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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귀소본능의 대가, 비둘기의 몰락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한때는 통신용, 경주용으로 쓰였던 길조가 ... 이제는 농작물 축내는 ‘유해조수(有害鳥獸)’로 전락

▎멧비둘기는 알을 단 두 알만 낳는다. / 사진·중앙포토
중요한 나라 행사가 있는 날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렸다. 비둘기는 세계적으로 300여 종이 살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7종이 있다 한다. 우리나라에는 공공장소에 흔히 보는 집비둘기(Columba livia domestica ), 몇 마리 안되는 양비둘기, 울릉도·흑산도·제주도 등 섬의 흑비둘기(Columba janthina ), 산비둘기라고도 불리는 멧비둘기(Streptopelia orientalis ), 홍도 등 서해오도(西海五島)에 사는 소수의 염주비둘기, 옛날에 길 잃은 새(미조, 迷鳥)로 드물게 채집된 적이 있는 홍비둘기와 녹색비둘기가 서식한다.

그런데 집에서 많이 키웠던 집비둘기(domestic pigeon)는 야생비둘기(C. livia)를 길들여 사육한 것이다. 그리고 집비둘기는 본래 산비둘기와 같이 날렵하였으나 요샌 도시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나 빵부스러기를 질리도록 잔뜩 먹어 보통 비둘기보다 오동통하게 살이 올라 비만 비둘기가 되었으니 이들을 ‘닭비둘기’라거나 ‘돼비둘기’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아무데나 마구 나대면서 지저분하게 똥 싸고, 널브러지게 깃털 날리니 그만 밉상 받아 퇴출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멧비둘기(oriental turtle dove, rufous turtle dove)는 비둘깃과의 조류로 몸길이 33㎝로 썩 날씬하고, 암수가 어슷비슷하여 좀체 구별이 어려우며, 날개 길이가 19~20㎝인 매우 흔한 텃새(resident bird)이다. 몸통에 비해 머리가 작고, 적자색인 다리도 짧아서 땅딸막하다. 머리·목·가슴은 연한 황갈색이고, 등·허리·꼬리·날개는 잿빛이며, 쐐기(wedge)모양을 한 꽁무니 끝에 흰 띠가 있다. 목 양쪽에 파란색의 굵은 세로무늬가 있고, 배는 옅은 적갈색이 도는 연한 회백색이며, 부리는 어둔 회색이고, 홍채(虹彩)는 등황색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자박자박 걸을 때는 머리를 앞뒤로 까닥거리고, 후다닥 날갯짓을 할 때는 상대를 겁주는 ‘핏핏핏핏핏’ 쇳소리를 낸다.

멧비둘기는 한국·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텃새로 살고, 일본 북부·러시아·몽고 등지에서는 여름에만 들르는 여름철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도시공원, 산림 가장자리, 들판, 경작지에 두루 산다. 풀씨나 추수후의 벼·보리·옥수수·콩 등의 곡식 낟알과 나무열매가 주식이지만 여름에는 메뚜기나 그 밖의 곤충류도 잡는다. 그러나 농작물을 축내기에 유해조수(有害鳥獸)로 포획대상이다.

멧비둘기는 새끼를 치는 여름엔 숲에서 일부일처로 암수가 짝을 짓지만, 번식이 끝나면 수십 마리씩 우르르 무리를 이룬다. 짧은 만남에 긴 이별이라 하겠다. 마른 잔가지를 물어다 적당히 얼기설기 모아 접시모양의 집을 퍼뜩 짓는데 다른 새집에 비하면 그저 짓다 만 것처럼 매우 엉성하다 하겠다.

짝짓기 때는 눈이 먼 수컷 놈이 짝은 놓칠세라 ‘구구구구구’, 그렁그렁 구르는 목소리로 속닥대고, 목의 깃털을 한껏 부풀리며, 연신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온 몸으로 암놈을 채근하며 부추겨 꾄다. 산란기는 2~7월이고, 한배에 순백색의 알 두 개를 낳으며, 1년에 2~3회까지도 번식한다. 알 품기는 15~16일간으로 암수가 시간씩 번갈아 가며 안는다.

함경도에는 ‘멧비둘기 우는 소리’ 민요로 전래

비둘기 무리는 특이하게 어미의 모이주머니(crop)벽에서 하얀 암죽(우유) 같은 젖(crop milk)을 만들어서 새끼를 꾹꾹 토해 먹이니 이를 ‘비둘기우유(pigeon milk)’라 한다. 달리 말해서 비둘기의 육아식(育兒食)인 셈이다. 새끼는 열흘 남짓 지나면 씨앗 등의 딱딱한 먹이를 먹고, 부화된 지 한 보름이면 둥지를 떠난다.

예로부터 멧비둘기는 꿩과 함께 잡도록 허락된 사냥새(수렵조, 狩獵鳥)였다. 그리고 멧비둘기를 잡아먹는 포식자(捕食者, predator)에는 포유류인 오소리와 맹금류인 매, 올빼미이다. 그런가 하면 어치(산까치)란 놈이 멧비둘기알과 어린 새끼들을 잡아먹는다 한다.

멧비둘기는 나름대로 몸이 실팍져서 살코기가 푸지고 맛나서 옛사람들이 좋아하였다지만 유독 어린아이나 미혼자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그것은 멧비둘기가 알을 단 두 알만 낳기 때문이어서 그랬단다. 그때 그 시절엔 누구나 자식을 여럿 두었기에 자녀를 둘만 둔다는 것은 죄를 짓는 일로 여겼다. 다다익선이 따로 없었다. 한데 어째서 요새사람들은 종족보존 본능(種族保存本能, the instinct of preservation of the species)을 깡그리 잃어가는지 까닭을 모르겠다. 천하에 그런 고얀 짓을 하다니.

독자들은 주변 야산나무나 동네방네 전깃줄에서 수놈 멧비둘기가 처량하게 울고 우는, 구슬픈 시름에 잠긴 4음절의 울음소리를 자주 듣는다. 애잔하고 비통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청승맞다고나 할까. 암컷을 꼬드기겠다는 사랑소리가 왜 그리도 애처롭고 한스럽게 들린담. 봄부터 여름까지 처연하게 ‘구우구우 구우구우’, ‘풀꾹풀꾹 풀꾹풀꾹’하고 운다는데 내 귀에는 이상스럽게도 ‘부꾹부꾹 부꾹부꾹’으로 들린다.

우리 어릴 적에 수놈 노랫가락(울음음률)에 맞춰 “계집 죽고, 자식 죽고, 서답 빨래 언제 하노” 하고 따라 불렀는데 함경북도에는 “어미 죽고, 자식 죽고, 장독 팔아 안장(安葬)하고 망건 팔아 술 사먹고”라는 ‘멧비둘기 우는 소리’ 민요가 있었다 한다. 그야말로 다들 수놈비둘기 울음이 죽은 어미·자식이나 계집을 잊지 못하고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애끓는 소리로 들렸던 게지. 귀소본능(歸巢本能, homing instinct)이 더할 나위없이 센 문서비둘기(전서구, 傳書鳩, homing pigeon)는 통신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그리고 비둘기 경주는 서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다고 하며 경주용 비둘기(racing pigeon) 중에는 우리 돈으로 약 4억5000만원에 거래된 놈도 있었다 한다. 이들은 뇌 속에 있는 자장조직(磁場組織, magnetic tissue)으로 지구자기장(地球磁氣場, earth’s magnetic field)을 탐지하여 1000㎞까지도 날아갔다가 되돌아온단다.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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