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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꽃보다 아름답다 | 조선혜 지오영 회장] 혁신으로 3조 매출 올린 자수성가 CEO 

 

조득진 기자
조선혜 지오영 회장은 매출 1000대 기업 여성 CEO 중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약사 출신인 그는 서른여섯 늦은 나이에 창업해 의약업계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의약품 유통업계에 다양한 ‘최초’를 쓴 그는 의약품유통협회장을 맡아 ‘혁신 DNA’를 전파 중이다.

▎1955년 인천 출생, 숙명여대 약학과 졸업. 지방공사 인천병원 약제과장, 1991년~ 성창약품 대표, 2002년~ 지오영·지오영네트웍스 대표, 2018년~ 한국의약품유통협회장
1980년대, 지방공사 인천병원에서 근무하던 조선혜 약제과장은 의약품 유통회사의 영업사원들과 운송 시스템이 늘 불만이었다. ‘국민 건강을 책임진다’는 말과 달리 현실은 너무나 낙후되어 있었다. 이를 바꾸어보고자 1991년 서른여섯 늦은 나이에 조 과장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의약품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회사는 성창 약품에서 지오영으로 이어졌고, 지금 지오영은 수많은 M&A에 성공,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 우리나라 대표 의약품 유통회사가 됐다.

조선혜 지오영 회장은 약품유통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CEO다. 그는 2013년 지오영 설립 11년 만에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화제가 됐다. 단일법인으로는 약업계(의약품도매업·제약업·약국업·의약품수출업) 최초의 일이었다. 제약업체든, 유통업체든 약업계의 화두는 매출 1조원을 넘는 것이다. 1조원이라는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야 제약업체는 연구개발(R&D)을 활성화하고, 유통업체는 물류 혁신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성과 덕에 조 회장은 포브스아시아가 선정한 ‘2014 아시아 파워 여성 기업인 50’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과 함께 한국인 기업가는 3명이었다. 올해 2월엔 임기 3년의 한국의약품유통협회장에 선출돼 업계의 현안을 푸는 데 주력하고 있다. 9월 중순 서울 연희동 지오영 사옥에서 만난 조선혜 회장은 “우리의 발걸음이 업계의 길이 된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했다”며 “앞으로 지오영 차원에선 신사업 개발과 동남아 시장 진출을, 협회 차원에서는 동반성장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3가지 혁신 코드로 의약업계 매출 1위


현재 지오영은 전국 2만1000개 약국 중 70%와 50여 개 대형병원에 약품을 유통하고 있다. 지난해 지오영에서 1조4082억원, 지오영네트웍스에서 7299억원을 벌어 두 핵심 회사에서만 매출 2조원을 넘겼다. 올해 매출은 지방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3조6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내 제약업계 1위 기업 유한양행(1조4622억원)과 2위 기업 GC녹십자(1조2879억원) 매출을 합한 것보다 많다. 최근 5년 동안 매출, 영업이익 모두 평균 14%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창업 초기부터 ‘혁신’을 강조해온 조 회장의 성과물이다. 2002년 사명을 지오영으로 바꾼 조 회장은 ‘약품 유통의 선진화·대형화·투명화’를 선언하고, 첫 번째 혁신으로 인수합병(M&A)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다국적 기업과 경쟁해 이기려면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 회장은 “작은 규모로는 외국계 기업과 경쟁하기 힘들고, 또 국내 의약품 유통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우선 지오영이 커버하고 있는 수도권에 집중해 기업 규모를 키웠다. 이후 지역에 물류센터를 구축하며 영업망을 넓혔다. 강원지역에는 강원지오영, 충청지역엔 대전지오영, 호남지역엔 호남지오영을 세웠고, 영남지역에서는 청십자약품을 인수해 지역 거점으로 삼았다.

조 회장은 ‘혁신의 CEO’로 불린다. 업계 내 효시라고 불릴 만한 일을 많이 이뤄낸 덕분이다. 두 번째 혁신 코드는 자동화물류센터 구축이다. 특히 2007년 완공한 인천물류센터는 업계의 롤 모델이 됐다. 연면적 1만2000㎡(3500평) 규모의 자동화물류센터다. 2011년에는 연면적 1만㎡ 규모의 3자 물류 전용센터를 증축했다. 인천물류센터 착공 당시 연 매출은 3500억원 수준. 유통마진이 낮은 약품유통업체가 350억원이나 들여 자동화 물류센터를 짓겠다고 나서자 주변에선 모두 만류했다.

