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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52인의 신년 에세이(4) 홍성한·원대연·김형진·전용복·권도균 

 

홍성한 비씨월드제약 대표 | 협력과 소통動須相應(동수상응)


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매 순간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때, 평소 취미인 바둑을 많이 떠올리는 편이다. 바둑의 명수인 왕적신이 펴낸 『위기십결(圍棋十訣)』이 있다. 바둑을 두는 10가지 비결을 담고 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격언이라 많은 도움이 된다. 그중에서도 ‘동수상응(動須相應)’을 강조하고 싶다. 동수상응은 ‘바둑돌 하나하나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므로 착점을 결정하기 전에 자기편 돌의 능률을 생각하며 상대편의 움직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뜻으로 협력과 소통을 의미하는 말이다.

진정한 협력과 소통을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는 조직이 발전하는 데 기반이 되며 무한한 잠재력의 근원이 된다. 기업에서도 직원들 간의 신뢰가 없으면 협력이 위축되고 불필요한 갈등이 일어난다. 기업도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해 결국 쇠퇴하고 말 것이다. 직원들 간의 상호 신뢰를 높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쌓이면 혁신적인 사고가 생겨나고 그로 인해 획기적인 제품이나 시스템들이 개발된다고 생각한다. 신뢰가 없으면 기술도 없고 인재도 없다.

창조적 혁신은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 협력과 소통을 원활히 할 때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물론 내 버킷 리스트엔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담지 못했다. 하지만 2020년엔 ‘협력과 소통’을 더 잘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구체화해 담아볼 생각이다.

원대연 전 한국패션협회장·제일모직 사장 | 스스로 즐기는 일이 진짜 삶이다


20여 년 전 CEO가 되어 취임사에서 던진 첫 메시지가 “Fashion si Passion”이었다. 부실경영과 구조조정의 그늘 아래 해고될까 불안해하며 전전긍긍하는 조직원들을 안심시키고 하나가 되게 하는 길은 당장의 매출 목표 달성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게 만드는 희망의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갓 CEO가 되어 책임감과 압박이 스스로를 짓누르는 가운데서도 어느 순간 떠오른 영감이 바로 압축된 이 구절이다.

1970년 초부터 봉제품 수출에 나섰고, 해외 근무 두 번에 패션사업까지 맡았다. 당시 삼성그룹 안에서 누구도 맡기 꺼리던 부문이 바로 패션사업이었다. 사업 정상화를 위해 밤낮없이 현장을 뛰며 새 아이템과 전략을 고민했다. 그렇게 6개월 단위로 사업 성과를 경험한 나는 경영자로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도 바로 이때다.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그저 스스로 직장을 오래 다니고, 회사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일이었지, 온전히 내가 좋아서 한 일이 아니었음을 발견했다. “어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는 공자의 말씀을 뒤늦게나마 체득한 것이다.

그 뒤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삼성그룹은 계열사별 CEO 재량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있게 됐다. 당시 나는 학벌, 전공과 관계없이 ‘얼마나 패션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기준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했다. 이들이 대리, 과장으로 성장해 핵심 인력이 되면 분명 불타오르는 조직이 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제일모직 입사 3년 차 신입사원의 퇴사율을 대졸 취업 선호도 1위인 삼성전자와 비교해봤다. 놀랍게도 삼성전자는 33%였는데 제일모직은 2%밖에 되지 않았다. 채용 패러다임을 바꾸며 했던 기대가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삼성디자인학교(SADI) 학장으로 재직할 때는 성적순으로 선발하던 기준을 ‘디자이너로서 자질(Talent)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Passion)’으로 바꾸기도 했다. SADI가 한때 그 이름을 크게 떨친 이유라 생각한다.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된 요즘은 무엇보다 창의력이 중시되는 시대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 현실은 그 방향과 너무나 동떨어져 미래가 크게 우려된다. 일류대학 진학만을 위해 입시 경쟁에 매몰된 획일적 교육은 창의 인재 육성과는 거리가 멀다.

