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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포트] 한국인만 못 가는 북한관광 문 열리나 

웰컴 투 평양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외국인 대상 관광사업 활발, 신혼여행부터 웨딩촬영 워크숍까지 인기… 현대아산 등 금강산관광 사업자들, 재인 정부 출범 후 관광사업 재개에 기대감

6월 11일, 베이징에서 평양행 고려항공에 탑승해 5박6일 동안 평양을 두루 관광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총 비용 1195유로(약 147만원). 중국에 본사를 둔 북한전문 여행사 ‘영파이어니어(Young Pioneer, 젊은 선구자) 투어즈’에서 운영한다. 이 일정이 맞지 않으면 6월 5일에 출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진 워크숍 투어’는 어떤가? 2090유로로 조금 비싸긴 하지만 7박8일간 평양 시내를 누비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하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다면 관광을 갈 수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던 지난 9년간,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인 관광객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한국인만 빼고, 심지어 미국인마저 북한에 ‘놀러’ 가는 게 현실이다. 신혼여행부터 현장취재까지, 외국인 북한관광의 실태를 들여다본다.


▎사진제공·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김형덕 소장
일본인 30대 여성 A씨는 지난 5월 초, 페이스북에 신혼여행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장소는 ‘평양직할시’. 남편과 함께 평양 시내에서 웨딩 화보도 찍었다. 평양 시민들이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거리에서 볼 뽀뽀를 하는 사진부터 대동강변에서 활짝 웃는 사진까지, 포즈도 앵글도 다양했다. 그가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올리자마자 ‘좋아요’와 댓글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댓글은 대부분 “부럽다” “어떻게 갔느냐”는 내용이었다.

대북 경제제재로 인해 외화벌이가 궁해진 북한당국은 관광을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승인 없인 북한을 방문할 수 없는 국가인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 국민은 북한관광이 가능하다. 이런 틈새시장을 파고든 북한전문 여행사도 두 곳이나 생겼다. 영국·미국 국적의 중국 거주자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들 ‘양대 산맥’을 중심으로 유럽과 미주를 포함한 전 세계 사람이 북한에 관광객으로 방문한다.

고려투어스(Koryo Tours)라는 상호로 중국에서 성업 중인 여행사는 닉 보너가 창업했으며, 영국인 사이먼 카커렐이 경영을 총괄한다. 카커렐은 여행사 홈페이지에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영국 출신으로 베이징에 2000년 이주했으며 2002년에 고려투어스 입사.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 150회 이상 다녀옴. (중략) 사이먼의 끊임없는 노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관광객에게 개방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북한이 처음으로 공개하는 관광지에 제일 먼저 초대되는 사림이다.”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영파이어니어투어즈 역시 면면이 화려하다. 이 회사 홈페이지의 소개란은 이렇다. “당신의 엄마가 당신이 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곳에 당신을 합리적 가격으로 데려다주는 곳.” 북한이다. 10여 명의 20~30대 유럽·중국 젊은이가 의기투합해 만든 여행사다.


▎지난 4월, 익명을 요청한 외국인 관광객이 촬영한 평양 거리. 평양 시민들은 활기가 넘쳤다고 그는 밝혔다. / 사진제공·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김형덕 소장
대한민국 국적 보유자가 이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남북교류협력법 제9조에 따라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는 게 문제다. 이 조항에 따르면 통일부장관이 발급한 증명서를 소지한 경우 남한의 주민이 북한을 왕래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재외국민이 외국에서 북한을 왕래할 때도 재외공관의장에게 신고해야 하며,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북한 발전상 보여주는 프로그램


▎1. 평양 시내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어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고 한다. / 2. 평양 시내 한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어머니(가운데)와 아들. / 3. 봄이 찾아와서일까. 트럭을 타고 일터로 가는 사람들도 환히 웃었다. / 사진제공·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김형덕 소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12월 급서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뒤 북한도 상당히 변했다는 게 다녀온 이들의 전언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전 서울특파원으로 최근 평양을 다녀온 대니얼 튜더의 말이다.

