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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용 카카오재팬 대표] 카카오, ‘만화 천국’ 일본을 삼키다 

 

전 세계 최대 만화 시장인 일본에서 낯익은 이름이 들린다. 디지털만화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1위에 오른 카카오재팬의 ‘픽코마’다. 한국계 기업들은 물론이고 쟁쟁한 일본 대형 출판사들이 즐비한 전쟁터에서 카카오재팬은 ‘작품이라는 본질에 충실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만화 종주국의 중원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카카오재팬을 이끌고 있는 김재용 대표. 디지털만화 앱 ‘픽코마’는 올해 일본 내 1등 만화 앱으로 올라섰다. / 사진:카카오재팬
경쟁이란 말은 필연적으로 상대를 이기고 넘어서야 한다는 함의를 품는다. 더욱이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쟁은 숙명에 가깝다. 어떤 기업이든, 그들이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내든 간에 구조적인 경쟁의 틀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니 모두가 ‘차별화’에 목맨다. 남과 다른 점, 상대보다 나은 점을 강조하는 차별화는 곧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살아남을 무기가 된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본질을 왜곡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포장과 마케팅에 집중한 나머지 업의 본질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뜻이다. ‘질소를 샀는데 과자를 덤으로 줬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일본에서 1등 했다 하니 질문이 쏟아집니다. 비결이 뭐냐, 비즈니스 전략이 뭐냐고요. 정말 재미없는 답이지만, 콘텐트 비즈니스의 핵심인 작품에 집중했다고 말씀드려요. 뉴스의 본질이 기사인 것처럼요. 빤한 말 같지만 요즘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잘 안 하려 들죠. 처음부터 작품이라는 본질에 집중했습니다. 이게 시장에선 오히려 차별화로 읽히더군요.”

카카오재팬이 일본에서 운영 중인 디지털만화 애플리케이션 ‘픽코마’가 화제다. ‘국민 메신저’로 불릴 만큼 탄탄한 국내 경쟁력에 비해 해외시장 개척이 더딘 카카오에는 픽코마의 선전이 가뭄의 단비 격일 수밖에 없다.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김재용 카카오재팬 대표는 “본질에 집중한 결과”라는 다소 식상한, 그러면서도 울림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픽코마를 서비스하는 카카오재팬은 카카오가 지분 99.4%를 보유한 자회사다. 지난 2016년 4월 20일 첫 서비스에 나섰고, 올해 7월 들어 일본 내 양대 앱마켓(애플 앱스토어+구글플레이)의 비게임 부문에서 통합매출 1위에 올라섰다. 게임을 포함해도 4위다. 앱마켓에 오른 전 세계 모든 애플리케이션으로 범위를 넓혀도 7위에 랭크됐다. 넷플릭스나 판도라뮤직 같은 쟁쟁한 앱들도 픽코마보다 아래다. 지난해 거래금액(매출액) 1430억원을 기록한 픽코마는 올해 매출액 3800억원이 예상된다.

‘망가’로 상징되는 일본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만화 천국이다. 전체 만화 시장 규모가 5조6000억원에 달한다. 미국과 중국을 넘어 전 세계 최대다. 이 가운데 웹(Web)과 앱(App)을 합친 디지털만화 시장 규모만도 약 2조900억원 수준이다. 일본 디지털만화 시장에서 픽코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12.8%, 7900억원 수준인 앱만화 시장으로 좁히면 47.8% 점유율을 자랑한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게 지상 과제다. 그러니 시장을 선점한 사업자가 극도로 유리한 비즈니스다. 라인망가나 NHN 코미코 등 국내 기업을 비롯해 망가박스, 소년점프(슈에이샤), 마가포케(코단샤), 망가원(쇼가쿠칸) 등 쟁쟁한 현지 업체와 대형 출판사들은 이미 2013~2014년에 일본 시장에 뿌리를 내렸다. 후발 주자인 픽코마의 약진이 더욱 두드러지는 이유다.

