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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철학자 신기율이 쓰는 ‘현대인의 풍수’] 이사할 때 살펴야 할 3가지 필수 조건 

길이 ‘명당(明堂)’ 되는 시대, 집만 보지 말고 주변도 봐라 

신기율 기율다원(己律茶院) 원장
최근 서울 성북동·평창동 등 부촌에서 경리단길·가로수길·연남동길처럼 주변 길이 뜨는 이유를 알면 진정한 명당 찾을 수 있어

동양고전에서 집은 ‘운명을 담는 그릇’으로 본다. 때문에 이사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명으로 들어가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새 집을 고를 때 투자가치나 학군 이외에도 따져봐야 할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공간의 철학자 신기율이 말하는 이사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내가 살 집의 필요조건.


▎경기도 일산의 한 주택단지. 비슷한 형태의 주택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자신의 풍수론에 입각해 필자는 주변 공간과 밸런스가 깨진 집은 ‘병든 집’이라고 불렀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해 봄, 나는 제법 따뜻해진 햇살을 받으며 낯선 동네를 걷고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수없이 걷고 또 걸었지만 찾는 집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 와보는 거리를 떠돌고 있는 건 순전히 이 작가 때문이었다. 집필실 겸 사무실로 쓸 집을 함께 찾아달라는 그의 부탁을 받은 것이다. 함께 공부한 인연 때문에 거절도 못한 채 몇 시간째 같은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다.

슬슬 다리가 아파올 무렵, 이 동네 토박이라는 부동산 사장이 낯선 집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골목 끝의 담장이 유난히 높은 단독주택이었다.

“이 집은 작가님이 꼭 보셔야 됩니다. 리모델링한 지 얼마 안 된 집인데 사모님이 미술관 관장이라서 유명 디자이너를 불러다 고급자재로 집을 고쳤죠. 보시다시피 이 동네 평범한 집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의 말대로 집은 겉과 속 모두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창틀, 문, 바닥재 등 모두 최고급 재료였고 인테리어도 화려했다. 물론 가격은 상당했지만 주변 시세나 건물에 투자한 비용에 비하면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작가도 그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에 타자마자 물었다.

“선생님이 보기엔 어때요? 나는 이 집이 제일 나은 것 같은데…. 리모델링 한지 얼마 안 돼서 고칠 데도 없고, 담장이 높아 프라이버시 보장이 잘되는 것도 마음에 들어요.”

그가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건 나 역시 십분 이해가 됐다. 교통도 괜찮고, 학군이 좋은 동네라 투자가치도 충분해 보였다. 게다가 고급스러운 디자인까지 갖췄으니 재력만 있다면 누구나 사고 싶을 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집이 괜찮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제가 지난번 집에 대해 한 말, 혹시 기억하십니까? ‘순환이 안 되는 집’이라고 했었죠. 이번에도 작가님은 비슷한 집을 고르고 있어요. 게다가 이 집은 밸런스마저 깨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병든 집’일 가능성이 큽니다.”

힘들 때 이사하면 십중팔구 안 좋은 집 택한다


이 작가의 이전 집필실은 한강변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1층이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그 집에 처음 초대받아 갔을 때였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무거운 공기가 온몸을 누르는 듯 했다. 약간 무겁고 안정된 느낌이 아파트 1층들의 특성이긴 하지만 이 집은 유난히 그 정도가 심했다. 안정되다 못해 답답하고 정체된 느낌이 강하게 든 것이다.