“평양 신도심에 들어서는데, 마치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연상시키는 고층건물이 즐비했다. 뉴욕 맨해튼을 연상시켰다. 나는 이걸 ‘평해튼(평양+맨해튼)’이라고 부르고 싶다.”

튜더가 인상을 깊게 받은 이 거리는 김정은 위원장이 공들여온 여명거리다. 김정은이 원래 지난해 완공하라고 지시했으나 올해로 미루어진 신도심이다. 고층 주거용 빌딩이 주를 이루며,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다. 주로 핵·미사일 등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이 입주 1순위다.


▎4. 평양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한복 차림의 여성들. / 5. 많은 평양 시민이 자전거를 이용했다. 잡화상점에도 손님이 넘쳐났다. / 6. 평양 시내를 활보하는 시민들. 여성들은 세련된 차림이었다. / 사진제공·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김형덕 소장
관광객이 늘어날수록 프로그램도 다양해진다.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한 프랑스인 S씨는 북한 주민 바로 옆에서 이발하는 경험까지 했다. 익명을 요청한 그는 “머리를 깎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북한인) 가이드가 이발소로 데려가더라”며 “푹신한 가죽의자에 앉아 흰색 가운을 말끔히 차려입은 여성 이발사의 훌륭한 서비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여성 이발사는 그에게 현재 평양에서 유행한다는 김정은식 ‘패기머리’ 스타일을 권했다고 한다. 그는 “절대로 그 ‘패기머리’로는 하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했다”며 “이발사가 가위를 들자 조마조마했다. 내가 평양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북한에 외국인 관광객들은 양날의 칼이다. 해외 관광객들은 북한 주민들처럼 통제할 수가 없다. 북한 당국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지 않는다. 튜더는 “평양 밖으로 가니 북한의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평양에서 불과 20㎞ 벗어난 곳을 방문했는데, 다른 세상 같았다. 꼭 조선시대가 이랬을 것 같았다”며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주머니들과 물놀이하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 회색 아니면 빨간색 옷을 입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북한관광, 새 정부에선 달라질까


▎1. 북한에 ‘맥주 투어’를 제안해 성사시켰던 미국인 조시 토마스가 평양에서 촬영한 사진. / 2. 평양에서 대동강맥주를 따르는 북한 여성 직원. 조시 토마스는 “미국 맥주와 비교하면 어떠냐”고 묻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했다. / 사진제공·조시 토마스
일부 관광객은 아예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한다. 미국인 그래픽 디자이너 조시 토머스(30)가 대표적이다. 한국계 여자친구 덕분에 한반도에 관심을 갖게 된 토머스는 홍콩에 거주하던 지난 2012년 초 “북한 맥주는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다. 맛있는 맥주라면 사족을 못쓰는 ‘맥주 덕후’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북한관광 여행사 중 한 곳의 문을 두드렸고, 북한 당국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 그해 3월 30일부터 4월 6일까지 북한 맥주기행을 다녀왔다. 그는 당시 기자에게 “북한 맥주가 실제로 한국 맥주보다 맛있긴 했다”며 “전력이 부족하다 보니 냉장유통에 유리한 라거 타입이 아니라 상온에서 보관하는 에일 타입을 주로 만들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북한 관광의 빗장을 열어젖힌 선구자로는 캐나다인 마이클 스패버가 꼽힌다. 지난 2012년 미국 괴짜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방북을 주선했던 인물이다. 김정은과도 막역한 사이인 스패버는 아예 백두문화교류사를 차리고 관광뿐 아니라 여러 교류 및 투자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현재 북한 전문 여행사 양대산맥의 선조 격이다. 그는 8월엔 북한의 경제특구인 나선에 투자자들을 데려갈 예정이며, 10월 10일로 예정된 북한 노동당대회에도 4박5일로 방북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을 이미 올해 초에 발표했다.

