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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묻어라!” 

고라니가 망쳐 놓은 가을 밭에 서다…“자연을 알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
농부 서연의 생태산문 대지가 여윈 몸을 뒤척일 적에 ⑪  

김장채소를 심은 밭이 다 망가졌다.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의 소행이다. 그 놈 참 밉다. 그러나 녀석도 살아가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먹을 것이 귀해진 산을 헤매다 풋내가 나는 우리 밭에 당도했을 것이다. 내 마음에 미움이 커지면 고라니가 다친다.
산색이 변했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메숲진 산, 그 산허리에는 갈잎나무도 살아 그예 꾀꼬리단풍이 들었다. 만추(晩秋)다. 한로(寒露)를 사나흘 앞두고는 서릿바람도 불었다. 올 들어 무서리가 처음 내린 날, 바람은 늘 불어오던 그 바람과 사뭇 달랐다. 바람은 냉기가 솔잎처럼 날카로웠다. 겨울이 오는 낌새를 만추에 만나는 일은 소슬하다.



몸에서는 소름이 돋는다. 소름은 몸의 언어 아닌가. 몸이 말을 하니 마음이 그 말을 듣고 다시 말한다. 몸은 가을이 저문다고 말하고, 마음은 저무는 것이 어디 가을뿐이랴, 그리 말한다. 여시(如是) 여시(如是). 인간도 저문다. 무상(無常)한 세월을 지켜보는 일은 때로 가볍고, 때로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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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호 (200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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