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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종교 이야기(12)] 불교의 ‘쌍둥이 종교’ 자이나교 

깨달은 인간은 신보다 위대할지니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치학 박사 [whanyung@joongang.co.kr]
기원전 3000년경부터 존재한 비(非)브라만 계통 무신론적 종교… 진리의 다면성·상대주의·다원주의 중시, 다른 종교 비판도 삼가

▎불교·힌두교· 자이나교 석굴사원이 나란히 위치한 엘로라 석굴군의 제16굴(카일라사 사원). 거대한 바위산을 100년 이상 정으로 쪼아 조각해낸 것으로 단일 석조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비교종교학·비교정치학이 구사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가장 닮았거나 가장 달리 보이는 대상을 비교하는 것이다. 비교는 의외의 진실과 결과를 나타낸다.

예컨대 아프리카는 한국과 상당히 달라 보이지만, 유교와 아프리카 종교의 공통분모는 ‘하늘’과 조상숭배다. 또 아프리카와 한국 정치문화의 공통점은 ‘기수(期數) 문화’다. 가장 다른 것 같은 것들 속에도 공통점이 있다.

반대로 해도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가장 닮은 것 같은 것들을 비교하면 근본적인 차이가 눈에 보인다. 예컨대 자이나교는 불교의 ‘쌍둥이 형제·자매 종교’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이나교와 불교 사이에는 상당한 이질성이 발견된다.(마찬가지로 가톨릭과 개신교는 같은 그리스도교이면서도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종교로 이해될 수도 있다.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를 비교하면 그리스도교의 본질이 드러날 수 있다)

자이나교의 뿌리는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 형태로 정립이 시작된 것은 불교와 같은 시기인 기원전 6세기 무렵이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자이나교의 가르침이 언제나 항상 존재해왔다고 주장한다.(자이나교의 어원인 ‘지나’는 ‘승자’라는 뜻이다)

6세기는 인도 카스트 사회에서 일부 크샤트리아(왕족과 무사) 계급 사람들이 브라만(승려) 계급에 반기를 든 시기였다. 부처와 마하비라는 그 선봉에 선 양대 종교 혁명 지도자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非)브라만 계통의 무신론적 종교다. 그리스도교가 ‘섭리의 종교’라면 자이나교와 불교는 ‘업(業)의 종교’다.

자이나교의 ‘사실상의 창시자’인 마하비라의 삶은 부처의 삶과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한 인물인 마하비라와 부처가 사실은 동일인물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제기됐을 정도다.(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마하비라의 아버지 이름은 싯다르타다)

어느 쪽이 연상(年上)인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다. 둘이 다른 시대에 살았다는 견해는 소수설이다. 둘 다 깨달음을 이룬 후에는 인도의 왕국과 도시들을 여행하며 가르침을 설파했다. 오늘날 비전문가들이 불상(佛像)과 마하비라상을 구분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계율 생활과 불살생, 고행 실천 중요시


▎자이나교의 뿌리는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 형태로 정립이 시작된 것은 불교와 같은 시기인 기원전 6세기 무렵이다.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됐던 자이나교 성지 스라바나벨라골라 나신상의 사진작품.
마하비라는 ‘위대한 승자’ ‘위대한 전사’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대웅(大雄)이라고 옮기기도 한다. 어릴 적 이름은 바르다마나(增長: 성장하게 하는 자)였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 그의 아버지의 왕국이 한창 번창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일종의 ‘선지자’인 24명의 티르탕가라(‘완전한 존재’, 구원자라는 뜻) 중에서 마지막 티르탕가라이다.

그들은 900만 년에 걸쳐 등장했다.(모든 종교는 대체로 원래 ‘뻥’이 좀 세다) 23대 티르탕가라인 파르슈바는 마하비라보다 약 250년 전에 살았다.