작품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게 곧 차별화


▎올해 ‘픽코마 어워드 2020’ 수상 작가들에게 보낸 황금라이언 트로피. / 사진:카카오재팬
음원 발매와 동시에 차트 1위에 오르는 마법 같은 일은 물론 없었다. 픽코마는 서비스 론칭 한 달이 지나도록 앱스토어에서 하루 220엔, 구글플레이에선 매출 제로(0)에 그치는 수모를 맛보기도 했다. 몇 달만 지나도 트렌드가 휙휙 바뀐다는 디지털업계에서 앱 서비스는 3년, 웹시장에선 이미 10년이나 늦게 출발한 후발 주자의 설움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죠. 일본 작품을 포함해서 처음 내건 작품 수가 80개에 불과했으니까요. 당시 이미 일본에는 만화 관련 앱이 100개가 넘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작품을 주려 하지 않았어요. 이름 없는 후발 주자인 데다 엉뚱한 비즈니스 모델을 들고 나왔으니 거부감이 컸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김 대표는 일본에서 일반적인 ‘권’ 단위 대신 ‘화’ 단위를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했다. 유력 출판사를 돌면서 작품 공급을 제안했지만 “이미 단행본도 엄청 팔려나가는데, 그걸 굳이 왜 쪼개 팔려 하느냐”는 의구심만 돌아왔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과 상생의 실천을 모토로 지난해 도쿄에서 연 프로모션. ‘픽코마 어워드 2019’ 수상 작품들을 『연간 픽코마』잡지로 제작해 배포했다. / 사진:카카오재팬
사실 후발 주자라고는 하지만 연재 작품 수를 늘리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일본 내 총판(에이전시)과 계약을 맺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작품 하나하나를 읽고, 출판사 한 곳 한 곳을 직접 방문해 대면영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에이전시에 아웃소싱을 줘 물량을 늘리기보다는, 오롯이 작품 자체에 집중하자는 숙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앱만화라는 생소한 시장에 뛰어든 이상, 대형 출판사가 주도하는 현지 트렌드와 분위기를 직접 몸으로 익혀야 한다는 생각도 강했다. 출판사로부터 ‘어렵다, 안 된다’는 퇴짜 횟수가 늘수록 반대로 김 대표를 향한 업계 신뢰는 공고하게 쌓여갔다. ‘대표가 직접 발 벗고 뛰는 회사’라는 평판과 수많은 미팅을 거듭하며 다진 네트워크는 결국 출판사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벤프리즘’, ‘쿠루칸’ 등 충성스러운 독자층을 확보한 작품들을 하나둘 확보할 수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계약금 얼마’ 하는 식으로 심플한 비즈니스가 가능한데 일본은 그게 잘 안 되는 나라죠. 뭐 하나 결정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끌고요. 하지만 비즈니스 관계라도 한번 신뢰가 쌓이면 끝까지 파트너십을 놓지 않아요. 사업 초기부터 총판의 물량 공세를 지양한 배경입니다.”

대표가 직접 대면영업에 뛰어든 게 신생업체가 안고 있는 핸디캡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본에 없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어렵게 확보한 우수 작품들에 ‘기다리면무료(기다무)’ 서비스를 접목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기다무는 카카오페이지 등 한국에선 이미 검증된 독자 비즈니스 모델이다. 만화책 1권을 여러 편으로 나눈 뒤, 한 편을 보고 일정 시간을 기다리면 다음 편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무료 하트’처럼 모바일게임에선 이미 일반화된 모델이었지만, 일본 디지털 만화 시장에선 완전히 생소한 전략이었다.

웹툰, 일본 만화 시장 공략할 ‘치트키’


“요즘 애니메이션으로도 히트한 『귀멸의 칼날』이라는 작품은 종이책만 1억 부 넘게 팔렸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열흘 만에 극장에 300만 명이 몰렸죠. 잘 알려진 『원피스』는 누적 판매량이 4억2000만 부에 달해요. 그만큼 일본은 유료 콘텐트 수요가 탄탄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걸 왜 쪼개서 화 단위로, 더구나 무료로 뿌리느냐는 의구심이 강했어요.”

