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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⑭] 호모 사피엔스, 그리고 늑대와 개 

소녀와 늑대개가 동굴 속을 나란히 걸었다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기원전 4만 년 전 사냥·채집경제의 혁명, 야생동물을 인간이 사육 대상으로 삼았다는 증거 발견… 개는 혹독한 빙하기에서 생존하도록 돕고, 마침내 농업·정착경제로 이동하는 연결고리 역할

늑대는 뛰어난 신체와 오감으로 먹을 것을 찾아 추격하는 최고의 추격자였고, 호모 사피엔스는 지적인 능력과 무기를 가진 최고의 사냥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빙하기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상상할 수도 없는 혁신을 감행한다. 늑대를 ‘개’로 사육한 것이다. 인간은 늑대 사육을 통해 자신을 자연, 특히 동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가장 충직한 동료를 얻게 됐다. 그리하여 개는 인간에게 도시와 문자라는 정교한 문명을 구축하는 데에도 중요한 발판이 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는 아르고스라는 개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변장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유일하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그의 충견 아르고스뿐이었다.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와 재회를 한 후 바로 숨을 거둔다. / 사진·중앙포토
서양에는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친구는 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문구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프러시아 프리데릭 대제다. 그는 난폭한 아버지 프리데릭 윌리엄 1세 아래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오늘날 러시아를 정치적, 지적으로 수준 높은 국가로 만든 자신의 삶에 정신적인 위안과 용기를 준 두 가지 경험을 말했다. 하나는 여동생 빌헬미나의 변함없는 후원과 사랑, 그리고 그를 떠나지 않고 지켜준 비체(Biche)라는 그레이하운드였다.


▎프리데릭 2세는 프러시아 왕국의 제3대 국왕으로 계몽군주로 알려졌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친구는 개다”라는 말을 남긴 이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삶에 정신적인 위안과 용기를 준 대상으로 여동생인 빌헬미나와 비체(Biche)라는 이름의 그레이하운드를 꼽았다. / 사진·중앙포토
프리데릭은 비체가 죽었을 때의 슬픔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너(비체)의 죽음은 나의 삶의 철학을 완전히 전복시킬 정도로 상실감이 크다. 나는 너에게 나의 모든 결점을 털어놓았다. 나는 너, 비체를 잃었다. 너의 죽음은 너를 나에게 선물한 친구를 포함한 모든 나의 친구를 잃은 슬픔을 일깨운다. 나는 비체가 이렇게 깊이 나의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줄지는 몰랐다. 그러나 비체의 충성심이 나를 매료시켰고 비체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었다. 나는 고백한다. 나는 슬프고 괴롭다. 사람이 꼭 매정해야 하나? 나는 이렇게 충성스러운 동물에게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자신의 동료에게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기원전 4만 년경 호모 사피엔스는 얼음으로 덮인 유럽에서 사냥으로 힘겹게 생존하고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방식을 사냥과 채집이었다. 회색 늑대가 개로 진화하기 전에 인간과 늑대는 사냥을 통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경쟁자였다. 늑대들도 빙하기에 살아남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늑대는 뛰어난 신체와 오감으로 먹을 것을 찾아 추격하는 최고의 추격자였고 호모 사피엔스는 지적인 능력과 무기를 가진 최고의 사냥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늑대를 ‘개’로 사육한다. 개는 인간의 사냥을 도와주고 어둠 속에서 인간들을 지켜주고, 가축을 보호한다. 개는 인간에게 혹독한 빙하기를 생존하도록 도와주고, 기원전 1만2000년경 시작한 농업정착경제로 이동을 연결시켜주는 고리였다.

