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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문학, 이제는 세계로] 한국문학 번역 50년, 케빈 오록 신부 

“풍자와 유머 가득한 전통 되살려야” 

한경심 자유기고가 icecreamhan@empas.com
노벨상 타지 않은 위대한 작가 즐비… 번역의 최고 가치는 정확성보다 문학성에 있다

아일랜드 출신 케빈 오록(Kevin O’Rourke·77·경희대 명예교수) 신부는 한국에서 50년 이상 살며 한국 문학 번역에 매진해왔다. 그가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번역 풍토와 한국문학 전반에 뼈아픈 지적을 했다. 풍부한 우리 전통 시가에 대한 무관심과 시를 잘 읽지도 즐기지도 않는 문화적 척박함, 또한 번역된 책을 세계 여러 사람과 나누려는 적극적인 노력과 전략이 부족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노벨상 등 해외문학상에 집착하는 행태가 한국 문학계를 더욱 빈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귀담아 들어야 할 보약 같은 조언이다. <편집자>


▎케빈 오록 신부는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의 정수는 신라 향가와 고려가요, 그리고 한시의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진·장진영 기자
케빈 오록 신부의 집에 들어서면 언제나 음악이 흐른다. 주로 서양 고전음악인데, 오페라를 좋아하는 그답게 오페라나 성악곡일 경우가 많다. 가끔은 유럽 축구 소식을 전하는 텔레비전이 켜져 있을 때도 있다. 음악과 축구. 둘 다 ‘흥’과 ‘멋’이 있다. 평소 그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은 ‘여유’, ‘멋’, ‘시’, ‘선(禪)’, ‘열정’과 같은 단어다.

“문학은 이념이나 개념이 아닙니다. 문학에는 물론 이성도 있지만 핵심은 분명히 감정이고 피부에 와 닿는 감각, 생생한 체험이지요. ‘왜 꼭 많은 말이 필요할까, 서로 바라만 봐도 뜻은 이미 족한 것을(何必待多言 相看意已足)’ 이것이 바로 문학이지요.”

그가 인용한 시구는 빼어난 선시(禪詩)를 많이 남긴 고려 2대 국사인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의 오언절구 ‘작은 연못(小池)’의 한 구절이다. 그는 요 몇년 고려와 조선시대 고승의 시를 짬짬이 번역하고 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올해 맨부커 국제상을 받았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맨부커 국제상은 비영어권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저자와 번역자에게 상금을 공동으로 수여할 정도로 번역을 높이 평가하는 상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도 번역자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유려한 영문 번역 덕이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가와바타는 수상의 공을 역자에게 돌리며 상금의 반을 건넸다. 1970년대부터 우리 문학을 영어로 번역해온 오록 신부가 본 데보라 스미스의 영문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때문인지 문학, 특히 영문학적인 느낌을 잘 살렸더군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얼마나 정확하게 번역했는지 따지는 작업이 있었을 걸요.”

번역하면서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채만식은 만년의 친일 행적 때문에 저평가됐지만 한국적인 정신과 문체가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진·중앙포토
그는 일찍이 1970년대, 한국문학 번역에 앞장서온 성공회의 러트 주교가 어느 한국 번역가의 영문을 비판했다가 그 번역가가 복수하듯 러트 주교의 번역을 ‘현미경을 들이대고’ 샅샅이 조사해 실수를 따지고 들었던 걸 떠올렸다. <설국>의 번역자도 실수인지 의역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번역에 문장을 자르거나 붙이기도 했고, 심지어 자의적으로 원문을 생략하거나 덧붙이는 자유로운 번역을 했다.

“번역하면서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나 한국어는 영어와 아주 달라서 서로 잘 들어맞지가 않아요. 그러니 정확성을 어디까지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문학적 관점에서 번역을 평가할 때 정확성이 최고의 가치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성은 물론 중요하지만 여러 가치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가 정확성보다 더 중요하게 치는 것은 문학성이다. 그런데 한국은 늘 정확성 중심으로 번역을 논해왔고, 그래서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설국>이 상을 타기 전까지 외국인이 일본의 정서를 제대로 살려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추세가 점점 외국인이 그 나라말로 번역해야 자연스럽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이제는 누가 번역하든, 문학적 표현에 성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어주는 좋은 편집자와 출판사가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2016년 최고의 책 ‘탑10’에 올리면서 데보라 스미스의 ‘품격 있는 번역’과 ‘생생한 영어문장’을 칭찬했다.

