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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EAR ESSAY 2025] 권동수 로엔서지컬 대표 

수술의 패러다임을 바꿀 타이밍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 내 삶을 돌아보면 때마다 중요한 기로가 존재했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카이스트에서 로봇공학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학문적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실용적 가치를 창출하는 길을 고민하던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정년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자문했다. “나는 진정 실용화할 수 있는 연구를 했고, 다음 세대에 필요한 학문을 가르쳐왔는가, 아니면 울타리 안에 안주하도록 가르쳤는가?” 이 질문이 나를 연구실 밖, 산업 현장으로 나가게 했다.

2017년, 은퇴를 5년 앞두고 남미 안데스산맥으로 트레킹을 갔을 때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로 꼽히는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평원을 앞두고 도착한 첫날. 날씨가 좋았지만, 편한 일정을 택해 다음 날로 일정을 미뤘다. 막상 다음 날이 되니 갑작스럽게 몰아친 먹구름과 눈보라로 절경을 보는 기회를 놓쳤다. 그때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우유니사막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오히려 큰 교훈이 됐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선봉에 설 테니, 창업을 경험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나오라.” 그렇게 2018년, 제자 여덟 명과 함께 ‘로엔서지컬(ROEN Surgical)’을 창업했다.

학생 창업가들의 순수한 열정과 학문적 기반은 기존 산업 문법과 다른 혁신적 접근을 끌어냈고, 4년 만에 혁신적인 수술 로봇 완제품의 인허가 후 혁신의료기술 트랙으로 6년 만에 성공적 시장 출시라는 결실을 보았다.

내 로봇공학의 여정은 NASA 스페이스셔틀의 로봇팔 제어 연구를 시작으로, 오크리지 연구소(Oak Ridge National Laboratory)에서 핵폐기물 처리 로봇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원격조종 로봇 연구에 걸쳐 있다. 이후 카이스트에서 논문 446편과 특허 245개를 기반으로 축적한 연구 역량과 기술은 오늘날 로엔서지컬의 수술 로봇에 그대로 집약됐다.

우리의 목표는 ‘유연내시경 기반 수술 로봇’ 기술로 의료 현장의 수술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의 자연 개구부로 들어가, 절개 없이 몸속 관을 통해 환부에 접근해 이뤄지는 ‘엔도루미날 서저리(Endoluminal Surgery)’는 장기 손상 및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빠른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 수술 로봇들이 복부에 작은 구멍을 뚫는 최소 침습 수술 방식을 통해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면, 우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진보한 무침습 수술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로엔서지컬의 핵심 제품인 ‘자메닉스(Zamenix)’는 직경 2.8㎜의 유연내시경을 이용해 신장결석을 절개나 상처 없이 잔여 결석이 거의 없도록 제거하는 혁신적 수술 로봇이다. 여기에 AI 기반 호흡으로 신장결석의 움직임 보상, 내시경 경로 재생, 결석 크기 안내 기능을 탑재했다. 수술의 정밀도·효율성·안전성을 대폭 높였다. 이는 수술 후유증을 줄이고 재발률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의료진 편의성과 안전성 극대화를 동시에 충족하는 기술적 진보다. 우리의 기술은 신장결석 수술을 넘어 담관, 췌장, 폐, 심장 등 다양한 내부 장기에 적용 가능한 엔도내시경 수술로봇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현재 모듈형 엔도내시경 시스템과 현미경 기반 미세수술 로봇 연구 등으로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로엔은 내게 도전과 실험의 무대다. 첫째, 일론 머스크의 사례처럼 진정한 사업의 성공은 훌륭한 제품을 뛰어넘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있다. 우리가 개발한 자메닉스 수술 로봇 플랫폼이 수술의 혁신을 이끌고 의료 생태계 전반에 가치를 창출한다면, 이는 곧 로엔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

둘째, 로엔의 젊은 멤버들이 회사와 함께 성장하며 60대의 내 경험을 뛰어넘는 큰 꿈을 실현하기를 바란다. 전 직원이 주주로 참여한 이 회사가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셋째, 우리의 성과는 개인적 부의 축적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로엔의 성공은 내 사후에도 의미 있는 유산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이스트 연구를 바탕으로 시작한 로엔이 긴밀한 유대감을 통해 얼마나 강하게 발전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실험이다.

로엔의 여정은 혁신, 성장, 가치를 향한 우리의 약속이다.

우리는은 앞으로도 ‘환자의 안전’과 ‘의료진의 편의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의료 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의료 패러다임 전환의 ‘타이밍’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전의 깃발을 든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를 기대해도 좋다.

202501호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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