부모와 학교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자질을 가졌는지를 잘 관찰해야 한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특정 분야에서 필요한 교육과정을 거쳐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도록 사회 전반의 인식과 시스템을 일신해야 한다. 모두가 BTS가 될 순 없지만 제빵이나 바리스타, 네일아트 같은 분야에서도 장인으로 인정받으면 스스로 ‘금수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정부의 교육제도가 문제지만, 이를 탓하기보다 먼저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시대 변화와 흐름에 맞게 생각을 바꾸고 양육 방식을 바꿔야 한다. 셀 수 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를 기다리고 있다. 공부 잘해 일류대 간다고 세계적 인재가 되는 건 아니다. 국민 모두가 저마다의 재능을 펼칠 때 비로소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일류 국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형진 세종텔레콤 회장 | 글로벌 플랫폼 기업을 꿈꾸며


미중 무역마찰, 한일관계 악화 등 글로벌 악재와 불확실성이 이어지던 한 해가 지나갔다. 세종텔레콤 역시 어려운 시장 상황을 여실히 체감하며, 변화의 파고를 뛰어넘어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존속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에 맞닿았다.

2019년 우리는 ‘범사예즉립(凡事豫則立)’, 즉 ‘모든 일을 예측하고 준비하면 잘된다’는 『중용』의 가르침을 마음속 깊이 되새기며, 기존 사업이 아닌 새로운 산업, 기술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왔다.

그 결과 100% 우리 기술로 구현한 블록체인 기술을 확보하고 플랫폼 사업자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한 커머스 사업을 론칭하는 등 스스로 대견해할 만큼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오늘날은 기술 진보가 동력이 되어 만들어진 공감과 협력, 융합의 시대다. 통신산업은 이제 전통적인 개념을 넘어 다양한 혁신 기술, 동종·이종에 있는 다양한 플랫폼 사업을 연결해 융합 시너지를 발현하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스마트 시대 등 미래를 지칭하는 화두를 접할 때마다 우리의 전문적인 인프라와 인력들이 세종의 기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세종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세종텔레콤은 통신 및 전기 인프라를 기반으로, 기술과 자원을 이용하고 활용하면서 유·무선, 블록체인, 커머스, ICT 솔루션, 전기공사까지 모든 사업 부문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역할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더 나아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 기업 안팎의 공유, 개방형 생태계 구축을 기업 비전의 첫째 목표로 삼고자 한다.

인터넷의 본질은 ‘연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연결하고, 이웃과 연결하고, 직장과 연결하고, 전 산업 분야를 연결하고,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세종텔레콤, 우리 회사 그 자체였으면 한다.

이 모든 과제를 수행하려면 나를 포함한 임직원 모두가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구글처럼 미래를 이야기하고 구체화하며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마치 대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매듭을 지으면서 한 계단씩 성장하듯이 우리 세종텔레콤도 끊임없이 공부해가면서 직원과 회사의 성장을 함께 이루길 기원한다.

대한민국에서도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이 하나쯤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오늘만 살 것처럼 일하자! 참으로 가슴 벅찬 말이다.

전용복 칠예가 | 옻칠과 함께라면


20대 후반에 그저 좋아서 천직으로 삼자고 입문한 옻칠. 지난 40년을 돌아보면 실로 파란만장했다. 한국 전통예술인 옻칠 예술을 이 시대의 현대미술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당시의 나전칠예 기법에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다 집어치우고 싶었던 날도 수없이 많았다. 옻칠의 나라 일본 도쿄에 있는 메구로가조엔(目黑雅徐園)은 일본의 베르사유궁이라 일컬어지는 대형 연회장 겸 호텔이다. 1988년부터 3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수리 복원을 거쳤는데, 옻 칠예작품 수천 점 복원과 창작작품 제작의 총괄책임을 내가 맡았다. 지금 생각해도 꿈같은 일이었다.

