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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어그테크 파워(2) 한국형 스마트팜] 김혜연 엔씽 대표 

중동 왕가를 매료한 스마트팜 

12m 컨테이너가 모듈형 농장이 됐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이어 붙이고 쌓을 수 있단다. 더불어 온도와 빛, 습도, 영양액 등 식물이 자라는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 최대 연 13회까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 이 농장을 만든 곳이 한국 스타트업 엔씽이다.

▎엔씽은 이미 2018년 경기도 용인에 모듈형 스마트팜 재배동 16개 동을 설치해 연간 30톤에 달하는 작물을 생산·공급하고 있다. 올해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진출해 ‘모듈형 스마트팜 솔루션’ 수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CES 2020 최고혁신상 수상, 농업 분야로도 최초.’

엔씽(n.thing)에 붙는 수식어다. 이 스타트업은 사물인터넷(IoT) 기반 모듈형 스마트팜을 만든다.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20에서 엔씽은 단연 화제였다. 수식어 그대로 농업 관련 제품이 CES에 전시된 것도, (스마트시티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모듈형 스마트팜, 얼핏 보면 일반적인 컨테이너 같은데 신선 채소를 길러내 출하까지 전 과정이 이뤄지는 인큐베이터입니다. 채소가 자라는 과정은 실내에서 물을 주고 빛을 쬐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죠. 온도, 습도, 빛 등 모든 환경을 통제하면서 맛, 영양 성분, 식감, 생산량 등을 모두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량생산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지난 12월 15일 서울시 강남 압구정 엔씽 본사에서 만난 김혜연(35) 대표가 한 말이다. 김 대표는 “모듈형 농장 3개 동을 운영하면서 재배 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작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각종 소프트웨어 개발을 완료했다”며 “모듈형을 기획했던 당초 설계대로 100개 동 이상으로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엔씽은 지난 9월 총 12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누적 투자금액은 180억원이 됐다. 이번 투자에는 삼성벤처투자, 우아한형제들, 유진투자증권 등이 신규 투자사로 나섰고, 특히 유진투자증권 프로젝트펀드의 주요 출자자(LP)로 이마트도 참여했다.

대규모 모듈형 농장 조성에 속도가 붙었다. 김 대표는 아랍에미리트(UAE) 진출을 준비하며 해외를 겨냥했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KOTRA 두바이 무역관의 도움으로 아부다비에 모듈형 농장 100개 동(100억원 상당) 수출 계약도 상당 부분 진행됐다. 이 같은 엔씽의 거침없는 행보를 이끄는 김 대표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김혜연 대표는 “수직농장에서 재배한 작물을 팔고, 해외에는 ‘모듈형 스마트팜 솔루션’을 파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췄다”며 “용인이든 아부다비든 우주든 최상의 채소를 길러낼 수 있는 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수출 계약 소식을 들었다.

계약이 완료된 건 아니지만, 상당 부분 진행됐다. 사실 ‘CES 2020’에서 스마트시티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은 건 아랍에미리트에서 기술검증(Proof of concept, PoC)을 완료한 덕이 컸다. 수출 계약 진행이 빠른 것도 현지 기술 검증에 나섰기 때문이다.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다.

기존에 창고나 컨테이너를 활용한 사례가 있음에도 엔씽이 주목받은 이유는 뭔가.

차이가 있다. 우선 대형 창고에 수직으로 쌓아 올려 채소를 키우는 경우를 봤을 거다. 창고 자체가 흔한 미국에 많다. 겉으로 보면 초대형 창고에 차곡차곡 쌓은 재배판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품질관리와 수확이 문제다. 위치상 맨 아래와 위는 온도차가 커서 채소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며 키울 수 없다. 수확도 문제다. 사람이 오르내리며 수확하다간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는 같은 컨테이너 방식인데, 이건 1개 기준으로 농장을 꾸리다 보니 생산성 자체를 따지기가 모호하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문제를 극복했다.

한 단계 진화한 건가.

그렇다. 우리는 모듈형 농장을 2.5세대급으로 나눈다. 일단 모듈형으로 만들어 수직과 수평으로 이어 붙일 수 있다. 100개 동 기준으로 연간 생산 가능한 채소량이 400톤 정도다. 모듈로 나눠 붙였기 때문에 한 동에 병충해나 문제가 생겨도 떼어내면 나머지에서 생산·출하하는 것도 문제없다. 무엇보다 채소 품질이 좋다. 온도, 습도, 빛 등 모든 환경을 통제하다 보니 채소 식감부터 맛, 영양 성분까지 원하는 대로 재배할 수 있다. UAE에서 실증 사업할 때 5성급 호텔 셰프가 모듈형 농장에서 출하한 채소를 최고 식자재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UAE를 첫 타깃으로 삼은 이유가 있나.

중동의 경우 채소류는 모두 수입한다. 자체 산업군에서 농업이란 단어가 없다고 봐야 한다. 채소는 밀과 쌀처럼 수입이 쉽지 않고 유통이 까다롭다. 그러다 보니 되레 식재료인 채소를 귀하게 여기고, 품질을 구분하기도 더 까다로워 식감이나 맛에 따른 가격차도 심하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지에서 수입한 채소는 1등급, 나머지는 요르단 같은 주변 지역에서 수입한 농산물이 차지한다. 아무리 최고급을 사 와도 운송 시간이 있어 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모듈형 농장 채소는 최고 등급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 UAE 왕족 일가는 모듈형 농장에서 나온 채소만 소비한다.