실제로 거실에 피워놓은 향초를 보니 촛불의 흔들림이라곤 전혀 없었다. 창가에는 벌써 시들어버린 화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형적인 ‘순환이 안 되는 집’이었다. 만약 이사 오기 전에 조언을 구했다면 고개를 저었을 집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순환이 안 되는 것 같으니 작은 실내분수라도 두는 게 좋겠다’ 정도의 조언밖에 할 수 없었다. 이미 이사 온 사람에게 굳이 새 집의 문제점을 얘기할 필요가 없는데다 이 작가 본인도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법 유명한 작가였던 그는 그 무렵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출판계에서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는 등 인간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바람에 그는 급작스레 계획에도 없던 이사를 했던 것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힘든 시절을 맞을 때가 있다.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하던 일이 꺾인다거나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이 ‘지금 사는 터가 안 좋다’는 이유로 혹은 심기일전을 이유로 이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것은 그럴 때 이사하면 십중팔구 안 좋은 집을 택한다는 것이다. 답답한 인간관계, 문제 있는 투자를 결정했던 선택의 패턴이 집을 고르는 데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에도 자기유사성을 반복하는 일종의 ‘프랙탈(Fractal)’이 존재하는 셈이다. 때문에 이사는 가장 안정적이고 상승세일 때 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그런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이미 ‘실패의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사람은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자신의 패턴을 깨는 것이 쉽지 않다. 지난 번 집에서도 안 좋은 선택을 했던 그 역시 이번 집에서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 집이 어딜 봐서 병든 집이라는 건지 이해가 안 돼요. 햇볕도 잘 들고, 깨끗하고, 집도 잘 고쳤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면 이전 집과 비슷한 느낌이 들 거예요. 평수는 더 넓어졌지만 마치 고인 연못에 갇힌 듯한 답답함 때문에 몸도 마음도 힘들 수 있습니다. 집 내부의 공기와 에너지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저 집은 주변과의 밸런스도 깨져 있습니다. 이 동네는 성북동이나 평창동 같은 전통적인 부촌이 아니에요. 소박하게 평생 이 동네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대부분인 곳에서 높은 담장과 부를 뽐내는 듯한 집의 외관이 조화를 무너뜨리고 있어요. 한마디로 안도 밖도 꽉 막힌 ‘불통의 집’인 셈이죠.”

높은 담장이나 눈에 띄는 외관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집들이 즐비한 성북동에 있었다면 자연스러웠을 집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부동산 사장의 말마따나 ‘차원이 다른 집’이었다.

가끔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주변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전원주택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한눈에 보아도 확연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런 집은 도무지 주변 풍경에 녹아들지 않는다.

이런 공간에 들어가면 누구라도 ‘나는 이곳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정서가 생길 수 있다. 공간이 마음의 허세를 만들고 그것이 다시 현실과의 괴리감을 만들어 오판을 하게 만들거나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전원주택을 짓고 귀촌했지만 도시에서 살던 방식을 고집하다 적응에 실패하고 몸도, 마음도 힘겨워진 채 돌아온 이들이 적지 않다. 나 자신과의 밸런스, 주변 사람들과의 밸런스가 깨진 공간은 결코 건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부조화의 집을 ‘병든 집’이라 부르곤 한다.

풍수에서 병든 집은 대문으로 ‘황천살(黃泉殺)’이 들거나 ‘귀문방(鬼門方)’이 지저분한 집으로 표현된다. 패가망신한다는 황천살이나 귀신이 드나든다는 귀문방 같은 이름은 ‘방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방향에 대한 두려움은 계절풍으로 시작되는 환경의 극단적인 변화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특히 난방과 방풍이 제대로 안됐으니 서늘해지기 시작하는 가을의 바람을 살기(殺氣)로 여겼다. 때문에 최대한 바람을 막고 외기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집의 첫째 목적이었다.

그러나 문명의 발달로 바람에서 자유로워진 오늘날에는 주변과 소통이 안 되고 밀폐된 집이 그곳에 사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과거에는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때 집이 병들지만 현대에는 주변 사람과 통하지 못할 때 병들어가는 것이다.

주변과 소통하지 못하는 집은 ‘병든 집’


▎서울 종로구 북촌길. 과거에는 성북동, 평창동 같은 특정한 지역이 부촌이었다. 지금은 북촌길, 경리단길 등 길이 먼저 유명해진 뒤 그 지역의 가치가 동반상승하는 경우가 늘었다. / 사진·중앙포토
그 대표적인 집이 바로 청와대와 롯데타워다. 이번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청와대는 ‘불통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권위주의 시대에 건축된 청와대는 본관에서도 가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2층 깊숙한 곳에 대통령의 집무실을 두고 비서동과는 500m의 거리를 둬서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했다. 관저 역시 500m 떨어진 곳에 있어 아무도 대통령의 사생활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반면 미국 백악관은 관저와 집무실까지 4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청와대와 같은 고립된 구조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 역시 소통불능의 상태로 만들기 쉽다. 결국 그 공간은 온 국민의 살기등등한 시선을 받는, 대한민국 전체를 병들게 한 적폐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국내 최고층 빌딩이라는 롯데타워도 마찬가지다. 도시 한가운데 난데없이 우뚝 솟아 있는 이 빌딩은 첫삽을 뜨기 전부터 수많은 구설과 반대에 부딪쳤지만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123층 높이로 완공시켰다.