“번역원에서 지원하는 번역 사업도 그렇지만 외국 유명 대학교에서 출판하는 경우에도 한국인들에게 감수를 보게 하는데, 한국 사람의 지적은 거의 ‘정확성’을 기준으로 합니다. 시조 같은 작품은 수많은 본이 있는데, 어떤 걸 저본(底本)으로 썼는지도 모르고 ‘오역’이라고 하는 것은 참 위험한 비평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정확성, 옳은 것에 집착하는 것은 ‘도덕(moral)’에 지나친 무게를 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데도 도덕적인 기준을 잣대로 삼는 경우가 은연중에 배어 있다.

“유교 도덕 전통이 아직 한국문학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정몽주의 시가 다 그런 것은 아닌데, 특별히 충절을 노래한 시만 강조한다거나 성공한 이의 시, 이름난 이의 작품만 높이 평가하고 가르치는 풍토가 있어요.”

도덕성은 문학에서도 여러 속성 중 하나일 뿐, 핵심은 아니다. 도덕성이 중심이 되면 문학성은 약해지고 창의성은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 오록 신부의 생각이다.

“<채식주의자>는 그런 전통에서 많이 벗어난 작품이지요. 영국 출판사에서는 틀림없이 참신하다고 좋아했겠지만, 맨부커라는 큰 상을 받기 전 그 작품이 한국 사람에게 인기가 있었던가요?”

좀 아픈 질문이긴 하다. 작가는 물론 독자마저 그런 도덕주의에 알게 모르게 젖어왔음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그건 아마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 탓이 클 것이다.

“한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상상력을 죽이는 교육을 받는 것 같습니다. 문학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는데, 정답을 요구하니 어떻게 상상력을 키우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으로 점수를 매길 것인가?

“작문으로 채점을 해야지요. 작문도 분량이 좀 돼야 하고요. 그런데 작문 역시 도덕적인 교훈을 끌어내려 해선 안 됩니다.”

풍자정신 최초로 되살린 작가는 채만식


▎오록 신부가 보기에 서정주의 시에는 한국인이 가장 이상적으로 그리는 인간의 모습과 정신이 구현됐다 / 사진·중앙포토
초등학교 학생의 작문에서도 상투적인 반성과 도덕적인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거기다 입시 위주로 달달 외는 공부를 하다 보니, 문학 교육을 받았어도 깊이 있는 좋은 글을 가려내는 안목이 생기기 힘들고, 성인이 되어서도 한시를 읽거나 시조를 즐기는 법을 잘 모른다.

“한국 문학의 정수는 신라 향가와 고려가요, 그리고 한시에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시조와 가사, 한시도 좋지만 조선시대는 유교로 문학이 억압받는 시기였습니다. 신라와 고려의 시가 참 멋집니다. 그 전통을 잊고 사는 게 정말 안타까워요.”

창의성이 도덕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에서 나온다면, 풍부한 상상력과 우리 문학의 특성은 전통 시가(詩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파악한 우리 문학의 특장(特長)은 ‘풍자’다. 풍자는 냉소적인 자조(cynical)와는 다른, 여유와 웃음이 있는 비판이라는 점에서 문학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근대 한국문학의 빈약함은 어쩌면 그런 전통을 잃어버린 탓은 아니었을까.

“흔히 현진건이나 김동인의 소설에 나오는 아내를 패고 가족을 무시하는 상황을 한국적이라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건 한국문학의 전통이 아닙니다. 한국의 정신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풍자정신이 담긴 작품을 꼽아야지요.”

근대 한국문학에서 풍자정신을 최초로 되살린 작가는 채만식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그의 말마따나 채만식의 대표작 <태평천하>에는 동시대 작가들이 식민지 상황을 슬픈 어조로 비극적이고 처참하게 그렸던 것과 달리 한국적 유머와 풍자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 감각적으로 그 시대를 느낄 수 있게 한다고 할까.

“당시 작품들을 보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모파상 등을 모방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런데 채만식의 작품은 한국적인 정신과 문체가 살아 있어요. 다만 말년에 친일한 행적이 문제가 되어 저평가되었지만요.”

하지만 채만식만큼 자신의 친일 행적을 솔직하게 고백한 작가가 또 있었던가. 채만식이 소설에서 한국 정신을 보여주었다면, 시에서는 누가 그랬을까?