김 대표는 “이용자들이 기다리지 않고 돈을 내면 수익이 늘고, 시간을 지켜 무료로 보려면 매일 픽코마를 찾는 습관을 갖게 돼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며 지속적인 설득 작업에 나섰다. 그의 철학에 공감하는 출판사와 작가들이 하나둘 늘자 픽코마에 들어오는 작품 수도 급증하기 시작했다. 2018년 8월 들어 카도카와, 소학관 등 대형 출판사들이 픽코마에 작품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일본 최대 만화 잡지 ‘소년점프’를 발행하는 슈에이샤도 그해 12월에 합류했다. 현재 픽코마에는 일본 내 대부분의 대형 출판사들이 작품을 공급 중이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상품인 ‘웹툰’을 들여올 때도 예상보다 큰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당시 한국계 경쟁사들이 이미 론칭한 웹툰 전용 앱들은 무료 콘텐트를 무기로 이용자 확보에 열을 올리던 참이었다. 시장 초기 ‘웹툰은 공짜’라는 인식이 바뀌기까지 지난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던 한국 케이스가 일본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던 셈이다.

“픽코마가 처음 웹툰을 오픈했을 때 리뷰란에 쏟아진 엄청난 고객 항의가 기억나요. ‘왜 너희만 유료냐’부터 ‘왜 기다려야 하느냐, 마지막 회는 왜 무조건 유료냐’ 등 무시무시했죠. 경쟁사들이 무료로 웹툰을 보게 하고, TV 광고까지 대대적으로 나선 상황이었으니 일본에서도 웹툰은 공짜라는 인식이 퍼지고 만 거예요. 플랫폼 사업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모아야 하는 건 맞지만, 콘텐트 비즈니스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어요.”

결국 ‘콘텐트에 적정한 돈을 지불한다’는 일본의 탄탄한 문화 수요를 결국 우리가 망치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김 대표는 콘텐트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지키기로 결심했고, 픽코마에서 서비스하는 웹툰은 유료 연재가 원칙이 됐다.

결과적으로 한국산 웹툰은 픽코마의 1등 상품이 됐다. 총 4만여 개 연재작 중 웹툰은 400개 수준으로 전체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기존 출판물을 스캔한 ‘디지털코믹’ 작품들이다. 반면 픽코마 전체 거래액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달한다. 김 대표는 “일본 디지털만화 시장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5% 미만”이라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기대했다.

“가장 인기 있는 웹툰이 ‘나 혼자만 레벨업’이란 작품인데, 지난해 픽코마 모든 작품 중 매출 1위예요. 이 작품 하나로만 180억원을 올렸습니다. 단행본 부수로 환산하면 380만 부 정도예요. 한국이라면 초대박 베스트셀러겠지만, 일본에서 정말 잘나가는 작품은 1000만 부, 1억 부도 팔립니다. 그만큼 웹툰의 성장 가능성이 크고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뜻이에요.”

웹툰 특유의 ‘스낵컬처’ 성향은 픽코마의 비즈니스 지향점과도 일치한다. 김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스마트폰이지 기존의 일본 만화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일본이 만화 천국이라지만, 만화책을 보는 사람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에 열광하는 유저가 절대적으로 많다. 만화책을 열독하는 이용자도 놓치면 안 될 고객이지만, 그보다는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가벼운 콘텐트를 소비하는 이들이 픽코마에 들어와 과금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 포인트라는 설명이다.

“일본에서 히트한 모바일게임 한 편이 매출 2조원을 넘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의 1%만 우리에게 넘어와도 엄청난 거죠. 픽코마가 TV 광고 대신 유튜브 마케팅에 더 힘을 쏟는 이유예요. 웹툰은 바로 이런 스낵컬처의 대표 주자죠.”

