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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혼돈의 시대… 시인에게 사랑을 묻다] 정현종-생명의 황홀함에 바쳐진 시학 

“새로운 질서와 감동의 시대로 나아가자”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사진 김경록 기자 kim8486@joongang.co.kr
쇠망과 파멸의 상태에 있는 모든 시대는 주관적…반면 모든 발전하는 시대는 객관적인 경향을 지닌다

신년호부터 우리 시대를 대표할 12인의 시인을 차례로 만난다. 모든 것이 물질적 가치로 환원되고 평가되는 시대에, ‘우리가 진정 찾아야 할 사랑의 가치’를 시인의 삶과 시를 통해 되새겨보기 위한 시도다. 사랑의 힘과 열정이 내재하지 않는다면 정치적인 자유, 사회정의조차도 공허한 이념일 뿐이다. 시인에게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틋한 마음, 역사의 진전에 대한 신뢰,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대한 열망을 듣는다. <편집자>


▎모교인 연세대 교정에 선 정현종 시인. 시인은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문학을 공부하는 까닭은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칫 광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1일 연세대학교 서울 캠퍼스에서 정현종(77) 시인을 만났다. 혼돈의 시대에 그에게 길을 묻기 위해서였지만, 우리 사회는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어 고통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과연 길이 열릴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선다. 서정시에 새로운 스타일과 내용을 불어넣은 혁신의 시인으로서,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생명에의 외경과 자연이 가져다주는 견고한 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장구함과 단단함에 비견하여 혼돈 따위는 일시적인 것이란 확신을 그는 들려줬다. 최근 대통령의 수치스러운 농단과 모멸의 정치에 대해서는 무거운 한숨을 토했다. 그가 보기에 최근의 한국은 경청의 부재, 나르시시즘, 도덕적 파탄과 광신이 빚은 혼돈과 퇴행의 연대기다.

“쇠망과 파멸의 상태에 있는 모든 시대는 주관적이다. 반면에 모든 발전하는 시대는 객관적인 경향을 지닌다.” 시인은 괴테가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말한 통찰의 적절함에 경탄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당면한 고통을 용감하게 직시하고, 자신을 구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1965년 ‘독무’로 등단했으니 시인으로 불린 지 50년이 넘었다. 등단 초기엔 전후의 허무주의적 포즈가 승했다. 재래적인 서정시의 미학을 극복한 자리에서 그의 시는 출발했고, 그 후 오랫동안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는 초월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자연의 경이로움, 생명의 우주적 황홀감 등을 노래하며 시의 지평을 계속 확장해왔다. 대화는 네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의 화법은 소박하고 진실하면서도, 가벼워 경쾌했다.

“대통령은 인문학 공부가 필요했다”


▎초신성의 대폭발. 이때 초신성에서 우주에 퍼지는 성분은 우리 몸을 이루는 구성요소와 같은 것이다. 우주와 인간이 결국 하나라는 명백한 증거다. / 사진·중앙포토
대통령이 무너졌다.

“사과하기 위해 대통령이 세 번이나 나왔는데,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답답했다. 답답한 여자였다. 그렇게 찔끔찔끔하지 말고, 한꺼번에 했어야지. 나 같으면 단번에 확 (잘못을) 인정하고 자리에서 내려왔을 거다. 왜 그렇게 못하나?”

왜 저렇게 몰락했을까?

“젊은 시절 인문학의 세례를 받지 못했다. 그게 좋지 않았다. 문학·역사·철학 등 우리가 인문학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뭐냐?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정치하는 사람이 그런 능력이 없으면 가짜다. 하긴 시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모두 가짜인 것이다. 대통령의 그간 궤적을 보면 도덕적 감각과 판단력도 마비된 듯하다. 광신의 요소까지 발견됐다. 보도된 것의 절반만 사실이라도 그것은 광신이다. 그런 광신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불행하게도 그 세례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이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자기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는 필경 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유아적 자폐 단계에 머문 어른이 의외로 많다. 그런 사람이 가령 군고구마 장사를 하다 망하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나. 그런데 공인이나 공적 집단이 제정신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자폐적이라면, 그건 공동체의 운명과 관련되므로 심각한 일이다. 괴테는 에커만과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들려줬다. ‘쇠망과 파멸의 상태에 있는 모든 시대는 주관적이다. 반면에 모든 발전하는 시대는 객관적인 경향을 지닌다.’ 너무도 적확한 지적에 전율을 느낀다.”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온갖 부패가 드러났다.