연간 10만 명이 투입되는 옻칠제작 총괄책임자. 기라성 같은 일본 옻칠작가들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죽기 살기로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대학교수가 된 것은 59세. 일본에서 귀국한 해다. 목적은 단 하나. 이 땅의 문화유산인 옻칠예술을 계승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현대미술, 산업미술, 시각미술 등을 전공한 우수한 제자들이 묵묵히 옻칠예의 길을 걸으며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그들 역시 크고 작은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있다. 나는 이 땅에 고려 팔만대장경이 존재하는 것은 옻칠이 있었기에 보존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고구려 벽화도 마찬가지다. 옻칠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만년 이상의 보존 능력을 갖춘 도장제다. 현대인의 생활 속에 옻칠을 폭넓게 활용하기 위해 한국분석시험연구원에 구전으로 전해 들은 강력한 살균력 확인을 의뢰했는데 놀랍게도 엄청난 살균능력이 있다는 성적표를 받았다. 옻칠은 전자파 흡수 능력도 매우 우수하다. 무엇보다 완성된 옻칠 작품에서 뿜어 나오는 빛은 실로 아름답다.

그간 수많은 전시회를 열어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옻칠을 알려왔다. 현재는 젊은 시절 소망했던 세계 최고의 설비를 갖추고, 1322㎡(400평)가 넘는 작업장 연구소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작품 제작에 여념이 없다. 예술가는 창작 예술을 통해 산업 분야에도 이바지해야 한다. 작년에는 박양춘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 사장을 만나 세계 최초로 나전칠예 엘리베이터를 완성했다. 전 세계의 엘리베이터 공간을 작은 미술관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진행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는 옻칠 도자기, 즉 도태칠기다. 한국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쳐온 조태권 광주요 회장과 손을 잡았다. 건강하고 위생적이며 아름다운 도자기를 꼭 만들 것이다. 내년에는 뉴욕 맨해튼에 나의 작품 전시공간이 생긴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옻칠에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배우고자 하는 이도 당연히 많다. 친절히 가르치고 싶다. 만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 전통 옻칠 기법을 그들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우리는 서양문화에서 얼마나 많은 배움을 얻어왔던가. 나도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한다. 칠순을 바라보는 현실이지만 노인 호칭을 정중히 거절한다. 그저 옻칠을 친구 삼아 심장 박동이 허락하는 날까지 칠 붓을 손에 잡고 젊음을 한껏 누릴 것이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 부자의 인생 좌표


오랫동안 내 것으로 내 속을 채우려 했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성취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몰두했다. 채우면 채울수록 채워야 하는 곳은 넓어지고 갈증은 심해진다. 성취 욕구는 세상이 발전하는 힘이지만, 그 자체는 하나의 감방이다. 성취의 벡터값은 내부를 향하지만, 외부로 향한 동기의 벡터값이 있으면 힘이 상쇄되며 균형을 이룬다.

35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늦깎이 창업을 했던 나는 1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5개 회사를 창업하고, 2개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하고, 또 모두 매각까지 하는 압축된 창업 사이클을 경험했다. 그리고 40대 후반에 은퇴했다고 스스로 규정하니 마음이 달라졌다. 지금 프라이머라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회사를 만들어 후배 창업가들에게 투자하고 돕고 있다. 코스닥에 상장한 회사들을 경영할 때보다 훨씬 더 바쁘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어떤 분은 은퇴했다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냐고 묻기도 한다. 은퇴하면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반문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본다. 그렇다. 마음이 달라졌다. 내 것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것으로 동기의 벡터 방향이 달라졌다.

내 속에는 화살표로 된 리스트만 채우기로 했다. 그 리스트의 화살표는 내 밖에 있는 사람에게로 연결된다. 그들은 후배 창업가이기도 하고, 본능과 욕망을 거스르며 의미와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첫걸음을 이끌고, 그 앞에 있는 돌부리를 제거하고, 간혹 넘어지면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당겨서 스스로 걷고 달릴 때까지 함께한 그들의 첫걸음 스토리가 내 리스트를 채운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성장하면 처음 이야기를 쉽게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기억한다. 내 속에 스토리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채운다. 나는 내 목표를 달성한다. 지난 10여 년간 200명이 넘는 창업가의 시작과 함께하며 나의 리스트는 길어지고 그 스토리는 다양하고 풍성한 숲을 만들고 있다. 나는 부자다.

202001호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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