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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9) 

모리스 센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모리스 센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아주 짧다. 10문장, 338단어다. 표지까지 26장에 불과하다. 어린이와 성인의 차이점, 어쩌면 그 공통점에 관해 묻는 그림책이다.

우리는 어린이를 가르치고 보호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 ‘어린이는 어른의 어버이’라는 인식도 있다. 그런데 자신의 어린이 시절을 ‘제대로’ 기억하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의 기억은 끊임없이 ‘고쳐쓰기(rewriting)’의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부모님이나 형·누나, 친척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어렸을 때 너는 정말 와일드(wild)했었지”, “너는 어렸을 때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어. 그런데 참 잘 자랐구나”라는 식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영어 와일드(wild)에는 ‘야생의, 자연 그대로의, 사람이 손대지 않은, 제멋대로 구는, 사나운, 격렬한, 마구 흥분한, 몹시 화를 내는, 무모한, 터무니없는’ 등의 뜻이 있다.

어린이와 성인의 차이점 묻는 그림책

어린이가 성인이 된다는 것은 야생을 벗어나는 과정일까. 어른이 어린이보다 우월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성장은 ‘야생에서 문명’으로 가는 과정이다. 그 반대로 ‘문명에서 야생’으로 가는 과정은 아닐까.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 1928~2012)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괴물들이 사는 나라(Where the Wild Things Are)』(1963)는 아주 짧다. 10문장, 338단어다. 표지까지 26장에 불과하다. 어린이와 성인의 차이점, 어쩌면 그 공통점에 관해 묻는 그림책(picture book)이다. 분노와 야생을 공통분모로 들 수 있다.

미국에서만 1000만 부 이상, 세계의 나머지 나라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렸다. 3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다.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모리스 센닥에게 ‘국가예술메달(National Medal of Arts)’을 수여했다. 미국에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예술 분야 최고의 상이다. 센닥의 그림은 워낙 유명하기에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비싼 가격에 팔렸다. 여전히 페이퍼백보다는 하드커버가 더 많이 팔리는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아직도 독자들은 회갑을 바라보는 이 책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어린이의 의식 세계에 대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의 생각을 바꿔놓은 책이다.(‘베스트셀러 신(神)’이 있다면, 그의 선택은 미스터리다. ‘베스트셀러 신’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도 괜찮을 듯.)

주인공은 남자 어린이 맥스(Max)다. 맥스는 ‘말을 안 듣는(naughty)’ 말썽꾸러기다. 늑대 복장(wolf suit)을 한 맥스는 화난 표정으로 큰 망치를 들고 집 안에 못질한다. 못된 표정을 지으며, 포크를 들고 개를 쫓아다닌다. 포크로 개를 찍으려는 것일까. 살아 있는 개를 잡아먹겠다는 뜻이었을까.

참다못한 엄마가 맥스에게 “와일드 싱(WILD THING)”이라고 고함쳤다. ‘싱(thing)’, 즉 ‘것’은 어떤 감정을 실어 사람·동물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WILD THING’은 한글판에서 ‘괴물’로 번역됐다. ‘막돼먹은 놈’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었겠다. 엄마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자, 맥스는 화난 표정으로 엄마에게 “엄마를 먹어버리겠어(I’ll EAT YOU UP)”라고 대꾸한다.

엄마는 맥스에게 벌을 준다. 방으로 가라고 한다. 때리지는 않는다. 오늘 저녁은 굶기기로 한다. 제 방에 들어간 맥스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의 슬픈 표정은 이내 즐거운 표정으로 바뀐다. 맥스는 마법의 나라로 떠난다. 방의 벽들이 사라지고 숲으로 변한다.

수많은 해석 낳은 작품


맥스는 ‘맥스’라는 이름의 ‘자가용 배’를 타고 1년 넘게 항해해 괴물들(wild things)이 사는 섬에 당도한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무서운 으르렁 소리를 내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다.