“각계각층이 썩어 있다. 제 정신이 아니다. 이러다간 공동체가 붕괴된다. 공무원이 원자력발전소에 불량 부품 납품을 묵인하고 뒷돈을 챙겼다. 공동체를 한순간에 날릴 수도 있는 패악이다. 무기산업에 유착한 검은 거래를 봐라. 국민이 피땀으로 거두어 준 세금이 줄줄이 새고 있다. 아무리 봐도 제 정신이 아니다.”

촛불이 그래서 광장을 덮었다.

“괜찮은 대통령이었다면 이 같은 비용의 낭비가 없었을 텐데. 대통령 복이 없는 나라다. 그러나 기왕 일어난 일, 잘 극복하면 약이 될 수도 있다. 촛불 시위를 보고 희망이 생겼다. 100만 명 이상 광장에 모여 시위하면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한 것이 놀랍다. 세계 역사 상 유례없는 일이다. 남녀노소 다 나왔다지만 그래도 주축은 20∼30대 젊은이들 아니었나? 나는 그들에게서 대단한 희망을 봤다. 대통령은 곧 바뀌겠지만 저런 국민이라면 다시 일어설 것이다.”

대통령에게 아직 남아 있는 구원이 있다면?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썼다. ‘무거운 것 모두가 가볍게 되고, 모든 몸이 춤추는 자가 되며, 정신 모두가 새가 되는 것, 진정 그것이야말로 내게는 알파요 오메가렸다!’ 니체는 예술을 통한 구원을 말했다. 고통받는 자의 구원이 예술 안에 있다는 것인데, 삶의 끔찍함을 주시하는 자에게 예술은 구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당면한 고통을 용감하게 직시하고 자신을 구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너희들은 다 스타다, 그런데 자신이 별인 줄을 모른다”


▎사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 고등학생 시절 정현종 시인은 카뮈, 사르트르 등 실존주의 문학과 철학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 사진·중앙포토
한국인의 마음에 증오와 냉소가 자랄까 두렵다. 사랑을 다시 회복하려 할 때 시의 효용은 무엇인가?

“시는 무엇에 쓰이는가? 매우 중요한 토픽이지만 답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차원으로 접근할 수 있겠지. 2015년 남양주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졸시 ‘밤 하늘에 반짝이는 내 피여’를 읽어주고 그 뜻을 설명했다. ‘일찍이 별 하나나 하나, 별 둘 나 둘 아니냐, 그렇다면! 그 전설이 사실이 아니냐, 우리가 전설이 아니냐, 칼슘의 전설, 철분의 전설…’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칼슘과 철분 성분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 몸의 구성 요소와 똑같다는 과학적 발견에 착안한 시다. 생명계 전체, 우주 전체가 한 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가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다 스타다, 그런데 자신이 별인 줄을 모른다’고 했다. 학생들이 그 설명을 듣고 다 행복해 하더라. 시를 읽으며 아이들의 정신이 고양된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 시의 쓰임새 아닐까.”

예술 전 분야의 효용이기도 하겠다.

“그렇다. 향유하면 영혼이 행복해진다는 게 예술의 효용일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오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인들 요즘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다. 순실증, 근혜증이란 말이 유행이다. 좌절감, 창피함, 무력감이다. 나는 아침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그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독재자들도 예술을 향유했다.