20년간 주인 기다린 오디세우스의 명견


▎쇼베동굴 내부의 벽화. 쇼베동굴은 1994년 프랑스 남부 아르데쉬 계곡에서 세 명의 동굴 탐험가에 의해 발견됐다. 쇼베동굴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최초의 그림들이 벽에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기원전 3만2000년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1만년 사이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 사진·중앙포토
서양문명의 기원을 다룬 서사시인 호모로스의 <오디세이아>에 아르고스(Argos)라는 감동적인 개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의 충견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연합군과 함께 트로이 원정을 떠나 10년간 전쟁을 하고, 그 후에 자신의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 데 다시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돌아와 이타카 도시국가를 재건하려 한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을 떠난 20년간 수많은 사람이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접근하여 혼인으로 이타카의 왕이 되려 시도하였다. 오디세우스는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스스로 걸인으로 변장해 집으로 돌아간다.

오디세우스가 집에 다가가자, 자신이 20년 전 트로이로 떠나기 전 훌륭한 사냥견이었던 아르고스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오디세우스의 궁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성문 밖에 하인들이 버린 거름더미 사이에 누워있었다. 아르고스의 몸은 너무 늙고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고 몸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아르고스는 한때 속도와 힘, 그리고 충성심으로 유명한 명견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친구이자 돼지를 관리하던 에우마이오스에게도 자신의 신분을 속인다. 이들이 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이 낯선 사람이 자신의 주인 오디세우스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아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아르고스였다.

아르고스는 20년 전, 자신을 데리고 사냥을 하던 주인 목소리를 감지하였다.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의 목소리를 듣고 머리를 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아르고스는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20년 동안이나 기다린 인내의 화신이다.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와 사냥을 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주인이 신성한 트로이로 가버려 인간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아르고스는 야생 염소, 사슴, 그리고 토끼 뒤를 따라가 주인에게 물어오곤 했었다. 아르고스는 오디세우스가 온 사실을 알고 꼬리를 치고 두 귀를 내렸으나 주인에게 가까이 갈 힘이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개였던 아르고스를 알아보았지만 에우마이오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이 개가 어떤 개인지 물었다.


에우마이오스는 말한다. “이 개는 여전히 생김새와 능력이 뛰어나, 오디세우스께서 트로이로 가실 때와 같았다면, 그 속력과 용맹을 보고 감탄을 금지 못할 것입니다. 이 개가 일단 추격하면 우거진 숲의 깊숙한 곳에서도 이 개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는 들짐승은 없었습니다.” 에우마이오스가 이렇게 말을 마치자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궁궐로 들어갈 참이었다. 그러나 아르고스는 20년 만에 학수고대하던 오디세우스를 다시 보는 순간 곧바로 숨을 거두고 만다.

에우마이오스는 여기서 아르고스의 세 가지 능력을 언급했다. 첫째는 속도, 둘째는 용맹성, 그리고 셋째는 추적능력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빙하기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 상상할 수도 없는 혁신을 감행한다. 그 혁신이란 무리 지어 살면서 야생 사냥의 최강자인 늑대를 사육하는 일이었다. 무기를 지닌 인간과 경쟁하던 늑대가 인간에게 유리한, 인간을 자신의 무리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프랑스 쇼베동굴의 비너스 벽화


▎쇼베동굴 벽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사자, 매머드, 그리고 코뿔소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 동물들을 사냥하지 않았고 당연히 먹지도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지하 동굴로 내려와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이 우주와 자연의 일부로 다른 동물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프랑스 남부 아르데쉬 계곡에서 발견된 쇼베동굴(Chauvet Cave)은 1994년에 3명의 동굴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탐험가들 중의 한명인 장 마리 쇼베(Jean-Marie Chauvet)다. 그의 이름을 본떠 이 동굴의 이름이 붙여졌다. 쇼베동굴의 벽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그린 최초의 그림들이 벽에 그려져 있다. 이 벽화들은 탄소연대 측정에 의하면 기원전 3만2000년부터 시작해 기원전 1만 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그 후에 산사태로 입구가 막혀 2000년 동안 거의 진공상태로 있다가 최근에 발굴되었다. 쇼베동굴의 길이는 400m이며 곳곳에 커다란 방들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동면했던 동굴곰의 두개골과 뼈들, 사슴과 두 마리 늑대의 두개골을 발견하였다. 벽에는 곰들이 손톱으로 긁은 흔적들이 있었고, 바닥엔 곰 발자국들이 남아있다.