매출보다 조직문화가 먼저다


지난 2015년에 카카오재팬 CEO로 합류한 김 대표는 NHN재팬 시절 평사원에서 시작해 센터장(이사) 자리까지 오른 ‘일본통’이다. 한게임에서 출발해 라인의 일본 이용자가 1억 명에 이르게 된 성공을 이끌어온 주역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카카오재팬 합류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미 2010년 무렵 카카오에서 합류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노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당시엔 라인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에 뛰어들 자신감도 부족했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시장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성공의 열쇠입니다. 일본에 먼저 진출한 라인이 그랬고, 한국 시장에 모바일 메신저 시대를 연 카카오톡이 그랬죠. 그런데 솔직히 직접 돈 버는 일은 자신이 없었어요. CEO로선 결격사유죠.”

카카오와의 인연이 다시 시작된 건 2015년 초였다. 당시 일면식도 없던 카카오 관계자가 아침식사에 초대했고, 약속 장소에선 뜻밖에도 김범수 의장이 인사를 건넸다. 김 의장과의 만남은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좋아하는 상사를 만나기는 쉬워도 존경하는 상사를 만나기란 어렵다”고 말한 김 대표는 NHN과 카카오재팬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 것이 오늘의 자신과 픽코마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능력 있는 상사보다 존경받는 상사와 일하고 싶다는 바람은 CEO로서 김 대표 자신을 향한 독백이기도 했다. 좋은 사람과 조직에 대한 욕심은 250명을 거느렸던 센터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전 직원이 18명에 불과한 작은 기업으로 적을 옮기게 만들었다.

“2015년은 여러 모로 카카오재팬이 힘들 때였어요. 카카오톡 사업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죠. 단적으로 라인의 오피스가 도쿄 랜드마크 지역에 있었던 데 비해 카카오재팬은 그렇지 않아요. 직원들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김 대표는 부임 첫날 ‘근면’과 ‘성실’이라는 경영 원칙을 취임 일성으로 전했다. 새로운 CEO에게서 이노베이션이나 변화 같은 원대한 모토를 기대했던 직원들의 입에선 교장선생님 훈화 같은 말에 ‘피식’ 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김 대표는 “고지식한 은행원으로 평생을 산 아버지가 해외에서 생활하는 아들에게 전한 말이 바로 근면·성실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디 가서 누구와 일하든 이 두 가지만 지키면 곤란하지 않을 것”이라던 말씀은, 40대 중반에 접어든 아들에게 어느덧 삶의 깊이가 담긴 화두가 돼 있었다.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우리 직원들이 정말 착해요. 대표가 말도 안 되는 목표를 내걸어도 묵묵히 따라옵니다. 지난 5년간 모두 정말 열심히 했어요. 론칭 첫 달인 2016년 4월, 실적이 너무 기대 이하라 비상회의를 했는데, 새 디자인과 기획이 10월은 돼야 나온다는 거예요. ‘일본의 여름방학이 우리 때문에 10월로 밀릴 거 같진 않다’며 7월 말까지 하루 열람자 수 1만 명을 달성하자고 제안했죠. 직원들 얼굴에 ‘무리’라는 글자가 보이더라고요.”

디지털만화 시장 성장세는 무한대


▎ 사진:카카오재팬
김 대표는 서비스 론칭 초반에 겪은 고생담을 이야기하던 중 뜬금없이 “성선설을 믿는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인터넷쇼핑에 열을 올리거나 웹서핑으로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모두 개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 일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되살릴 수 있는 조직문화를 갖추지 못한 건 직원이 아닌 회사의 책임이라는 말도 이어졌다.

“축구 감독만 리더가 아니에요. 그라운드를 지휘하는 주장이 실질적인 리더일 수 있죠. ‘지시형’ 리더는 절대 피하려 합니다. 때로 불만이 있어도 직원들이 믿고 따라 와준 건 대표 스스로 발 벗고 현장에서 뛰었기 때문일 거예요.”