“나는 예컨대 바그너의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다. 한때는 들어보려고 애를 썼는데 뭔가 무겁고 불쾌하고 후덥지근하고 강요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렇게 ‘똥폼’을 잡느냐 이런 의문이 든다. 진실한 예술은 폼을 잡지 않는다. 그 반대다. 정치는 대체로 폼의 세계다. 말과 권력으로 폼을 잡는 게 정치의 세계 아닐까. 박 대통령이 문학과 예술의 세례를 온전히 받을 수 있었다면 오늘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시는 앉은 자리가 꽃자리다”를 정현종 시론의 핵심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불교에선 삶을 고통의 연속이라 말하는데, 그것은 일면의 진실이 있음에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삶을 확보하고 이 순간을 값어치 있게 만들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존재를 지속시킬 수 있겠나. 결국 시라는 것은 순간순간을 꽉 차게, 그렇게 살도록 부추기는 그 무엇이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것도 결국 니체적 의미에서 ‘삶에 대한 비극적 긍정’이란 말과 통한다. 남루하고 비참하지만 ‘좋다!’ 하고 살아내는 것, 살아내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만들 수밖에 없다. 시란 것은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겠지.”

시인으로서의 자질은 생애의 어느 시기에 뿌려졌을까?

“두 살 무렵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살다 당시 경기도 고양군 화전리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시인으로서의 나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시골의 산천을 헤매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은 시인이 될 사람에겐 더 없이 좋은 자산이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 온갖 생명의 꿈틀거리는 감각을 손에서 느꼈던 시절이다. 지금도 그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래서 좀 어려운 말로 ‘감각의 고고학’이라고 나는 부른다. 감각은 영혼을 형성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 작품 속 언어가 생명력을 갖는다면 그 떨림은 그 시절에 각인된 것이다. 문자보다 원초적인 세계다.”

깃발처럼 휘날리고 바다처럼 너울댔던 함석헌의 글


▎1987년 무렵의 함석헌 목사. 고교 시절 시인은 <사상계> 잡지에 실린 함석헌의 논설들을 읽으며 그의 지사적 풍모와 글쓰기에 열광했다.
195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시대가 온통 상처투성이 아니었나?

“1959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독서에 탐닉했다. 실존주의가 유행했던 시절이라 사르트르와 카뮈의 작품을 열독했다. 서울대 철학과 김준섭 교수가 쓴 실존주의 입문서를 책이 닳도록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실존주의가 주목하는 인간 정신의 현상에 빠져들었다.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와 대치할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을 강조했으니 젊은 시절의 철학으로 그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을 듯싶다. 월간 <사상계>도 열심히 읽었다. <사상계> 내용 중 함석헌 선생의 글에 매료돼 잡지가 나올 무렵이면 서점에서 조바심 내며 기다렸던 생각이 난다. 지금 기억 나는 글로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등이 있다. 윤형중 신부와 논쟁이 붙으면서 쓰신 글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함 선생의 펄펄 살아 있는 글에 비해 윤 신부의 글은 죽은 글처럼 느껴져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산문이 씌어진 이래 함석헌 선생의 산문처럼 살아 있는 글이 있을까. 글이라기보다는 깃발처럼 휘날리고 촛불처럼 너울대는 혼이 느껴졌다.”

감수성도 예민했고 지적으로도 조숙했던 모양이다. 청춘의 갈등과 번뇌도 그치지 않았을 텐데.

“할아버지 때부터 천주교를 믿었고 낳자마자 영세를 받았다. 세례명은 알베르또…. 중학교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고해성사가 고통스러웠다. 중학생이 고해할 일이 뭐가 있겠나. 성당에 오다 여학생을 만나 그에게 음란한 마음을 품었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이성에 대한 관심과 지적인 호기심이 강렬했는데 교회는 육체를 경멸하고 죄악시하지 않나? 중 2 때 교회에 나가지 않고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선언했다. 죄의식을 강요하는 교회가 마땅치 않았다.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한 니체에 심취한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회가 내게 요구했던 것은 반 자연성, 즉 자연에 대한 부정이었다. 본성과 본능을 죽이라는 건대 그것은 생명에 대한 일종의 억압이라고 생각했다. 자발성을 억압하여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죽이는 것 아닌가. 고1 때 발레에 심취하면서 나의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 아늑한 건물을 왜 허물었나


▎‘시가 지향하는 혁명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 시인은 “물질적, 경제적 생산성에 거슬러 꿈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라 답했다. / 사진·권혁재
시인으로 키워준 가장 큰 밑거름을 꼽는다면?

