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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포커스 | 여권 빅뱅 오나? 상생 혹은 상쟁, 박근혜와 김무성에게 달렸다 

청와대 행정관 문건 파동 배후 발언으로 당·청 관계 급속 냉각… 총선 1년여 앞두고 주류·비주류의 힘겨루기 본격화될 듯 

이가영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청와대 문건 유출, 민정수석 항명 파동 등으로 청와대가 난기류에 휩싸인다.
‘이준석, 손수조, 음종환, 이동빈.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1월 12일. 국회 본 회의장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수첩에 쓰여 있던 마흔여 글자가 카메라에 잡혔다. 몇 줄에 불과한 이 메모는 을미년 새해 벽두부터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발칵 뒤집어놨다. 영어 이니셜까지 포함돼 언뜻 암호문처럼 보이는 이 메모가 실제론 당·청 갈등의 민낯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메모에 등장한 음종환 청와대 행정관이 1월 14일 사표를 내는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 같았지만 여권에선 오히려 “묵혀왔던 당·청간 불협화음이 이 정도로 봉합되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일을 기화로 여권 내 주류-비주류 간 다툼이 본격화되리란 전망과 함께다.

대체 K, Y가 누구였길래 음 행정관이 사표를 낸 걸까.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전하는 전말은 대략 이렇다.

지난해 12월 18일,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손수조 새누리당 부산 사상구 당협위원장,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 출신인 음종환·이동빈 청와대 행정관 등과 청와대 인근에서 저녁 모임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위원과 음 행정관 사이에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음 행정관은 검찰 조사 결과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십상시(十常侍)’ 중 한 명으로 지목됐던 인사다. 이 자리에서 음 행정관은 “문건 파동의 배후는 김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이 전 위원은 전했다. 결국 K와 Y의 정체가 김 대표와 유 의원이란 설명이다.

이 전 위원은 “당시 음 행정관에게 두 사람을 배후로 지목한 근거를 묻자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대구에서 공천을 받으려고 유 의원에게 줄을 댄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 행정관이 말한 ‘배후’란 정윤회 문건을 유출하고 사건의 판을 키운 세력 뒤에 김 대표와 유 의원이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전 위원은 1월 6일 열린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 결혼식에서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만나 음 행정관과 주고받은 얘기를 전했다. 이 전 위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런 얘기가 있으니 김 대표와 유 의원에게 청와대에 한번 확인해 보고 주의를 시키란 의미에서 말한 거였다. 고자질의 차원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화를 냈다고 한다.

김무성·유승민, 청와대와 감정의 골 깊어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1월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수첩에 적혀 있던 메모가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 같은 내용이 전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된 1월 14일에 열린 김무성 대표의 신년회견에서도 역시 이 문제가 뜨거운 이슈였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일부러 언론에 수첩에 적힌 내용을 보도되도록 했다는 ‘고의 노출설’까지 나왔다.

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처음 (이 전 위원으로부터) 들을 때 하도 황당해서 이것을 (내 수첩에) 메모했는데 너무 황당한 얘기라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의 노출설’과 관련해 “본회의장에서 다른 메모를 찾다가 그게 찍힌 것”이라며 “음해를 당하는 것도 기막힌데 그렇게 누명을 씌우는 것도 참 기막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음 행정관은 “술자리에서 ‘박관천 경정은 피라미다. 조응천 비서관이 배후다. 반드시 밝혀낼 거다’라고 한 걸 이 전 위원이 잘못 알아 들은 것”이라고 해명 했다. 그러면서 “‘조 전 비서관이 대구에 출마하려고 유 의원한테 줄대려고 하더라. 김 대표한테도 당연을 줄대려고 했겠지’란 얘길 했는데 그걸 이 전 위원이 오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음 행정관은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음 행정관이 K, Y에 관한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공직자로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음 행정관과 이 전 위원의 진실공방으로까지 번진 이 사태는 어찌 보면 술자리의 해프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파장은 그야말로 일파만파다. 행정관의 말실수나 과장된 표현으로도 넘길 수 있는 이 발언이 여권을 뒤흔들고 있는 이유는 뭘까. 여기엔 김 대표와 청와대, 또 유 의원과 청와대간의 ‘역사’가 담긴 감정의 골이 놓여 있다.

