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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10)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페미니즘에 대해 풍성한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주는 인물로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20세기 주요 페미니스트로 손꼽는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feminism)이라는 주의(主義)·이즘(ism)은 불행히도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증오’를 연상시킨다. 페미니즘이 ‘남녀 평등’이나 ‘남녀’라는 수식어가 없는 ‘평등’의 일차적인 ‘연관 검색어’라면 좋으련만.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을 조만간 사라질 하나의 유행처럼 여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쉽게 그칠 소나기가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를 탈출한 페미니즘이라는 ‘뜨거운 감자(hot potato)’는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주의처럼 최소 수십 년, 수백 년의 생명력을 누릴 구조적인 이념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풍성한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주는 인물로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가 있다. 울프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를 20세기 주요 페미니스트로 손꼽는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인 그를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이 이렇게 소개한다. “조이스, 프루스트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소설 형식을 시도한 여성이다. 작품에 『댈러웨이 부인』, 『등대(燈臺)로』, 『파도』 따위가 있다.”

울프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을 적용한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1929)이라는 에세이를 울프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 그중에서도 ‘페미니스트 비평(feminist criticism)’의 핵심 문헌 중 하나다. 페미니즘의 주요 ‘창립 텍스트(founding text)’로 평가된다. 프랑스 명품지 르몽드(Le Monde)가 1999년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책 100권’ 중 한 권이다.

『자기만의 방』은 영미 언어권에서 일반인이나 대학생들에게 영문학·페미니즘 분야 필독서다. 영문판(펭귄북스) 기준으로 112페이지, 4만 단어에 불과한 분량인데, 이해하는 게 만만치 않다. 대학생들의 고민을 덜기 위해 스터디 가이드(study guide)도 여러 권 나와 있다. 출간 당시 ‘시적이다’, ‘명료하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21세기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독성(readability)을 보장한다고는 볼 수 없는 책이다. (중급 이상 고급 독서력을 확보한 독자가 아니라면, 이 책을 구매한 후 ‘괜히 샀다’고 후회할 가능성도 있다.)

2019년은 『자기만의 방』 출간 90주년이다. 세월의 흐름만큼 문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세기 초에 상식이었던 게 21세기에는 전문 지식이다. 게다가 유럽·미국 독자들에게 친숙한 내용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생소하다. ‘도대체 이 책이 왜 명저일까’라는 의문을 품을 만하다.

울프가 한 말은 이제 상식이다. 하지만 90여 년 전에는 오늘의 상식이 몽상이요 허튼소리였다. 울프와 같은 선지자 덕분에 여성도 남성만큼 창의적인 글을 잘 쓰며, 글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창의적이라는 게 입증됐다.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the West)를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었다. 특히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라는 큰 틀에서 대한민국의 도전은 눈부신 성과를 낳았다. 그런데 한국이 서구를 따라잡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부장제가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남녀 불평등의 면에서 한국이나 유럽, 미국은 대동소이했다. 그렇다고 『자기만의 방』이 알려준다. 버지니아 울프 시대의 영국에서 ‘여교수’는 거의 없었다. 비즈니스나 과학의 세계에 진출하는 여성도 극소수였다. 오늘의 유럽, 미국, 한국을 불문하고 『자기만의 방』의 남성중심사회 풍자(satire)가 따갑게 느껴진다면 그만큼 역사의 발전이 더디다는 방증이다.

‘의식의 흐름’ 형식을 시도한 여성 작가


이 책의 탄생 설화는 이렇다. 1928년 한 여성 모임이 그에게 케임브리지대에서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강연해달라고 부탁했다. 부담이 컸던 모양이다. 강연을 마치고 울프는 지극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자기만의 방』은 메리(Mary)라는 가상의 내레이터(narrator)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돼 있다. 강연의 종속변수(Y)는 역사적으로 ‘남성 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고 볼 수 있는 ‘여성 문학’의 성과다. 서구의 역사와 문학사에서 여성은 왕과 정복자 등 남성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힘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여성이 역사와 문학의 전면에 주인공으로 나선 적은 별로 없었다. 울프는 이를 인정한다.

‘왜일까?’라는 질문을 울프는 ‘여성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연계했다. 남성 작가가 여성 작가보다 더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사회 풍토도 한 원인이다. 남성 작가들이 제시한 스탠더드를 여성 작가들이 비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것도 문제다. 또 여성에게 부과된 출산·육아·가사 부담도 한몫했다.

내레이터 메리의 입을 빌려 울프가 제시하는 주요 독립변수(X)는 차별이다.

울프는 언급하는 게 좀 ‘치사한’ 사례도 든다. 케임브리지대 도서관에 들어가려고 하자 제지당한다. 잔디밭에서도 쫓겨난다. 도서관,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은 남자 펠로(fellow)이거나 교수이기에. 식사의 질도 남학생 식당과 여학생 식당이 큰 차이가 났다.

남녀를 기준으로 삼는 울프 시대의 교육 차별은 뿌리 깊었고 구조적이었다. 케임브리지대를 구성하는 많은 칼리지는 왕과 귀족 부자들의 지원으로 창립됐다. 여성 칼리지를 건립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기는 어려웠다.

가상의 내레이터가 이야기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


▎울프가 강연한 케임브리지대 뉴넘 칼리지 전경. / 사진:Cmglee 제공
울프 자신이 교육 차별의 희생자였다. 그의 형제들은 명문 고등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에 진학했지만 울프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울프의 아버지는 딸이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랐다. 다행히 아버지는가 상당한 장서가였기 때문에 울프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었다.