코로나19 덕을 본 셈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중동 지역 국가들이 식량 수급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됐다. 특히 유럽이나 주변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채소류 작물 수입이 원활하지 않았다. 한국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신선식품 유통이 간단하지 않다. 엽채류 가격이 들쭉날쭉한 날이 많다는 게 모듈형 농장을 들고 갔을 때 환영받은 이유다. CES도 최고 품질의 채소를 안정적인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채소류에만 국한된 건 아닌가.

상추만 키우는 게 아니다.(웃음) 지금까지 각종 샐러드 채소를 비롯해 허브 등 50여 가지 작물의 재배 테스트를 마쳤다. 유럽에 주로 납품하는 샐러드용 고급 채소류는 그냥 따서 먹어도 맛있다. 채소 유통이 쉽지 않은 중동이라면 어떻겠나. 꽤 고가다. 모듈형 농장에서 재배하니 농약이 필요 없고, 영양 성분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대량생산이 가능해 가격이 낮아지니 신선한 채소를 더 쉽게 먹을 수 있다.

실제 중동 현지 반응은 어떤가.

상당히 오픈 마인드다. 중동 국가들은 자체 기술로 원유를 생산하는 게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글로벌 기업이 기술과 자본을 들고 들어가 원유제국을 건설했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기술과 인프라를 제공하고 여기서 얻어지는 채소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보여줬다. 실증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었고, 수출 얘기까지 빠르게 오갔다.

노지(맨땅)나 하우스 재배 농가가 상당히 많다. 컨테이너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거다. 노지의 힘이 필요한 작물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 노지와 하우스 재배와는 추구하는 시장이 좀 다르다. 이 시장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수백 년간 아니 수천 년간 두 분야에 쌓인 작물 재배 레거시(전통)가 어마어마하다. 갑자기 모듈형 농장이 완전한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식재료용 채소 일부분은 모듈형 농장이 효율적으로 생산해 납품까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100배나 증가했고, 물 사용량은 98% 절약했다. 순환식 수경(배양액 사용)재배라 농약도 필요 없다.

농업 관련 일을 해본 것 같다.

두 가지 경험이 큰 재산이 됐다. 대학생일 때 외삼촌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비닐하우스 농장 사업을 했다. 그때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과 똑같은 비닐하우스 토마토 농장 조성 사업을 맡은 적이 있다. 첫해 한국인 관리자가 있을 때는 수확한 토마토가 실했는데, 한국인 관리자가 빠지니 토마토 수확량이 형편없이 줄었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노하우가 담긴 정밀한 관리가 필요한 게 농사였다. 역시 농사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한국전자부품연구원에서 IoT 플랫폼을 개발할 기회를 얻었다. 한 연구원이 관련 기술을 정리한 블로그를 보고 무작정 연락해서 위촉연구원 자리를 따냈다. 기술을 공부하니 원거리에서, 사람이 없어도 농작물 관리를 할 수 있겠더라.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나.

그렇다. 2014년 대학 친구들과 함께 엔씽을 창업했다. 처음엔 재배 자동화 화분을 가지고 시작했다. 당시 중소기업벤처부와 구글이 선정하는 K스타트업으로 뽑혀 개발지원금을 받았다. 이 돈으로 3개월간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크라우드펀딩까지 받아 소량 생산했다. 이후 실증 사업을 하고 싶어 딸기농장을 빌려 농사를 지어봤는데, IoT 기술로도 현재의 비닐하우스 시설 내 환경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더라. 그래서 수경으로 재배 기반을 바꾸고, 재배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택했다.

환경을 통제한다는 게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다는 얘기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사계절이 있고, 밤낮이 있다. 식물이 자라면서 맞는 환경은 제각각이다. 빛과 온도가 항상 일정하다고 작물의 맛이 좋은 게 아니다. 적절한 환경 변화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환경 통제가 어려운 이유다. 컨테이너를 도입했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었다. 2017년 1개 동에서 출발해 2018년 3개 동, 지금은 용인에 10개 동을 운영하며 실증 사업을 하고, 관련 기술을 계속 연구·개발하고 있다. 최대 몇 대까지 모듈화로 엮을 수 있는지, 재배작물은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지, 영양 성분과 식감의 변화, 유통까지. 우리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완전한 무인화 시스템인가.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모듈형 농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과정에서 사람은 장갑을 끼고 있어 식탁에 오를 때까지 채소에 ‘사람 손이 닿지 않는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신선한 채소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최상의 맛을 위해 각종 IoT 기술을 기반으로 온도와 습도, 빛 등 모든 조건을 소프트웨어가 조절한다. 외부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한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그래서 기술도 빛, 온도를 각각 나눈 게 아니라 식물을 심는 것부터 재배, 출하까지 원스톱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내재화했다. 장기적으로 모든 모듈화 농장에 로봇을 투입하는 ‘완전 자동화’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그대로일 듯싶다. 외부환경 변수를 차단하고 최적의 환경을 맞춰 유전자를 변형하거나 농약을 치지 않고도 건강한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이 우리 목표다. IoT 기술이 농업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단기적으로 채소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동,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지에 모듈형 농장을 수출하고자 한다. 세계 도시 어딜 가도 최고 품질의 채소를 값싸게 즐기게 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2101호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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