쇼베동굴 벽화들을 크게 붉은색 그림들과 검은색 그림들로 나눌 수 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그림들은 말들을 그린 패널, 사자들과 코뿔소를 그린 패널이다. 동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들은 사자, 매머드, 그리고 코뿔소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 동물들을 사냥하지 않았고 당연히 먹지도 않았다. 그들은 더 많은 사냥을 기원하면서, 굳이 그들이 거주하지 않는 지하동굴로 내려와 한 손엔 횃불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오커 같은 황토색 물감을 이용해 이토록 정교한 이미지를 그려놓은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우주와 자연의 일부분으로 다른 동물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쇼베동굴의 가장 안쪽 노두(露頭)에 그려진 그림은 충격적이다. 노두란 지표면에 노출된 암석 또는 암반을 이른다. 400m나 되는 쇼베동굴의 맨 끝에는 비너스의 음부부분이 검은색으로 묘사되었다. 눈높이에 그려져 있는데 동굴을 방문하는 호모 사피엔스들의 감상용이었다. 누군가 나중에 들어와 여성 성기를 표시하기 위해 음각으로 파, 검은색이 제거되고 종유석 색깔인 노란색이 드러났다. 풍만한 허벅지를 가진 다리 상단이 묘사되었고 발을 보이지 않는다. 이 비너스 모양은 그 당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에서도 발견된 비너스의 기본적인 형태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비율, 표현방식이 놀랍게도 똑같다. 비너스 왼쪽에는 커다란 암사자가 있고, 그 밑으로 세마리 고양이과 동물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비너스 오른쪽에는 들소 가면을 쓴 샤먼이 꾸부정하게 어깨를 굽혀 비너스에게 다가가려 한다. 풍요를 상징하는 비너스와 풍요기원을 진행하는 샤먼이 인류 최초 벽화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쇼베동굴의 늑대-개와 어린아이 발자국


▎호모 사피엔스는 쇼베동굴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에 비너스와 암사자, 그리고 들소 가면을 쓴 샤먼의 그림을 그려놨다. 인류는 자신의 삶을 연장해주는 풍요의 신을 비너스로 표현했고,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하나로 연동된 운명공동체로 여겼다. / 사진·중앙포토
호모 사피엔스는 암사자, 비너스, 그리고 들소 가면을 쓴 샤먼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나? 이 그림을 그린 예술가는 자신이 전하려는 내용을 의도적인 생략으로 표현하였다. 우선 비너스는 음부와 허벅지 일부만 표시했다. 비너스 위에 있는 암사자나 샤먼의 몸도 일부만 검은색 윤곽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장소는 쇼베동굴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았다. 인류는 자신의 삶을 연장시켜주는 풍요의 신을 비너스로 표현하고, 그 기원을 위한 의례를 위해 이곳 지하로 내려온 것은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들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하나로 연동되어 있는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미녀와 야수>의 주제는 파블로 피카소의 <미노타우르>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쇼베동굴은 호모 사피엔스들의 그림뿐만 아니라 인간의 진화과정을 밝혀주는 중요한 발자국들을 남겼다. 8~10세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맨발자국과 그 옆에는 늑대나 큰 개로 추정되는 동물 발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동안 학자들은 늑대가 사육되기 시작해 개가 된 시기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가장 오래된 개를 기원전 1만 년 정도로 추정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견된 이 발자국들은 그것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2만8000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아이의 발자국과 그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늑대’ 발자국은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쇼베동굴에 남긴 동물은 야생 늑대도 개도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들이 이제 막 사육을 시작한 단계이기 때문에 이 동물을 편의상 ‘늑대-개’로 부르자. 최근 고인류학자들은 벨기에, 체코, 우크라이나, 그리고 남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에서 기원전 3만1000년에서 기원전 1만4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늑대-개의 뼈를 발견하였다. 이 늑대-개는 어린아이를 몰래 따라온 것인가? 아니면 어린아이와 늑대-개는 함께 걸어서 동굴로 들어온 것인가? 이들의 발자국이 동시에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는가?