물질적인 차별도 여성의 창의성 발휘를 가로막았다. 영국은 프랑스, 미국과 더불어 민주주의 발전의 선두에선 나라이지만, 19세기 말까지 기혼 영국 여성에게는 재산권이 없었다. 그들이 재산권을 확보한 것은 ‘기혼여성재산법(The Married Women’s Property Act, 1870, 1882)’ 이후다. 그전에는 아내가 벌어들인 소득을 남편이 자동으로 차지했다.

내레이터 메리가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가보니 남성에 대해 여성이 쓴 글은 없고, 여성에 대해 남성이 쓴 글이 넘쳐났다.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왈가왈부한 글을 보고 메리는 “잉글랜드는 가부장제가 지배하고 있다(England is under the rule of a patriarchy.)”는 결론을 내렸다. 남성이 쓴 그 글들은 메리가 보기에 ‘분노’로 가득했다.

사회 기득권자인 남성 글쟁이들은 왜 여성을 분노의 타깃으로 삼았을까. 그만큼 그들은 여성해방에 착수한 여성들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는지 모른다. 잘나고 똑똑한 남자들은 그들의 특권을 상실할 가능성을 감지했다. 울프는 이렇게 촌평했다. “여성해방에 반대한 남성의 역사는 어쩌면 여성해방 이야기 자체보다 더 흥미롭다.(The history of men’s opposition to women’s emancipation is more interesting perhaps than the story of that emancipation itself.)”

눈에는 눈, 분노에는 분노로 응대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명분이 있다. 실효성 있는 전략인지 모른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분노가 사람을 움직일 때가 있다. 하지만 분노에는 대가도 따른다. 울프는 분노를 분노로 맞받아치는 게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을 경계했다. 울프는 『오만과 편견』(1813)의 저자인 제인 오스틴(1775~1817)을 높이 평가했다. 오스틴이 분노도 공포도 없는, 가르치려고 들지도 않는 글을 썼다는 것이다.

대남성(對男性) 분노는 남성을 부정하게 한다. 여성만 인간이고, 남자는 인간 이하의 짐승이라고 할 만한 근거도 있을 것이다. 남성·여성, 분노와 창의성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울프는 진정한 창의성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양성(兩性, androgynous)이라고 주장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평화주의자(pacifist)였다. 그래서 분노와 증오를 수단 삼아 여성의 권리를 추구하는 게 불편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어떤 남자도 증오할 필요가 없다. 그 어떤 남자도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기에. 나는 그 어떤 남자에게도 알랑거릴 필요가 없다. 그 어떤 남자도 내게 줄 것이 없기에.(I need not hate any man; he cannot hurt me. I need not flatter any man; he has nothing to give me.)”

책 제목이 요약하고 있듯이, 울프는 여성 작가가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즉 ‘여성 셰익스피어’가 나오려면 프라이버시(privacy)를 상징하는 ‘자기만의 방’이 핵심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여성이 소설가가 되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나만의 공간에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당시 영국 돈으로 매년 500파운드가 필요하다는 게 울프의 생각이었다. 500파운드는 당시 경제적으로 넉넉한 영국 중산층 남성이 한 해에 버는 액수였다. 요즘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000만원에 해당한다.

울프는 사회주의자였다. 물질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잘 식사하지 못하면, 잘 생각할 수도, 잘 사랑할 수도, 잘 잠들 수도 없다.(One cannot think well, love well, sleep well, if one has not dined well.)”, “지적인 자유는 물질에 달렸다.(Intellectual freedom depends on material things.)” 그래서 울프는 강연을 들으러 온 여학생들에게 그들의 딸들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라고 권유했다.

자살로 생을 마감

작가를 꿈꾸는 청중에게는 이렇게 권유했다. “모든 종류의 책을 쓰라. 책의 주제가 아무리 사소해 보이거나 아무리 방대해 보여도 주저하지 말라.(Write all kinds of books, hesitating at no subject however trivial or however vast.)”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러한 남녀 불균형 상태는 영원히 지속할 것인가.

버지니아 울프는 낙관적인 ‘예언자’였다. 그의 예언은 모두 현실이 됐다. 울프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성이 더는 보호받는 직업이 아니게 되면 무엇이든 발생할 수 있다.(Anything may happen when womanhood has ceased to be a protected occupation.)” 그는 대략 100년이 지나면 여성들이 그때까지 진출이 허용되지 않았던 모든 분야에 진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세기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지금까지 여성 노벨상 수상자 48명이 배출됐다. 그중 12명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여성 셰익스피어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자기만의 방』에는 엄청난 ‘확장성’이 있다. 글을 쓰거나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누구나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일정한 소득이 필요하다. 세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basic income)’이 보장되면 남녀 공히 진정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계 역사에서 한 구역을 획정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경우가 많다. 버지니아 울프도 그랬다. 울프의 남편은 그에게 헌신적이었다. 울프는 오랫동안 정신질환에 시달렸으며 결국 1941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를 너머 21세기에도 대중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다. 꾸준히 인기 있는 흥행성 좋은 인물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제목에 버지니아 울프가 나오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울프와 전혀 상관없는, 혹은 지극히 밀접한 작품이다.) 또 니콜 키드먼은 2003년 극 중 버지니아 울프 역을 맡은 ‘디 아워스’(The Hours, 2002)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들이나 딸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는 독자는 무엇을 화두로 삼아야 할까. 성공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도 개인적인 아픔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할지 모른다. 현모양처가 되려면 사회적인 성공은 포기해야 하는가. 여성에게 성공과 현모양처는 트레이드오프(trade off, ‘어느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다른 것을 희생하여야 하는 경제 관계’)인가를 토론할 수 있겠다.

※ 김환영은…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가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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