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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22) 

인도 상인 카스트 출신에서 글로벌 경영인 된 힌두자 형제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2018년 영국 10대 부호 순위에서 인도 출신의 힌두자 형제가 2위를 차지했다. 통상 ‘스리·고피 힌두자’로 표시되는 힌두자 형제는 영국을 기반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타임스의 일요일 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매년 5월 영국 부자 순위를 발표한다. 이 순위는 발표될 때마다 전 세계에서 화제를 부른다. 영국의 부호 명단인데 영국 출신보다 영국에 거주하거나 사업을 하는 외국 출신 인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의 국제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2018년 영국 10대 부호의 경우 1, 2, 3, 9, 10위가 영국 국적 보유자다. 하지만 2위인 힌두자 형제는 인도 출신, 4위인 레벤 형제는 뭄바이에서 태어난 인도 유대인 출신, 9위인 웨스턴 집안은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사업가로 이중국적자다. 영국인의 후손으로 태어나 영국에 거주하며 사업하는 사람은 1위인 짐 라트클리프 이네오스 화학그룹 회장, 부동산 부호로 10위에 오른 휴 그로스베너 웨스터민스터 공작밖에 없다. 세습 귀족인 웨스터민스터 공작은 세계적으로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 한복판에 있는 금싸라기 부동산을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임대사업을 할 뿐이다.

2위를 차지한 힌두자 형제는 통상 ‘스리·고피 힌두자’로 표시된다. 인도인은 이름이 복잡하고 길어서 약자로 축약해 쓰거나 이름 앞부분만 쓰고 그 뒤에 성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스리’는 힌두자 4형제 중 장남인 스리찬드 파르마 난드 힌두자(83)를 가리킨다. 퍼스트 네임과 미들 네임을 합친 ‘S.P’ 또는 퍼스트 네임에서 앞부분만 딴 ‘스리’로 불린다. 이름 앞부분을 따 ‘고피’로 불리는 차남 고피찬드 힌두자(78)는 형과 함께 영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4년부터 영국 국적으로 분류


▎힌두자 그룹 행사를 위해 모인 힌두자 가족과 런던 기업에서 일하는 스태프와 매니저들.
삼남 프라카시 힌두자(73)는 스위스 제네바에 거주하며 유럽 힌두자 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다. 그룹의 재정을 맡아왔다. 사남이자 막내인 아쇼크 힌두자(67)는 인도에서 활동 중인데 경제계에서 퍼스트 네임과 미들 네임의 약자를 합쳐 ‘AP’로 불린다. 올해 영국 부자 2위를 차지한 ‘힌두자 형제’란 영국을 기반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장남 스리와 차남 고피를 가리킨다.

이들 4형제는 다양한 업종으로 이뤄진 힌두자 그룹을 영국과 스위스, 인도에서 각각 운영한다. 장남과 차남은 영국에서, 삼남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막내는 인도에서 각각 사업을 벌인다. 지리적으로는 물론 업종도 서로 다르다. 그룹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무역과 금융을 바탕으로 금속주물산업, 콜센터 아웃소싱(BPO),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미디어와 텔레콤, 완성차 생산까지 폭넓은 산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2017년 그룹 매출은 500억 달러에 이르며 7만2000명을 고용한다.

선데이 타임스는 1989년부터 매년 4~5월에 영국 부호 순위를 발표하는데 스리찬드와 고피찬드 힌두자 형제는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과 2017년에는 영국 1위 부호 자리를 차지했다. 선데이 타임스는 국적을 따지지 않고 영국에 거주하거나 사업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긴다. 스리와 고피 힌두자 형제는 2013년까지는 인도 국적으로 발표됐지만 이듬해부터는 영국 국적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 12년간 자료를 살펴보면 힌두자 형제가 갈수록 재산을 불린 현황이 잘 드러난다. 힌두자 형제는 2018년 2위(206억4000만 파운드), 2017년 1위(162억 파운드), 2016년 2위(131억 파운드), 2015년 2위(131억 7000만 파운드), 2014년 1위(119억 파운드)를 각각 차지하며 지난 5년간 1~2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이전에는 2013년 3위(106억 파운드), 2012년 4위(86억 파운드), 2011년 9위(50억 파운드), 2010년 9위(41억 1000만 파운드)를 차지했고 2009년에는 순위에서 빠졌다. 그 이전엔 2008년 4위(62억 파운드), 2007년 4위(62억 파운드), 2006년 7위(36억 파운드)였다. 고속으로 재산을 불려온 현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힌두자 집안 남자들에게 장사는 숙명이었다. 이 집안은 힌두교도인데 힌두교엔 카스트 제도가 있어 신분 서열은 물론 직업까지도 정해놓고 세습하는 경우가 많다. 힌두자 집안은 상인 카스트에 속한다. 카스트 제도는 현대 인도인의 사회생활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하지만 건국 이래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한 인도는 교육과 공직 선출 등 공공 부문에선 카스트를 적용하지 않으며 오로지 실력이 중심이다. 따라서 카스트가 아무리 낮아도 교육을 받고 공직 생활을 하며 선출직에 출마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현재 인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는 차 행상을 세습해온 카스트 출신이지만 교육과 정당 활동, 선거 출마 등을 통해 2001~2014년 구자라트주 주지사를 거쳐 2014년 5월부터 총리를 맡고 있다. 현 인도 대통령인 람 나트 코빈드는 최하층 카스트인 불가촉 천민 출신이지만 법대를 졸업해 변호사로 활동하다 비하르주 주지사를 지냈다.