괴물들 앞에서 기죽을 맥스가 아니다. 괴물들에게 “가만히 있어(BE STILL!)”라고 소리친다. 눈을 깜박거리지 않고 괴물들을 응시한다. 눈싸움에 지면 괴물들이 맥스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맥스가 이겼다. 괴물들이 맥스를 와일드한 것 중에서도 가장 와일드하다고 ‘엄지 척’ 하며 인정한다. 괴물들을 제압한 맥스는 그들의 왕이 된다.

맥스는 왕으로서 괴물들에게 한바탕 소란(rumpus)을 피우라고 명령한다. 신나게 놀 만큼 논 다음, 맥스 왕은 “이제 그만!(Now stop!)”이라고 명령한다. 또 괴물들에게 저녁밥도 주지 않고 잠자리에 들라고 명령한다.(우리 속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가 생각난다.)

화가 풀리자 맥스는 집이 그리워진다. 어디선가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난다. 맥스는 “사랑한다”, “먹어버리겠다”며 떠나지 말라는 ‘괴물 백성’들을 뒤로하고 떠난다. 맥스가 1년여 항해 끝에 집에 돌아와보니 따뜻한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의 마음속에서는 2년이 넘는 세월도 ‘찰나(刹那)’에 불과할 때도 있다.

꿈보다 해몽이다.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수많은 해석이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신경과 의사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분석학으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해석하는가 하면, 식민주의 이론이 동원되기도 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하다. 해설 거리가 많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아니라, 베스트셀러가 많은 해설을 부른다.

이 책의 ‘독해 포인트’ 중 하나는 어린이에게 애정(affection) 표현과 공격성(aggression)은 미분리 상태라는 것이다. ‘먹어버리겠다’는 표현이 그렇다. (저자는 어린이들의 팬레터에 일일이 답장했다. 그가 받은 최고의 찬사는 “우리 아이가 당신에게 받은 카드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카드를 먹어버렸어요”였다.)

이 책은 학교와 가정에서 어린이와 대화를 이끄는 데 사용된다. 선생님이나 부모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아이에게 할 수 있다. “맥스가 받은 벌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나요?(Do you think that Max’s punishment is fair?)” “(그림에 나오는) 항해 중인 맥스를 추적하는 바다 괴물은 텍스트에는 나오지 않아요. 이유가 뭘까요?(The sea monster that appears behind Max as he sails awayis never mentioned in the text: why do you think that is?)” “맥스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어요.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때 무엇을 하나요?(Max is having fun with his friends. What do you do with your friends to have fun?)”

책의 원제 ‘야생마가 있는 곳’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5년 4월 6일 열린 연례 부활절 행사에서 어린이들에게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어주고 있다. / 사진:미 백악관 제공
맥스의 이야기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1904~1987)이 말한 전형적인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에 속한다. 영웅은 모험을 떠난다. 위기를 겪지만 결국 승리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집이나 고향에 돌아온다.

둘 중 하나다. 모든 인간은 어떤 영웅을 롤 모델로 삼거나 그 자신이 새로운 영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속 맥스는 어머니에게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한다. 꾸중을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화가 나고 섭섭하다. 하지만 맥스는 상상 속에서 영웅이 된다. 영웅으로 대접받자 화가 풀린다. 화가 풀리자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왕 노릇도 한때. 집으로 돌아온다. 집만 한 곳은 없다.(There is no place like home.)

작품에서 어머니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소리만 들릴 뿐.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어머니가 아들 맥스에게 고함친 이유는 기분(mood)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작가 센닥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이디시어(Yidish)로 ‘들짐승(vilde chaya, wild animal)’이라고 불렀다.

작가는 어렸을 때 실제로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 때가 많았다. 너무나 가난하거나 벌을 받은 게 아니라 어머니의 음식 솜씨가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

괴물들의 모티브를 제공한 것은 작가의 친척들이다. 그가 어렸을 때 외삼촌들과 이모들은 거의 매주 일요일 저녁 식사를 하러 센닥 아버지의 집을 방문했다. ‘이빨이 누런’ 괴물 같은 모습의 친척들은 센닥의 뺨을 꼬집으며 “먹어버리겠다”고 했다. 센닥은 그런 친척들이 정말 싫었던 듯. ‘먹어버리겠다’는 말이 애정의 표현이라는 것은 한참 뒤에 깨달은 듯하다.