조 회장은 “그 비용으로 중견 제약회사 하나를 인수하자는 말도 나왔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업 경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물류 투자는 유통기업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물류센터는 지오영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하루 2~3회 전국 어디든 배송이 가능해지면서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의약품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특히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지오영과 거래를 트기 시작했다.

세 번째 혁신 코드인 ‘상물 분리’도 업계 최초다. 보통 의약품업계 영업사원들은 사무실에서 전화로 주문을 받고 창고에서 약품을 들고 배달 가는 시스템이었지만 조 회장은 영업과 물류를 분리했다. 지오영 영업사원은 영업과 서비스를 담당하고 배송은 물류센터에서 진행한다. 직원 규모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점 때문에 기존 업체들은 엄두도 못 내던 방식이었다. 조 회장은 “영업과 배송 업무를 나누니 영업은 전문성이, 배송은 정확성과 신속성이 각각 높아지면서 경쟁사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탁월한 성과가 나타나자 7~8년 후 경쟁사들도 상물 분리를 도입했다.

지오영은 업계 최초로 웹사이트에 의약품 재고 현황을 공개했다. 약사들은 지오영 웹사이트에 들어와 물류센터의 재고를 파악하고 스스로 주문한다. 조 회장은 “유통기업이 재고를 밝힌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약품 사재기를 방지하고, 약국의 재고를 해결하는 등 의약품 유통 선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의약품유통협회장 맡아 업계 동반성장 모색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조 회장은 “지오영 출범 후 단 한 해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며 “그러나 뚜렷한 목표는 나의 하루를 달라지게 했다”고 말했다. 기존 방식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게 됐고, 경쟁자를 따라 하기보다는 나만의 차별화 전략을 짜냈다는 것이다. “남이 장사를 할 때 우리는 길을 닦았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지오영은 최근 새로운 성장의 틀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종합 헬스케어 서비스 업체로 도약이다. 우선 병의원에 진료 재료를 공급하는 케어켐프 사업을 키우기로 했다. 주사기, 수술 도구 등 약을 뺀 모든 병의원 자재로 분야를 늘릴 계획이다. 최근엔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시장에도 진출했다. 조 회장은 “헬스케어 제품의 주문·결제, 배송 서비스는 물론이고 혁신적 IT 역량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약사, 약국, 병원, 일반 환자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인도네시아 등 인구가 급팽창하고, 중산층이 형성되고 있는 동남아 지역이 1순위다.

조선혜 회장은 지난 2월 한국의약품유통협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산업 전반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의약품 유통업계는 지속되는 약가 인하와 이에 따른 제약사의 유통마진 축소, 재고 처리 문제, 일련번호제도 시행과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제 비용 상승 등 기업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 그는 “공약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임기 내 산적해 있는 국내 의약품 유통산업의 문제점들을 하나라도 더 해결하고 선진유통으로 도약시키는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취임 후 협회에 정책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유통업계에 산적한 현안 해결과 미래 지향적인 정책 개발을 위한 포석이다. 조 회장은 “골프장 모임이 아니라 공부하는 협회를 만들고자 한다”며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할 때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탄탄한 이론적 근거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정부와 협의해 중소업체들이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류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구체적 그림도 그리고 있다. 공동물류를 비롯해 저비용으로 중소업체에 제공하게 되면 유통 선진화 기여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조 회장은 “먹고사는 것만 떠들어서는 협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지 않는다. 유통업계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성장모델을 중소업체에 제시하려고 한다. 앞으로는 작은 유통업체에도 성장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조 회장 역시 사업하는 내내 여성 CEO로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그는 “사업 초기 전화를 받으면 ‘사장 바꾸라’는 말을 들었다. 나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며 “이제는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의 능력이 높이 인정받고 있으니 기업의 유리천장도 곧 깨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의 관점으로 보면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영업사원의 역량이 중요한 유통기업에서는 목표에 사람을 맞추기보다 그 사람의 역량에 맞는 목표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경영자로서, 선배로서, 여성으로서 그런 면을 살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후배 여성 CEO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인생이든 사업이든 누구에게나 좌절의 순간이 오는데 여성 기업가들은 그 시기를 잘 넘기지 못하는 것 같다”며 “자꾸 넘어지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시야가 넓어지며, 판단도 선다. 많은 경험이 쌓여서 이뤄지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눈덩이를 처음 뭉치기는 힘들어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굴리기만 해도 덩치가 커진다”는 게 그의 말이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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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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