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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두보, 이백을 따라 중국을 주유하다 

시문학의 절정, 당시(唐詩)의 세계를 따라간 문학여행… 이백·두보·백거이·맹호연·왕유·이상은 등의 삶과 문학 조명 


▎<중국, 당시의 나라> 김준연 지음 궁리|2만8000원
고등학교 시절, 마치 암호문과 같았던 <두시언해>를 통해 접했던 두보의 시가 기억난다. 당시(唐詩)를 처음 만난 것은 <두시언해>를 통해서였는데, 대학입시를 앞둔 지겨운 암기공부에 불과했지만 왜 그리도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일까? 두보의 무채색 슬픔과 한없이 깊은 격정이 남긴 각인이었을 것이다. 두보의 삶과 시를 제대로 알고 싶은 것은 아직도 실현하지 못한 소망으로 남아 있다.

최근 송준호 연세대 명예교수는 현토(懸吐·토달기)의 방법을 숙지했던 선인들이 번역한 <두시언해(杜詩諺解)>를 고전 번역의 전범으로 제시한 바 있다.

예컨대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으로 시작하는 두보의 시 ‘춘망(春望)’을 보자. <두시언해>는 “나라히 파망하니 뫼콰 가람뿐 있고, 자앗보매 플과 나모뿐기펫도다”(나라가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진다)로 번역했다.

송 교수는 <두시언해>의 번역자가 ‘춘망’의 원문을 “國破하니 山河뿐(만) 在하고, 城春에 草木뿐(만) 深하도다”로 토를 달아 읽고 이를 번역했을 것이라 추론한다. 한정조사 ‘~뿐’과 감탄어미 ‘~도다’를 연결한 번역문의 수사는 유상한 자연과 무상한 인간사를 대비하며 원작품의 감정적 질량을 고스란히 살린 번역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작곡가 이건용(서울시 오페라단장) 씨도 고3 때 읽은 <두시언해>의 감동을 한 칼럼에 쓴 적이 있다. 이씨가 반한 시는 ‘촉상(蜀相)’이다. “승상애 사당을 어대가 차자리오”로 시작되는 ‘촉상’은 촉나라의 승상을 지낸 제갈량을 읊었다. 제갈량은 뛰어난 영웅이었지만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역시 천신만고의 삶을 살았던 두보는 그래서 제갈량을 남달리 흠모했다고 한다. 제갈량에 대한 시를 13편이나 남겼다.

<중국, 당시(唐詩)의 나라>는 김준연 고려대 중어중문학 교수가 ‘당시’를 따라 중국 전역을 누빈 기록을 담은 책이다. 1천년이 넘은 고대의 유물이지만, 당시의 자취는 지금도 중국 곳곳에 살아 숨쉰다. 저자는 중국 전역을 누비기를 10여 년, 중국 내에서의 이동 거리만도 1만2500㎞에 이르며, 13개 성(省)에 산재한 수십 개의 시와 현을 찾아다니며 당시 200여 수의 내역을 훑었다.

김 교수의 답사 코스는 이백·두보·백거이·맹호연·왕유· 이상은 등이 쓴 시의 무대다. 황암폭포 앞에서는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라는 이백의 시구(詩句)에 감탄한다. 태산(泰山)에 올라가서는 두보가 20대 나이에 썼다는 “언젠가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뭇 산들이 작은 것을 한 번 내려다보리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는 식이다.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가독성을 월등하게 높였는데, 시의 역사성에 현장성을 보탠 까닭이다.

서쪽 돈황으로부터 동쪽 태산까지, 다시 남쪽 계림으로부터 북쪽 승덕까지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중국 시문학의 절정인 당시의 세계에 푹 빠져들 수 있다. 특히 두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저자의 다른 책 <사불휴, 두보의 삶과 문학>(공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

201501호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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