쇼베동굴을 자세히 조사해보면, 동굴곰이나 다른 동물들이 이곳에서 지낸 흔적은 있지만, 인간이 거주한 흔적은 없다. 호모 사이엔스는 벽화를 그리거나 혹은 성인식과 같은 의례를 치르기 위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기껏해야 여덟 살 난 어린아이가 왜 깊숙한 동굴에 들어왔을까? 태양빛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 왜 혼자 들어왔을까? 아이는 분명히 부모와 함께 동굴에 들어왔다. 더욱이 동굴 안에 어린아이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린아이와 늑대-개의 발자국이 겹쳐지지 않고 나란히 파였다. 이들은 사이 좋게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날 개들은 늑대의 후손들이다. 과학자들이 최초의 개들이 남긴 DNA분석을 통해 기원전 1만 년경 중국과 중동지방에서 각각 등장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쇼베동굴은 이 두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늑대에서 개로의 변화는 인간이 가축을 키우기 시작한 시기인 기원전 1만년이 아니라 늑대를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났을 것이다. 늑대를 사육하는 사람들은 늑대 새끼를 어려서부터 키운다면, 늑대는 인간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고 일생 동안 가족의 일원으로 여긴다. 쇼베동굴 안에 벽화를 그린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러한 늑대의 행동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늑대를 사육하여 밤에 자신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거주지를 지키고, 사냥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동물로 변화시켰다. 쇼베동굴은 인류 최초의 예술작품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와 늑대의 발자국로 남겼다. 인간이 동물과 관계를 맺어 효과적으로 사냥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고양되었다.

인간의 사육(飼育) 혁명


▎인간이 늑대를 사육해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만2000년경이다. 뒤이어 인류가 개를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생활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1만2000년경이다. / 사진·중앙포토
호모 사피엔스는 기원전 4만 년부터 야생동물들을 사육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양하게 이용하였다. 인간의 동물사육은 농업의 발견한 기원전 1만1000년 전보다 훨씬 앞선 사냥-채집경제의 혁명이었다. 사육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가장 지배적인 정의는 인간중심적이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분명한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동물의 움직임, 먹이, 보호, 분배, 그리고 교배를 조절하는 과정이다. 사육된 동물은 인간의 경제적인 자산이 되어 인간사회 구조 안으로 들어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다.

‘사육’에 관한 또 다른 정의는 사육하는 인간과 사육되는 동물 간의 상호적인 활동으로 인간과 동물 모두가 이롭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런 동물사육은 자연계 안에서 동물들 간의 공생을 위한 상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자연의 상호주의는 본질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고 서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의존한다. 그러나 인간의 동물사육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기존의 행위를 버리고 새로운 행위를 만들어 낸다. 특히 인간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적인 접촉이 아니라, 수정된 행위를 사육하는 대상에게 적용하는 주체가 된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특정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동물들을 다양하게 실험한다. 인간은 자신이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평가할 수 있다. 인간은 동물사육을 위해 새로운 행동들을 만들어내고 전달하면서 자연에서 동물들 간에 존재하던 상호주의를 넘어 자신이 만물의 영장이 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을 획득하였다.