김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원조 친박’이다. 유 의원도 못잖다. 두 사람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2005년 각각 사무총장과 비서실장으로 박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하며 2007년 경선 캠프에서도 핵심역할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경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하고 2008년 총선에서 김 대표가 낙천하면서 원조 친박 간엔 균열이 생겨났다. 특히 김 대표의 경우 무소속으로 당선해 복당한 후로는 박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져갔다.

원래부터 정치하는 스타일이 달랐던 두 사람은 이제 서로 다른 편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입장이 됐다. 김 대표는 이 전 대통령 측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달랐다. 세종시 수정안, 김 대표의 원내대표 출마 등을 두고 김 대표와 박 대통령은 대립했다.

이와는 별개로 유 의원은 스스로 박 대통령 측과 거리를 뒀다. 박 대통령의 사람 쓰는 방식(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의 중용 등)에 이견이 있었고, 자신이 핵심책사로 보필했던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2002년)에서 패배한 데 이어 박 대통령도 당내 대선후보 경선(2007년)에서 고배를 마셔 충격을 받은 터였다. 유 의원은 그 후로 철저히 수면 아래로 잠복하며 의정활동에만 몰두했다.

이들이 박 대통령과 함께한 기간이 오래된 만큼 멀어진 거리의 폭도 컸다. 특히 김 대표의 경우 박 대통령측이 공천에 큰 영향력을 쥐었던 2012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며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해 말 대선 때 복귀해 총괄본부장을 맡으며 박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부산 영도 재선거를 통해 원내에 복귀한 김 대표는 정치 초년병 시절부터 꿈꿔온 당 대표 도전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친박계는 이때도 서청원 최고위원을 지원했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서 최고위원 측에 호감이 있다는 건 정치권 인사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집권 3년차, 주류와 비주류의 샅바싸움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주호영 정책위원장,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왼쪽 두 번째부터)가 지난해 9월 16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정국현안을 논의하기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임기 2년차 중반기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비박’의 대표주자 명찰을 단 김 대표가 승리했다. 김 대표는 당선되자마자 “청와대에 할 말은 하겠다”고 했다. 김 대표와 박 대통령은 이후 표면적으론 서로를 존중하며 부딪치는 일은 없었지만 감정의 앙금이 그리 쉽게 가라앉는 건 아니었다. 김 대표는 종종 사석에선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들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고,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김 대표가 박 대통령 생각은 않고 자기 정치만 하려고 한다”는 불만을 말했다.

그런 가운데 바로 음 행정관의 발언이 김 대표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김 대표로선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란 얘기는 얼토당토않은 중상모략으로밖에 여길 수 없었다. 이를 통해 김 대표는 현 청와대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짐작했을 거란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지난해 10월 상하이 ‘개헌 발언’ 때는 청와대 수석이 직접 나서서 김 대표를 공격했다. 그런데 이번엔 일개 행정관이 여당 대표인 자신을 음모의 배후로 지목하는 데에선 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 대표와 가까운 한 재선 의원은 “음 행정관은 그냥 행정관이 아니다. 정호성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과 대학 동문(고려대 88학번)으로 행정관 중 실세란 건 이미 알려진 사실 아니냐”며 “음 행정관이 김 대표를 문건 파동의 배후라고 말한게 사실이라면 이는 청와대가 김 대표를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음 행정관은 실제로 정 비서관의 대학 동기로 박 대통령의 측근인 권영세 주중대사와 이정현 최고위원의 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대선 당시엔 캠프 공보기획팀장을 맡았다. 그의 직함도 직함이지만 보좌관 시절에도 뛰어난 정무감각으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다.

일단 김 대표는 음 행정관의 사표가 수리된 만큼 이 문제가 더 이상 확산되기를 원치 않고 있다. 유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유 의원은 “조응천 전 비서관을 만난 적이 있지만 공천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쯤에서 진화하자는 입장이다.