“단 하나를 꼽으라면 모교 연세대학교의 아름다운 숲이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당시 연세대 캠퍼스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는 시를 가리켜 ‘인공 자연’이라고 말해왔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연이 하는 일과 시가 하는 일은 비슷하다. 그리고 시를 쓸 때 나는 강장제를 만드는 것이고, 시를 읽을 때는 그걸 복용하는 셈이다. 자연에 비하면 종교는 벌써 인위적인 것이어서 좀 불순하고 억압적이라는 게 나의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가령 꾀꼬리 소리를 모든 경전의 위에 놓기도 한다. 천둥이나 번개조차도 나의 시작에 있어 깊은 영감을 준다. 예컨대 졸시 ‘천둥을 기리는 노래’에서도 나는 이렇게 썼다.

“여름날의 저
천지 밑 빠지게 우르릉대는 천둥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람이 그 마음과 몸을
씻었겠느냐
씻어
참 서늘하게는 씻어
문득 가볍기는 허공과 같고
움직임은 바람과 같아
왼통 새벽빛으로 물들었겠느냐(…)”

나는 시를 가리켜 ‘깃-언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허공과 같이 가볍게 하고 통풍을 잘 시키며 온통 새벽빛으로 물들이는 언어다. 시를 쓰거나 읽을 때 우리는 그 시의 공간 속에서, 태아와도 같이, 맑은 피와 드높은 음식을 공급받는다. 새로 태어나는 느낌, 어떤 시작(始作)의 느낌, 새벽빛에 물드는 느낌 속에 있게 된다. 그 발원은 역시 위대한 자연일 수밖에 없다.”

캠퍼스의 자연은 작은 건물들 사이에 난 오솔길과 소박한 숲일 뿐이었을 텐데.

“그렇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는 누구나 다 아는 말인데, 예를 들어 길이나 집도 작은 것은 애틋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모든 오솔길은 그것 자체가 이미 애틋함의 표상인데 그것은 고독, 내면, 고요함 쪽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그리하여 꿈꾸는 공간이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몽상에 잠길 뿐 아니라, 그걸 바라보기만 해도 오솔길은 벌써 한 없는 몽상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그것 자체가 ‘몽상의 육화’라고 할 수 있다.”

몽상을 촉발하는 오솔길이 이제는 점점 사라져간다.

“슬픈 일이다. 작은 집 또한 오솔길과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그것은 애틋한 느낌에 잠기게 되는데, 만일 건축 자재나 형태에서 나무랄 데 없고 또 오래된 것이며 그래서 그게 서 있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추억과 역사가 스며 있던 집이었다가 어느 날 없어진다면 그 애틋함은 참으로 클 것이다. 나도 그런 경우를 겪은 적이 있다. 내가 연세대에 있었던 2003년 겨울, 학교에서 제일 작은 60년쯤 된 석조건물, 그 앞에는 역시 작은 잔디밭 뜰에 밤나무며 홍단풍나무가 있었던 그 아늑한 건물을 헐어버리고 큰 건물을 짓겠다고 해서,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과 함께 학교 당국과 싸운 적이 있다.”

우리는 어느덧 크고, 화려한 것에 습관적으로 박수갈채를 보내게 되었다.

“니체는 ‘아름답게 있는 것보다 거대하게 있는 것이 더 쉬운 법’이라고 통찰했다. 인류 사회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지만, 특히 시인이 아름답게 있기보다 거대하게 있으려 한다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거대한 것에 기대며 이로써 자기가 거대하다고 느껴 가령 기고만장한다면, 그는 이미 시인이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시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평론가 고 김현은 선생의 시를 굉장히 좋아했고, 두 분의 교유가 깊었다고 들었다. 평단의 거인 김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나?

“김현은 글을 쓰기 시작한 젊은 시절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만남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주제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쓴 적이 있다. 그 주제는 젊은 시절 우리 모두의 공통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출세나 돈벌이 같은 것보다 ‘인간’과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진 문학적, 철학적 취향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그가 주도한 ‘문지 동인’이 만들어진 것도 그러한 지향의 결과다. 잡지나 출판의 형태로 진행되는 일종의 ‘문학적 공동체’를 위해서도 사귐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자리는 주로 술집이었다. 동네는 서울 무교동, 청진동, 관철동 등으로 이어졌고 그가 사는 반포와 내가 사는 이촌동에는 항상 찾는 술집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김현에게 받은 감동은 그가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건성으로 듣는 게 아니라 ‘경청’이라는 말뜻 그대로 아주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질과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대해 숙고하는 정신은 어떤 게 먼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맞물려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청하는 김현의 태도에 공감하게 된다. 도대체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될까.