동물이 인간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과 방법은 다양하다. 동물사육은 여러 가지 생물학적 변수와 사회적인 환경을 통해 대개 다음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째는 공생이다. 동물들은 먹을것을 찾아 돌아다니나 우연히 인간이 남긴 음식물을 발견하여 자주 이곳에 와서 배를 채운다. 혹은 이 음식물을 찾아오는 자신보다 취약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이 관계에서 인간보다는 동물에게 혜택이 많다. 인간 거주지에 접근한 동물들은 인간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인간들은 다가온 동물들을 위해 일부러 음식을 남겨놓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호관계는 동물사육의 첫 단계가 된다. 개는 공생관계가 사육으로 발전된 가장 적절한 예다. 늑대는 인간이 남긴 음식을 먹기 위해 인간거주지에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늑대는 원래 무리를 지어 공동체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늑대 무리의 대장인 알파늑대가 아닌 덜 공격적인 늑대가 무리를 이탈하여 인간 거주지에 접근하다. 이런 늑대들의 특징은 동시대 다른 늑대들과는 달리 덜 성장하여 점점 유년화 과정을 거친 늑대다. 이 늑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뼈 골격이 점점 줄고 치아의 크기와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둘째는 사냥 먹잇감 방식이다. 인간이 동물을 사냥하는 목적은 먹기 위함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잡은 동물을 바로 죽여서 먹지 않고 일정한 장소에 두고 오랫동안 길러 잡아먹었다. 인간들은 이렇게 잡은 동물들 중 사육이 가능한 대상을 선별하였다. 인간들은 비교적 난폭하지 않는 야생동물들을 자신의 중요한 자산으로 만들었다. 그에 해당하는 동물이 소, 양 염소, 그리고 닭과 같은 가금류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가축은 이 방식으로 시작하여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가축이 늘어나면서 인간이 사냥하러 나가는 시간이 현저히 줄게 됐고, 가축의 가죽을 제거하여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셋째 방식은 좀 더 정교하고 의도적인 사육이다. 인간들은 자연에서 자유롭게 노는 동물을 잡아 사육한다. 그들은 ‘공생’과 ‘사냥 먹잇감 방식’을 터득한 후에 의도적인 사육을 시작하였다. 의도적인 사육은 동물로 하여금, 사육 이전에 지닌 야생적인 행동을 제어하거나 제거하여 인간의 삶에 적응된 동물로 만든다. 이 사육은 오늘날의 유전자 조작과 같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 결과 인간은 사육에 걸림돌이 되는 동물들의 행동을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였다. 말은 의도적인 사육의 대표적인 예다. 인간들은 사육하기 비교적 쉬운 동물들, 즉 양이나 염소를 사육하기 시작한 이후 야생말을 사육하기로 결정한다. 말은 인간에게 고기, 우유, 다양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장거리 여행이나 운송을 용이하게 해준다.

말라하 무덤과 강아지


▎이스라엘 북쪽의 아인 마라하에서 발굴된 기원전 1만 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유골. 왼편으로 누워 있는 인간이 두 손에 조그마한 뼈들을 잡고 있는데, 이 뼈들은 DNA 조사 결과 새끼 개인 것으로 판명났다. / 사진·중앙포토
인간이 늑대를 사육하여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창의력이 분출한 기원전 3만2000년경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동물 사육을 시도하였고 사냥을 기반으로 한 삶도 정착되었다. 인류가 개를 본격적으로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생활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1만2000년경이다. 빙하기가 거의 끝날 무렵, 카니스 파밀리아리스(canis familiaris)라는 사육된 늑대개가 인간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과 개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고학적 발견이 있다. 이스라엘 북쪽의 아인 말라하(Ein Mallaha)라는 장소에서 기원전 1만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인간의 유골이 왼편으로 누어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다. 그의 두 손은 머리맡에 있는 어떤 조그만 뼈들을 잡고 있다. 이 뼈는 DNA 조사를 통해 강아지로 판명되었다. 인류는 이제 자신의 생존을 넘어 문화와 문명을 개척해야 할 문턱에 와 있었다. 그들은 예상이 불가능한 먹잇감을 조절하기 위해 동물의 사육이라는 혁명적인 발상을 통해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먹을 것을 확보하였다. 인간들이 말, 소, 염소, 양, 닭과 같은 동물을 우리에 가둬 사육한다고 하더라고 이것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것을 해결해줄 가장 적절한 동물은 바로 개였다.