K(김무성)와 Y(유승민)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음 행정관은 사표를 냈고, K와 Y는 상황 정리를 원하는 만큼 이 사태가 일단락될 듯하지만 오히려 여권의 분위기는 반대다. “터질게 터졌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생각보다 일찍 터진 측면이 있지만.”

한 당직자의 말에서 이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바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 내 파워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다. ‘정윤회 문건 파동’부터 음 행정관 관련 메모까지, 결국은 여권 내 주류와 비주류가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한바탕 싸움을 치르기 위한 전초전이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인가? 올해는 박근혜 정부의 중반부로 접어드는 3년차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정부는 3년차가 되면 ‘조급증’에 시달리는 경향이 있다. ‘이미 2년을 지나왔고, 남은 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 이때가 아니면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 힘들다. 특히 개혁이 그렇다’는 생각 때문이다.

총선까지 1년, 친박·비박 사사건건 부딪칠 듯


▎2010년 당시 김무성·박근혜 의원. 세종시 수정안 등으로 두 사람은 갈라섰다.
새누리당 친박계 한 초선 의원은 “3년차야 말로 현 정부 개혁의 골든타임”이라며 “이 시간을 놓치면 더 이상 개혁이나 성과를 운운할 수 없게 된다. 누구보다도 대통령 스스로가 그걸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대통령은 모든 국력과 당력을 정부의 개혁에 쏟아붓고 싶어한다. 경제 살리기와 대북문제 해결 등이 모두 해당한다. 공무원연금개혁 등 각종 개혁과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치 일정을 보아도 내년 총선까지 꼭 1년의 기간이 남았다. 올 연말부터는 본격적인 총선전(戰)에 돌입한다고 봤을 때 남은 시간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민심의 통로인 정당으로선 정부의 정책 방향을 곧이곧대로 따라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당장 표를 생각해야 하기에 여당임에도 정부와 부딪칠 일이 쌓이게 마련이다. 다음 대선을 생각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여당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총선 성적표와 정부의 평가가 반드시 같이 가는 것만은 아니다. 때론 정부측에 반대 목소리를 낼 때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당내 주류-비주류 간 싸움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현 여권은 박 대통령 주변의 친박 인사들이 주류임에는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당 내에서 수적으로는 비박계에 뒤처지고 있다. 여권 내에서 일종의 ‘여소야대’가 형성 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친박도, 비박도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올 한 해 짜인 정치 스케줄상 양쪽이 1년 내내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먼저 닥친 건 사고 당협위원장 선출 문제다. 과거 당협위원장이 공석일 땐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가 심사를 거쳐 임명했다. 그런데 이번엔 여론조사로 아직 결정되지 않은 6개 지역의 당협위원장을 결정키로 했다. 지난해 말 부터 당장 친박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일부 최고위원은 ‘지분’을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당협위원장이 된다고 해서 곧바로 20대 총선 공천 티켓을 쥐게 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확실히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당협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신경전이 더욱 치열해지는 거다.

일단은 서울 중구와 성북갑, 수원갑(장안) 등이 관심 지역이다. 자유선진당 출신인 문정림(비례) 의원이 여론조사 경선포기를 선언한 서울 중구는 비례대표 민현주 의원과 지상욱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 간의 남녀 2파전으로 압축됐다. 서울 성북갑은 지난 대선 때 탈당했다 복당한 정태근 전 의원과 권신일 에델만 코리아 부사장이 격돌한다. 수원갑은 재선 출신인 박종희 전 의원과 비례인 김상민 의원이 격전을 치른다. 박 전 의원은 서청원 최고위원의 복심으로 통한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여론조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 씨와 결혼한 김상민 의원의 인지도가 오르는 데 불안감을 나타냈다. 김 의원은 수원 토박이임을 내세워 박 전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김 대표가 이들 지역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키로 결정한 데는 스스로가 공천에서 두 번이나 낙천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김 대표는 당 대표에 당선되면서 의원들에게 크게 두 가지를 약속했다. 공천권을 놓겠다는 것, 연장선상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논란의 여지를 없애려 여론조사를 도입했지만 각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또 다른 논란이 일어났다. 일단 당협위원장 선출이 끝나더라도 일부 지역에서 승복하지 않는 인사가 나온다면 김 대표로서도 골치 아픈 상황이 된다.