“서정주와 박목월이죠. 왜냐고요? 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모방에서 벗어나 신라와 고려의 정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죠. 두 사람의 시에는 한국인이 가장 이상적으로 그리는 인간의 모습과 정신이 들어있습니다.”

그는 또 서정주의 초기작을 높이 사는 문단의 평가와 달리 후기작을 더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서정주의 초기작 <화사집>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모방한 게 분명해 보입니다.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신라와 고려의 향기가 살아납니다. 특히 후기작 <질마재신화>는 서정주가 옛 사람에게서 느꼈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해줍니다. 정치적인 하자가 없었다면 서정주가 노벨상 후보로 가장 적합했을 겁니다.”

고려 시인 이규보에 빠지다


▎한국 작가 중 노벨문학상 수상 1순위로 거론되는 고은 시인. 오록 신부는 고은에 대해 “정치적 배경이 좋은 반면 노벨상을 향한 주변의 노력이 다소 형식에 치우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 사진·중앙포토
그러면 그가 전시대를 통틀어 꼽는 우리 문학의 최고봉은 누구일까?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고려의 이규보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즐겨 읊는 이규보의 시 ‘우물 속의 달’은 다음과 같다.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幷汲一甁中(병급일병중) 물과 함께 길어 병에 담았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가면 비로소 깨닫겠지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을 기울이면 달도 또한 빈다는 것을


“이규보의 시에는 선적(禪的)인 순간이 잘 포착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어리석음과 허영, 부족함까지 다 드러내 보입니다. 그것도 웃으면서 여유롭게 말입니다.”

1995년 그는 좋아하는 이규보의 시를 가려 뽑아 [Singing Like a Cricket, Hooting Like an Owl: Selected Poems of Yi Kyubo](Cornell 1995)를 냈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동명왕편’과 몽고항쟁 중 찍어낸 팔만대장경에 붙인 인상적인 서문으로 유명한 이규보는 시와 거문고, 술을 지독히도 좋아해 ‘시금주(詩琴酒) 삼혹호(三酷好) 선생’으로 불렸다. 이규보는 하루도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자신의 시벽(詩癖)을 묘사한 시에서 ‘아침이면 귀뚜라미인양 읊조리고 저녁이면 솔개 부엉이처럼 휘 울며-朝吟類蜻蟀(조음류청솔) 暮嘯如鳶鴟(모소여연치)’라고 했는데, 번역 선집의 제목은 바로 그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규보의 시를 재미로라도 읽는 이가 있습니까? 고전에 대해 말은 많이 하지만 저 말고 관심 가진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규보는커녕 서정주조차 생존 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번역출판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을 그는 무척 안타까워한다. 노벨상 같은 해외 문학상이 생존 작가에게 수여되기 때문에, 우리 문학의 큰 줄기인 전통 시의 번역과 출간이 등한시되는 것은 아닐까. 문학계의 관심이 몇몇 ‘스타’를 중심으로 한 노벨상이나 맨부커상 같은 상 타기에 더욱 쏠리게 된다면, 전망은 어둡다.

오록 신부는 10년여에 걸쳐 김삿갓(김병연)의 까다로운 한시를 번역해 한국과 미국에서 [Selected Poems of Kim Sakkat](Keimyung 2012, Koryo Press, 2014)을 냈는데, 출판사를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2007년 김삿갓 탄생 200주 년을 맞았을 때 어느 한곳에서도 그를 기리는 학회나 낭송회가 열리지 않은 사실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우리 문학을 사랑하고 즐기지 않으면서 세계인이 좋아하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고은과 하루키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2011년 10월 1일 풍자와 해학의 방랑시인 김삿갓 탄생 204주년을 기념해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에서 열린 김삿갓길 걷기행사. 김삿갓은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그의 한국의 대중에게 제대로 향유되지 못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높으신 분들이 외국 손님을 맞으면 무엇을 선물하는지요? 우리 문화를 알려줄 시집이나 소설책을 선물합니까? 세계인이 찾는 미국이나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 서점에 가보면 중국과 일본의 시집은 종류별로 여러 권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시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입니다.”