▎최근 과학자들은 개와 주인 사이엔 특별한 호르몬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인이 개를 쳐다보고 쓰다듬어주면 ‘모성애 호르몬’이라는 별명을 가진 옥시토신이 개와 인간 모두에게 활발하게 분비된다. / 사진·중앙포토
인간이 어떻게 늑대를 사육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쇼베동굴의 발자국이 인간과 늑대의 첫 만남이라면, 인간은 그 이후 거의 2만 년 동안 늑대를 사육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혀 다른 동물로 변화시켰다. 그것이 바로 개다. 늑대는 길고 강력한 다리를 가져 하루에 8~10시간 동안이나 먹을것을 찾아 다닌다. 늑대가 달리는 평균속도는 시속 8㎞이고 최대 속력은 시속 40㎞다. 늑대는 다섯 개의 발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달리고 멈추고 방향을 바꾸는 데 천부적인 능력을 갖췄다. 한마디로 사냥하기 위해 태어난 먹이사슬의 최강자다.

더구나 42개 치아와 강력한 턱 근육은 자기보다 큰 먹잇감도 물고 옮길 수 있게 해준다. 늑대는 후각이 예민해 거의 300m 떨어진 먹잇감도 감지할 수 있고, 자신의 사냥감을 직시하는 능력을 가졌다. 이것을 ‘죽음의 대화(conversation of death)’라고 부른다. 늑대는 호랑이나 사자와 달리 무리생활을 하고 ‘알파늑대’라는 대장 늑대에 절대 복종하는 엄격한 위계질서에서 존재한다. 이들은 ‘죽음의 대화’와 ‘울음 소리’ 혹은 무언의 몸 신호로 무리를 지어 추격하던 사냥을 한순간에 포기하기도 한다. ‘카니스 루프스(canis lupus)’라는 회색 늑대의 털은 겹겹이 몸을 감싸고 있어 영하 40도에서도 견딜 수 있다. 수컷은 보통 길이가 170㎝, 꼬리는 50㎝, 무게는 45㎏ 정도다.

인간은 늑대 새끼를 의도적으로 키우면서, 늑대들이 자신을 부모로 생각하도록 키웠다. 늑대는 자라면서 인간을 자신의 무리로 착각하고, 인간의 집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자신이 돌본 가축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늑대는 강력한 신체조건으로 이제는 늑대를 포함한 다른 침입자들을 막는 인간의 가장 친구가 되었다.

최근 과학자들은 개와 주인 사이에는 특별한 호르몬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주인이 개를 쳐다보고 쓰다듬어주고 산책을 시켜주면, 주인과 개 모두에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활동한다.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은 어머니가 어린아이의 눈을 볼 때, 어머니의 뇌에서 분출하여 어머니와 어린아이를 하나로 만드는 사랑의 묘약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회색 늑대를 사육해, 개가 된 순간부터 인간 무리의 삶 안으로 들어와 인간과 개는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이 이제 늑대 사육을 통해 자신을 자연, 특히 동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사육하기 시작한 가축들을 보호하는 가장 충직한 동료를 얻었다. 개는 인간에게 도시와 문자라는 정교한 문명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미국 시인 오그덴 나시(1902~1972)는 ‘개를 소개합니다 (Introduction of Dog)’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다.
맨 끝에는 꼬리가 있고,
맨 앞에는 치아가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네 다리가 있다.

개는 짖기를 좋아한다.
특히 해가 지고나면 더 짖기를 좋아한다.
개는 좀도둑을 쫓아낼 뿐 아니라,
잠 귀신도 멀리 내쫓는다.

집안에 있는 개는
모든 것을 탐험한다.
당신은 개를 내보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개는 다시 당신에게 돌아오고 싶습니다.

당신이 목욕시키려 한다면,
개는 꺼려하고 화를 낸다.
개는 뼈를 땅에 숨겨놓고
대게는 사람들 옆에서 빠르게 걷는다.

개는 들판에서 가장 기뻐한다.
뛰고, 뛰고, 또 뛴다.
그러나 도시에서 개는
끈에 묶여 끌려 다닌다.

개는 뾰족탑처럼 꼿꼿이 서있고
사람보다 더 충성스럽다.
사람들은 더 괘씸한 이유는
아마도 개들이 더 현명하기 때문이다.

배철현 -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셈족어와 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 쐐기문자가 기록된 베히스툰비문의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에 개원한 미래혁신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이다.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이 있다.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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