영국 식민지 시기이자 교육 기회도 적었던 시절에 청소년이었던 P.D. 힌두자는 학교에 가는 대신 카스트에 따라 어려서 장사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란 특산물인 견과류나 말린 과일을 수입해 뭄바이를 비롯한 인도 시장에 팔았다. 인도나 중동 지역에서 흔한 무역 형태이자 교류 상품이다. 인도와 이란 간 전통적인 교역이기도 하다.

이란과 교역하면서 짭짤한 재미를 본 그는 18살 때인 1919년 인도와 이란을 연결하는 무역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그러면서 아예 근거지를 이란으로 옮겼다. 이란에서 값싼 제품을 충분히 확보한 뒤 뭄바이 항구로 보낸 다음 인도 여러 곳으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했다. 구매 과정에서 원가를 절감하면 이익이 나온다는 사실을 어려서 터득한 셈이다. 아울러 그는 국제무역의 중요성와 함께 글로벌 비즈니스의 유용함을 깨달은 선각자다. 상인의 나라 인도에서 해외 영업을 이렇게 본격화하면서 아예 근거지까지 외국으로 옮긴 경우는 드물다. 100년 전에 혁신적인 글로벌 비즈니스를 개발한 셈이다.

비즈니스는 이란에서 하고 가족들은 인도에서 자라고 교육 받는 세월이 한참 이어졌다. 신드 지방 출신의 창업자 P.D. 힌두자는 가문 이름을 붙인 자선단체인 힌두자 재단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P.D. 힌두자 국립병원과 의학연구소를 뭄바이에 설립했다.

사업은 순조롭게 이어졌지만 1979년 정치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발생해 샤(이란의 황제) 군주정이 무너지고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다. 이란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하지만 핵심 권력은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의 수장인 최고지도자(라흐바르 에 모아잠)가 가지는 신정 체제를 선택했다. 혁명 과정에서 힘이 부쳤던 민주화 세력이 종교 세력에 도움을 청한 결과다. 최고지도자는 종신직으로 군 통수권을 갖고 사법부·입법부·행정부의 상징적 수장을 맡는다. 게다가 이슬람 혁명에 이어 대학생들이 미국 대사관 직원을 인질로 삼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란은 서방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경제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힌두자 집안은 가업의 핵심인 무역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국 런던으로 이주를 결정했다. 이란 이슬람 혁명이라는 악재를 유럽 진출의 기회로 삼은 셈이다. 이들에게 위기는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었다.

장남 스리찬드와 차남 고피찬드는 1979년 런던에 도착해 무역업을 계속했다. 삼남인 프라카시는 스위스 제네바에 정착해 그룹의 재정을 담당했다. 막내 아쇼크는 본국인 인도에서 사업 기회를 살폈다. 스리는 그룹 회장을 맡아 힌두자 그룹을 거대한 기업 집단으로 키웠다.

오늘날 힌두자 그룹은 영국, 스위스, 인도에 걸쳐 활동하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 집단으로 자리 잡았다. 인도에서 막내인 아쇼크 힌두자가 창업하고 운영하는 완성차 생산업체 아쇼크 레이랜드는 오늘날 힌두자 그룹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인도 제2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완성차 업체이자 전 세계 16위인 트럭 생산 기업이다. 인도 첸나이에 본부를 둔 이 회사는 전 세계 50개국에서 활동한다. 인도에 7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UAE) 동부의 라스알카이마와 영국 리즈에도 생산 기지를 두고 있다. 2016년 아쇼크 레이랜드는 인도 최초로 전기버스를 출시해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에 진출했다. 첨단기술을 갖춘 미래형 자동차 회사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아쇼크 레이랜드는 인도군에 수송장비를 가장 많이 납품하는 업체로, 인도 육군 수송장비의 핵심인 스탈리언 수송차량만 6만 대를 공급했다. 힌두자 그룹은 인도에서 ‘아쇼크 레이랜드 디펜스 시스템(ALDS)’이라는 방위산업 업체도 운영한다. 아쇼크 레이랜드가 전체 지분의 26%를 보유한 자회사다. 군수용 수송 장비와 전술용 자동차, 군사용 통신과 기타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업체다.