당협위원장 선출이 끝나고 4월 중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원내대표 경선은 올해 여권의 역학 구도를 가름하는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는 몇 가지 변수가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경선 시기다. 경선 시기가 언제냐가 정부, 청와대의 인사 시기와 연동될 수 있어서다. 이는 이완구 현 원내대표의 거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를 기정사실화했다. 다만 현재 진행중인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라는 단서를 달았다.

개각의 경우 당장 총리를 포함한 대규모 개각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현재 인사 요인이 발생한 해양수산부장관 정도를 채울 뜻을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차기 총리감으로 여권에서 꾸준히 얘기돼 왔다. 오랜 공직 생활 경험에 충청 출신이란 점이 더해져서다.

만일 그가 총리에 지명되면 현 정부의 충청 출신 최고위직 인사가 된다. 이 원내대표가 총리직에 가기 위해서도 인사 시기는 중요하다. 대통령이 2~3월 중에 총리를 포함한 개각을 단행한다면 할 일 많은 여당 원내대표를 곧바로 차출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게다가 그는 공무원연금개혁을 4월까지 완수 해야 하는 중요한 미션을 띠고 있다.

이 원내대표가 임기를 다 채울 경우 경선은 4월에 치러진다. 새 원내대표의 임기가 5월 초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해양수산부장관 출신인 4선의 이주영 의원과 3선의 유승민 의원의 양강 대결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당내에선 “경선 시기다 앞당겨지면 이 의원이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가 정부에서 당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다는 ‘거부감’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의 관계로 보면 유 의원이 더 오래됐지만 최근들어 이 의원이 ‘친박’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해수부 장관을 맡아 팽목항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세월호 사건을 마무리한 공 때문이다.

지난해 말 열린 친박계 인사들의 송년모임에도 그는 얼굴을 비쳤다. 상대적으로 유 의원은 비박계 인사들의 지지를 더 받는 편이다. 유 의원 입장에서 친박계가 이 의원을 지지하는 게 서운할 수도 있지만 그림이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여기에 친박계 핵심 홍문종 의원이 가세할 기미를 보인다. 그렇다면 원내대표 경선은 더욱 복잡한 구도 속에 치러지게 된다.

그러나 과정이 어찌됐든 유 의원이 당선된다면 당은 비주류가 더욱 득세하는 분위기로 갈 수밖에 없다. 유 의원을 지지하는 상당수 의원은 “유 의원은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 대표-유 의원 체제는 주류인 친박계로서는 불편한 조합이 될 수 있다. 또 이는 지난해 정의화 국회의장이 황우여 교육부장관을 경선에서 누르고 의장후보가 된 것, 지난해 김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것과 맥이 닿게 된다. 그런 만큼 친박계로서도 똘똘 뭉칠 가능성이 높다. 한 친박계 중진의원은 “당 대표에 원내대표까지 비박으로 채워진다면 친박은 더 이상 주류일 수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개헌 논의 터져나오면 다시 마찰 가능성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한때 찰떡궁합이었다. 2008년 5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4·29 보궐선거도 여당엔 중요한 전기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함에 따라 갑자기 생겨난 선거다. ‘무선거의 해’로 꼽히던 2015년에 결국 3석의 국회의원을 다시 선출하게 됐다. 이 3석 모두 통진당 의석이었던 만큼 새누리당으로선 다른 선거에 비해 부담이 덜한 편이다.