놀랍게도 석 달 후 1만 명 돌파라는 목표는 현실이 됐다. 무리라고 생각했던 목표가 이뤄지자 직원들의 표정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일이 주는 재미를 알게 된 직원들에게 김 대표는 감사 메시지를 전달했다. “2만 명을 향해 가자”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다시 한번 전 직원을 멘붕에 빠뜨린 선언이었지만, 실제 하루 열람자 2만 명을 돌파하는 데는 그날 이후 정확히 열흘이면 족했다.

“2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점프하는 데 딱 일주일 걸렸어요. 흔히 IT나 플랫폼 기업은 좋은 개발자와 기획자가 전부라고 말하지만, 실은 조직문화가 더 중요하죠. 불가능할 것 같았던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마약 같은 거예요. 처음엔 ‘무리’라고 했던 직원들이 ‘이러다 되는 거 아냐’에서 ‘정말 되네’로 바뀌는 터닝 포인트를 경험한 거죠. 3만 명을 넘긴 후론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어요.”

2015년 4월부터 5월까지 첫 한 달간 낮은 유입률과 잔존율, 처참한 수준의 매출로 낙담했던 지표는 그해 12월 31일 하루 열람자 수 15만 명을 돌파로 바뀌었다. “이러다 너희 10만 가는 거 아니냐”며 웃었던 카카오 본사 관계자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대박이었다. 올해 픽코마의 하루 열람자 수는 370만 명에 달한다. 일 거래금액은 1억5000만 엔, 3분기 거래금액은 1300억원에 이른다. 하루 매출 200엔이라는 좌절감은 불과 5년 후 디지털만화 앱 플랫폼 1등 사업자라는 타이틀로 바뀌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근면·성실’ 류의 목표를 다시 꺼내들었다.

“디지털만화 앱 시장에서 픽코마 점유율이 50%에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5년간 열심히 달려온 성과가 분명하죠. 하지만 일본에는 앱시장만 있는 게 아니에요. 기존 만화를 스캔해 디지털에서 보는 웹시장 규모가 2조2000억원에 달하죠. 앱시장보다 2.5배나 큰 새로운 시장이 있다는 뜻이에요. 웹시장의 강자는 여전히 아마존 킨들이고요.”

김 대표는 “이게 다가 아니다”며 말을 이었다. 지난해부터 일본의 디지털만화 시장이 종이만화 시장을 앞섰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종이만화 시장 규모가 2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따지면 디지털과 출판을 통틀어 일본 전체 만화 시장에서 픽코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겨우 6~7% 수준이다. 글로벌 히트작인 『드래곤볼』이 유행하던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일본 만화시장 규모는 7조원에 달했다. 당시에 비해 한풀 꺾인 만화 열기는 최근 수년 전부터 디지털 활성화에 힘입어 우상향의 브이자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한국의 IT를 대표하는 모기업의 경쟁력도 픽코마가 가진 무기다. 실제로 픽코마 안에는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전문팀이 따로 있다. 만화 앱의 가장 중요한 사업 지표는 바로 잔존율이다. 김 대표는 “가령 1주일 안에 몇 번을 열람했으면 충성 유저가 된다는 ‘아하모먼트’를 찾았다”고 말했다. 픽코마 유저가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출판사의 어떤 작품이 누구에게 인기 있는지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뉴스레터도 제작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뿐 아니라 출판사나 작품을 직접 만드는 작가들과도 협업과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사업 확대를 위해 일본 증시 상장도 준비 중이다. 노무라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중간심사에 들어간 상태다. 김 대표는 “주식시장의 타이밍을 보기보다, 일본 디지털만화 시장의 변화에 맞춰 상장 시기를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에는 한국 웹툰의 일본 진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내 자회사도 설립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스스로가 “영문과를 졸업한 문학도 출신”이라며 “창작자와 플랫폼, 독자가 모두 신뢰하며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좋은 작품의 스토리가 영원히 사랑받듯, 공존과 협업이 바탕이 된 기업의 성장 스토리가 오래도록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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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호 (202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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