반면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금강산관광은 지난 2008년 박왕자 씨 피격사건으로 중단됐고, 개성관광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하면서 개성공단까지 지난해 2월 가동이 중단되고말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TV 토론 등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려투어스의 홈페이지. “북한의 숨겨진 진짜 모습” 등을 볼 수 있다고 선전하는 관광 프로그램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 사진제공·고려투어스 홈페이지
“북한이 핵을 동결하고 그 토대 위에 핵 폐기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온다면 개성공단을 재개하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 모색에 무게를 두긴 하지만 북핵문제 해결이 선결과제다. 문 대통령 당선 후 분위기가 ‘업’된 통일부 역시 이 부분에선 조심스럽다. 핵심 당국자는 “아직 관광 재개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금강산관광 관련 사업에 종사했던 이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관광사업을 주도해온 현대아산도 조심스럽게 기대감을 내비쳤다. 관련 사업을 해온 중소기업 모임인 금강산투자기업협의회의 김진수 부회장도 “관광이 중단된 지난 9년간 사업자 2명이 화병으로 목숨을 끊거나 암 투병을 하다 사망했다”며 “이제부터라도 서광이 비추길 간절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강원도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고성에서 ‘끝집오징어’라는 상호로 기념품점을 운영하다 문을 닫은 이종복 사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간 가게 문 닫고 막노동도 하고, 딸은 등록금 아깝다며 휴학하고 돈 벌고, 힘든 시간 보냈어요. 하지만 이제 좀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서둘러달라는 말은 아니에요. 쉽게 풀릴 거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년 정도에는 가게 문을 다시 열고 싶습니다.”

-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박스기사] 현대아산 경협팀 김한수 이사 - “지금이라도 재개할 준비는 해놨다”


▎현대아산에서 남북경협팀을 이끌어온 김한수 이사. 문재인 정부 출범을 두고 “기대감이 높지만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했다. / 사진제공·현대아산
9년의 기다림은 언제 끝날까? 현대아산 남북경협팀 김한수 이사는 “기대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5월 12일 서울 종로구 현대 사옥에서 월간중앙과 만난 자리에서다. 그는 현대아산 대북사업의 산 증인이다. 1998년 대북 관광사업을 개시하던 시점부터 남북경협팀에 몸담았다.

2008년 박왕자 씨 피격사망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이듬해에는 개성관광이 중단된 뒤로도 줄곧 팀을 지켰다. 10년 가까이 사업이 멈추면서 약 500명에 달했던 팀원 중 이제 남은 이들은 170여 명. 인고의 세월을 보낸 그에게 문재인 대통령 당선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는 “‘인차’(‘곧’이라는 의미의 북한말) (재개)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아산 사옥 남북경협팀 사무실에서 만난 김한수 이사는 섣부른 희망보다 조심스러운 기대를 내비쳤다. 유도질문에도 그는 “예단하지 않고,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을 기다리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지난 9년간 저희는 계속 준비해왔다. 여건만 성숙되면 전 직원이 일심동체로 움직여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부는 그간 북측의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 신변 안전을 위한 제도적 보장 등 3대 선결조건을 내세웠다. 다음은 김 이사와의 일문일답.

9년간 중단된 대북사업 재개 기대감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은?

김 이사(이하 김):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와 경협 사업 전망이 상당히 밝아졌다. 유엔의 대북제재 등이 있지만, 기대감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아직은 기다려봐야 한다.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대는 분명, 있다.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9년은 긴 세월이다.

김: “인원 감축이라는 마음 아픈 일도 겪었고, 9년간 (북측의)

시설은 노후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준비를 계속했다. 관광 중단 뒤에도 시설점검 등을 위해 매년 3~4회 금강산에 들어갔고, (2015년 10월 마지막으로 열린) 이산가족 행사에도 직접 올라가 열정으로 지원했다. 재개를 대비해 인력 배치 및 시설 보수 등 매뉴얼도 정비했다. 그러나 남북 당국 간 협의와 합의가 먼저다. 합의되면 개성관광 같은 경우는 지금이라도 바로 재개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박왕자 씨 피살사건 같은 비극은 어떻게 막을 계획인가?

김: “안전 펜스나 폐쇄회로(CC)TV 설치를 늘리고, 관광객 대상 안전교육을 강화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정부, 특히 통일부와도 발맞추어 갈 준비를 했다. 사업자 측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나?

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08년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만나 박왕자 씨 사건에 대해 사과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이 유훈은 철저히 지킬 수밖에 없다.”

-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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