그는 폭력 쓰지 않기, 진실하기, 훔치지 않기, 갖지 말기를 ‘4대 서원’으로 제시했다. 마하비라는 ‘섹스 안 하기’를 추가했다. 불교의 오계(五戒: 살생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마시지 말라)와 비슷하다. 파르슈바와 마하비라 외에는 실존인물이었다는 증거가 희박하다.

마하비라는 기원전 540년(현대 종교학의 주장) 혹은 599년(전통적인 주장)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족장이었다. 형이 있어서 왕국을 물려받을 처지는 아니었지만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살았다. 30세에 출가해 12년 반에 걸친 고행과 명상 끝에 42세에 해탈(解脫)을 달성했다. 사라수(沙羅樹, sal tree) 아래서다.

30년간 제자들을 가르쳤다. 남성 출가자 1만4000명, 여성 출가자 3만6000명, 남성 재가자 15만9000명, 여성 재가자 31만8000명으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를 이끌었다. 72세에 사망했다. 자발적인 굶주림이 사인(死因)이라는 설도 있다. 자이나교에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들에 한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자발적인 굶주림을 허용한다.

두 종교 모두 바라문교의 근본 성전으로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전 1100년에 이루어진 베다(Veda)를 부정했다. 둘 다 지나친 의식주의(ritualism)에 반대했다. 특히 동물을 죽여 희생제에 바치는 것을 죄악시했다. 둘 다 엄격한 계율 생활과 불살생(不殺生), 그리고 고행의 실천을 중요시한다. 불교의 삼보(三寶)는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다. 자이나교에도 삼보가 있다. 자이나교의 삼보는 정신(正信)·정지(正知)·정행(正行)이다. 양쪽 다 궁극적인 목표는 열반(涅槃)이다.

가장 중요한 교리상의 차이점은 업(業·karma)에 대한 이해다. 불교나 힌두교에서 업은 일종의 ‘과정(process)’이다. 자이나교의 업은 본래는 순수한 영혼에 달라붙은 마치 때 같은 불순한 ‘물질’이다. 일종의 원자(原子·atom)다. 자이나교는 인도 최초로 원자론을 전개한 학파이기도 하다. 업은 인간 행동의 결과로 생성된다. 참회와 고행으로 업의 유입을 막을 수 있다. 정신(正信)·정지(正知)·정행(正行)을 통해 업을 없앨 수 있다.

세계 종교로 성장 못한 것은 온건주의 때문


▎인도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의 여인들은 다양한 색상과 무늬의 옷을 입는다. 인도 보리수나무 (banyan tree) 밑에서 종교의식을 하고 있는 여인들.
불교와 달리 자이나교는 영혼이 영원불멸(永遠不滅)이라고 믿는다. 마하비라에게 영혼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나(我, )I’라고 이해하는 게 영혼이다.”

자이나교의 영혼은 본래 상태에서 완벽한 인식, 지식, 행복과 권력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업 때문에 인간은 하늘, 인간 세상, 동물 세상, 지옥에 태어난다.

자이나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이전의 인간은 마치 ‘영적인 잠’을 자는 것과 같다. 한편 불교와 달리 자이나교의 영혼관은 애니미즘(animism)과 친연성(親緣性)이 있다. 애니미즘은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적·생명적인 것이 있으며, 자연계의 여러 현상도 영적·생명적인 것의 작용으로 보는 세계관 또는 원시 신앙”이다.

비슷하면서도 사실은 매우 다른 두 종교의 가장 두드러진 ‘현실적인’ 차이점은 신자 수다. 종교 인구만큼 부정확한 게 없다. 불교 인구는 최대 5억 명으로 추산된다. 자이나교는 500만 명이다. 활발한 포교활동을 통해 불교는 세계 종교가 됐다. 자이나교는 세계로 팽창하지 못했다. 자이나교의 교세는 인도 내부에 한정돼 있다. 자이나교를 믿는 이민자 공동체가 해외에 있기는 하다. 불교는 현대 인도에서 세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소수’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차이를 설명하는데 ‘모순어법’을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모순어법(矛盾語法, oxymoron)을 “수사법에서, 의미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을 함께 사용하는 일. 이를테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정의한다. ‘보수적 진보주의’ 같은 일종의 모순어법이다. 모순어법은 자칫 세간(世間)의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十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순어법은 뭔가 심오한 내용을 전달하는 언어 수단이 될 수 있다.