반면 이 중 한 석이라도 건지게 되면 여당의 위상, 특히 김무성 대표의 위상이 높아진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 연대의 산물로 탄생했던 3석을 두고 이번엔 야권끼리 경쟁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새누리당이 성남 중원과 서울 관악을에 약간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김 대표의 상하이 발언 이후 쑥 들어간 개헌 논의도 올해 중요한 관전포인트다. 김 대표는 1월 14일 기자회견에서 “장래를 보면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경제 살리기란 발등의 불이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물론이거니와 여당 내에서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설문조사를 하면 과반수 의원이 개헌에 찬성한다.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는 안 된다고 못박은 이후 잠잠해지긴 했지만 올 들어 개헌 요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걸 막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개헌은 선거구 획정과도 맥이 닿아 있다. 지난해 헌재가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2대 1로 맞추라는 결정을 내린 만큼 20대 총선 6개월 전까지는 새로운 선거구 획정이 이뤄져야 한다. 여야는 이를 비롯해 각종 선거제도와 정치제도 개선을 위해 2월 임시국회 중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개헌 논의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만일 개헌논의가 활성화된다면 다시금 박 대통령 측과 비주류 간에 큰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인사도 주요한 대목이다. 정부나 청와대의 경우 2~3월 중 소폭, 5월 중 대폭 인사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여권에서 흘러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취임 초기 국민의 기대를 벗어난 큰 요인 중 하나는 인사실패였다.

초대 총리(김용준 후보자)부터 시작해 몇 차례의 인사 참사가 빚어졌다. 여당 내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대체 누구와 인사를 상의하느냐”는 얘기가 곳곳에서 쏟아졌고, 이 같은 불만은 지난해 말 ‘정윤회 문건’ 논란이 터지고 확산되는 데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박 대통령은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지만 만일 또 국민적 논란을 부를 인사가 주요 직에 온다면 여당이 감싸기는커녕 먼저 반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이어서 그만큼 여론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여당의 인사도 관심사다. 김무성 대표가 취임 2년차를 맞아 주요 당직을 교체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친박계가 ‘인사 소외’를 주장한 만큼 김 대표가 어떤 탕평책을 쓸지에 시선이 쏠린다. 어떤 인사를 하느냐에 따라 주류-비주류 간 갈등이 더 거세질 수도 있고, 당분간 화해 모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권은 3년차를 맞아 가시적 성과에 목마른 정부· 청와대와 총선을 한 해 앞둔 여당의 힘겨루기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박 대통령을 위시한 친박계가 주류임에 틀림없지만 여당 내에선 수적으로 비주류가 우세한 상황이다.

정치 일정의 주요 고비 때마다 어떤 정치적 수를 두느냐에 따라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확 쏠릴 수도 있다. 양측의 다툼이 치열해지면 자칫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하고 모두 패배자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생의 길 찾으면 전면전은 피할 수도

그렇다면 여권이 다 승리할 수는 없을까? 여권 내에선 “쉽지 않지만 방법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껏 부족했던 당· 청 간 소통의 물꼬를 트는 것이 그 첫째 해법이라고 꼽는 이들이 상당수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확실히 손을 잡는 모습을 보인다면 굳이 뿌리가 같은 여권 내에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일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많다.

김 대표는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청 간에 소통 할 만큼 해왔지만 좀더 밀접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과 앞으로 정기적으로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또 “당·청 간 간극이 있는 것처럼 알려지기도 하고 그렇게 보일 수 있기도 했다”며 “(청와대) 소통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 아니냐.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소통을 하겠다’고 한 만큼 저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타협과 절충을 중시하는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대화를 간절히 바란다. 당장 음 행정관 문제에 대해서도 그냥 사표로 끝낼 일이 아니라 청와대 측의 성의 있는 답변을 원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도 올해 들어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만일 두 사람이 자주 만나 소통하고 여권의 공생 방안을 논의한다면 주류-비주류 간 전면전은 기우에 그칠지도 모른다

초선 의원은 “총선이 코앞에 닥쳐왔다. 당내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예 없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그러나 건전한 싸움은 하되 다같이 죽는 길은 안 된다. 이를 해결할 사람들은 딱 두 사람, 박 대통령과 김 대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정치를 해온 두 사람이 어떤 길로 갈지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가영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201502호 (201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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