힌두자 그룹은 2002년 인도 에너지 업체인 ‘걸프 오일 인디아’를 인수한 뒤 그룹의 화학 허브로 키워왔다. 이 회사는 인도의 국방 분야와 우주산업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고품질 화약, 기폭장치를 개발, 공급한다. 인도 전역에 8개 생산 기지를 운용하는데 이 가운데 하이더 라바드 공장은 세계 최대의 기폭장치 공장으로 평가받는다. 폭발물과 기폭장치를 동남아시아, 중동, 남유럽, 북아프리카 등지의 21개국에 수출한다.

거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힌두자 그룹

걸프 오일 인디아는 인도 2위의 윤활제 생산업체로 자리 잡았으며 광업과 인프라 건설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왔다. 제약 분야에 진출해 다양한 의약품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생산 대행도 하고 있다. 화학 업체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손을 뻗은 셈이다. 제조업 중심의 인도 사업을 총괄하는 막내 아쇼크 힌두자는 형제 중 가장 촉망받는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금융은 힌두자 그룹의 뼈대에 해당한다. 삼남 프라카시 힌두자는 1978년 스위스에 힌두자 은행을 설립했다. 현재 루체른, 취리히, 바젤, 루가노 등 스위스 주요 도시에 지점을 운영한다. 이뿐만 아니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인도 첸나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에 해외 지점을 열어 부자들의 자산 관리, 무역 금융, 글로벌 투자, 기업 재정 관리 등 다양한 분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1994년에는 인도에서 소매 금융을 담당하는 인더신드 은행을 설립해 운영하다 2004년 아쇼크 레일랜드 피이낸스와 합병해 자본금 1억4000만 달러, 매출 28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 금융기관으로 확대했다. 현재 400개 지점을 운영하며 고객은 150만 명에 이른다.

인도 최초로 세계화에 나선 힌두자 그룹답게 영국 런던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전 세계 335개 은행과 제휴를 맺고 있다. UAE에서는 유니온 내셔널 은행, 카타르에서는 도하은행과 각각 전략적 제휴 관계에 있다.

힌두자 그룹은 2000년 통신, 미디어, 아웃소싱(BPO)을 담당하는 HTMT를 설립해 서비스 산업에도 진출한 상태다. 두바이에서 투자를 받아 부동산과 엔터테인먼트, 헬스 케어 부문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힌두자 그룹은 인도에서 본격적으로 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들었다. 창업자가 그룹 발상지였던 뭄바이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야외 병원에서 시작해 현재는 인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P.D. 힌두자 국립병원과 의학연구센터가 바탕이다. 350병상 규모의 이 병원은 미국 하버드 의대 제휴병원인 매사추세츠 제너럴 호스피털(MGH)과 제휴를 맺고 의료 서비스 개발과 다양한 의학 연구 활동을 벌인다.

이 사업은 힌두자 기업이 오래전에 시작한 기부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힌두자 집안은 인도에서 누구보다 먼저 기부 활동을 시작했다. 창업주인 P.D. 힌두자는 ‘사회적 기부’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개념은커녕 용어조차 없었던 1944년 근거지인 뭄바이에 교육재단을 설립했으며 현재 뭄바이에 있는 KPB 힌두자 칼리지를 운영한다. 1968년에는 가문의 이름을 딴 힌두자 재단을 설립해 병원 운영과 장학 사업을 벌이고 있다. 뭄바이의 P.D. 힌두자 국립병원과 의학연구소는 바로 이 재단이 세웠다.

4형제는 신앙심 깊은 힌두교도 경영인이다. 철저하게 채식을 하며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런던 본사에서 일하는 스리·고피 형제는 영국 왕궁인 버킹엄궁 만찬에 초대돼 갈 때도 채식 도시락을 싸 갈 정도로 엄격한 식사를 한다. 자신의 출신과 문화적 정체성을 잊지 않은 것이다. 옷도 평범하게 입으며 상의는 주로 검은색을 찾는다. 안경도 멋을 내지 않은 둥근 테를 사용한다. 형제는 돈이 아니라 사업을 키우고 기부를 하는 데서 보람을 찾는다. 힌두교 철학이 배어든 인도식 경영 방식이다.

※ 채인택은… 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국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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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호 (201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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