외국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송강 정철의 사당이나 김삿갓 박물관 같은 곳엘 가보면 영어로 번역된 시 한 수 찾아보기 힘들고, 영문 안내판의 영어조차 어색한 경우가 흔하다. 문인의 유적지나 기념관에서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된 작품집을 살 수 있도록 구비돼 있는 곳은 얼마나 될까. 한국문학번역원에서는 2001년 이후 1000여 작품을 번역하고 출판하는 지원을 해왔는데, 숫자가 다는 아닌 것 같다. 최근 번역원에서 고전을 e북으로 만들면서 오록 신부가 번역한 윤선도와 김삿갓의 작품 등 여섯 개가 들어갔는데, 안타깝게도 이규보의 번역은 책을 낸 코넬대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못 들어갔다고 한다. 또 한 가지 그가 간곡히 지적하는 것은 사전 문제다.

“좋은 국어사전이 참 부족합니다. 번역할 때는 색깔이나 꽃과 관련된 단어의 정확한 정의와 묘사가 필요하거든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한 단어의 용례가 1600개가 넘는 경우도 있는데, 20~30년이 지나면 개정판을 냅니다. 번역의 가장 중요한 도구는 훌륭한 국어사전입니다.”

한동안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즈음이면 후보자로 거론되어온 시인 고은의 집 앞에 취재진이 몰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1995년 아일랜드의 시인 세이머스 히니가 노벨상을 받기 10년도 전에 그의 수상을 정확히 점쳤던 오록 신부는 올해 수상자가 밥 딜런이라는 사실에 무척 유쾌해 했다.

“올해는 정치적인 틀이나 작품수준, 진지함 등 여러 면에서 틀을 깬 경우지요. 노벨상을 점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작품이 괜찮고 정치적 배경이 든든하면 가능성이 있는데, 너무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활약’하는 것도 필요하지요.”

히니의 경우 우선 작품이 좋았지만 북아일랜드 출신의 천주교도로 민족주의자였고, 옥스퍼드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시 강의도 하면서 요란하지 않게 유명세를 차곡차곡 쌓았다고 한다. 너무 드러나게 자신을 내세우면 오히려 멸시만 받지 상과는 멀어지지 때문이다.

“그 당시 아일랜드에는 히니만큼 좋은 작가가 대여섯 명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니의 활동은 상 타기에 딱 좋은 현명한 처신이었어요. 더블린에서 히니의 시 낭송회가 열리면 30분 만에 매진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이 시를 아느냐고요? 하하…! ‘나 여기 온 것 봤지?’하는 허영심이 더 많았지요. 문학과 거짓, 종이 한 장 차이죠.”

그렇다면 족집게 신부님이 본 고은의 수상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될까?

“고은은 서정주와 달리 정치적 배경이 좋지요. 거기다 앨런 긴즈버그 등이 지지하면서 유명세도 어느 정도 있고요. 그런데 그를 둘러싼 노벨상을 향한 노력이 너무 형식적이고 눈에 띄는 반면 효과적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몇 해 전만 해도 그는 하루키의 수상 가능성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1Q84] 영역본를 읽은 뒤 “일본 작가에게는 보기 드문 스케일이 있다”고 평했고, 최근의 폭넓은 대중성은 무시 못할 정도라는 걸 인정했다. 하루키는 같은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서구 소설의 모방”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할 정도로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대세의 힘이란 게 있으니 두고 볼일이다. 더구나 최근 노벨상은 도리스 레싱이나 밥 딜런같이 의외의 인물에게, 뒤늦게 수상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노벨상을 타지 못한 위대한 작가가 얼마나 많습니까. 제임스 조이스도 타지 못했고, 테드 휴즈, 필립 라킨도 타지 못했지만 영문학 최고의 문인으로 존중받습니다. 산에서 벌목꾼으로 명상하며 지낸 개리 슈나이더 같은 시인은 상에 관계없이 존경받지 않습니까? 문학은 성공이나 상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번역은 도전이자 문학적 만족감


▎케빈 오록에게 적절한 단어를 찾았을 때의 기쁨, 그리고 리듬감이 살아 매끄럽게 흘러갈 때의 성취감은 오롯이 그만의 것이다. / 사진·장진영 기자
그는 노벨상에 너무 집중하는 한국이 많이 안타까운 듯했다. 예이츠와 조지 버나드 쇼, 베케트, 히니 등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낸 아일랜드는 지금도 눈에 띄는 작가들이 많이 있어 “타면 반갑겠지만”, 누구도 그런 데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이나 인도, 중국은 타는데 왜 우리는 못 타나,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봐야 합니다. 만약 그런 마음으로 노벨상을 원한다면 한 번 타고나면 문학에 대한 관심도 싹 사라지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이젠 바깥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으로 이미 충분히 알려졌으니, 이제는 우리 문학을 세계 사람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좋은 작품을 번역하고 소개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국 아일랜드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왕이면 선교사로 나가고 싶어 골롬반회 소속이 된 그는 ‘추첨으로’ 한국에 파견됐다. 그때가 1964년, 공항에 내리던 날 삼엄한 국가 분위기를 기억한다. 본래 문학, 특히 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한때 춘천교구에서 사목한 적도 있지만 결국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번역’으로 자신의 소임을 정했다.

