 위한 사시찬요나 동진(東晋 344~406)에 등장했다는 계절별로 4자씩 16자짜리 시가 있지만 이는 병풍에 담을 서화나 실생활을 위해 만든 것으로 시인의 솜씨라고 하긴 어렵다.

의외로 현재까지 가장 세련된 사계에 관한 시는 한국에 있다. 조선시대 윤선도의 어부사시가나 고려 말 맹사성의 강호사시사는 대표적인 사계에 관한 시다. 그러나 진짜는 1200년대 초에 등장한다. 고려 무신집권기 때의 진각(眞覺) 국사(1178~1233)의 사시유감(四時有感)이다. 그의 유작인 무의자(無衣子)시집에 실린 시로 계절별로 각각 20자씩 모두 80자로 된 시다. 계절별로 2개의 시를 쓴 셈이다. 한자의 특성을 잘 살렸다고 하겠지만 사계절이 끝없이 돌고 돈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중 가을만 소개해본다. 목쇠추참일(木衰秋慘日) 선군추비풍(蟬窘夕悲風) 독야고송학(獨也古松鶴) 영욕해여동(榮辱奚汝同). ‘나뭇가지조차 앙상해진 슬픈 가을 날/ 매미울음은 처량한 저녁바람이 되었구나/ 홀로 노송 위에 앉아있는 학아/ 어찌 세상 영욕을 함께 하려는가.’

- 노성호 뿌브와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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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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