이 책의 원제는 ‘야생마가 있는 곳(Where The Wild Horses Are)’이었다. 하지만 저자 센닥은 자신이 말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괴물’은 그릴 수 있었기에 제목과 내용이 바뀌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한동안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일부 도서관에서 이 책을 구매하지 않았다.

모리스 센닥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그린 이미지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다.(The people who are frightened by my images and stories are adults, not children.)” “나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지 않는다. 나는 어른들을 위해 쓰지 않는다. 나는 그저 쓸 뿐이다.(I don’t write for children. I don’t write for adults. I just write.)”

저자는 이 책의 주제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의 주제가 ‘생존(survival)’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오직 한 가지 주제만 있을 뿐이다. 내가 집착하는 질문은 ‘어린이들은 어떻게 생존하는가’다.(I only have one subject. The question I am obsessed with is How do children survive?)”

이 책은 어린이들의 분노와 생존 이전에, 어른들의 생존에 관한 책이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분노를 어떻게 극복할까. 이 책이 던지는 유일한 질문이다.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스가 영화로 만들어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센닥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으로 건너온 친척들은 센닥의 뺨을 꼬집으며 괴롭혔지만, 유럽에 남은 친척들은 대부분 홀로코스트(the Holocaust)에 희생돼 죽임을 당했다. 센닥은 그 사실을 13살 때 알게 됐다.

삶을 바라보는 센닥의 시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사건 중 하나는 1932년에 일어났다. 찰스 린드버그(1902~1974)의 아들이 유괴된 사건이다. 미국의 비행기 조종사·군인인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최초로 대서양 횡단 무착륙 단독 비행에 성공했으며, 1931년 북태평양 횡단 비행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린드버그마저도 아들의 유괴·사망사건에 무기력했다. 당시 4살도 채 되지 않은 센닥은 린드버그 아들 유괴 사건을 생생히 기억했다.

센닥은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린드버그 같은 유명한 사람의 자식도 납치당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처럼 가난한 폴란드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은 정말 사는 게 힘들겠구나. 린드버그 아들의 유괴·사망 사건은 센닥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trauma)를 남겼다. 그는 죽음뿐만 아니라 가난의 그늘 속에 살았다.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전 재산을 날린 상태였다.

센닥은 어렸을 때 몸이 약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브루클린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지 않았다. 대학에 가라는 부모의 바람을 무시했다. 대신 밤에 그림 수업을 들었다.

센닥은 동성연애자였다. 정신분석가 유진 글린(1926~2007)과 50년간 동거했다. 부모는 눈치를 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미국의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영화로 만들었다. 제작에 5년이 걸렸고 원작과 달리 어마어마한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상당한 수작이다. 원작을 101분 분량으로 늘렸지만, 억지로 늘렸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책에서 맥스는 약 6세, 영화에서는 약 9세다. 원작보다 구체적이다. 영화에서 맥스에게는 그를 무시하는 누나 클레어(Claire)가 있다. 싱글맘인 엄마에겐 데이트 상대가 있다. 맥스는 마법의 나라로 떠나기 전에 엄마를 물어버린다.

저자는 세상을 뜨기 1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전형적인 늙은이로 변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다. 불과 몇 분 전에 나는 젊은이였다.(I can’t believe I’ve turned into a typical old man. I can’t believe it. I was young just minutes ago.)”

이 책의 교훈은 뭘까. 이것도 포함되지 않을까. 어린이는 금세 늙은이가 된다. 어린이건 늙은이건 분노를 조절하는 게 힘들다. 즐거운 것을 상상하는 트릭(trick)이 분노를 억누르는 데 도움이 된다.

※ 김환영은…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8호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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