자이나교(Jainism)는 ‘온건적인 극단주의’를 실천해온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안을 들여다보면 자이나교는 교리와 실천에서 극단적(radical, extreme)이다. 밖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다른 종교에 대해서 지극히 온건하다는 게 특징이다. 자이나교의 대외적 온건성은 철저한 내부적 실천에서 나온다. 극단주의는 폭력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자이나교는 역사 속에서 극단적으로 평화와 비폭력을 추구했다. 왜냐면 폭력이 무지와 함께 가장 심각한 카르마의 축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실천적 극단주의 덕분에 자이나교는 인도의 힌두교라는 거대한 종교적 대양(大洋) 속에서 생존했다. 철저함 덕분에 흡수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극단주의 때문에 세계적 종교가 될 수는 없었다. 동시에 자이나교는 온건주의 덕분에 인도에서 다른 종교들과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건주의 때문에 세계 종교는 될 수 없었다. ‘세계 종교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 자이나교의 온건주의, 관용주의는 전쟁을 회피한다. 일면 알쏭달쏭하게 들리는 이 설명을 풀어가 보자.

‘극단적’ 채식주의와 무소유


▎인도 시크교의 10대 구루(지도자)인 고빈드 싱 탄생일을 앞두고 잠무 지역에서 종교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 시크교도가 입에서 불을 내뿜는 의식을 선보이고 있다
자이나교는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일까. 인도는 ‘종교 백화점’이다. 고대로부터 무신론, 다신론, 일신론이 발전해왔다. 자이나교는 인도 종교 중에서 가장 금욕적인 종교로 평가된다. 해탈을 위해 부처가 택한 길은 중도(中道)였다. 마하비라는 극단을 선택했다. 자주 단식을 했고 잠은 3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자이나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비폭력이다. 자이나교는 비폭력주의를 완성했다. 어쩌면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마하비라에 대해서는 그가 심지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자이나교다. 자이나교는 인도 시인·사상가 타고르(1861~1941)에게도 영향을 줬다.

자이나는 ‘승자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승자는 전쟁을 연상시킨다. 피 흘리는 전쟁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증오·욕심·이기심·욕망과 싸우는 전쟁이다. 마하비라는 이렇게 말했다. “분노는 더 많은 분노를 낳고, 용서와 사랑은 더 많은 용서와 사랑을 낳는다.”

자이나교는 불상생(不殺生)은 불교보다 더 래디컬(radical) 하다. 자이나교는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다. 땅을 파다가 벌레들을 해칠 가능성 때문에 농부가 되지 않는다. 다수 자이나교 신자들은 상업·금융업·예술·교육 등 분야에서 일한다. 벌목과 관련된 목공업도 피한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채식주의를 실천한다. 채식(菜食)은 “고기류를 피하고 주로 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만 먹음”을 의미한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식물성이라고 다 먹는 것은 아니다. 감자·마늘·무 같은 뿌리채소, 무화과, 꿀 등은 먹지 않는다. 과일·강황·생강·견과류·우유 등을 먹는다.

자이나교의 엄격한 채식주의는 불교와 힌두교에도 영향을 미쳐 채식주의가 인도 사회에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예식도 명분을 잃었고 차츰 사라졌다.

자이나교는 무소유(無所有)를 극단적으로 실천한다. 마하비라는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살았다.(온 우주가 그의 옷이니 굳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출가 후 첫해에는 단벌로 다녔는데 그마저 버렸다고 한다. 당연히 맨발로 길을 다녔다.(오늘날 자이나교 출가자들은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다)

마하비라는 걸식(乞食)에 필요한 그릇마저도 소유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물과 음식을 받아먹었다. 초기 자이나교에서 마하비라의 말은 구전 형식으로 경전화됐다. 책을 소유하는 것마저도 무소유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문서화된 것은 기원전 4~5세기부터다. 자이나교는 사람은 뭔가를 가질수록 불행하고 죄를 지을 가능성도 커진다고 본다.