동시에 그 불통과 오만함의 높이만큼 롯데는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주변과의 상생보다는 홀로 우뚝 서겠다는 욕심이 지어낸 초호화 빌딩은 롯데의 독선과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이 돼버렸다.

“이사하는데 있어 좋은 집을 고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든 집’을 피하는 겁니다. 사회가 각박하고 이기적으로 변할수록 아프고 힘든 집도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작가님도 힘든 집에서 한동안 고생했으니 이제는 좀 더 나은 집으로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문단에서도 한 고집하기로 유명한 이 작가의 포기 결심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와 함께 새로 이사 갈 집을 찾기 위해 또다시 길을 나섰다. “가고 싶은 집을 못 가게 막았으니 끝까지 책임지라”는 그의 말에 반박도 못한 채, 또다시 행군을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마포구에 위치한 연남동. 요즘 한창 뜨고 있다는 일명 ‘연트럴파크’ 공원길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땅 밑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듯한 안정감과 따뜻한 느낌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같이 걷던 그도 “오랜만에 나무와 풀들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며 생기 있게 웃었다. 마침 길옆에 아담한 초콜릿 전문점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그가 워낙 초콜릿을 좋아해 따뜻한 초콜릿 음료를 주문했는데 그 맛이 또 기가 막혔다.

“제가 먹어본 초콜릿 중에 가장 맛있는데요, 여기 있는 메뉴들 하나씩 다 먹어보려면 자주 와야겠어요.”

“작가님에게는 공원길과 초콜릿 가게가 있는 이 길이 바로 명당이군요. 도시의 명당이라는 게 별다른 게 아니에요. 보기만 해도 마음을 움직여 설레게 하고, 몸을 맑게 해주는 공간이 있는 그곳이 바로 ‘생지처(生地處)’죠.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온 것 같네요.”

그리고 그날 오후, 마침내 우리는 그의 새로운 집을 만났다. 공원길에서 가까운 골목길의 아담하고 조용한 이층집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그는 매일 아침 그 공원길을 걸으며 출근하고 글이 잘 안 써지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초콜릿 가게에 간다고 한다. 자주 걷는 길이 바뀐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몇 단계는 높아진 것 같단다.

신경건축학자 스턴버그는 저서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에서 미로와 미궁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미로는 여러 갈래의 길이 복잡하게 얽혀져 매 갈림길마다 나갈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길은 선택의 순간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다.

반면 미궁은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하나로 연결돼 있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도착하게 된다. 때문에 미궁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깊은 평온과 휴식을 통한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매일 아침 집에서 출발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길이 미로가 되느냐, 미궁이 되느냐는 내가 길을 걸으며 관심을 두거나 주의를 끌 만한 것이 있느냐로 결정된다. 똑같은 길이라도 호감을 가질만한 것이 군데군데 있는 길은 설레고 즐거운 마음이 들게 한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나무와 잔디가 있는 작은 공원이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홀로 사는 여성이라면 서로 얼굴을 익힐 수 있는 상점이나 경찰서 같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곳이 좋을 수 있다.