“경청이 매우 중요한 누룩곰팡이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구성원의 운명인 ‘결핍’을 서로 보완하는 일이며, 실제의 차원에서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갈등을 비교적 생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처방이다. 모리스 블랑쇼는 ‘우리의 실존은 세계를 의미 있게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타자의 이름 없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수동적인 인간 존재’라고 말했다. ‘귀 기울이기’의 절대적 가치와 요청을 잘 드러낸 문장이라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모든 문제는 경청의 부재에서 생겨난다. 대통령의 위기도 경청의 부재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타자의 이름 없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수동적인 인간 존재’로서 자신을 돌아볼 수만 있었다면….”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고, 거울 속 자신만을 응시했던 것 아닐까.

“나르키소스의 신화가 떠오른다. 프로이트는 가장 원시적인 인간 발달 단계를 ‘나르시시틱(narcissitic)’이란 말로 정의했다. 완전히 대책 없는 유아가 자신의 속수무책을 과대망상적인 자기중심주의로 보상하는 단계를 말한다. 프로이트가 그걸 환기시킨 것은 우리에게 나르시시즘에 대한 경고,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채로 남아 있는 사람이 맞닥뜨리는 파괴적인 결과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비친 물속으로 뛰어든다. 무엇을 상징하는가? 자기애적인 사람의 정서적 죽음이다.”

“구애는 서로에게 하는 것이다”

사랑했던,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이야기는 시로 써야지.”

형형한 눈빛 때문에 여자의 구애를 자주 받았을 것 같다.

“구애는 서로에게 하는 것이다.”

에로스가 보편적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최근 루소의 <新엘로이즈>를 읽었다. 너무도 뜨거운 내용이라 어떻게 그 책이 불타지 않을 수 있는가 의심했다. 루소는 에너지가 넘치는 인간이었다. 큰 인물 중에 여성편력이 대단한 사람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괴테와 톨스토이다. 사랑은 보편적인 것이지만 그 촉발제는 역시 에로스, 즉 성적 충동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 충동을 승화시켜 아주 커다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느냐다. <고백록>을 쓴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성적 에너지가 강한 사람들이 성자가 된다. 충동, 본능, 욕망은 에너지인데, 승화시킬 에너지가 있어야 성자의 영혼으로 성장할 수 있겠지.”

정권의 교체만으로 우리 삶이 변화하리란 기대는 환상인 것 같다. 시가 꿈꾸는 혁명은 무엇인가?

“오늘날 생각의 주체는 돈과 물질인 것 같다. 생각의 주체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고 돈과 기계와 물질과 상품이란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럴 때 시 쓰기는 물질적, 경제적 생산성에 중독되어 맹목적으로 굴러가는 이 흐름을 거슬러 꿈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몽상은 모든 예술 창조의 전제조건이지만, 예술하는 사람은 어떤 걸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앞서서, 어떤 걸 보면서 그의 생리에 따라 꿈을 꾸기 시작한다. 이 꿈은 시인에게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그건 그의 생리이기 때문에 거의 자동적인 것이다. 그 꿈을 통해 사물은 쓰고 버리는 물건, 소비하고 쓰레기가 되는 물건, 돈벌이가 되는 물건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되어 새로운 질서와 감동에 귀속된다. 새로운 질서와 감동! 이것이 바로 시가 성취하는 혁명이다.”

정현종 시인은 누구? - 1939년 12월 17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었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과 8월에 각각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을 완료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5년 정년퇴임했다.

초기의 시는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 반면, 1980년대 이후로는 구체적인 생명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했다. 2008년 내놓은 아홉 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 2015년 출간된 <그림자에 불타다> 역시 사물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를 갈망하게 된 시인의 성숙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 글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사진 김경록 기자 kim8486@joongang.co.kr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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