“1960년대 말 이 땅에 골롬반 선교사가 150명도 넘었는데, 한 사람쯤은 번역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번역을 선택했을 때 다들 응원해주었지요.”

아일랜드와 한국의 인연은 깊다. 대한제국 시절 조선 주재 영국 총영사로 왔던 W. G. 애스톤은 아일랜드인이었다. 애스톤 총영사는 한글에도 관심이 깊어 주시경보다 20년 앞선 1879년 한글의 원리와 구성에 관한 멋진 이론을 세운 바 있다. 1940년대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돼 정확한 구성원리가 밝혀지기 전까지 그의 이론은 가장 통찰력 있는 학설로 언어학자의 관심을 받았다.

1970년대 연세대 대학원에 들어가 1982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70년대 이미 번역을 시작하고 대학에도 출강하다가 당시 경희대 문리대학장이던 조병화 시인과 인연으로 1977년부터 영문과 교수를 맡았고 정년퇴임까지 맞았다. 그의 이름 오록에 ‘吳鹿’이라는 한자를 붙여준 이도 조병화 시인이다.

1974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단편을 모은 [Ten Korean Short Stories]를 낸 것을 시작으로, 외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한국 소설 <광장>을 1985년 번역했고 고려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를 뽑아 번역한 시집 [Tilting the Jar, Spilling the Moon](Dedalus 1993)으로 호평을 받았다. 앞서 말한 이규보 시선집 말고도 서정주 시집 [Poems of a Wanderer: Selected Poems of So Chongju](Dedalus 1995)와 현대시선집인 [Looking for the Cow](Dedalus 1999), 시조집 [The Book of Korean Shijo](Harvard 2002), 신라와 고려시대 시를 모은 [The Book of Korean Poetry: Songs of Shilla and Koryo](Iowa University Press 2006) 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내놨다.

적절한 단어, 리듬감 찾았을 때의 기쁨

2001년에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역본을 한국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출판사인 하이페리온에서 내어 국내외의 관심을 받았다. 그의 40년 번역인생은 동서문학상, 코넬대에서 수여한 동아시아 한국문학상, 문화예술진흥원서 주는 대한민국상 본상과 한글날 기념하여 받은 훈장까지 그에게 상과 명예도 가져다주었다.

은퇴 이후 그가 공을 들인 번역은 김삿갓의 한시였다. 전형적인 한시를 번듯하게 짓기도 했지만 한자와 한글 음을 가지고 장난치듯 파격적인 시를 쓴 김삿갓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은 번역가에겐 큰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사실 그런 도전은 번역가에겐 ‘즐거운 모험’이라고 한다.

2013년 그간 그가 보고 느낀 한국을 담은 <나의 한국, 갓 없이 40년(My Korea: Forty Years without a Horsehair Hat)>을 출판했고, 올해는 애스톤이 한국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아일랜드에서 펴냈다. 이미 시집도 낸 바 있는 그가 지금 번역하고 있는 작품은 이천도 시인의 <구도자>라는 시집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한국적이면서도 묘하게 몽환적인 보기 드문 작품이라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시를 한편 번역하면, 한동안 놔두었다 다시 읽고 읊조리며 영어의 리듬감이 살아나는지 확인한다. 적절한 단어를 찾았을 때의 기쁨, 그리고 리듬감이 살아 매끄럽게 흘러갈 때의 성취감은 오롯이 그만의 것이다.

한경심 -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동아일보> 출판국에서 기자로 15년간 일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월간중앙> <이코노미스트> <신동아> <여성동아> 등에 문화와 관련한 글을 썼다. 저서로 전통공예 장인들을 소개한 <우리는 어떻게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가>, 한식의 철학을 담은 우< 리는 왜 쌈 싸먹고 비벼먹고 말아 먹는가>등이 있고 번역서로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 김병연의 한시를 소개한 [Selected Poems of KIMSAAKAT](공역)이 있다.

201701호 (201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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