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10월 미국인 해리 홀트가 한국의 전쟁고아 8명을 처음 입양시킨 이후 입양아들은 주로 미국·프랑스·벨기에·스웨덴·노르웨이 등 선진국과 6·25 참전 형제국으로 보내졌다. 이때 입양의 주된 명분은 전쟁으로 인한 혼혈아들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지만, 전쟁 후의 참담한 가난이 해외입양의 부정할 수 없는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해외입양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의 해외입양은 한국이 가난하고 무지한 나라여서가 아니다. 한국인의 혈통주의적 편견과 뿌리깊은 차별의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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