자이나교는 철학이나 교리 때문에 분열되는 일이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출가자들의 규율이 문제가 됐다. ‘무소유를 어느 정도까지 실천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기원전 3세기 혹은 4세기에 자이나교의 분열을 낳았다.

우주는 영원하며 창조되지도 않는 것


▎수많은 종교가 공존하는 인도는 ‘종교 백화점’으로 불리는 나라다. 인도 카슈미르의 자미아 마스지트 사원 밖에 모인 여성 신자들 사이에서 한 어린이가 애처롭게 울고 있다.
공의파(空衣派·디감바라)는 옷을 거부했다. 또 공의파는 여성은 해탈할 수 없기 때문에 해탈하려면 일단 남성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여성의 성불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불교에서도 발생했다) 공의파에 따르면 여성은 알몸으로 살아가는 게 힘들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해로운 존재다.

‘백의파(白衣波·슈베탐바라)’는 간단한 옷 세 벌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의파는 여성을 ‘차별’하지 않았다. 공의파에 따르면 마하비라는 미혼이었다. 아버지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백의파는 그가 결혼해 한 명을 딸을 뒀다고 본다.

자이나교는 어떤 의미에서 온건할까. 우선 자이나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받아들인다. 힌두교 축제도 차용했다. 또 자이나교는 힌두교 문헌을 포함해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수집해 보존했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인도 최고(最古)의 도서관들을 건립했다. 금욕주의는 철학이나 책과 상대적으로 멀 것 같다. 자이나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나라 선불교가 교종만큼이나 문헌을 중시해온 것과 마찬가지다.

자이나교는 인도의 철학·언어학·논리학·수학·천문학·건축·예술 등 분야에서 불교보다 더 많은 영향을 남겼다. 역사적으로 자이나교는 ‘다원주의’를 신앙 속에서 실천했다. 인도 바깥에서는 자이나교·힌두교 신자들이 같은 사원을 공유한다.

타종교에 대한 자이나교의 온건하고 관용적인 태도는 마하비라가 가르친 ‘비절대주의의 원칙’(非絶對主義·아네칸타바다)에서 나온다. 다양한 관점에 따라 진리와 현실은 다르게 보인다는 가르침이다. 그 어떤 단일한 견해도 절대적인 진리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이나교는 진리의 다면성·상대주의·다원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비판하지 않는다. 타 종교에 대한 경쟁의식이 없다.(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자이나교와 불교는 치열한 논쟁을 통해 발전했다. 서로 상대편을 조롱하는 경우도 일부 있었다) 폭언·갑질은 당연히 안 된다. 자이나교는 사실(事實, fact)마저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주로 인도의 중부와 서부에 산다. 비핵화 운동, 동물실험 금지에 열심이다. 매일 48분씩(하루의 30분의 1) 명상을 한다. 목표는 우주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다. 그들은 매달 두 번 단식하고 자신의 죄를 공개 고백한다.

자이나교는 용서와 우의의 종교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나는 모든 생명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들 모두 나를 용서하고, 내가 그들 모두와 친교를 맺을 수 있기를 빕니다.” 자이나교는 무신론이기에 예컨대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과 달리 신(神)은 빠져 있다. 그들은 우주는 영원하며 창조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신이 필요 없다.

자이나교는 인간이 스스로 완벽하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종교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는 “깨달은 인간은 신 보다도 위대하다”고 주장한다.

김환영 -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외교부 명예 정책자문 위원. 단국대 인재 아카데미(초빙교수), 한경대 영어과(겸임교수), 서강대 국제대학원(연구교수)에서 강의했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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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호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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