나를 설레게 하는 동네, 길을 찾아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요즘 한창 뜨고 있다는 일명 ‘연트럴파크’다. 번잡한 곳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나무와 잔디가 있는 작은 공원이 위안을 줄 수 있다. / 사진제공·신기율
이 작가처럼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유행에 민감하고 유니크 한 제품이 많은 연남동의 소규모 상점들이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 초콜릿 가게든, 수제화 가게든 그 옆을 지날 때마다 쇼윈도를 보며 어떤 새로운 제품이 나왔나 상상하며 기대하게 되는 곳. 그 공간에서만큼은 나를 괴롭혔던 만사를 잊고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그런 것들이 없는 길은 미로와 같다. 관심을 둘 만한 것이 없으니 길을 제외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주위가 언제나 낯설고 불안한 것일 뿐이라면 길을 걷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집으로 드나드는 길은 미로가 아닌 미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이고 들려야 한다. 저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소리와 냄새가 나는 곳인지 알만큼 충분히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 곳들이 모여 있는 길이 나를 쉬게 하고 평화롭게 해주는 명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집으로 가야 되냐’고 물을 때마다 집만 보지 말고 그 집으로 오가는 길을 함께 보라고 충고하고는 한다.

벌써 3년째 아침마다 왕복 1시간이 걸리는 아이의 통학이 즐거운 이유도 바로 길 때문이다. 집이 있는 정릉에서 아이의 학교가 있는 서대문까지는 그야말로 서울의 명당을 두루 거치는 최적의 코스다. 갈 때는 예기(藝氣) 가득한 평창동과 우백호 인왕산을 지나고 오는 길은 광화문과 가회동을 거쳐 재기(財氣) 넘치는 성북동길로 이어진다.

과거 궁이 들어선 최고의 명당과 부촌의 길들을 매일 아침 맞이하는 것이다. 복잡한 출근시간에도 한적한 이 길을 따라갈 때면 엉킨 생각들이 정리되고 긴장으로 짧아졌던 호흡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아이는 인왕산 호랑이 상을 지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며 자신의 소원을 말한다. 봄이면 산길로 꽃비가 내리고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 이럴 때면 비록 내가 명당에 살지는 못해도 그 길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명당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휴식을 원한다면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과 길을 공유하고 돈을 벌고 싶다면 부자들의 길을 공유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좋은 대학, 큰 도서관이 있는 길을 찾아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의 DNA에 공명해야 한다. 언젠가는 그 길이 내 마음의 길을 같은 모양으로 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성북동이나 평창동 같은 특정한 지역이 현대적 의미의 부촌이자 명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길이 명당이 되는 시대’다. 경리단길, 가로수길, 연남동 공원길처럼 길이 먼저 유명해진 뒤 그 지역의 가치가 동반상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터를 찾을 수 없거나 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 해도 실망하긴 이르다. 아직도 도시의 골목, 골목에 나만의 길, 나만의 명당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니까.

집 주인의 애정이 남다른, 함부로 고치지 않은 집을 골라라


▎서울의 가로수길, 우사단길, 연남동길의 모습.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유행에 민감한 제품이 많은 소규모 상점이 즐비한 길에서 새로운 활력과 영감을 얻을 수 있다. / 사진·중앙포토
우리가 이사할 때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이다. 집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의 에너지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바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사람이 떠나도 공간에는 한동안 그가 남겨놓은 자취, 유령DNA가 남아 크든 작든 일정한 영향을 끼친다. 실제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학원 선생님이 몇 년 전, 이런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저희 학원은 4층에 있었는데, 요즘 학원생이 많아져서 3층까지 확장하게 됐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이상하게 3층에서는 집중을 못해요. 4층에 있을 때는 차분하게 공부했는데 한층 내려오니까 엄청 떠들고 수업 분위기가 안 잡히는 거예요. 저도 뭔가 기분이 자꾸 떠 있는 느낌이고요.”

알고 봤더니 3층은 몇 년 동안 화장품 방문판매 사무실로 쓰였다고 한다. 주로 나이 지긋한 주부 판매사원들이 모여 수다를 즐기던 일종의 동네 사랑방이었던 것이다. 공간 전체가 수다스러운 기척으로 가득 차 있었을 테니 갑자기 공부하는 분위기로 바꾸는 게 쉬울 리 없다.

그의 말로는 다시 돌려놓는데 거의 반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내 경험으로도 터 자체의 문제가 아닌 경우 유령DNA가 최소 100일 정도는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때문에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이 집의 전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는 것이다.

실제로 집주인의 직업이 괜찮거나 그 집에 사는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면 부동산업자들의 은근한 마케팅 포인트가 된다. 그러나 단지 겉으로 보이는 사실로만 그 집을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정작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그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과의 관계’다. 집을 팔기 위해 잠깐 집안을 깨끗이 치울 수는 있지만 그 집을 다루는 태도까지 완전히 숨길 수는 없다. 눈빛이나 말투, 표정을 보면 집주인이 집에 어느 정도의 애착을 갖고 있는지가 보인다.

집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지, 아니면 빨리 비싼 값에 팔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공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다면 집과 사람이 좋은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정말로 아이가 명문대에 갈만큼 공부가 잘되는 집, 가족들이 무탈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집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아이가 아무리 명문대에 가고 집주인의 명함이 대단해도 정작 그들이 집에 관심이 없고 방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건 공간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이의 머리가 특출나게 뛰어났거나 당시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 집이 살고 있는 이가 특별하진 않더라도 그 공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적어도 병든 집은 아니다. 불편하고 떠나고 싶은 공간에 일부러 정성을 들일 리 없기 때문이다. 가끔 어떤 집에 가보면 낡아도 구석구석 반질반질한 손때가 묻어나는 집이 있다.

이사는 또 다른 우주, 또 다른 운명 속으로 들어가는 일

똑같은 공간이 지겹다고, 트렌드에 뒤쳐진다고 함부로 뜯거나 부수지 않고 오래되면 오래된 만큼 정성스레 가꾸고 조심스레 매만진 집이다. 이런 집은 마치 자연미인처럼 그 자체로 곱고 단정한 느낌이 든다.

반면 낡은 집이 아님에도 시시때때로 집을 고치고 리모델링이 잦았던 집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깨끗해서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성형미인 같은 집이다. 사람의 성향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아무리 고쳐도 계속 고칠 점이 보인다는 것은 그 집과 사람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집은 터가 사람에게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끌리고 싫은 사람을 멀리하듯 집 역시 편안하고 좋으면 애착을 갖고, 불편하고 힘들면 미련 없이 떠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공간을 볼 때는 그 공간 자체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묻어있는 공간’을 봐야 한다.

짧은 시간에 공간의 에너지와 기운을 한눈에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집과 사람은 서로 닮아가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서 집을 파악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빠른 길일 수 있다.

과거에 집은 단순히 사람의 생활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집 우(宇), 집 주(宙), 집이 모이면 우주(宇宙)가 됐고 집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이 모이면 사람의 운명을 말하는 사주(四柱)가 되었다.

집은 미지의 에너지로 가득 찬 우주이자 나를 붙잡고 있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사를 한다는 건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갈 때면 미리 이사 갈 집의 부엌이나 마루에 쌀이 든 솥을 두고 절을 하며 가신(家神)에게 신고식을 치렀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는 맨발로 터를 밟기도 했다. 발끝에 전해지는 땅을 온몸으로 느끼며 서로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이사 후 낡은 초가지붕을 바꿀 때는 새 짚 한 단을 용마루 위에 올려 미리 집수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짚 속에 살고 있을지 모르는 벌레나 곤충들에게 옮겨갈 터를 미리 제공해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들에게 이사는 지금처럼 환금성과 투자가치를 따지던 실리의 영역만은 아니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듯 몸과 물건만을 갈아타던 단순한 이동도 아니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바뀌는 것은 또 다른 우주, 또 다른 운명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또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신(神)들과의 만남이자 인생역변의 운을 맞이할 기회이기도 했다.

시대는 변했지만 예전처럼 집이라는 공간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대했을 때 이사는 내 운명과 삶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굳이 솥단지를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집에 애정을 담아 가볍게 인사하며 그 공간이 내게 전하려는 말을 느껴보려 애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살아갈 공간에 무엇이 비어 있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고 이때야 비로소 새로운 집, 또 다른 우주로의 진정한 이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신기율 - 과학·종교·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자유롭게 횡단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약 15년간 철학자로서의 남다른 혜안으로 세상과 사람의 깊은 본질을 마주한 결과 국내 최초로 ‘직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현재 직관과 마음치유 그리고 차(茶)를 결합한 기율다원(己律茶院)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2015년 베스트셀러 <직관하면 보인다>가 있다.

201705호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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